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에 지배받는 나, 100년을 더 살라고?"

[청년, 청년배당을 말하다 ⑥] 청년을 버린 대한민국의 미래는?

청년 배당, 청년 수당 논란은 정책에 대한 찬반 여하를 떠나, 청년이 보호의 대상으로 떠오른 현실을 보여준다. 그만큼 2016년을 살아가는 지금 청년 세대의 삶은 팍팍하기 그지없다. 그렇다면 미래에는 나아질까. 30년 뒤인 2040년대의 청년들의 삶은 어떨까. 다음은 2046년 생활상으로 예상되는 모습들을 가상 시나리오로 구성한 것이다.

청년, 청년 배당을 말하다

① 로봇과 경쟁해도 '노오력'하면 된다고요?
② "청년들, 공돈 받는 재미로 더 일 안 하겠지"
③ "청년 배당으로 3년 만에 과일 사먹었어요"
④ "커피요? 어쩌다 가는 카페에서도 물만 마셔요!"
⑤ 1980년대 '아버지의 나라'와 지금은…

대물림되는 'N포'

2046년 3월 4일, 잔뜩 구름.

엄마랑 같이 '응답하라 2016' 시리즈를 다시 봤다. 내가 태어난 해가 배경이니 나는 알 수도 없는 까마득한 일인데, 엄마 성화에 못이겨 매번 같이 보곤 한다. 엄마는 나온 지 20년도 더 된 이 옛날 옛적 드라마가 그렇게 재밌다고 하신다. 내용은 별것 없다. '동수저', '흙수저'로 태어난 젊은 남녀 주인공들이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취직 준비를 하다가 눈이 맞는 얘기다.

엄마는 이 드라마를 볼 때마다 본인 젊었을 때가 생각난다며, 이런저런 옛날 얘기를 들려주신다. "그땐 카페에 아르바이트생이 있었고, 빵이나 커피를 알바생이 직접 만들어서 팔았다"며 "그런 거 해본 적 있느냐"고 물어보곤 하신다. 내가 알 게 뭐람. 할아버지가 사주신 3D 프린트기가 매일 따끈따끈한 식빵이며 커피며 다 만들어주는데. 카페 알바생이란, 지금 시점에서 보면 불필요한 존재 같다.

▲3D프린터기의 발달로 제조업이 위협받고 있다. ⓒ연합뉴스

그 당시 '알바'라고 하던 개념 자체가 이해가 안 간다. '비정규직 설움' 어쩌고 하는 대목도 있는데 그것도 잘 모르겠다. 평생 직장이 사라진 지 언제인데, 비정규로 1~2년씩 잠깐잠깐만 일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그래도 드라마 주인공들이 좋은 데 취직하겠다고 고군분투하는 모습들이 꽤 멋져 보인다. 뭐라도 하겠다고 나서는 게 어딘가. 난 아직 뭘 해야 좋을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로봇을 지배하지 않는 자는 로봇에 지배를 당한다.' 이 말이 딱 맞다. 몇 년 전부터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올라서면서, 인공지능 로봇 조작에 능한 인재들만이 각광받게 됐다. 요새 사람들은 컴퓨터 칩을 몸에 이식하는 바이오컴퓨터를 쓸 정도로 첨단 과학에 친숙하지만, 여전히 과학 기술을 발전시키거나 통제하는 것은 여전히, 아니 오히려 더욱 소수 엘리트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되어가고 있다.

▲가상 성형과 가상 메이크업 체험. ⓒ연합뉴스


이런 세상에서 아직도 '내가 외국어 하나는 끝내주게 잘했다'고 말하는 엄마가 우습다.

나랑 딱 30살 차이 나는 1987년생 엄마는 대학에서 중어중문을 전공한 뒤 학원 강사로 일하셨다. 30년 전만 하더라도 영어나 중국어 잘하는 사람이 제일이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웃긴 일이다. 대체 외국어를 전공까지 할 필요가 있나. 바이오컴퓨터 프로그램 안에 있는 동시통역기능 돌리면 되지. 엄마 또래 사람들은 세상이 이렇게 변할 줄 몰랐나 보다. 엄마가 학원을 관둔 게 내가 고등학생 때였으니 벌써 10년 넘었나. 나도 중국어나 영어 공부는 중학교 때 이후로 거의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미 내가 초등학생 때부터 스마트폰에 자동통역기능이 들어있었으니.

사실 엄마는 외국어를 전공한 걸 후회하신다. 그래서 늘 나에게 물리학이나 우주 공학을 전공하라고 닦달하셨다. 엄마 뜻에 못 이겨 물리학 공부를 하다 결국 적성에 안 맞아 포기했다. 근데 요즘 생각하면 그때 힘들어도 계속 공부할 걸 그랬다. 로봇한테 지배받고 살 생각을 하니 비참해진다.

