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은 민주주의의 학교다

[생협평론] 협동조합人 정치 참여는 권장되어야 한다

1. 협동조합 비판에 대한 반(反)비판

협동조합에 대한 일부 보수진영의 비판이 거세다. 그들은 협동조합의 자생력을 믿지 않는다. 심지어 반시장적이라고 말한다. 정부지원에 의존하며 좌파운동권 혹은 특정 정치인의 세력기반이 된다고 의심한다. 과연 그런가? 첫째로, 협동조합에 대한 정부지원금은 거의 없다. 기획재정부의 협동조합 관련 예산은 작년 27억3000만 원에 불과하다. 중소기업청에서 소상공인협동조합을 대상으로 사업비(자부담 20%, 1억 원 한도)와 공동장비구입비(자부담 30%, 2억 원 한도)를 지원한다. 2015년 예산은 325억 원이다. 만약 이것이 문제라면 사업 선정과 성과 관리가 잘못된 것이다. 협동조합 자체에 대한 비판으로 사용될 수는 없다.

둘째로, 주식회사에 비해 오히려 불리하다. 조합원 출자금은 법적으로 '자본'이지만(협동조합기본법 제18조), 실질적으로는 부채로 취급받는다. 그래서 자금 조달이 어렵다. 별도의 협동조합 금융이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신협은 금감원의 은행업법 규제로 협동조합계의 금융기관으로 자리 잡을 수 없다. 사회적협동조합은 중소기업으로도 인정받지 못한다(중소기업기본법 제2조). 당연히 중소기업으로서 받을 수 있는 모든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들은 ①설립인가를 받아야 하고(협동조합기본법 제85조) ②공익적 사업을 벌이며(제93조) ③출자금 납입 총액의 3배가 될 때까지 잉여금의 30%를 법정적립 하고(제97조) ④청산 시 잔여자산의 배분도 금지되는(제104조) 강한 의무규정을 가지고 있다. 공익성이 강한 곳일수록 적극적인 지원을 해야 하는 정책 설정의 기본 방향과도 어긋난다. 다른 나라에서 허용되는 생협의 공제사업은 시행될 조짐도 보이지 않는다. 공제사업 자체는 합법이지만(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 제66조) 공정거래위원회가 무려 5년 동안 법 시행을 위한 지침을 마련하지 않았다. 의원들의 입법권(법 개정)을 실질적으로 무력화한 경우다. 일반 구매 생협에서도 비조합원의 이용은 엄격히 금지된다(제46조). 프랑스의 협동조합은 비조합원 이용에 아무런 제한이 없다. 이탈리아의 협동조합에서도 비조합원의 이용이 50% 미만만 된다면 협동조합으로서 세제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원천 금지다. 경영체의 기본 권리인 채권 발행도 불가하다. 우대가 아니라 역차별에 더 가깝다.

셋째로, 협동조합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속에 작동되는 법인격 중 하나다. 그리고 전 세계에 퍼져 있는 극히 일반적인 기업 형태다. 그런데도 반시장적이라 비판한다. 만약 인적 평등의 요소가 강하다는 것이 비판의 근거라면, 미국 실리콘밸리에 산재한 유한책임회사(LLC)도 반시장적이라 말해야 한다. 협동조합 못지않게 인적 결합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은 전 세계에서 매년 2.2조 달러의 매출을 실현한다. 미국에서만 3만 개의 협동조합이 20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낸다. 프랑스에서도 2만 1000개의 협동조합이 10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ICA). 우리나라에서도 2014년 말 기준으로 총 1만869개의 조합과 2807만 명의 조합원이 있다('2014 한국협동조합연차보고서' 중). 전혀 특이한 조직이 아니다.

