민주노총은 22일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노총 및 가맹조직 관계자의 통신자료 조회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당사자들이 직접 통신사에 요청해 받은 통신자료 제공 사실 결과서를 취합해 1차로 분석해 발표한 이날 자료를 보면, 결과서를 통보받은 이들은 연 평균 7.24건의 '사찰'을 받았다. 심지어는 휴직 중인 사람의 통신자료까지 조회한 사실도 확인됐다.
총 681건 가운데 경찰이 요청한 것이 585건으로 가장 많았다. 국정원도 83건, 검찰도 13건의 통신자료 제공을 요청했다.
민주노총은 "검경과 국정원은 무분별한 통신사찰의 이유와 목적에 대해 국민 앞에 낱낱이 해명해야 하며, 책임자 처벌 등 국민의 정보 인권 침해에 대한 법적 책임도 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영주 민주노총 사무총장, 본인은 1년간 31건…"남편과 자녀까지 통신자료 조회"
민주노총 관계자들에 대한 통신자료 제공 요청은 지난해 11월과 12월 급증했다. 11월이 총 123건, 12월이 386건으로 두 달의 제공 건수가 509건에 달한다. 1년 치 제공 건수의 74%였다.
이때는 11월 14일 민중총궐기에서 농민 백남기 씨가 물대포에 맞아 쓰러지는 등 공권력과 상당한 충돌이 있었던 시기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의 검거를 위해 수사기관이 총력을 다하던 때였다.
특히 11월 30일에는 민주노총 사무총국 관계자 9명을 대상으로 서울지방경찰청의 '긴급요청'이 집중돼 있었다. 긴급요청이란 공문도 없이 통신자료 제공을 전화 상으로 요청하는 것이다.
조직별로 보면, 사무총국 관계자들이 제일 많이 포함돼 있다. 전체 50여 명 가운데 43명 총 457건의 통신자료 조회 사실이 확인됐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당연히 들어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사람인데도 제공 사실이 없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는 법원의 영장을 가지고 통신자료를 제공받은 경우 기록에 남지 않기 때문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가장 많은 제공 건수를 기록한 이영주 사무총장은 본인 뿐 아니라 평범한 직장인인 남편과 대학생인 자녀까지 통신자료 제공 사실이 드러났다. 이영주 사무총장은 "남편과 아이의 통신자료까지 확인한 것을 보면, 단순히 민중총궐기 등의 수사를 위한 것만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 다음으로 대상자가 많았던 곳은 공공운수노조였다. 총 16명이 101건의 통신자료 제공 사실이 확인됐다. 이승철 민주노총 대변인은 "현재 통신사에 자료 제공 사실을 확인 요청했으나 아직 결과를 받지 못한 사람도 많다"며 "추후 자료 제공 대상자 및 건수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이런 무차별적인 통신 사찰은 명백한 정보인권 침해이며 국민의 사생활 보호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권력 남용"이라고 비판했다.
인권위·헌재·UN까지 '우려' 표명했지만…테러방지법까지 시행
민주노총의 이날 발표 이전부터 국회의원, 변호사, 기자, 종교인 등 다양한 사람들의 통신자료가 광범위하게 사정기관에 제공된 사실이 알려진 바 있다. 진보네트워크의 장여경 활동가는 "연간 통신자료 제공 수치는 꾸준히 증가해 오다, 정부 공식 통계에서도 최근 1000만 건을 넘어섰다"며 "인구 5000만의 나라에서 5명 중 1명의 정보가 제공되었다는 의미"라고 비판했다.
현행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는, 정보·수사기관이 통신자료 제공을 요청하면 민간 통신사는 그 요청에 "따를 수 있다"고 돼 있다. 실제 이 조항은 "재판, 수사, 형의 집행 또는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위해를 방지하기 위해"라는 단서 조항을 달고 있지만, 실제로는 "오남용 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으며 그 책임을 서로 떠넘길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이 비판의 지점이다.
장여경 활동가는 "경찰과 국정원은 '수사대상의 통화 상대방'이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아무 혐의가 없는 국민들이 단지 수사 대상의 통화 상대방이었기 때문에 주민등록번호 등 고유하고 민감한 개인 정보가 제한 없이 제공되는 것은 공권력의 남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국가가 모든 국민을 유죄로 간주하고 저인망식으로 정보를 쓸어온 후 각자 무죄를 입증하라는 것은 그 자체가 인권침해"라며 "더구나 이를 통제하거나 견제할 수 있는 아무런 제도적 장치가 없다"고 비판했다.
통신자료 제공 등을 통한 주민등록번호의 오남용 문제는 이미 국가인권위와 헌법재판소가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인권위는 지난 2014년 8월 5일 "주민등록번호는 모든 정보에 접근하기 위한 '만능열쇠' 또는 '연결자' 기능을 하고 있으며, 이런 '연결자' 기능의 파급력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며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헌법재판소도 "주민등록번호가 불법 유출 또는 오남용 될 경우 개인의 사생활 뿐만 아니라 생명·신체·재산까지 침해될 소지가 크므로 이를 관리하는 국가는 이런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고 밝혔었다.
국내 기관 뿐 아니라 유엔(UN) 자유권 위원회도 지난 2015년 한국 정부에 통신자료 제공 제도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제도 개선을 촉구한 바 있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은 이뤄지지 않았고, 지난 3일자로 시행된 테러방지법 역시 위치 정보 등의 개인정보를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 정보 통신 인권 침해 사례는 더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국정원은 국정원법에 의해 내국인 감시 사유가 제한돼 있음에도, 검경과 비슷하게 광범위한 사람을 대상으로 통신자료 제공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한 해명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들 단체의 입장이다.
민주노총은 "1차 조사에 이어 민주노총 조합원 뿐 아니라 시민사회단체를 대상으로 한 추가 조사를 통해 범사회적 공동 대응으로 그 심각성을 고발할 것이며 고소고발 및 손해배상 청구 등 가능한 법적 조치 역시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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