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노동법' 코 앞에…제1 야당은 뭐하고 있나?

[박점규의 동행]<58> 2009년 12월 추미애의 기억

지난 5일 2차 민중총궐기가 끝나자마자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박근혜 노동법'의 연내 처리를 위해 미친 듯이 나섭니다. '노동 개악'에 맞서 총파업을 하겠다는 민주노총을 겁박하고 손발을 묶기 위해 5·18 광주민중항쟁 때 전두환이 썼던 '소요죄'까지 꺼내 들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귀국 직후인 7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원유철 원내대표를 청와대로 불러 노동법 연내 처리를 강하게 주문했습니다. 그는 "참 두고두고 가슴을 칠 일이고 내년에 선거를 치러야 하는데 정말 얼굴을 들 수 있겠느냐"며 노동법 통과를 재촉했습니다.

바로 전날에는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이 비정규직 사용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기간제법을 '고용안정법', 뿌리산업과 55세 이상 장년들에게 파견을 전면 허용하는 파견법을 '중·장년일자리법'이라고 부르며, "노동개혁 법안은 금년 중에, 서비스산업기본발전법과 원샷법은 이번 주 중 반드시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7일 경기도 안산에 있는 삼신화학공업을 방문해 뿌리 산업에 인력난이 심각해 파견을 전면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연일 텔레비전에는 고용노동부 광고가 쏟아져 나옵니다. 2015년 12월, 청와대 지휘에 따라 정부와 여당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박근혜 노동법' 연내 통과에 사활을 걸고 달리고 있습니다.

정부·여당, '박근혜 노동법' 통과 위해 사활

야당도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닙니다. 6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새누리당의 법안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비정규직을 더 늘리려는 거꾸로 가는 방안"이라며 "우리 당은 새누리당이 추진하는 노동 법안 가운데 기간제법과 파견법을 결단코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확고한 당론임을 다시 한 번 천명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새정치민주연합 '유능한 경제 정당 위원회'는 '박근혜 노동법'에 대항하는 '비정규직 4대 개혁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4대 정책의 내용은 △비정규직에 가해지는 모든 불합리한 차별 철폐 △파견과 하청에서 사용주 및 원청자의 노사 관계 공동 책임제 도입 △비정규직 해고 시 총임금의 10%를 구직 수당으로 지급하는 구직수당제 도입 △ 비정규직 고용을 현재의 기간 제한에서 사유 제한으로 변경하기 위한 사회적 대타협 기구 구성입니다.

문재인 대표는 "제 개인적으로도 국회의원을 하는 동안 비정규직을 줄이지 못할망정 거꾸로 비정규직을 늘리는 법안을 용인한다면 저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민주노총을 비롯해 제1야당을 신뢰하는 노동자는 많지 않아 보입니다.

문재인 "'박근혜 노동법' 용인하면 자신을 용서 못 할 것"

2일 새벽, 여야는 쟁점 법안과 내년도 예산안 협상을 일괄 타결하면서 '박근혜 노동법'에 대해 "양당이 제출한 노동개혁 관련 법안의 논의를 즉시 시작하여 임시 국회에서 합의처리한다"고 합의했습니다.

문재인 대표가 민주노총 지도부와 만나 "새정치민주연합은 노동개악 5법 저지를 분명한 당론으로 하고 있다"며 "임시국회가 열리더라도 노동개악 5법 저지 입장을 견지할 것이며 이는 내년 총선까지 변함없는 입장이 될 것"이라고 약속한 지 하루도 안 돼 벌어진 일입니다.

민주노총은 "여야 지도부의 기습 합의는 노동자 민중의 뒤통수를 치는 행위로서 결코 묵인될 수 없다"며 "야당은 지도부의 합의를 당장 폐기해야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새정치연합은 '이번 임시국회'가 아니라 '임시국회'라고만 되어 있고, '합의처리한다'고 했기 때문에 연내 처리를 합의한 것이 아니라고 입장입니다. 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와 법안심사소위가 여야 동수이고, 국회 선진화법 때문에 새누리당의 '박근혜 노동법' 강행을 막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야는 3일 새벽 본회의에서 내년도 예산안을 처리하면서 일반회계 '노동시장 구조개혁 후속조치'가 막판 추가된 1조6000억 원의 예비비 편성안도 통과시켰습니다. '박근혜 노동법'이 통과될 것을 가정한 예산 편성안이 국회에서 확정된 것입니다.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는 여야 합의문에 대해 "지금 말장난 할 때가 아니다. 야당에서 국민적 상식을 뒤집는 것"이라며 "즉시 논의해서 처리한다는 건 이번 임시국회라는 걸 누구나 다 상식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새누리당은 정기국회가 끝나는 다음날인 10일 임시국회를 소집했습니다.

여야, "임시국회 합의처리"에 예산까지 통과

문재인 대표의 약속을 믿고 있었던 민주노총은 4일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12월 16일부터 노동개악법 저지를 위한 총파업 투쟁에 돌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국회에서 노동법이 통과되면 싸우겠다는 '조건부 파업'이 아니라 법안을 막기 위한 '선제 파업'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루만 진행되는 경고성 파업이 아닙니다. 민주노총은 "12월 16일 전면파업 및 지역별 파업대회를 시작으로 정세에 따른 전면파업 전개 등 전술운영은 위원장에게 위임한다"며 "각 가맹산하조직은 급변하는 정세에 대응한 즉각적인 총파업 투쟁에 복무할 수 있도록 모든 태세 구축을 12월 15일까지 완료한다"고 결정했습니다.