넷째로, 협동조합의 정파적 편향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신설 협동조합 중 80% 이상을 차지하는 사업자조합은 좌파 혹은 우파의 성향과 무관하다. 정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경기지사, 대구시장, 제주지사 등 여권 지자체장도 육성 조례를 만들고 지원체계를 정비한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국제적으로도 협동조합은 우파진영의 정책 수단이기도 했다. 이탈리아의 사회적협동조합은 복지 민영화의 수단이었으며, 프랑스(공익협동조합), 캐나다 퀘벡(연대협동조합), 스페인(사회적협동조합)에서도 정부를 대신하는 복지 전달체계의 새로운 축으로 기능한다. 사회적경제(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자활기업 등)의 지원체계를 정비하려는 '사회적경제기본법'에 대해서도 일부 논자는 '사회주의법'이라고 비판한다. 이런 사람들은 영국 보수당 정부를 참고했으면 한다. 그들은 스스로를 '새로운 보수'라고 말한다. '시장'의 확대가 아니라 '사회(시민사회)'의 확대에 의한 정부기능 축소로 정책을 변화시켰다. 기부 및 자원봉사에 대한 강조, 마을 단위의 공동체 유지, 공공서비스의 민간(공공서비스협동조합) 이양, 사회적금융 확대, 사회적기업 공공조달 확충, 제3섹터청 설치 등 관련 정책도 정비했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지난 5월 총선에서 또다시 압승했다(331석). 한국의 사회적경제기본법이 하려는 것은 영국 보수당 정부가 하는 것과 차이가 없다. 사회적경제기본법이 사회주의법이라면 영국 보수당은 사회주의 정당이다.

2. 위기 극복 수단으로서의 협동조합

대한민국은 위기다. 고도성장의 축제는 끝이 났으며, 기존 방식대로라면 국민 대다수에게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할 수 없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도 너무나 명확한 추세다. 더 큰 문제는 그것이 전국에 고르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부 지역은 젊어지고 인구도 증가하고 있지만, 다른 일부 지역은 늙고 소멸된다. 한 연구에 의하면 2048년까지 35% 이상 인구가 감소하는 지자체가 222곳의 분석 대상 중 84곳이다. 82곳은 인구 5만 명 이하 한계 지자체가 될 가능성이 있다('인구구조 변화와 지속가능한 행정기능 발전방안', 행정자치부, 2015). 이혼율·자살률·노인빈곤률 등 불행지표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리고 불행은 계층 간 고정되며 세대 간 대물림된다. 요즘 흔히 말하는 '헬조선'인 것이다. 이러한 곳에서 사회 갈등은 극에 달한다. 민주적 관용, 약자에 대한 배려, 이성적 토론은 사라진다. 국정원 댓글공작, 세월호 참사, 한국사 국정교과서, 시위대를 향한 물대포 직사 등의 암울한 현실은 경제적 민주주의가 실패한 곳에 정치적 민주주의조차 위협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는 바꾸어야 한다. 재벌 중심의 성장 모델에서 벗어나, 마을과 골목으로부터 새로운 참여와 혁신이 기획되어야 한다. 그 속에서 공동체적 배려가 작동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필자가 알고 있는 한 이러한 목표를 실현하는 데 있어서 협동조합만한 것도 없다.

2012년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개최된 국제협동조합연맹 심포지엄에서 대회 조직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 바 있다. 협동조합은 ①일반기업과의 제도 간 경쟁을 통해 시장경제의 실패를 보정한다. ②금융·농업과 같은 불안정한 시장에서 미래 예측성을 높인다. ③협동조합 간 협력과 협동조합인의 헌신을 통해 열악한 지역에 사회서비스(의료·교육·간병 등)를 공급한다. ④이익 잉여금의 내부 유보로 지역사회에 생산적 자산을 축적한다. ⑤원리상 공정한 분배에 유리하다. ⑥지역에 사회적자본을 축적한다. ⑦고용 및 소득의 창출로 정부복지의 부담을 줄인다(Conference Report : Promoting the understanding of cooperatives for a better world). 우리 주변을 보면 이러한 내용은 아주 쉽게 발견된다. 생협은 소비자의 주체적 참여와 생산자와의 상생적 발전을 보장한다. 직원 만족도가 높으며(근로자협동조합 해피브릿지), 좋은 돌봄서비스를 공급한다(사회적협동조합 도우누리). 스페인의 빌바오(Bilbao), 이탈리아의 트렌티노(Trentino), 캐나다의 퀘벡(Québec) 등 협동조합이 잘 발전한 곳은 모두 높은 수준의 소득과 복지를 향유한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글로벌 금융위기의 한가운데에 있던 2009년, 국제연합(UN)은 총회에서 2012년을 '세계 협동조합의 해'로 지정하고 이를 기념하기로 했던 것이다.

