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의 야권발 '공포 정치', 성공할까?

[분석] 김종인은 야권을 선거 승리로 이끌 구원투수인가

김종인이 다시 한번 총선의 아이콘이 되고 있다. 지난 1월 14일 더불어민주당에 공식 영입된 후 좋으나 싫으나 전체 선거판을 뒤흔들고 있다는 것은 보수, 진보 막론하고 동의하는 지점이다.

보수 언론이든 진보 언론이든 더민주 관련 기사가 지면 분양을 더 많이 받고 있으며, 새누리당 관련 기사 비중은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지난 7일자 조간신문에 등장한 주요 인터뷰어는 김종인(중앙일보), 문재인(한겨레), 안철수(동아일보)였다. 주류 언론이 이들을 주목하고 있는 셈이다. 보수 정당이 집권한 상황에서 선거판에서 야당이 주목받는 일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행보는 거침이 없다. 테러 방지법 필리버스터를 끝내기로 결정하면서, 국면 전환용으로 '야권 통합'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와 동시에 탈당파 의원에게 러브콜을 보내 '(친노) 패권주의'와 '현실성 없는 진보' 청산을 역설했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의 경제 공약을 짰던 그가 지금은 박근혜 정부의 경제 실정을 부각시키고 있다. 하나 하나 정국을 뒤흔들지 않은 이슈가 없다.

공천 권한을 거머쥔 뒤 행보도 거침이 없다. 범주류로 분류되는 광주북갑의 강기정 의원을 '전략 공천 지정' 형식으로 쳐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논란이 된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과 '구조 조정'으로 논란이 된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를 영입했다. 7일에는 경제 고위 관료, 경제 전문 변호사, 경제 고위 관료 등을 전략 공천했다. '중도 표'를 의식한 행보다.

김종인의 '입'도 주목받는다. 야권의 심장인 광주를 방문해서는 '햇볕정책 수정·보완론'을 꺼내들었다. 7일 민주노총을 만나서는 "(노동조합이) 사회 문제에 집착하면 근로자의 권익이 소외된다"고 타박했다. 당 정체성이 오른쪽으로 간다는 지적에는 "일관성이 밥 먹여주느냐"고 일갈했다.

판 흔들기엔 성공했다. 그러나 '김종인 효과'에 대한 두가지 의문은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 '도대체 야당의 정체성을 어디로 끌고 가는 것이냐'는 의문, 그리고 '당의 정체성을 헤집는데, 왜 의원들은 반발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다. 전자는 노선과 관계가 있고, 후자는 리더십과 관계가 있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프레시안(최형락)

한번도 리더였던 적 없던 김종인의 '공포 리더십', 선거판을 흔들다

정치 전문가들은 김 대표의 '리더십'을 주목한다. 노선도 리더십이 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김종인 대표가 주목받는 것은 노선 문제라기보다는 리더십 문제"라며 "(지지자들이) 정체성은 문제 삼지 않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야당의) 리더십이 흔들리는 문제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한국 정치사를 보면 항상 노선 문제는 리더십 문제보다 덜 중요했다"면서 "노선이라는 것은 정치 지도자가 그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지 없는지로 본다"고 짚었다. 예를 들어 "야당 지지자들이 김영삼 총재의 삼당 합당이나 김대중 총재의 DJP 연합을 지지한 것은 김영삼, 김대중 총재가 노태우, 김종필 총재를 통제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했다.

확실히 김 대표의 리더십은 3김 시대 이후 야당이 맛보지 못한 것이었다. 거칠고, 날카롭고, 독단적이다. <경향신문>의 이대근 논설위원은 "야당 판에서는 결코 있어 본 적이 없는 것, 즉 야수적 충동과 권력 의지가 살아난 것일까? 승리를 목표로 삼고, 승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철저한 목적 지향적 행동을 야당은 해 본지 꽤 오래됐다"며 김종인 등장 이후 야당의 변화를 설명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김 대표는 '리더십'을 발휘해 본 이력이 없었다. 강력한 카리스마가 있다는 평을 받지만, 이전까지는 '2인자'로서 자신의 구상하는 정책을 실현시켜 왔을 뿐이었다. 박정희 정부 시절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권력을 이용해 의료보험제도를 관철시켰고, 노태우 정부 때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권력을 이용해 재벌의 회유를 극복, '경제 민주화 조항'을 관철시켰다. 모두 독재, 혹은 권위주의 정권의 '힘'을 빌렸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이었다. '개혁은 비민주적 방식을 통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냉정한 현실론을 체화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박근혜 후보'를 택한 것도 박 대통령의 권력 의지나 권력을 이해하는 방식이, 실제 정책을 관철시키는데 더 없이 효율적인 '독재' 스타일에 가까웠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박 대통령에 대한 김 대표의 당시 평가를 보자. 김 대표는 박 대통령을 선택한 이유로 이익단체의 외압이나 관료의 저항에 좌고우면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들었다. 다음은 2012년 3월 14일자 <프레시안> 인터뷰다. (☞관련 기사 : 김종인 인터뷰 "경제 민주화는 의지가 중요…재벌 이해관계 없는 박근혜 의지 확고해")

"사람들이 나한테 물어본다. 왜 당신이 하필 새누리당을 도와주느냐. 내가 17대 국회에 있으면서 실망했던 게 뭐냐. 당시 열린우리당 주류를 형성한 게 386이다. 그 사람들이 떼를 지어서 전경련을 찾아가 '나는 당신들 편이다'며 전경련 회장을 만나기를 원하고, (그런데) 회장도 못 만나고 부회장 만나고 오더라. 나는 그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의식을 갖고 정권을 잡았는지, 무슨 의식을 갖고 나라의 제도를 바꾸려고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신념이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에게는 조금도 애착이 없다.

