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명 죽인 엽기 살인마에 유가족 "고맙다!"

[프레시안 books] <로스트 케어>

'그'는 연쇄살인죄로 법정에 섰다. 무려 43명을 살해했다. 엽기 살인마다. 유가족도 '그'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지는 모습을 보기 위해 참관했다. 유가족의 속마음은 우리의 상식을 깬다.

'고맙다. 나를 구원해줬다.'

'그'는 노령성 인지증(dementia, 치매)에 걸린 노인을 골라 살해했다. 고급 실버타운에 입주하지 못하고 가족의 도움을 받아 생활하는 노인이 집에 홀로 남았을 때 침입했다. 살인을 위해 '그'는 집에 몰래 도청기를 설치하고, 병 시중을 드는 가족이 집을 나갈 때를 철저히 확인했다.

이 범죄에는 증오도, 쾌락도 없다. '그'는 사이코패스가 아니며, 재산을 노리지도 않았다. 오직 인지증 환자를 살해한다는 목적만 가졌다. 법정에 선 '그'는 자신을 변호한다. 나는 그들(환자, 유가족)을 구원했다.

신예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 작가 하마나카 아키의 <로스트 케어>(권일영 옮김, 현대문학 펴냄)는 읽는 이를 불편하게 한다. 이 작품은 제16회 일본 미스터리문학대상 신인상을 수상했고, 2014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부문 10위에 올랐다. 일본 미스터리 소설을 즐겨 읽는 이라면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목록에 오른 것만으로 이 작품에 일찌감치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소설의 긴장은 이 사건을 수사하는 엘리트 검사 오토모 히데키와 그의 대척점에 선 여러 인물의 대비되는 관계로 만들어진다. 오토모 히데키는 기독교 율법에 충성하고, 사람은 누구나 선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라고 믿는다. 히데키는 늙은 아버지를 고급 실버타운에 입주케 할 만큼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났다. 오토모는 범인인 '그'의 엽기적 살해에 진심으로 분노한다.

히데키에게 실버타운을 알린 사쿠마 고이치로는 반대편에 선다. 그는 히데키의 행동을 위선으로 정의한다. 사람은 시스템의 빈틈을 이용하기 마련이다. 이 빈틈을 헤집고 올라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이가 세상에 승리한다. 반칙은 당연하다. 고이치로는 우리와 일본이 같이 걸은 압축성장 시대가 내세운 결과 지상주의 논리를 체득한 이다.

소설을 읽다 보면 유가족의 하나인 하네다 요코 역시 오토모의 반대편으로 이해하게 된다. 요코는 인지증에 걸린 어머니를 범인 '그'에게 빼앗겼다. 그녀는 어머니가 살해되기 전까지 삶을 지옥으로 서슴없이 정의한다. 어머니는 딸을 알아보지 못했고, 딸을 깨물다 똥을 지린다. 어머니 간호에 지친 요코는 하나뿐인 아이에게도 폭력을 행사하는 자신을 보며 삶이 송두리째 망가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누가 감히 절대 선을 말할 수 있는가. 어머니의 죽음에서 해방을 느낀 요코의 마음가짐은 분명 지탄받을 만하다. 쉽게 입에 담을 수 없다. 그러나, (오토모 히데키와 같이) 이 삶을 체험하지 못한 이가 과연 요코와 같은 이를 두고 쉽게 "너는 나쁘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는 혹 아르바이트생의 착취 당하는 삶을 경험하지 않고 '부당한 대우도 경험으로 받아들이라'는 식의 막말을 일삼는 부자 정치인의 입장과 같은 건 아닌가.

소설은 개호보험제도가 도입된 일본의 실상, 정확히는 초고령화 사회로 질주하는 일본의 현실을 건드린다. 개호란 일상생활을 혼자 해결할 수 없는 환자에 대한 돌봄 행위를 뜻하는 일본의 용어로, 우리말로 풀이하면 간호다. 우리나라의 요양사 제도와 같다.

▲<로스트 케어>(하마나카 아키 지음, 권일영 옮김, 현대문학 펴냄.) ⓒ프레시안
따라서 이 소설은 남의 나라의 특이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모두 한국이 일본보다 빠른 속도로 노령화 사회로 치닫고 있음을 안다. 그런데 과연 미래에 대비하는 자세는 얼마나 되어 있는가. 소설에는 늙어가는 일본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각종 지표가 나오고, 간병인의 열악한 노동 환경이 자세히 묘사된다. 과연 우리의 현실과 얼마나 다른가. 인지증 환자인 부모를 보살피다 동반 자살한 가족의 이야기는 한 해 한 번쯤은 TV에 소개되는 뉴스다. 간병인이 저임금과 혹독한 노동 환경에 처했음은 뉴스를 챙겨보지 않는 이라도 익히 상상 가능하다. "만약 죽음이 구원이 아닌 체념이라면, 체념하는 편이 훨씬 나은 상황을 만든 건 이 세상"이라는 '그'의 절규는 암울한 미래를 빤히 지켜보면서도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는 사회에 던지는 비수다.

인륜마저 포기하게 만들 이 극단의 상황이야말로 우리가 현실에서 맛볼 수 있는 가장 두려운 지옥이다. 이 지옥에 내던져진 이는 부모를 고급 실버타운에 맡긴 다른 이에게 어떤 심정을 가지게 될까. 극단적인 찜찜함이 남지만, 이 소설을 읽는 이라면 '그'와 하네다 요코의 심정에 동조하고픈 충동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프레시안 books'를 챙겨 본 독자라면 얼핏 짐작 가능하듯, 우리는 고령화 문제를 다룬 책을 여러 차례 소개했다. 고령화 문제는 우리 사회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불러오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로스트 케어>는 대비를 촉구한다. 현실을 고발하는 책이자, 미래를 고발하는 책이다. 구성이 지닌 긴장감은 높이 평가받는 다른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에 비해 비교적 약하다. 이 책 한 권으로 하마나카 아키가 마쓰모토 세이초, 미야베 미유키와 같은 사회파 미스터리 거장의 반열에 오르기에는 아직 원숙미가 부족해 보인다. 하지만 하마나카 아키가 앞으로도 꾸준히 저들과 비교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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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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