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방문에 흥분하는 중국 언론, 한국은?

[원광대 '한중관계 브리핑'] 중국의 '사회주의 언론관' 닮아가는 한국

며칠 전 한 학생이 상담 차 연구실에 찾아 왔다. 작년에 필자의 강의를 들었던 학생인데,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참 대견해 보이던 학생이었다. 그런데 이날 상담 내용은 뜻 밖에 좀 무거운 내용이었다. 한국에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를 배치하는 문제와 관련해 자신의 생각에 대한 교수님의 의견을 들어보고자 찾아왔단다.

내용인 즉, "북한이 국제사회와 우리 남한의 우려와 경고에도 불구하고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강행했으니 강력한 제재조치를 취해야 하며, 이러한 차원에서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중국이 왜 저렇게 강력히 반대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이 학생은 차분히 논리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려 했지만, 듣고 있던 필자는 안타까움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왜냐하면 학생의 논리가 우리 주류 언론이 기계적으로 반복하고 있는 내용과 너무 똑같았기 때문이다. "역시 언론의 힘이 대단하구나!"라고 다시 한 번 느껴졌다.

중국 언론, 당과 정부의 나팔수이자 대변인

이와 같은 언론의 힘은 체제를 가리지 않는다. 우리와 같은 소위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는 물론이고, 북한과 같은 '사회주의 체제'에서도 언론은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래서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집권과 독재 유지, 심지어 시민사회 또한 자신들의 활동을 위해 '대(對)언론 정책' 또는 '선전 업무'에 큰 공을 들인다. 중국도 물론 여기서 예외는 아니다.

얼마 전 중국을 대표하는 언론사들이 흥분에 빠졌었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취임 후 처음으로 중국의 3대 관영매체인 <인민일보>(人民日報)와 <신화사>(新華社),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을 직접 방문했기 때문이다. 시 주석은 <인민일보>사를 찾아 신문이 제작되는 과정을 살펴보고, CCTV에서는 메인 뉴스 프로그램인 <신원롄보>(新聞聯播) 스튜디오를 둘러보는 등 직접 언론 업무를 챙기면서 언론인들을 격려했다.

▲ 지난 2월 19일 베이징에 위치한 중국중앙텔레비전(CCTV)를 직접 방문한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 주석 ⓒAP=연합뉴스

그 후 며칠 동안 중국의 언론들은 "당의 뉴스와 여론 작업은 당의 원칙을 지켜야 하고 무엇보다 당의 여론지도방침을 따라야 한다"는 시진핑 주석의 발언을 강조하며 "시진핑 주석의 중요 담화 정신을 철저히 익히고 관철해야 한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특히, 중화민족주의 색채가 강한 매체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환구시보>(環求時報)는 시진핑 주석이 인민일보 사옥에 전시되어 있던 자사의 신문을 가리키며 "이거 내 집무실에도 있다"고 말한 것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마저 보였다.

지금 중국의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서방에서 확립된 커뮤니케이션 이론들을 그대로 배운다. 그리고 중국 남부의 일부 신문이나 몇몇 기자들은 정부의 언론 장악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불만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언론계 및 학계 주류는 여전히 '사회주의 언론관'을 흔들림 없이 신봉하고 있다. 즉 "언론은 인민을 대표하는 당과 정부의 나팔수이자 대변인"이라는 생각을 가지며 변함없는 사회주의 언론관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 따라 불안감 조성에 나선 우리 언론

그렇다면 우리의 언론은 어떤가? 일반적으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언론은 △정보 제공과 △권력 감시 △심층 조사 △여론 대변 등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특히 1947년 허친스 보고서(Hutchins Report)와 1949년 영국의 왕립언론위원회(Royal commission on the press) 보고서에서 언급되어 있는 바와 같이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언론은 '권력 감시자'(Watch Dog)의 기능을 생명과 같이 여겨야 한다는 것이 강조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우리 언론, 특히 주류 방송 매체와 신문 매체를 보고 있으면 과연 생명처럼 여겨야 할 '권력 감시자'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와 관련한 보도를 보고 있으면, 이념과 정치적 성향이라는 족쇄에 묶여 정부에 대한 감시견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못한 것 같다.

북한의 핵 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 후, 박근혜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 연일 북한의 테러 위협을 강조하며 불안감을 조성하더니 논란이 되고 있는 '테러방지법' 추진을 강행했다. 동시에 북한의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남한과 주한 미군을 보호해야 한다며 사드 배치 논의를 공식화해 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중국과도 불편한 관계에 빠지고 말았다.

북한의 핵실험이나 로켓 발사 그 자체보다 우리 정부와 미국의 강경 대응으로 인해 남북관계가 파탄나고 중국과의 관계도 악화되고 있는 것이 더 불안할 지경이다. 북한의 핵실험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의 이런 대응이 국민을 더 불안에 빠트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회의감마저 든다.

웰즈의 '우주 전쟁', 결코 남의 일 아냐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앞서 말한 언론의 보도 태도다. 우리 언론이 정부의 대응에 대해 과연 적절하고 합리적인지 냉철하게 판단하는 감시견(Watch Dog)의 역할보다는 정부에게 끌려 다니는 애완견(Lap Dog)으로 전락한 것은 아닌지 씁쓸하다. 저녁 9시가 되면 80년대의 '땡전' 뉴스처럼 정부의 장단에 맞춰 북한의 위협 및 한미의 강경 대응을 찬양하는 뉴스가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를 보고 있자니 유명한 '우주 전쟁' 이야기가 떠오른다. 1938년 미국 CBS라디오는 할로윈 특집으로 화성인의 지구 침략을 다룬 공상 과학 소설 <우주 전쟁>(허버트 조지 웰즈의 1898년 작품)을 극화하여 라디오 드라마를 방영했다. 전후 맥락에 대한 설명 없이 생방송으로 나오는 화성인의 우주 침공 내용으로 인해 멋모르고 라디오를 듣던 많은 청취자들이 진짜 화성인이 지구를 침공한 뉴스로 오인하여 LA 전역이 한 때 패닉 상태에 빠졌었다.

언론학계에서는 미디어의 강력 효과를 주장하는 사례로 이 사건을 많이 언급하는데, 당시 이러한 패닉 상태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의 사회 분위도 한몫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그때와 지금은 미디어 환경이 다르고 사건의 내용도 달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남북이 이렇게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고 중국과 미국이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언론의 무분별한 공포심, 불안감 조성은 우리 사회의 이성을 마비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수 있다.

더 답답한 것은 앞서 언급한 중국은 과거나 지금이나 사회주의 언론관을 관철해 나가며 옳고 그름을 떠나 체제의 성격과 언론 행태가 일치하는 모습을 보이는 반면, 우리 사회는 겉으로는 자유민주주의 사회라고 하면서 정작 언론은 자유민주주의 언론의 모습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점이다. 남북관계, 한중관계가 위태로운 지금이야말로 제대로 된 '감시견'(Watch Dog)이 절실한 시점이다.


(허재철 교수는 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 정치외교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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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

'중국문제특성화' 대학을 지향하면서 2013년 3월 설립된 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은 중국의 부상에 따른 국내외 정세 변화에 대처하고, 바람직한 한중관계와 양국의 공동발전을 위한 실질적 방안의 연구를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산하에 한중법률, 한중역사문화, 한중정치외교, 한중통상산업 분야의 전문연구소를 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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