옛날에 모택동이 '왜 하필이면 당신이 미국 공화당 정권과 수교를 하느냐' 그러니까 모택동이 '민주당은 왔다 갔다 해서 믿을 수가 없다. 공화당은 한번 결심하면 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박근혜 위원장이 대통령의 딸로 태어나서 여태까지 대접만 받아오고 사회 현상에 대해 뭘 인식을 했느냐'고 하는데, 그런 사람일수록 인식을 한번 하면 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 자세를 봤을 때, 여러 상황이 있지만 내가 끝까지 옆에서 도와주면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겠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 한나라당(새누리당)의 풍토는 이렇다. 박근혜 위원장이 만약 대통령이 되면 그 사람 의지에 따라가는 습관을 갖고 있는 정당이기 때문에 그런 우려는 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김 대표의 이같은 '호기'는 빛을 발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추후에 자신의 판단이 잘못됐음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강력한 리더십을 이용한 정책 관철' 구상이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그런 그가 이번엔 '전공'을 바꿨다. '2인자'에서 '1인자'가 된 것이다. 그것도 집권 세력의 뒤에서 정책을 조정해왔던 그가 야당 대표로 대안을 창조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박성민 대표의 분석을 더 들어보자.

"그런 강력한 리더십이 발휘됐던 사례는 (리더가) 오너일 때였지,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이 강력하게 리더십을 발휘하려 해도 잘 안 된 측면이 있어서 (김종인 대표가 외부 인사라는 점은) 불안 요소이기도 하다. 대선 주자들이 리더십이 약해서 외부 인사가 들어와 전권을 휘두르는 것을 보기는 처음이기 때문에 이 실험이 어떻게 될지 예측되지 않는다"

"중도화해도 지지층 이탈 없다" VS "중도화는 총선에 안 맞는 전략"

야당은 전례없는 실험 중이다. 이 실험은 해피엔딩으로 귀결될까? 최근 김 대표의 행보, 발언의 맥을 따라 유추하다보면 '산토끼 전략'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중도 지향 전략이다. 전통적인 야권 지지층을 잡아 두면서 중도 지지층까지 외연을 확장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중도화 전략은 야권의 오랜 화두였다.

18대 총선에서 대패한 야당은 정세균 대표를 중심으로 '뉴민주당 플랜'을 만든 적이 있다. 그러나 중도 지향적인 이 안은 당의 정체성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실상 흐지부지 되다 폐기 수순을 밟았다. 이후 크고 작은 선거에 패할 때마다 야당 안에서는 '중도화' 논란이 벌어졌고, 지도부는 왼쪽과 오른쪽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언제나 승기를 놓쳐 왔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분위기다. '햇볕 정책 수정·보완론', '노조의 사회 참여 자제론' 등을 거론하는 김 대표의 거침없는 발언에도 당내에서는 논란이 벌어지지 않고 있다. '바지 사장'에 대한 그 흔한 '사상 검증'도 없다. 윤태곤 의제와 전략 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이같은 현상의 배경으로 '김종인 대표의 강력한 리더십'과 야당 지지자들의 '반새누리당 정서'를 꼽았다.

윤 실장은 "김종인 리더십의 요체는 '공포'다. '나는 이 당에 이해관계도 없고, 수틀리면 언제든지 나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 '공포 정치'의 근원"이라며 "강력한 리더십으로 집토끼를 사로잡아 '자기들끼리 싸우는 야당의 이미지'를 불식시키고, 중도화 전략도 쓸 수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야당 지지층은 야당이 진보성을 강화하지 않는다고 이탈한다기보다는, 반보수·반새누리당 정서가 더 크기 때문에, 더불어민주당이 중도화를 강화하더라도 다른 정당으로의 이탈 폭은 제한적일 수 있다"고 봤다. '집토끼의 이탈이 없다'는 전제 하에 윤태곤 실장은 "중도화 전략은 총선에서 친노 패권 청산을 원하는 유권자, 중도층과 합리적인 보수, 호남에 대한 호소력이 있다"고 말했다.

'공포 리더십'을 구축하고 있는 김 대표는 당을 잡음 없이 오른쪽으로 이끌고 있다. '우경화 논란'을 차단하고 있는 것은 강력한 '반(反)박근혜, 반(反)새누리당 성향을 '인증'받았기 때문이다. 김 대표에 의구심을 가진 인사들도 그의 '반박근혜' 성향은 인정하고 있다. 박 대통령에게 '배신'당한 이력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전략이 성공할 수 없다는 전망도 있다. 빅데이터 분석가이자 정치 전문가인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는 "중도 확장 전략은 총선에서 의미가 없다"면서 "오히려 지지자들의 구심력을 완화할 뿐"이라고 평가했다.

유승찬 대표는 "총선 투표율 자체가 양당 지지율보다 낮기 때문에 중도층은 정말 마음에 드는 정책이나 정당이 없으면 투표장에 안 나간다"고 말했다. 253개 지역구에서 각각의 대표를 동시에 뽑는 선거는 지역별 지지 세력(집토끼) 결집이 중요하다. 반면 대선은 49대 51 싸움이기 때문에 중도를 끌어안는 것이 효과적인 전략이 된다. 총선에서 '산토끼'는 투표장에 나가지 않고 주로 '집토끼'가 결집하는 만큼, '중도화 전략'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리더'로서 검증받지 않았던 김종인의 '실험', 그리고 그를 구원투수로 영입한 야당의 '실험'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의 카리스마가 총선 판도를 흔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과연 그가 공언한 대로 총선을 성공적으로 이끌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김종인 더민주 대표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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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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