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가 왜 복을 상징할까? 코끼리는 왜?

[임대근의 시시콜콜 중국 문화] ‘해음’으로 푸는 중국 그림 코드

우리나라 옛 가구나 민화를 보면 박쥐 문양이 들어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학이나 봉황 같은 고상한 동물들은 그렇다 해도 왜 하필 박쥐일까? 한자를 즐겨 쓰던 관습에서 비롯된 일이다. '박쥐'는 한자로 '편복(蝙蝠)'으로 적는다. 이 때 '복(蝠)'이 복을 뜻하는 '복(福)'과 발음이 같아서 빚어진 일이다. 예컨대 장수를 나타내는 '수(壽)' 자나 '복(福)' 자를 중심으로 박쥐 다섯 마리를 그려 넣으면, '오복'을 상징한다는 식이다.

이런 현상은 옛날 중국에도 널리 퍼져 있었다. 중국어의 '해음(諧音)'에서 비롯된 일이다. 중국인들은 비슷하거나 같은 발음의 글자를 활용해서 평안과 행복을 기원하는 소망을 나타냈다. 해음 현상을 잘 이해하면, 중국의 그림이나 장식에 숨겨져 있는 문화 코드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다.

특히 중국 민화에는 다양한 해음이 숨겨져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게 물고기 그림이다. 물고기는 서양 기독교 문화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동양에서도 예부터 풍요를 가져다주는 동물로 여겨져 왔다. 중국 민화에 나오는 물고기 그림은 대부분 '연연유어(年年有魚 : 넨넨여우위)'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이 때 물고기를 뜻하는 한자인 '어(魚 : 위)'는 넉넉하다는 뜻을 가진 '여(餘 : 위)'와 발음이 같다. 또 풍요롭다는 뜻의 '유(裕 : 위)'와도 발음이 비슷하다. 따라서 "해마다 물고기가 있다"는 말인 '연연유어'는 "해마다 넉넉하고 풍요롭다"는 뜻이 된다.

ⓒnipic.com

간혹 물고기 그림에 연꽃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는 연꽃을 뜻하는 한자인 '련(蓮)'을 써서 그림 제목을 '연연유어(蓮年有魚)'라고도 한다. '연연(蓮年)'이 '해마다'라는 말인 '연연(年年)'과 비슷한 발음이기도 하지만, '연연(連年)', 즉 '연이어 해마다'라는 말과 완전히 발음이 같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국인들이 연꽃과 물고기가 함께 있는 그림을 보면서 풍요를 기원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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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예도 얼마든지 있다. 큰 코끼리 한 마리가 있고 그 위에 물병이 하나 놓여 있는 그림이 있다. 코끼리와 물병이라는 조합은 쉽게 해독하기 어려운 조합이다. 그러나 해음을 연상해 보면 이런 그림의 의미도 그다지 어렵지 않다. 코끼리는 '상(象 : 시앙)'이고, 병은 '병(甁 : 핑)'이다. '상'과 비슷하거나 같은 발음을 가진 해음 글자 중, 상서롭다는 뜻의 '상(祥 : 시앙)'이 있다. 중국어에서 '병'은 평안을 뜻하는 '평(平 : 핑)'과 발음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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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이 그림의 속뜻은 "상서롭고 평안하다"가 된다. 더 나아가 병이 코끼리 위에 놓여 있는 것은 '놓다'는 뜻의 '안(按 : 안)'자와 '편안하다'는 뜻의 '안(安 : 안)'을 해음으로 활용했다. 그래서 이 그림은 겉으로는 "병이 코끼리 위에 놓여 있다"는 뜻이지만, 전하고자 하는 의미는 '평안길상(平安吉祥)', 즉 "평안하고 상서롭다"가 된다.

돌 위에 큰 닭 한 마리가 서 있는 그림도 있다. 돌과 닭의 조합을 어떻게 풀 것인가? 돌은 '석(石 : 스)'이고, 닭은 '계(鷄 : 지)'이다. 위에서처럼 이 글자들의 해음자를 찾아보면 그 의미도 잘 풀어낼 수 있다.

우선 쉬운 것부터 찾아보면, 중국어에서 '계'는 '길(吉 : 지)'과 발음이 비슷하다. 말 그대로 길하다는 뜻이다. '석'은 방 또는 집을 뜻하는 '실(室 : 스)'과 해음이 된다. 따라서 "돌 위에 서 있는 큰 닭"이라는 말은 "집에 찾아오는 큰 길함"이라는 말의 '실상대길(室上大吉)'로 풀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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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리가 땅에 서 있고, 까치가 하늘을 날고 있는 그림도 있다. 오소리는 '환(獾 : 환)'이고, 까치는 '희작(喜鵲 : 시취에)'이다. '환'은 '기쁠 환(歡 : 환)' 자와 해음이 되고, '희작'은 그대로 '즐거움(喜)'을 나타낸다. 오소리와 까치가 각각 하늘과 땅에 있으니 이 그림의 제목은 '환천희지'(歡天喜地)가 된다. 매우 기쁘고 즐거운 상황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렇듯 중국 민화는 많은 경우 해음을 통해서 본래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를 유추할 수 있다. 우리 관습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동물이나 사물이 한 그림 안에 등장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이런 관습이 이미 널리 퍼져서 정형화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표적인 사례들만 알아두어도 그림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 앞서 말한 사례 외에도 말(馬)은 '곧', '머지않아(馬上 : 마상)'라는 뜻이고, 원숭이(猴 : 허우)는 '벼슬', '관직'의 '후(侯 : 허우)'를 뜻하며, 사슴(鹿 : 루)은 '녹봉'의 '녹(祿 : 루)'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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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근

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 및 중국어통번역학과 교수이다. 중국 영화, 대중문화, 문화 콘텐츠 전문가로 활동하면서 강의와 번역, 글쓰기 등을 실천하고 있다. 중국영화포럼 사무국장을 맡고 있으며, 아시아에서 대중문화가 어떻게 초국적으로 유통되고 소비되는지에 관한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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