민주노총과 노동자들이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의 약속을 믿지 않고 총파업을 결정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 5일 서울 도심에서 열렸던 2차 국민총궐기 본 집회 이후 행진에 함께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프레시안(손문상)
민주노총이 16일 총파업을 결정한 이유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인 2009년 겨울입니다. 촛불 정국에서 헤어 나온 이명박 정권이 쌍용차 파업을 경찰특공대를 투입해 폭력적으로 진압한 후 노동조합법 정기국회 통과를 강력히 밀어붙이고 있던 시절입니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복수노조를 허용하되, 교섭창구를 단일화하는 법안과 노조 상근자(전임자)의 임금을 사측이 지급하지 못하도록 하는 노동조합법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노동계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법이라며, 소수 노조라도 교섭권을 부여하고, 전임자 임금은 노사 자율에 맡기라고 요구했습니다.

당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위원장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추미애 의원이었습니다. 2009년 12월 30일 오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어 노동조합법 개정안을 표결 통과시켰습니다.

당시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법안에 반발하는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자, 회의실 문을 걸어 잠그고 표결을 강행했습니다. 추미애 의원이 망치를 두드리는 동안 민주노동당과 민주당 의원들이 문을 두드리며 "날치기는 무효"라며 강력하게 항의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가 "추미애 위원장의 태도는 민주당이 도저히 묵인할 수 없다"고 비난했지만, 새해가 밝아온 1월 1일 새벽, 김형오 국회의장은 '추미애 노조법'을 국회 본회의에 직권 상정해 통과시켰습니다. 당시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는 "한국 정치에 있어 어두운 터널 끝에 희망을 보여준 사례"라고 칭송했습니다.

2009년 겨울 민주당이 한 일

'추미애 노조법'의 파괴력은 엄청났습니다. 민주노총 안에서도 가장 강성노조인 금속노조, 그중에서도 '비정규직 없는 공장'의 노조들이 '추미애 노조법'을 무기로 삼은 정권과 자본의 공격에 하나둘 쓰러져 나갔습니다.

회사는 '노조의 파업 유도 → 직장 폐쇄 → 경찰력 투입 → 회사 쪽 복수노조 설립 → 민주노조 파괴'라는 시나리오로 민주노총 '강성노조'를 하나둘씩 깨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추미애 노조법' 때문에 다수노조의 지위를 빼앗기는 순간 소수노조는 식물노조가 될 수밖에 없었고, 생존의 벼랑에 몰린 노동자들은 민주노조를 외면하고 회사노조로 떠나갔습니다.

금속노조 경주지부 발레오만도를 시작으로 구미 KEC, 대구 상신브레이크, 유성기업, 만도, 콘티넨털 등 민주노총의 핵심 사업장들이 차례로 깨졌습니다. 다행히 경기 안산의 SJM지회에서 '창조컨설팅'이라는 노조 파괴 노무법인이 동원한 용역 깡패의 폭력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추미애 노조법'을 이용한 '민주노조 파괴 전쟁'은 주춤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추미애 의원은 "당시 당과 충분히 상의하지 못해 송구하지만 결국 노조 전임자도 살리고 헌법 가치대로 복수노조도 가능하게 됐으며 삼성에서도 복수노조가 가능해지는 등 현장은 잘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추미애 의원의 주장과 달리 타임오프제와 교섭창구단일화라는 반헌법적이고 반노동적인 법령으로 인해 노동조합운동이 초토화되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지난 잘못을 겸허히 반성하고 노조법 전면 재개정에 적극 나서라"고 촉구했습니다.

6년 전 '추미애 노조법'의 기억

2009년 겨울, 이명박 정권은 강성노조를 겨냥해 노동조합법을 강행 처리했고, 야당의 일부가 이에 동조했습니다. 2015년 겨울, 박근혜 정권은 전체 노동자를 겨냥해 '박근혜 노동법'을 강행 처리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야당의 배신자가 없을까요? 청와대와 정부 여당이 '박근혜 노동법'에 명운을 걸고 있는데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무엇에 명운을 걸고 있을까요?

새누리당과 '박근혜 노동법' '임시국회 합의처리'를 합의한 이종걸 원내대표는 당무를 거부하고 있고, 주승용 최고위원은 "끝내 악마를 막지 못한 것 같다"며 최고위원직을 사퇴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지난 6일 안철수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독선과 오만으로 가득 찬 낡은 세력들이 나라를 침몰시키는 것을 더 이상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다"며 칩거에 들어갔습니다. 제1야당의 꼬락서니가 점입가경입니다.

비정규직 사용 기간을 4년으로 늘리고, 파견을 전면적으로 허용하고, 해고를 손쉽게 하는 노동법을 통과시키면 국민의 삶은 침몰합니다. '박근혜 노동법'이 통과되면 파견이라는 바이러스가, 중간착취라는 암 덩어리가, 노동착취라는 메르스가 전국에서 창궐합니다. '박근혜 노동법'보다 더 끔찍한 '악마'는 없습니다.

제1야당에 묻습니다. 우리 청년들 평생 비정규직 만드는 '박근혜 노동법'이라는 악성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당신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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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점규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은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에서 선전홍보, 단체교섭, 비정규직 사업을 담당했습니다. 2008년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함께하면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사회적 기구인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네트워크’를 함께 만들었습니다. 2010년 11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25일 점거파업에 함께 했고, 이후 한진중공업, 현대차 비정규직, 밀양 희망버스에 함께했습니다. 저서로는 <25일>, <노동여지도> 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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