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때문에 나는 '죽일 놈' 됐다"

[ A사장은 왜 죽음을 택했나] 단기업체 운영한 이재왕 씨 ②

지난 17일 현대중공업 한 사내하청 대표가 자신의 차에서 번개탄을 피우고 자살했다. 발견된 유서에는 적자 때문에 회사운영하기 힘들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2015년에만 현대중공업에서는 100여 개의 업체가 폐업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원청의 '기성 후려치기'를 견디다 못해 폐업됐다. <프레시안>에서는 A사장의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 하청업체 대표로 일하다 폐업수순을 밟은 이들을 만났다. 이미 '자살'의 징후는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었다. 그들에게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들어보자.

(관련기사 바로가기 ☞ A사장은 왜 죽음을 택했나 : "나는 현대중공업 '바지사장'이었다")

이재왕 씨가 처음 조선소 발을 디딘 건 1978년이었다. 한진중공업에서 청소 일부터 시작했다. 17살의 나이였다. 하나하나 일을 배워갔다. 오랜 시간 한진중공업에서 일했다. 이후 대평조선 등 몇몇 조선소를 거쳐 2007년 현대중공업 하청업체에 입사했다.

일에 대한 책임감이 컸다. 맡은 작업은 지시내린 시간 내에 마무리하려 노력했다. 자연히 위에서도 인정받았다. 직장을 거쳐 작업소장에까지 올라갔다.

그러던 어느날 하청업체를 관리하는 원청 관리자가 이 씨를 불렀다. 부도나서 이름만 있는 하청업체를 받아 운영해 보라고 제안했다. 다만 노동자들이 뿔뿔이 흩어졌기에 이 씨가 직접 노동자들을 모아야 한다는 전제가 붙었다.

조선소에서 잔뼈 굵은 이 씨, 업체대표 맡았으나…

조선소에서 잔뼈가 굵은 이 씨였다. '물량팀'도 운영했다. 노동자를 끌어들이는 일은 식은 죽 먹기였다.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다. 자기가 인수할 업체가 임시업체인지, 정규업체인지였다. 임시업체일 경우, 3개월~6개월만 하청업체로 등록된 뒤, 실적에 따라 원청과 재계약을 해야 한다. 일종의 업체 내 '비정규직인' 셈이었다. 게다가 정규업체가 원청으로부터 받는 하청노동자 식대 등 복지 관련 지원은 일절 받지 못했다.

조심스럽게 우려하는 바를 제기했다. 원청 관리자는 '걱정하지 말라'며 정규업체임을 강조했다.

곧바로 전국에 흩어져 있는 조선소 노동자들에게 연락했다. 사정을 설명하고 도달와달라고 부탁했다. 평소 연락하는 친한 형‧동생들이었다. 2013년 3월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조선소 운영은 인력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청에서 업체 사장으로 이 씨를 점찍은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12월까지 마무리할 공사가 있는데 담당업체는 부도가 난 상태였다. 일할 노동자를 섭외할 능력 있는 사람도 찾기 어려웠다. 평소 일 잘하고 '물량팀' 노동자를 잘 아는 이 씨가 적임자였다.

하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니 이야기가 달라졌다. 애초 작업 시작할 때 약속한 기성금에 턱없이 못 미치는 금액이 지급됐다. 3월에는 62%, 4월에는 67%, 5월에는 54%, 6월에는 62%의 애초 약속했던 금액보다 낮은 기성금이 지급됐다. 급기야 7월에는 36%의 기성금이 지급되기도 했다.

ⓒ매일노동뉴스(정기훈)

업체사장 된 뒤 6개월 만에 쪽박 찬 이 씨

게다가 정규업체인줄 알았던 회사는 알고 보니 임시업체였다. 나중에 계약연장을 할 수 있느냐의 여부도 문제였지만 가장 큰 문제는 노동자들의 복지혜택이었다. 작업복, 안전화는 물론 중식, 간식, 석식 관련 대금이 전혀 지급되지 않았다.

정규업체는 원청에서 이를 지급했지만 임시업체는 업체 사장이 모두 부담해야 했다. 여름휴가비, 명절상여금, 성과급 등도 마찬가지였다. 일하는 노동자가 100명일 때는 한 달 점심값만 1억 가까이 들었다. 업체를 인수할 때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금액들이었다.

이 씨는 업체 관리자가 자기에게 사기를 쳤다고 생각했다. 그해 12월까지 급히 처리할 물량 때문에 자기를 이용했다고 판단했다.

