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의 정치가 시작됐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사실상 청와대와 친박계에 반기를 들면서 여권이 균열을 일으킬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공천룰 다툼에서 판판이 깨지면서 밀려나던 '고개숙인 무대'가 굴기(倔起)를 시작한 것이다.
김 대표는 지난 23일 정의화 국회의장 중재 하에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와 만나 선거구 획정 관련 담판을 지었다. 선거구 선거구 획정안을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안 처리에 전격 합의한 것이다. 사실상 테러방지법과 선거법을 바꾸는 딜을 한 것이다.
친박계에는 두 가지 기류가 있었다. 첫째, 선거법을 먼저 합의해주면 야당이 선거법만 처리하고 경제 관련 대통령 관심 법안 처리를 지연시킨 후 총선에 몰입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둘째, 선거법이 먼저 처리되면 곧바로 경선 정국으로 돌입해야 한다. 따라서 김무성 식 상향식 공천제가 관철되고, 친박계가 주장하는 전략공천이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있었다.
김 대표의 합의를 두고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가 23일 오전 회의에서 "당론은 선(先)민생법 처리였다. 당론이 선(先)선거법 처리로 바뀐 적이 없다"는 취지로 반발한 것은 이런 복합적인 우려가 작용해서다. 친박계의 이같은 반발의 뒷배에 청와대가 있다는 것이 정치권 안팎의 시각이다.
즉 김 대표가 상향식 공천제를 되돌릴 수 없도록 하기 위해, 청와대와 친박의 뜻을 거스르고 선거법 합의 처리에 동의하는 독단적 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친박계 내부에서는 대통령 관심 법안 처리를 뒤로 미루고 테러방지법을 과도하게 부각시켜 야당의 필리버스터를 유발하는 등, '대야 전선'을 좁혀버렸다는 불만도 감지된다.
결과적으로 테러방지법과 선거법만 부각되고, 민생 법안과 전략 공천은 흐지부지된 상황이다. 친박계가 달가워할 리가 없다. 친박계의 전략 공천을 통한 물갈이 구상도 흐트러졌다.
청와대도 부글부글 끓고 있다. 박 대통령은 연일 테러방지법과 함께 경제 관련 법안 처리를 강조하고 있다. 24일에는 탁자를 10여 차례 내려치며 강한 어조로 정치권을 비난하기도 했다.
친박계 홍문종 의원은 26일 YTN 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 김 대표를 향해 "그 양반"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홍 의원은 "김무성 대표께서 아마 빨리 선거법 협상이 되어야 그 양반 말대로 국민공천제가 원활하게 시행될 수 있는데, 날짜가 뒤로 가면 갈수록 시간이 없어서 국민공천제를 할 수 없는 상황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 민생법을 뒤로하고서라도 본인이 말씀하신 국민공천제를 관철하기 위해 이것(선거법)이라도 통과시켜야 되겠다고 생각해서 만사 제치고 이것(선거법)부터 하지 않았나"라며 "그것 때문에 상당히 뒷소리들이 많이 있다"고 했다.
홍 의원은 김 대표의 선거법 합의에 대해 "김무성 대표가 어느 분하고 상의해서 한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김 대표의 독단적인 행동이라는 것이다. 홍 의원은 "저희가 원하는 민생법, 노동법이라든지 경제법이라든지, 청년 일자리를 위한 법이라든지, 이런 것을 다 뒤로한 채 그저 선거법 하나만 달랑 협상을 했다"며 "당에서 굉장히 아쉬워하는 목소리들이 많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 상황으로 미뤄봤을 때, 여야는 필리버스터 정국이 끝난 후 선거법과 테러방지법을 처리할 것으로 보인다. 그 경우 대통령 관심 법안은 물건너 갈 가능성이 높다. 공천도 마찬가지다. 전략 공천을 관철시키는 게 어려워질 수 있다.
청와대와 친박에 반기를 든 김무성 대표가 향후 주류 세력의 공격을 어떻게 버텨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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