세상을 지배하는 게 인공지능이고, 인공지능을 통제하고 장악할 능력이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많지 않다. 엄마는 '그럼 기계가 할 수 없는 일을 해보라' 하셔서 시나리오 작가 준비를 했지만, 글쓰기 영역마저도 로봇에 빼앗겼다. 요샌 시인이 지은 시보다 컴퓨터가 만드는 시가 더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다. '손맛'이 중요하다던 이‧미용이나 요리 영역 역시 이미 3D, 4D 프린트기가 점령한 지 오래다. 요새 '늙은 부모'가 많다 보니 젊은 보모가 인기가 많다는데, 이거라도 한 번 해볼까 생각 중이다.

살기가 참 어렵다. 뭘 배우려 해도 세상은 이미 빠르게 변해가고, 나는 그 흐름을 따라갈 자신이 없다. 그래서 자꾸 포기하게 된다.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는 "요새 젊은이들은 도전 의식도 없고 변화에 대한 의지도 없다"며 한심하게 바라보지만, 그게 내 탓인가. 로봇과 경쟁하는 암울한 시대에 태어난 게 죄라면 죄다.

동년배인 친구들 중에도 일하는 애들은 손에 꼽는다. 뉴스에서는 청년 실업률이 35%로 사상 최고 수치를 기록했다면서,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고 떠들어댄다.

과연 대책이란 게 있을까? 로봇이랑 경쟁하는 시대인데, 그렇다고 날로 진화하는 로봇을 없앨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나는 그나마 로봇이라도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고등학교, 대학교 내내 사이버 강의만 들어서 친구가 몇 명 없다. 나의 로봇 친구 '버디'마저 없으면 나는 외로움에 시달렸을 것이다.

버디가 있으니 나는 남자친구도 필요 없다. 물론 남자친구를 만들 능력도 없기도 하고.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불필요한 감정 소모나 비용 낭비를 하고 싶지 않다. 엄마는 오늘도 하루종일 버디를 끼고 사는 나를 보면서 "'N포 세대'가 끝나질 않네"라고 혀를 끌끌 차셨다. 'N포 세대'란 게 옛날 말이지만, 뜻은 나도 대충은 안다. 그런 얘길 듣자니 좀 씁쓸해졌다.

▲반려 로봇. ⓒBLUE FROG ROBOTICS

'세대 전쟁' 시대가 도래했다!

2046년 3월 5일, 하루종일 비 내림.

오늘 동네가 난리였다. 뉴스에서만 보던 일이 우리 동네에서도 일어나다니….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소문을 듣자 하니, 우리 아파트 앞 단지에 사는 어르신을 돌보는 간병인이, 어르신이 죽은 뒤에도 시신을 치우지 않고 두 달 넘게 함께 생활하다 이웃 주민 신고에 발각됐다고 한다. 더 충격적인 건, 그 어르신의 아들이 사실을 알고도 경찰에 신고하기는커녕 계속 그러라고 했다는 거다. 간병인은 월급을 받으려고, 그리고 그 아들은 제 아버지의 연금을 타내려고 그렇게 시신을 방치한 거다.

엄마는 35년 전에 나온 <아마도르>라는 스페인 영화 내용이랑 똑같다면서,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 현실이 됐다며 안타까워하셨다.

▲세대 간의 불평등이 불러온 분노의 시대를 그린 미래가상소설 <2030년 그들의 전쟁>. ⓒ북캐슬
요새 스마트TV를 보면 이런 보도가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온다. 유족 연금은 얼마 안 되니까, 할머니 할아버지가 죽어도 가족들이 사망 신고를 안 하는 거다. 보험금 타내려고 부모나 조부모를 살해하는 경우는 더 많다.

공공장소에서 청년들이 노인을 공격하는 일도 다반사다. 지난 번 노인당 창당 25주년 행사에서 사제 폭탄을 터뜨린 테러범은 나랑 동갑이었다. 방송 화면에 대고 "노인들만 국민이고, 젊은이는 국민 아닌가"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테러범의 모습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 사건 이후 오히려 노인당 지지자들이 더 결집하고 지지율이 올라갔다는 얘길 들었다.

노청(老靑) 갈등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된 지는 한참 됐다. 어렸을 때 교과서에서 보니 우리나라가 예부터 '동방예의지국'이었다고 하던데, 선조들이 보면 곡할 일이다. 요새 어딜 가든 노인이랑 청년은 같은 공간에 있지 말라고 한다. 눈만 마주쳐도 분위기가 흉흉해지기 일쑤기 때문이다. 엄마랑 아빠는 적어도 20~30년 전까진 지역 갈등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문제였다고 하던데, 지금은 세대 갈등 문제에 비하면 지역 갈등 문제는 아무것도 아니다.

사실 나도 복지 혜택이 할머니 할아버지들한테만 가는 건 좀 부당하다고 느낀다. 노인들은 오랫동안 나라를 위해 고생을 많이 했으니 국가가 책임지고 돌보는 게 맞지만, 그 피해는 다 젊은이들에게 돌아간다. 정부가 노인 연금 비용을 마련하느라 진 빚이 다 우리 몫으로 돌아오고 있다. 태어나자마자 빚더미에 올랐다고 해서 우리는 '부채 세대'라고 불린다.