▲ 서울시협동조합상담지원센터 홈페이지, 협동조합 소개 설명 중. ⓒ서울시협동조합상담지원센터

3. 기업으로서의 협동조합


그렇다면 협동조합 경쟁력의 기반은 어디에 있을까. 협동조합 제7원칙에 다 있다. 키워드는 '사람', '협력', '지역'이다. 개인이 잘났으면 혼자 살면 지만 대개는 돈도 능력도 부족하다. 돈과 사람을 모으는 방식 중 돈으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것이 바로 협동조합이다. 서로 십시일반 사업하고(제1원칙과 제3원칙), 함께 결정하고(제2원칙), 열심히 공부하고(제5원칙), 다른 협동조합과 협력하며(제6원칙),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제7원칙)하는 것이다. 협동조합의 제4원칙(자치와 독립)은 앞에서의 원칙을 방해하는 그 어떤 외적인 압박으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함을 역설한다.

그러면 사람 중심인 것이 왜 경쟁력의 기반인가. 찰리 채플린 주연의 <모던타임스>라는 영화에서 노동은 생계유지를 위한 고통이었다. 인간 행위를 '쾌락'과 '고통'으로 나누고 '쾌락 마이너스 고통', 즉 총 효용(total utility)이 인간 행위의 목적이라고 하는 인식은 근대 자본주의사회의 기본 경제관이었다(Jeremy Bentham의 공리주의). 이 속에는 노동을 통해 증진되는 자기실현의 기쁨도, 동료와 연대하는 동행의 즐거움도 들어갈 여지가 없다. 인간은 평등·자존·동감 등 다양한 감정과 판단에 의해 움직인다. 단순한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가 아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대했을 때 그들의 경쟁력이 더욱 강화된다는 경제이론은 얼마든지 열거할 수 있다. 효율임금이론(efficiency wage theory)도 그 중 하나다. 표준적 경제이론에 의하면 실업이 증가하면 기업들은 임금을 인하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이는 일견 불합리해 보인다. 그러나 자유경쟁의 노동시장보다 높은 수준으로 지불되는 임금(효율임금)은, 근로자들의 ①근무 태만과 이직을 줄이며, ②정직성을 높이며, ③좋은 직원 채용에 유리하기에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Stiglitz, Economics, chap. 34). 이 같은 연구 결과는 사방에 존재한다. 영국에서도 2011년 수상 직속으로 협동경제팀(The Mutual Taskforce)을 만들고 협동경제의 장점에 대해 연구한 바 있다. 결론은 일반기업보다 더욱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다. ①결근율과 이직률이 낮고, ②생산성과 고객만족도가 높으며, ③불황기에 강하고, ④혁신적이며, ⑤그래서 임금도 더 높다고 말한다("Our Mutual Friends ; Making the Case for Public Service Mutuals", Cabinet Office, UK, 2012).

협동조합 경쟁력의 두 번째 기반은 바로 '협동조합 간 협력'이다. 시장 거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할 만한 거래 상대자를 찾는 것이다. 시장 거래에는 많은 비용이 든다. 적절한 거래 상대자를 찾아야 하며, 계약이행 여부도 감시해야 한다. 로널드 코스(Ronald H. Coase, 199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는 이것을 '거래비용'이라고 말했다. 협동조합 간 협력은 거래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도록 한다. 가치 체계와 운영의 원리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장기 거래의 이점을 생각한다면 단기적으로 약간의 비용이 더 든다고 해도 충분히 정당화 가능하다. 일반기업에 있어서 계열·하청(협력업체) 관계의 경제 합리성을 증명하는 논리는, 협동조합 간 협력의 장점을 이야기하는 것과 논리적으로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일반기업과 달리 협동조합에서의 거래는 갑을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차원에서 더욱 민주적이다.

