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의 '패배'가 두려운 진짜 이유

[기고] "'이세돌의 네트워크' 만들자"

나는 이세돌의 패배가 어떤 면에서는 다행스럽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인공지능에게는 오류는 있어도 실수는 없다. 하지만 인간은 실수를 한다. 그러한 실수 혹은 실패는 너무나 보편적이어서 인간의 한 조건이기도 하다. 우리가 부족하다는 것, 인간이 실수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인간의 진보는 시작된다.


내가 핵발전소를 반대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도 결국 인간이 실수를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 때문이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우리는 후쿠시마와 체르노빌의 지옥을 맞은 것이다. 나도 한 명의 인간 종으로서 알파고의 승리가 달갑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다행이라 생각하는 것은 무결점의 인간보다 실패로부터 겸손을 배워나가는 인간이 훨씬 이 세상에 민폐를 덜 끼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세돌의 패배는 실수와 실패를 고려하지 않고 막나가는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게 하는 교훈적 사건 일수 있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이세돌의 패배에 충격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 생각에 그 실망의 뿌리에는 두려움이 있다. 벌써부터 인터넷에는 인공지능으로 인해 500만 개의 일자리가 없어질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우리들의 일자리는 인공지능이 앗아가는 게 아니라 그 인공지능을 개발한 자본이 앗아간다. 사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은, '인공지능'과 인간의 대결이 아니라 '자본이 만든 인공지능'과 인간의 대결이었다. 그것은 기계와 인간의 대결이기 이전에 구글과 이세돌의 대결이다. 구글이라는 자본의 집약체에 대해 인간계에서 가장 바둑을 잘 둔다는 한 개인이 패배했다. 그래서 이제 이세돌은 이 세상에서 두 번째로 바둑을 잘 둔다. 그리고 그 위치는 다시 세 번째, 네 번째. 그렇게 계속 아래로 언제든지 떨어질 수 있다. 구글이라는 자본의 마음먹기에 따라서 말이다.

나도 이세돌의 패배가 두렵다. 인공지능에게 인간이 패배한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다. 자본에 대한 제어가 전혀 되지 않는 한국사회가 두렵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라면 인공지능을 보유한 자본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은 언제든지 허용될 것이다. 이세돌의 패배가 바둑판에서의 패배가 아니라 내 삶의 실패로 귀결될 수 있다고 느끼는 이유는 기술의 발전이 필연적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 기술을 운영하고 적용하는 기업들이 우리들의 밥그릇을 걷어차 버리는 것이 이 한국사회에서는 언제나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세돌의 자리에 나를 앉혀본다. 구글이라는 대자본의 맞은 편에 앉아 있는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 조그마한 점포에 앉아서 구글링이나 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하이패스'를 사용하지 않거나 인터넷보다 은행점포를 이용하는 것 정도 밖에는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기에는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수많은 '알파고'들이 만들어지는 동안 우리가 수많은 '이세돌'들의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다면 희망은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하지 못한다면 우리 이후의 세대는 너무나 많은 것을 잃을 것이다. 그때에는 질문조차도 없는 세상, 선택조차도 불가능한 세상이 될 것이다. 나는 그것이 가장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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