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의원은 예비후보 등록 후 페이스북에 몇 마디를 남겼습니다. '다른 예비후보들과 똑같은 조건에서 앞만 보고 뛰겠다'고 적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적었습니다. 이 글귀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승민 의원은 '대박'을 노리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대박 아니면 쪽박'의 위험천만한 게임도 아닙니다. 망해도 쪽박은 안 차는, 밑져도 본전은 하는 정치게임에 들어간 겁니다. 예비후보 등록의 변이 바로 그 증좌입니다.
유승민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국민은 바라보지 않고 자기 정치만 하는 사람으로 찍혔습니다. 배신의 정치를 하는 사람으로요. 낙인만 찍힌 게 아닙니다. 축출당할 위기에 처해있기도 합니다. '진박'에 의해 지역구에서 밀려날 위기에 처해있기도 합니다.
유승민 의원은 이런 상황에서 정면돌파를 선택했습니다. 박 대통령이 짠 프레임을 깨고, 나아가 박 대통령을 극복하는 원샷 게임을 선택했습니다.
'다른 예비후보들과 똑같은 조건에서 뛰는' 길을 선택함으로써 역으로 '진박' 예비후보의 '물량공세'를 부정적으로 이미지화했습니다. 박근혜의 후광과 박근혜 대리인의 지원에 의존하는, 자생력 없는 후보 이미지를 상대에 덧씌워버렸습니다. 반면에 자신에게는 특혜와 기득권을 내려놓고 정정당당 경쟁하는 올곧은 정치인 이미지를 입혔고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지역구를 훑음으로써 '진박' 예비후보의 '낙하산' '해바라기' 속성을 부각시켰습니다. 반면에 자신은 의지할 데 한 곳 없이 오로지 몸과 맘으로만 선거운동을 하는 토착 정치인으로 이미지화했고요.
이런 전략이 주효하면 유승민 의원은 반전과 도약의 정치 이익을 거머쥡니다. 자신에게 찍힌 '자기 정치' 낙인을 '줏대 정치' 문양으로 바꿔버리고, '배신의 정치' 낙인을 '참 잘했어요' 도장으로 바꿔버립니다.
그뿐입니까? 유승민 의원은 일거에 정치 체급을 슈퍼 헤비급으로 올립니다. 자신에게 낙인 찍고 프레임 짠 박 대통령과 싸워 이긴 셈이 되니까 그 누구도 뛰어넘기 힘든 정치적 키 높이를 이룹니다. 아울러 정치 거점을 틀어쥘 수 있습니다. 대구를 대표하는 차기 리더로서의 입지를 튼실히 다집니다.
정반대로, 낙선하는 경우는 어떻게 될까요? 그래도 밑질 건 없습니다.
유승민 의원은 상대 후보와 싸워서 진 게 아니라, 박 대통령과 싸워서 진 것입니다. 그것도 그냥 싸워 진 게 아니라 절대 강자의 반칙에 맞서 정정당당하게 싸우다가 진 겁니다. 그래서 그는 무능한 루저의 이미지가 아니라 억울한 희생양의 이미지를 획득합니다.
이 이미지는 종잣돈입니다. 그냥 갖고만 있어도 이자가 붙는 종잣돈입니다. 이자는 박 대통령의 지지율입니다. 역대 대통령의 지지율 법칙에 따르면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빠질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유승민 의원의 정치적 이자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차곡차곡 쌓인 이자와 종잣돈은 억울한 희생양에게 부여되는 패자부활전의 실탄이 될 것이고요.
유승민 의원 앞에 자갈길은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모두 비단길입니다. 다만 명주실의 함량만 다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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