협동조합 경쟁력의 세 번째 기반은 바로 '지역'이다. 지역 차원에서의 협력망 확대는 개별 협동조합에게 특수한 경쟁력 우위를 가져다준다. 경제학에서는 이것을 '외부적 규모의 경제'(external economies of scale)라고 말한다. 한 지역에 동일한 성격의 기업 혹은 관련된 기업이 많아질수록 개별 기업의 평균 비용이 절감한다는 것이다. 폴 크루그먼(Paul Krugman,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이 전략적 무역정책의 논리적 타당성을 증명했을 때 썼던 방법이다. 일단 (지원에 의해) 업계가 형성되면 관련 시설 및 인적자원이 결집되고, 따라서 개별 기업도 더욱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정부 지원의 논리적 타당성이 도출되는 것이다. 미국 실리콘밸리를 상상해보자. 벤처기업이 많아지니, 벤처캐피털도 많아지고, 관련 연구소도 설립된다. 주변 대학(Stanford, Berkeley)과의 협력도 강화되고, 그래서 다시 벤처기업이 많아진다. 선순환구조인 것이다.

같은 논리로 협동조합이 잘 발달된 곳에서는 협동조합에 더욱 유리한 환경이 조성된다. 이탈리아 트렌티노 지역을 생각해보자. 인구 53만 명의 트렌티노는 이탈리아에서도 대표적인 협동조합 지역이다. 농협, 신협, 생협, 노동자협동조합, 사회적협동조합, 주택협동조합 등이 잘 발달되어 있다. 이러니 금융·교육 시설도 집중된다. 주심 도시인 트렌토(Trento)의 트렌토대학은 협동조합 연구 및 경영자 양성으로 유명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의 사회적경제 관련 연구 및 교육 시설도 트렌토에 자리 잡는다(OECD LEED Center). 협동조합연합회의 힘도 강력하다. 이들의 힘으로 협동조합은 더욱 발전해간다. 가파른 산악과 깊은 계곡이 많은 이 지역은 총 6206제곱킬로미터(㎢)의 넓이에 217개 마을이 있다. 이 중 193개에는 생협 매장 이외에 다른 매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60%의 마을에서 오로지 신협만 들어가 있다. 협동조합 간 협력, 그리고 협동조합의 지역에 대한 책임성이 아니라면, 산촌 마을의 생활은 무척 불편해진다. 이 지역이 살 만해지니 떠났던 젊은이들도 다시 돌아온다. 트렌토의 인구는 1981년 9만 9179명에서 2012년 11만 4802명으로 늘어났다. 산촌의 지방도시에서는 드문 일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이었던 이곳은, 지금은 이탈리아 평균보다 20% 더 잘살고, 반 이하의 실업률을 보이는 좋은 지역으로 변모한 것이다(Trentino Autonomous Government, Trentino : To be small means great things, www.provincia.tn.it).

4. 운동으로서의 협동조합

협동조합이 지역사회의 사람 사는 문제에 관심을 두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1980년 국제협동조합연맹 모스코바대회에 제출된 보고서에서 레이들로(A.F. Laidlaw) 박사는 협동조합 지역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21세기의 협동조합' 중). "(개별) 협동조합 단독으로는 주류 경제시스템과 사회질서에 실질 변화를 일으킬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다양한 협동조합과 협동조합에 속한 조직 모두를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역은 협동조합 성장의 자양분이며, 협동조합운동의 대상이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협동조합의 제7원칙(지역사회에 대한 공헌)은 기업의 사회책임(CSR) 혹은 공유가치(CSV)와 확연히 차이가 난다. 각종 기업의 평가지표(ISO의 26000 등)에서도 재무적 성과 이외에 지배구조의 민주성, 인권 중시, 노사 화합, 친환경, 공정거래, 소비자 보호, 지역사회 참여 등 사회 책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기업의 주된 목적은 어디까지나 '이윤'이다. "자조, 자기책임, 민주주의, 평등, 공정, 연대"의 가치에 입각해, "공동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필요를 충족시키려는" 협동조합의 규정(ICA)과는 차이가 난다. 그래서 협동조합이 더 운동적일 수밖에 없다. 때로는 자신의 고유 설립 목적과 차이가 있을 수 있는 지역사회 문제에도 관여한다.

