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핏 봐선 뻔한 행보 같습니다. 그곳은 2012년에 '안철수 바람'이 거세게 불었던 곳, 그때의 바람을 되지피기만 하면 당내에서 강력한 기반을 형성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정성을 다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저 그런 개인적 행보 같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이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상황 파악을 위해 질문을 하나 던지겠습니다. 안철수 의원의 고향은 부산입니다. 그런데도 부산엔 별로 공을 들이지 않습니다. 광주에 들이는 공에 비하면 반의반도 되지 않습니다. 혁신위가 전직 대표들의 험지 출마를 권고하고, 이를 받아 당내에서 부산 출마 얘기가 나오자 안철수 의원은 단칼에 끊었습니다. 자기 고향을 정치적 거점 삼을 생각은 추호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가 광주는 안방 드나들 듯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물론 지역구 관리는 빼야 합니다. 안철수 의원의 지역구는 서울 노원병이니까요.
세상이 다 아는 이유가 있습니다. 호남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당내 비주류가 문재인 사퇴 요구의 근거로 호남의 문재인 거부 정서를 꼽고 있다는 점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안철수 의원은 이런 상황과 움직임에 올라타 정치적 도약을 하려는 것입니다. 이곳의 민심을 문재인에 등 돌리고 자신에게 가슴 여는 쪽으로 유도함으로써 '문재인 불가론'과 '안철수 대안론'을 굳히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문재인을 밟고 자신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광주와 호남을 자신의 정치적 거점으로 삼음과 동시에 자신을 야당의 적통자로 자리매김하려는 것입니다.
안철수 의원의 행보를 심각하게 바라보는 이유 또한 이것입니다. 안철수 의원의 행보는 궁극적으로 문재인 대표에 대한 강제 퇴거 시도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호남에서의 축출 시도일 겁니다. 안철수와 비주류의 관계는 손잡는 관계로, 안철수와 문재인의 관계는 주먹 날리는 관계로 굳어져 버렸기 때문에 이건 필연입니다. 이 필연에서 또 다른 필연이 잉태됩니다. 조직적 축출이 조직적 반발을 불러오는 최악의 상황입니다. 자칫하다가 야당은 과거 양김 시대의 분열상을 재연할지 모릅니다. 호남 민주화 세력과 영남 민주화 세력의 분열로 치달을지 모릅니다.
안철수 의원은 정말 최악의 상황으로 폭주하고 있습니다. 야당 지지층의 결집을 꾀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이고도 유일한 방법이었던 '문안박 연대'를 발로 걷어찼을 뿐만 아니라 거꾸로 야당 세력의 대립과 반목을 불러올 수도 있는 최악의 행보를 놓고 있습니다.
물론 한정해야 합니다. 이런 암울한 전망은 오로지 안철수 한 개인의 발끝만 바라보며 행한 것입니다. 게다가 안철수 의원의 시도가 성공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하지만 시야를 넓혀 안철수의 발길이 닿는 그곳, 광주를 바라보면 전혀 다른 전망을 할 수 있습니다.
광주는 무명의 후보 노무현을 선택함으로써 양김이 이뤄내지 못했던 호남 민주화 세력과 영남 민주화 세력의 합일을 끌어냈던 곳입니다. 열린우리당 분당사태와 참여정부에서의 이런저런 일들에도 불구하고 2012년 대선 때 다시 문재인 후보를 선택함으로써 10년 전 선택 때의 대승적 결단의 맥을 이었던 곳입니다. 이런 곳에서 얄팍한 분열의 수가 통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건 어렵습니다. 얄팍한 분열의 수보다 명징한 저항의 수를 선택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게 오히려 현실적입니다. 과거로 폭주하는 박근혜 정권·새누리당 정권에 저항할 가장 강력한 수를 선택할 것이라고 전망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그래왔으니까요. 2012년 대선 때 '안철수 바람'이 불었던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안철수 의원은 어리석습니다. 그가 달려가야 할 곳은 광주가 아니라 광화문이고, 그가 싸워야 할 대상은 문재인이 아니라 박근혜인데 번지수를 잘못 짚었기에 어리석습니다. 그가 노심초사하는 광주의 민심은 싸우라고, 힘을 기르라고 말하고 있는데 엉뚱한데 총질하며 힘을 빼고 있기에 어리석습니다.
콩 심은 데 콩 나는 법입니다. 어리석은 시도는 참담한 실패만 가져올 뿐입니다. 안철수 의원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이 기사는 <시사통> '이슈독털'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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