아빠는 역대 정부들이 노인이랑 청년끼리 서로 칼부림하게 만들었다고 분개한다. 아빠 젊었을 때나 지금이나 정치인들은 노인들 눈치만 본다고 했다. 지금 65세 이상 인구가 40%가 넘기까지, 노인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자 여든 야든 표를 의식한 나머지 노인 복지 확대에만 골몰해왔다. 거기다가 노인들 눈치를 보느라 증세도 안 하고 국채를 남발했다. 정치인들에게 '세대 정의'란 말은 일종의 금기어다. 청년들이 100일 넘게 단식을 해도, 테러를 해도 바뀌는 건 없다. 여전히 청년들을 위한 복지는 낭비 취급당하곤 한다.

▲2045년의 변화상을 예측한 <유엔미래보고서 2045>. 대부분의 학자들은 기술 개발의 역사로부터 추측해서 얻을 수 있는 미래 예측의 한계가 2045년이라고 말한다. 2045년이 되면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의 청년 세대는 어떻게 달라져있을까. ⓒ교보문고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 세대를 통틀어 노인 세대가 제일 잘 산다. 우리 집에서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제일 부자다. 연금 부자. 아흔 넘은 두 분은 30년 전 은퇴하신 뒤 연금으로 넉넉하게 살아가고 계신다.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연금으로, 두 분은 건강 관리에 한창이시다. 얼마 전엔 뼈 수술을 받으셨다. 딱히 아프신 건 아니었는데, 예방 차원에서 하는 거라고 하셨다. 새로운 줄기세포를 이용해서 90세 뼈를 50세 수준으로 돌려놓을 수 있는 수술이란다. 이제 마음 놓고 테니스를 할 수 있다고 좋아하시는 걸 보니 좋긴 한데, 착잡하기도 하다.

엄마랑 아빠, 나 모두 할머니 할아버지만 바라보고 사는데, 나한테까지 물려주실 돈은 놔두고 관리받으시는 거겠지?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참 한심하다. 그런데 다른 친구들 사정도 거의 비슷하다. 다들 할머니 할아버지, 정확하게는 할머니 할아버지 연금만 보고 살아간다. 조부모가 아들 딸, 손주 세대까지 줄줄이 견인하듯 책임지는 가정을 두고 '렉카(wrecker)족'이라고 부른다. 엄마 아빠 때는 부모님한테 빌붙어 사는 '캥거루족'이나 '패러슈트족'이라는 말이 유행했다고 하는데, 이젠 캥거루족을 넘어선 렉카족이 대세다. 이런 집이 워낙 많으니 딱히 흠도 아니다.


우리 할아버지는 옛날에 공무원이셔서 연금이 다른 노인분들보단 많아 다행이다. 할머니 할아버지 연금이 적었으면 나는 어떻게 생활했을까. 아마 다른 친구들처럼 독서실 생활을 면치 못하겠지. 1900년대도 아니고, 독서실이 웬말인가 싶다.

내 생계까지 책임져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취직하라고 잔소리하실 때마다 야속하다. "요즘 애들은"으로 시작되는 레퍼토리는 언제 들어도 싫다. 엄마 아빠도 진절머리를 내신다. "국가에서 우리 세대한테 미래를 준비할 시간만 줬어도 이렇게 부모님한테 손 벌리고는 안 산다"고 울분을 토하신다. 근데 지금이 엄마 아빠 때보다 더 심각하다. 힘들어졌으면 힘들어졌지 나아지지 않았는데 나더러 어쩌란 말인가. 할머니 할아버지는 알지도 못하면서….

에휴. 그렇다고 언제까지 할머니가 주는 용돈으로 살 건가 싶다. 막말로,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엄마 아빠나 나는 빈털터리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부모님은 어떻게 모셔야 하는 걸까.

지금 내 나이가 서른. 요새 평균 수명이 130인데, 돈도 없는 채로 130세까지 산다는 건 고통일 뿐이다. 과학 기술의 발전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이런 세상에서 내 자식이 산다는 생각을 하면 끔찍하다. 아이를 낳을 형편도 아니지만, 그럴 기회가 있다 해도 절대 낳지 않을 거다.

어제 오늘 계속 우울한 얘기만 하게 된다. 앞으로 남은 100년을 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막막하기 그지없다.

ⓒ연합뉴스

* 기사에 나온 '부채 세대', '렉카족' 등 조어는 실제 통용되는 것이 아닌, 임의로 만들어낸 것입니다.

* 참고문헌

<지상 최대의 경제 사기극, 세대전쟁>, 박종훈, 21세기북스
<2030년 그들의 전쟁>, 알버트 브룩스, 북캐슬
<유엔미래보고서 2045>, 박영숙 제롬 글렌,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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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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