강원도 원주의 예를 들어보자. 지학순 주교와 장일순 선생을 중심으로 한 원주신협(1966년)의 설립, 그리고 남한강 대홍수(1972년) 이후 협동조합을 통한 지역 재건의 경험 등은 원주의 다양한 협동조합운동으로 이어져 왔다. 원주 사회적경제 연합지원조직인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는 현재 29개의 소속 단체(2014년 말 현재, 회원 단체 조합원 수 3만 4797명, 총 자산 1324억 원)로까지 발전했다. 이들은 공동의 경제사업을 벌이며, 협동기금도 조성한다. 소속 단체들은 다양한 지역사회 활동을 전개한다. 원주푸드협동조합은 결식아동에 대한 무료 식사를 제공하며, 원주의료생협은 가난한 병자를 위한 의료 봉사를 한다. 밝음신협도 지역의 활동가에게 활동비를 지원한다. 각 조직들은 민감한 지역 사안에 공동으로 대응하기도 한다. 친환경급식조례와 지역푸드조례의 제정운동에도 앞장서고, 화상경마장 및 골프장 건설을 반대하며, 상지대 살리기 운동에도 적극적이다.

경기도 성남·용인 한살림의 윤형근 상무는 지난해 10월 한양대의 한 세미나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생활은 의식주, 상하수도, 전기·에너지, 폐기물 처리, 보건의료, 교육·문화 등 생활의 대부분을 시장과 행정기관에 위탁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이들에게 맡기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생협에서) 먹거리의 문제를 교육·교통·복지·문화 등 삶의 모든 영역으로 확대시켜야 합니다. 지역에서의 삶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맞는 말이다. 둘러보면 한국 사회에서 협동조합의 지역운동은 다양하게 전개된다. 아이쿱협동조합연합회는 지역활동가 지원, 생협시민학교, 식생활교육센터, 재능기부 활동, 윤리적소비운동, 한국사회적경제씨앗재단 등 여러 방식으로 지역사회와 관련을 맺는다. 수원아이쿱의 민바우모임에서는 위험한 전깃줄 등 불편사항을 점검하고 민원을 제기한다. 진주아이쿱은 시 예산을 분석하고 의정감시 활동을 한다. 아이쿱만이 아니다. 홍성, 안산, 안성, 완주, 전주, 서울 성북, 강동, 노원, 양천 등 거의 모든 지역의 활동가들은 보다 좋은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해 매진한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우리는 문제를 제기해봐야 한다. ①협동조합의 지역 활동이 지역사회 전체를 바꿀 만한 힘을 가지는가. ②지역의 변화가 한국 사회 전체의 변화로 연계되는가. ③지역운동과 지역정치, 그리고 중앙정치와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

5. 정치로서의 협동조합 : 일본의 사례

협동조합을 통한 지역 변화의 가능성은 일본의 사례 속에서도 충분히 확인 가능하다. 일본은 협동조합이 잘 발달된 곳이다. 일본 생협 조합원 수는 2665만 명으로 유럽 18개국(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조합원의 97%에 달한다. 2012년도 매출액은 3조3452억 엔으로 우리 4대 생협(한살림, 아이쿱, 두레, 행복중심생협)의 60배가 넘는다. 이들은 열심히 학습하고 토론한다. 가령 일본생협연합회의 '21세기 이념'(1997년), '2020 비전'(2011년) 등은 단순한 선언문 작성 과정이 아니었다. 협동조합의 방향성에 대한 긴 토론 과정이며, 구성원 모두의 의견이 개진되고 수렴되는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이었다. 당연히 지역사회 문제 해결에도 열심이다. 가령 도쿄(東京)와 가나가와(神奈川)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생활클럽생협의 경우, 친환경 농산물을 구매하기 위한 도쿄생활클럽생협(1968년)을 만들고,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동자협동조합(워커즈컬렉티브)을 설립했다(1982년). 이후 지역의 간병·육아 등 복지문제 해결을 위한 복지생협(1992년)이 만들어지고, 다시 이를 운영하기 위한 여러 노동자협동조합이 창설된다. 친환경 소비, 복지사업, 일자리 창출이 지역 내에서 서로 연계되며 발전한 것이다. 이들의 활동은 시민정치로까지 확대되기도 했다. 1984년 정치집단인 가나가와네트워크가 설립되고, 이후 전국시민정치네트워크로까지 발전했다. 현재 96명의 기초지자체(시·구·정) 의원과 6명의 광역의원이 있다. 이들의 의석수는 불과 전체의 2%(도쿄도의회, 전체 127명 중 3명)에 불과하나, 지역의 다양한 주민운동과 연계하며, 시민정치에 어울리는 조례를 꾸준히 정비한다. 지역사회의 유의미한 행동 주체인 것이다.