직접 만나서 따졌지만 소용 없었다. 과거 이 씨가 있던 회사의 임금체불 문제가 정규업체 등록의 거부 요인이 됐다. 황당했다. 이 씨는 전 업체에서는 사장도 아닌 작업소장이었다. 자기가 그런 것까지 책임져야 한다니 당황스러웠다. 정규업체를 주지 않기 위한 핑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칼자루는 원청이 쥐고 있었다.

관리자를 만나서 '기성 후려치기'와 '임시등록업체' 관련 항의도 하고 욕도 했다. 하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결국, 그해 9월, 임시 기간을 마치고 이 씨 회사는 폐업 처리됐다.

폐업을 했지만 그간 밀린 임금을 계산하고도 줘야 할 임금이 6700만 원이나 남았다. 원청에 이 문제만이라도 해결해달라고 했지만 모른 척했다. 이 씨가 제대로 회사 운영을 하지 못해 발생한 문제라는 답변만 들었다.

이미 임금 때문에 빚을 지고 있는 이 씨였다. 더는 빌릴 곳도 없었다. 재판에 넘겨졌고 집행유예를 받았다. 인생에 '빨간 줄'이 그어진 셈이다.

한순간에 모든 걸 잃었다. 그간 형‧동생하며 지내온 노동자들에게는 임금을 떼먹은 악덕 사장이 돼버렸다. 평생 조선밥 먹으며 모은 돈도 6개월 동안 모두 날라 갔다. 빚만 끝도 없이 생겼다.

"현대중공업, 얼마 줄지 이야기 안 하고 일 시킨다"

답답한 마음에 공정거래위원회에 불공정하도급거래행위로 신고했다. 지난 7월 최종결과가 나왔다. 불공정하도급거래를 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증거불충분으로 심의절차를 종료하겠다'고 통보했다.

실제 불공정거래를 증명할 증거가 부족한 게 사실이었다. 애초 도급 계약을 맺을 때, 계약서 작성은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씨는 "원청에서 하청업체에 업무를 시킬 경우, 설계도면도 보내고 견적 의뢰서도 보내야 한다"며 "그래야 하청에서도 얼마만큼 사람을 투입할지 등을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 씨는 "그런 판단 후에 단가가 맞는지 안 맞는지를 판단한다"며 "이후 작업을 할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는데, 지금 현대중공업은 전혀 그러지 않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 씨 등 하청업체 사장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계약서나 외주시공의뢰서 등 물량을 맡길 때 원청에서 하청에 보내야 하는 관련 서류는 전혀 없다. 모든 게 구두로 진행된다는 이야기다. '이 물량을 언제까지 끝내면 얼마 주겠다' 이런 식이다.

문제는 그렇게 구두로 약속했지만 공사가 끝난 뒤, 기성금을 치를 때면 애초 구두로 약속했던 것보다 한참 떨어지는 금액을 지급한다는 게 하청업체 사장들 주장이다. 계약서가 작업 시작할 때 날라 오는 게 아니라 작업이 끝난 뒤 날라 오는 게 관행이라는 것.

ⓒ매일노동뉴스(정기훈)

"나는 노동자들에게 죽일 놈이 됐다"

현대중공업 측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기성 관련, 하청업체 노동자의 실 투입인원, 작업시간과 관계없이 물량(처리 중량, 면적 등)을 기준으로 계약된다고 밝히고 있다. 계약된 도급대금을 하청업체 공사 진행율에 따라 계약기간 동안 매월 나누어 지급하고 공사수행이 완료되는 시점에 도급대금 전액을 지급하고 있다는 것.

하지만 이 씨의 주장은 다르다. 매일 아침 원청 직원이 하청 노동자 인원수를 체크하기 위해 아침체조를 할 때, 뒤에서 인원을 세는 건 기본이라는 것. 오후 6시까지 몇 명이 일하는지, 저녁 8시까지 몇 명 일하는지 등도 일일이 체크한다. 게다가 그날 일한 노동자 수와 노동시간은 일일이 원청이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입력해야 한다.
한 번은 한창 일하는 오후 3시께 원청업체 관리자가 이 씨 업체 노동자들을 소환하는 일도 벌어졌다. 신고한 인원과 실제 일하는 노동자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일하는 노동자와 시간에 따라 원청에서 기성금을 책정하기 때문에 이렇게 꼼꼼히 체크한다는 게 이 씨 주장이다.

현재 이 씨는 조선업을 떠나 집 짓는 일을 하고 있다. 더는 조선업에 발붙이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하청노동자의 임금을 떼먹은 악덕 사장이 돼 버렸다.

"나는 불러온 애들에게 죽일 놈 됐다. 그들에게 면목도 없다. 다시는 그들과 일도 못한다. 어떻게 하겠나. 6개월 일하면서 그간 벌어놓은 돈 다 까먹고 쪽박 찼다.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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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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