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 싸워도 문제! 친해도 문제!

[김태호의 중국 군사 세계] 북한의 핵실험과 미-중의 경쟁 관계

새해 첫 주가 시작되자마자 북한이 핵실험을 실시했다. 미국이 주도하고 중국이 부상하는 현 국제 체제는 경쟁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으나 현상 유지(status quo)에 대한 암묵적 합의를 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행동은 상당히 도발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만, 관련국들의 조치는 여전히 미중 간의 '경쟁적 상호 의존'이란 밑그림 위에서 움직여질 것이다.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보니 글레이저(Bonnie Glaser)는 현재 시진핑 체제가 반부패 운동, 군 구조 개혁, 경제 침체, 남중국해에 대한 역내 반응 그리고 대만(타이완) 대선 등과 같은 산적한 '국내 문제'에 당면해 있어서, 북한의 핵실험은 중국에 부담을 가중시키는 문제가 될 것이라 분석했다.

이처럼 '국내 문제'를 조명하는 시각은 북한의 행동에도 적용될 수 있다. 한국과 미국의 연구자들은 김정은 체제의 안정성 과시, 핵과 경제의 병진 노선 그리고 체제의 내부 통제를 핵실험의 목적으로 지목하는 경향이 있다. 필자도 북한을 "외부의 불안정을 조장하여 내부의 안정을 유지하려는 국가"로 규정한 바 있다.

이에 비해, 푸잉(傅瑩) 중국 전국인대 외사위원회 주임은 상기한 국내 문제는 모두 외면하고 미국 주도의 국제 체제를 문제의 근원으로 지적했다(<파이낸셜타임스> 2016년 1월 6일).

새로운 세계 질서 만드는 데 중국이 나서겠다?

푸잉은 과거 서방 중심의 국제 체제에서 많은 공헌을 해왔던 미국이 지금은 "아동복을 입은 성인(an adult in children's clothes)"처럼 보인다고 일침을 가했다. 미국이 냉전 종식 후 수많은 전략적 실수를 거듭했으며, 중국이 예상보다 일찍 국제적 책임을 떠안았기 때문에 중국이 "보다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다른 국가들을 안심시키며 공동의 이익을 진전(advance)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고 자답했다. 중국이 구체적인 행동을 하겠다는 의지를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푸잉은 미국에게 현 세계 질서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고 그 이면에 민족주의 정서를 깔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중국과 북한의 공식 입장이나 연구자의 분석을 살펴보면, 거의 예외 없이 외부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는다. 북한이 왜 군사 도발을 하고, 호전적이 되었겠냐? 한국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특히 한미 연합 전력으로 인해 체제 위협을 받기 때문이란다. 사드(THAAD) 미사일 방어 체계의 한반도 도입이 중국 핵·미사일의 효율성을 절감시키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그러면 대한민국의 안보는 어떡해야 하는 것인가?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해 한국, 미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가 반대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고, 중국이 더 높은 수준의 대북 제재에 동참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북한 체제의 안보 위협과 그에 따른 핵실험에 대해 중국은 문제의 근원이 미국이라고 본다. 그러니 국제 사회가 원하는 수준의 대북 제재는 물 건너간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반도 비핵화는 추구하되, 북한 체제의 안정성을 위협할 수 있는 국제 제재에는 반대한다는 것이 중국의 논리이다.

차후 미-중 간의 군사적 경쟁에 대해 보다 자세히 다루겠으나 중요한 점은 미-중 관계의 본질이며, 역내 이슈에 대한 강대국의 정치이다. 여기에는 한반도 외에도 남사군도, 대만 이슈, 해상 안보 등이 포함된다. 환언하면, 기본적으로 강대국(미, 중, 일)이 역내 질서를 규정하고 있고, 역내 주요 이슈는 강대국 간의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강대국 정치의 논리가 작동한다.

미-중 관계의 불안정성,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중국과 미국은 서로 매우 다른 국가이다. 그리고 쌍무적, 지역적, 세계적 이슈에 서로 얽혀 있다. 또 대국이자 서로를 필요로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상호 간 진정한 우호 관계도 어렵고, 그렇다고 공개적 대립도 어렵다. 시계의 진자(振子)처럼 양 극단으로 가기 보다는 가운데를 향하는 복원력이 있다. 필자는 이를 '경쟁적 상호 의존 관계'라고 부른다.

미-중/중-미 관계가 우호적일 경우 한반도와 역내 이슈의 해결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어느 정도 우호적이어야지 완전히 담합(혹은 콘도미니엄)을 형성할 경우 역내 국가의 이익은 반영되지 않는다. 역내 국가의 대부분은 미국과 중국에 대한 전략적 교섭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역으로 미국과 중국이 갈등 관계일 경우 역내 이슈의 해결이 어렵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이 높은 것이지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이는 강대국 간의 대립이 역내 국가에게는 외교적 공간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냉전기 중-소 분쟁을 이용한 북한의 외교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현재 역내 주요 사안도 같은 논리와 공식을 적용할 수 있다.

한반도의 경우, 미국과 중국이 비핵화에 '완전 합의'(2013년 6월)했다고, 혹은 사드의 도입에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심지어 양국이 남북한 통일을 지지한다고 해서 일희일비(一喜一悲)하거나 마음을 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이는 미국과 중국이 기본적인 경쟁 구조로 인해 한반도에 대해 상이한 이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양국 모두 한반도 이슈의 해결에 '우호적 중재자' 혹은 협력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가정은 논리적·경험적으로 문제를 안고 있다. 한국의 대미·대중 관계를 포함한 대외 정책은 단·중기적으로 '전략적 차등화'가 불가피하며, 이 같은 '전략적 차등화'는 중·장기적으로 그리고 상황의 변화에 따라 조정·검토되어야 한다.

북한의 핵실험은 한반도 그리고 세계의 안정을 위협하는 중대 사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 사건이 강대국 간의 정치를 변화시킬 만큼 중요하다고는 볼 수 없다.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 한반도 통일 과정이 시작되면 강대국의 이익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날 것이다. 만일 김정은 제1비서가 영화 <대부 Ⅱ(The Godfather : Part Ⅱ)>에서와 같은 완전한 상황 통제를 꿈꾼다면, 강대국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일만 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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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현대중국연구소장 겸 한림대만연구소장을 맡고 있고, 국방부와 해군의 자문위원이다. SSCI 등재지 The Korean Journal of Defense Analysis의 편집장을 역임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중국의 3事(人事, 外事, 軍事)이다. "Sino-ROK Relations at a Crossroads" "China's Anti-Access Strategy and Regional Contingencies" 등 150여 편의 논문이 있고,<동아시아 주요 해양 분쟁과 중국의 군사력>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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