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에 대한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의 입장은 이런 것입니다. 제 목을 저 스스로 쳐달라는 주문입니다.
그가 그랬습니다. <조선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현재 상황에서는 유 의원 본인이 결단을 하는 게 가장 좋다"며 "(유승민 의원이) 스스로 결단을 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고요. "유 의원이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면 공천위 나름대로 생각을 하고 결단을 할 수밖에 없다"는 말을 덧붙이기는 했지만 이건 후순위입니다. 선순위는 분명 '셀프'입니다.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의 말에서 우선 확인하는 건 비정함입니다. 이른바 '배신의 정치'에 대해 끝까지 보복하는 모습은 비정함 그 자체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같이 해온 세월이 얼마인데…'라는 류의 소박한 인정머리는 눈곱만치도 없습니다. 차고 넘치는 건 '찍으면 죽인다'는 서릿발 기세입니다.
최소한의 예우도 없습니다. 칼로 베는 한이 있어도 욕은 보이지 않는, 맞수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도 없습니다. 그래서 비정할 뿐만 아니라 야멸차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이건 겉모습입니다. 한꺼풀 벗긴 속살은 추합니다. 비겁합니다. 너를 베고 싶지만 나는 털끝 하나 다치고 싶지 않다는 '보신'의 얄팍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잘랐을 때 닥쳐올 역풍이 무섭고, 역풍이 불러올 정치적 손해가 부담스러워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스스로 '배신자'라 규정한 사람에게 '장렬한 퇴장'을 요구하는 난센스를 연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한구 위원장의 요구는 '비겁한 비정'입니다. '얌통머리(염치) 없는 윽박지르기'입니다.
먹힐 것 같지는 않습니다. 유승민 의원이 순순히 따를 것 같지는 않습니다.
유승민계 핵심 의원이 <한국일보> 기자에게 전했습니다. 유승민 의원과 유승민계 의원들이 만나 "자진 탈당은 절대 안 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했습니다. 새누리당이 "경선에 부치면 경선을 받고 공천 배제한다면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하기로 입장을 정리했다"고 했습니다.
당연하다 못해 뻔한 입장입니다. 지금 여기서 자진 퇴장해버리면 자신에게 덧씌워진 '배신'의 낙인을 인정하는 꼴이 돼 버립니다. 자기 살자고 다시 배신 때리는 셈이 돼 버립니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를 자진해서 새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오욕을 자청할 사람은 없습니다.
유승민 의원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우회로도 없습니다. 있던 곳에서 유권자의 심판을 구하는 것, 오직 이것만이 유승민 의원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처신법입니다.
유승민의 관점에서 살피니 더욱 또렷해집니다. 이한구 위원장의 요구가 왜 문제인지가 더 분명해집니다. 이한구 위원장의 요구는 반성문 쓰고 자퇴하라는 것입니다. 잘못한 게 없다고 확신하는 학생에게 반성을 강요하는 것입니다.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압박하는 것입니다. 이건 정치적 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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