그러나 중앙에 대한 영향력은 아주 작아 보인다. 이것은 '노동자협동조합법'과 '사회적사업소지원법'의 제정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07년 한국의 '사회적기업육성법', 2011년의 '협동조합기본법'의 제정은 일본 사회적경제 진영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던 것 같다. 일본에게도 법 제정이 절실했었다. 노동자협동조합의 법인격은 존재하지 않으며, 취약계층을 조직한 많은 노동자협동조합의 조합원 평균 수입은 최저 빈곤선 이하였다. 예를 들어보자. 가나가와 워커즈컬렉티브의 조사('2009년 실태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연간 분배금은 평균 76만7000엔에 불과했다. 만약에 OECD에서의 상대적 빈곤층 개념(소득 중앙치의 50% 미만 생활자)을 원용한다면, 일본후생노동성의 '국민생활기초조사'에서의 2010년 소득 중앙치는 224만 엔, 그 50%인 112만 엔이 빈곤선이다. 워커즈컬렉티브 노동자들이 직면한 임금은 빈곤선 이하인 것이다. 한국과 같은 '협동조합기본법'과 '사회적기업육성법'이 필요한 이유였다. 이들은 협동노동 법제화 '시민회의', 협동조합법을 생각하는 '의원연맹', 지자체의 협동조합법 제정 의견서의 국회 제출 등 다양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실질적인 진전은 없었다. 현장에서의 강한 운동의 힘이 정치적 힘으로까지 발전하지 못한 경우다.

6. 어떻게 할 것인가?

ⓒ서울시협동조합상담지원센터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먼저는 협동조합의 규모를 키워야 한다. 한국 4대 생협의 매출액은 7071억 원으로 이마트의 5.6%(2012년)에 불과하다. 의료생협 전체 매출액은 200억 원으로 가톨릭대병원 1조7843억 원, 삼성병원 1조4000억 원과 비교조차 불가능하다. 협동조합이 좋은 것이라면 당연히 확대해야 한다. 선한 의도만이 아니라 의미 있는 결과도 중요하다. 운동이 '중원'을 지향해야 하는 이유다.

둘째로, 기업으로서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결국은 사람·자본·시장·기술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에 대한 논제다. 어렵지만 방법은 다 안다. 협동조합 제7원칙대로 하면 된다. 특히 협동조합 간에는 반목하지 말아야 한다. 협동조합 이외의 우호적인 자원과도 결합해야 한다. 우리의 협동조합은 아직 뉴런(neuron) 망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 농협과 생협, 생협과 신협, 신협과 일반 협동조합 등 협력의 과제는 많다. 협동조합 간 협력의 기반 위에 다양한 사회적경제 주체와의 협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자활기업, 시민단체, 복지법인, 종교단체, 기업의 사회 공헌, 노조의 사회 공헌, 봉사단체, 학교 등 협력의 대상자는 많다.

셋째로, 역차별에는 강력 대응해야 한다. 회사채 발행 불가, 사회적협동조합의 중소기업 자격 불인정, 생협의 공제사업 시행 태만 및 비조합원 이용 엄격 제한 등은 명확히 다른 법인격에 비해 역차별이다. 시정하도록 해야 한다. 이와 함께 사회적경제기본법도 조속히 통과되어야 한다. 지난해 유승민(새누리당), 신계륜(새정치민주연합), 박원석(정의당) 등 총 142명의 국회의원이 사회적경제기본법을 순차적으로 발의했다. ①사회적경제 발전을 위한 국가의 책무를 규정하고, ②분산된 정책의 입안·실행·평가·조율의 담당 주체를 명확히 하고, ③사회적금융, 공공 조달, 조세 감면, 교육 지원 등 지원정책의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넷째로, 협동조합은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내부적으로는 조합원의 목적의식을 함양하고, 외부적으로는 영향력을 확대해야 한다. 복잡한 사회적가치 평가체계(SROI, GIIRS 등)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복잡할수록 조합원들은 소외되며, 명확한 메시지 전달에도 실패한다. 단순, 명쾌할수록 좋다. ①조직의 핵심 가치가 반영되고, ②쉽게 측정되며, ③비교 가능한 것이 중요하다.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는 7개 핵심 주제(민주적 조직구조, 인권·노동 관행, 친환경, 공정 운영, 이용자 편의, 지역사회 공헌, 경영기반 확충)에 따른 28개 평가 항목, 70개 평가 지표를 개발했다('생협의 사회가치 2014').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분석 틀을 검증하고 평가해 나가야 할 것이다. 사회적협동조합 도우누리도 좋은 일자리(21개), 바른 서비스(14개), 공익성(12개), 지역 공헌(8개)의 세부 점검 목록을 정하고 매년 평가하며 공개한다('활동평가와 결산보고서'). 많은 협동조합에서 참고할 만하다.

