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들 신용 거품 터지고 있다"

[진단] 중국, 자본유출 통제냐 허용이냐 기로에

매년 새해 증시 전망을 장밋빛으로 그리던 국내 증권사들이 2016년도 전망에서는 이례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박스권 장세'를 예측했다. 그나마 주요 증권사들이 예상했던 '1월 효과'도 새해 벽두부터 중국 증시 폭락과 함께 어긋나버렸다.

14일 중국 상하이 증시가 급락세로 시작하면서 '심리적 저항선'이라는 3000선을 회복하지 못하면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증시는 일제히 동반 급락했다. 일본 증시는 장중 4% 폭락하고, 코스피도 하룻만에 다시 1900선이 깨지면서 장을 시작하다가 간신히 1900.01로 마감했다. 중국 당국의 적극 개입에도 위안화 환율은 오름세로 돌아섰고, 원.달러환율도 9.4원 급등한 1213.4원으로 마감하면서 5년반만의 최고치를 거듭 경신하고 있다.


새해 연초부터 보인 증시 침체는 일시적인 것일까? <파이낸셜타임스>의 간판 금융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는 '요동치는 금융시장이 시사하는 것(What market turbulence is telling us)'이라는 칼럼에서 "상승장은 죽었다"고 단언했다. 판단의 근거는 이미 현재의 주가 수준이 거품 상태라는 것이다. 거품 주가라고 해도 당분간 더 거품이 낄 수도 있다. 그런데 왜 이 시점에서 "상승장은 끝났다"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칼럼에 따르면, 글로벌 자금 흐름을 가늠하는 지표로 유효성을 인정받는 뉴욕 증시의 S&P 지수는 대공황 거품이 붕괴된 1929년과 닷컴버블이 붕괴된 2000년과 비슷할 정도의 '파국적 거품' 수준이다. 지난 2014년 6월 이후 S&P 지수는 제자리 걸음을 하면서 거품 붕괴 압력에 버텨왔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지난해 내내 자신이 고안한 경기조정(CA) 주가수익비율(PER)로 따져봤을 때 "거품 붕괴가 우려된다"고 경고해 왔다. CAPE는 주가 수준을 평가하는 일반적인 PER과 달리 경기변동 요인을 감안해 최근 10년간의 평균 PER을 산출한 것이다.

실러 교수의 CAPE 모델은 미국 증시가 2000년과 2007년에 정점을 찍기 전 주가가 심각하게 고평가됐다는 실러 교수의 경고의 근거가 된 이론으로, 이 예측이 연속해서 들어맞으면서 실러는 '스타 경제학자'로 떠올랐고 지금도 CAPE 모델은 유효성을 인정받고 있다.

실러 교수에 따르면, 뉴욕 증시의 주가는 2009년 이후 6년 만에 3배로 뛴 이후 유지되고 있다. 그는 언제 이 거품이 꺼질지는 "예측 불가능의 영역"이라고 말한다.

중국 경제의 구조적 불균형, 경기부양책으로 해결된 수준 넘어서


마틴 울프도 뉴욕 증시의 거품이 언제 꺼질지를 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상승장은 더 이상 없다는 주장이다. 이미 자금 흐름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신흥경제권에서 자본이 이탈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3분기 집계를 보면, 글로벌 투자자들은 신흥시장의 증시와 채권에서 무려 520억 달러(약 63조 원)를 빼내갔다. 이 유출액 규모는 분기별 통계 사상 최대다.


반면 신흥시장으로의 자본 순유입은 2008~2009년 위기 이후 최저 수준으로 거의 제로에 가깝다. 이에 따라 달러는 지속적으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세계은행의 최신 글로벌 경제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20대 신흥 국가 중 절반의 증시는 연중 고점 대비 20% 이상 하락한 채 마감했다. 원자재 수출국(브라질,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러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들, 그리고 정치불안이 심각한 신흥경제대국(브라질과 터키 등)의 통화는 달러 대비 환율이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다.

신흥경제국들의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는데, 회복하기도 어렵다. 글로벌 수출시장의 역할을 하던 선진국들도 내수가 회복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함께 글로벌 성장을 이끌었던 중국이 신흥시장으로서는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새해 벽두부터 중국 증시가 폭락하고 위안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글로벌 시장의 악재로 작용한 것에서 보듯, 중국 정부가 예전처럼 성장의 동력을 되살릴 능력이 있는지에 대한 신뢰도 줄어들고 있다.

중국이 처한 문제는 이제 중국 정부의 경기부양 정책으로 해결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판단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경제는 현재 저축률은 지나치게 높고, 정부 주도의 투자는 비효율적으로 대규모로 집행됐으며, 금융권과 기업이 빚더미에 올라 있는 등 극도로 불균형한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관련 기사: 1900선 깨진 주가, 1200원 넘은 환율…배경은?)

중국 정부는 자본 유출을 허용하면서 위안화의 평가 절하를 용인하거나, 아니면 자본 유출을 통제하는 정책을 계속 쓸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있다. 이미 중국 정부는 지난 2014년 6월 이후 환율 방어를 위해 외환보유고의 17%에 달하는 6600억 달러(약 800조 원)를 소진했다. 중국 정부가 자본 유출 통제를 계속하면 중국 경제의 구조개혁은 어려워지고, 환율방어를 포기하면 글로벌 시장이 흔들릴 것이다.

중국이 흔들리고 있다는 인식에 따라 남은 희망은 미국이다. 하지만 울프는 "불행하게도 미국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것"이라면서 "미국 중앙은행이 통화긴축 정책으로 돌아서지 않았더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용거품에 중독된 경제가 여전히 조정 국면을 거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말 미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 결정에 대해 '미국 경제의 내수 시장 회복이 더딘데, 금리부터 인상해서 세계 경제까지 더 흔들리게 한 시기상조의 실책"이라는 비판도 대두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의 올해 4차례 금리 인상을 순차적으로 단행할 것이라는 전망도 흔들리고 있다.

울프는 "신흥시장에서는 이미 거품이 큰 소리를 내며 터지고 있다"면서 "또 한 번의 금융위기와 잘못 대응할 경우 악성 부채를 남기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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