다섯째로, 협동조합인(人)의 정치 참여는 독려할 만하다. 협동조합에게 유리한 법·제도·정책의 마련을 위해서도, 협동조합 가치의 확산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뷰캐넌(James Buchanan, 1986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 법칙에 빗대어 정치에서의 그레샴 법칙을 말한 적이 있다. 개인적 욕심이 많은 정치인은 더욱 맹렬히 권력 쟁취에 힘을 쏟으며, 그래서 더 좋은 정치인을 몰아낸다는 것이다. 정치시장을 바꿔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정치인을 공급해야 한다.

현재 협동조합의 공직선거관여 금지조항은 모든 협동조합법에 공통된다(기본법 제9조, 농협·수협·생협·산림조합법 제7조, 신협법 제93조 등). 벌칙조항도 위반 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신협·새마을금고법은 1년 1000만 원)으로 (적어도 일본법보다는)강하다. 협동조합기본법에는 임직원의 정치겸직금지조항(44조)까지 들어가 있다. 그러나 과도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공직선거관여 금지는 협동조합만의 규정이 아니다. 특별법에 의해 생겨난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 새마을운동협의회, 한국자유총연맹도 마찬가지다(공직선거법 제60조). 협동조합의 정치활동 금지와 협동조합원의 정치활동 금지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물론 협동조합이 특정 정파에 대해 편향된 지지를 표명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협동조합인은 다르다. 헌법에서 규정된 권리대로, 자신의 양심에 따라(제19조), 선거권을 행사하고(제24조), 경우에 따라서는 자유롭게 정당 설립의 정치행위도 해야 하는 것이다(제8조).

협동조합은 중요하다. 사회적경제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 영역은 아무리 많이 잡아봐야 국내총생산(GDP)의 10% 미만일 것이다. 그것도 20~30년 열심히 노력해서 달성할 수 있는 결과다. 우리에게는 비정규직, 부동산, 교육, 의료문제 등 시급한 문제가 아주 많다. 협동조합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법과 제도와 정책을 바꿔야 하며, 그것은 '정치의 몫'이다. 비록 한국에서 정치가 블랙홀과 같고 주요 갈등의 원천을 제공한다 할지라도, 정치가 가지는 가능성에 눈감을 수는 없다. 결론적으로 협동조합인의 정치 참여는 오히려 권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올바른 정치인이 되기 위해서는 권력 기반으로서의 권위(도덕적 능력과 실무적 능력)를 준비하는 긴 학습과 실천 과정이 필요하다. 인간의 불완전성에 대한 이해, 타인에 대한 관용, 토론에 의한 합의, 미래에 대한 확신, 소수자에 대한 배려 등 민주주의자가 갖추어야 할 기본 소양이 잘 훈련되어야만 한다. 이 또한 협동조합의 역할이다. 협동조합은 민주주의의 학교이기 때문이다.

계간지 <생협평론>은 (재)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가 펴내는, 협동조합을 다루는 본격적인 전문잡지로서 협동경제·나눔·평화에 대한 의견들이 교환되는 공간입니다. 정보지이자 실천적 교육서로서 협동조합 활동가뿐 아니라 협동조합에 관심 있는 모든 이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전달하고, 협동조합을 둘러싼 다양한 사회·경제·문화적 이슈를 다룹니다.(☞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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