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기억 방식 '포옹', 박근혜 정권에겐 요원한…

[세상에 없는 영화 속 정치 이야기] 데이빗 트루에바의 <살라미나의 병사들>

미라예스가 '인터뷰'를 마치고 떠나는 롤라에게 말한다. "부탁 하나 해도 되겠소."
롤라가 대답한다. "그럼요."
미라예스가 다시 말한다. "벌써 몇 년 동안 사람을 안아보지 못했소."

두 사람이 서로를 꼭 안는다. '그저 사람과 사람일 뿐인' 두 사람이….

부녀 관계도, 애인도, 친구도 아닌 두 사람이 포옹할 수 있는 이유는 사람과 사람이기 때문이다. 미라예스가 이념 갈등과 내전과 전쟁이라는 상처투성이의 '역사 속 삶'을 헤쳐 온 사람이기 때문이고, 롤라가 '작가'라는 이름으로 미라예스 같은 '사람의 생과 사와 마음을 헤아려 기록'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 영화 <살라미나의 병사들> 중 한 장면. ⓒgoogle.com

미라예스와 롤라의 포옹 장면은 데이빗 트루에바 감독의 영화 <살라미나의 병사들(Soldados De Salamina)>(2003년) 말미의 한 장면이다. 21세기 스페인 문학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하비에르 세르카스의 소설 <살라미나의 병사들>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영상미'보다는 '이야기'에 집중한다. 그 어떤 격정적 장면도 없다. 망각에서 조금씩 깨어나 역사를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를 잔잔한 어투로 들려줄 뿐이다. 배우들의 연기 역시 마찬가지다. 그 어떤 과도한 몸짓과 표정도 없다. 결코 고함을 내지르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과 타인의 마음을 고요히 헤아리고 어루만져주려고 할 따름이다. 자조 어린 듯한 '스페인의 한숨'을 밑자락에 깐 채. 그 끝에 다다른 곳이 바로 포옹인 것이다.


<살라미나의 병사들>은 포옹이 '역사를 기억하는 한 가지 방식'임을 알려준다. 즉, 우리가 역사와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처단, 비방, 주입, 강요. 그 중 어느 것도 아닌 '잊혀진(잊힌) 사람'을 찾아 만남으로써 기억하는 방식 말이다.

▲ <살라미나의 병사들> 원작 소설(왼쪽)과 영화 포스터(오른쪽). ⓒgoogle.com

<살라미나의 병사들>은 롤라가 60년이 지난 스페인 내전 당시 '파시스트'인 라파엘 산체스 마사스를 죽이지 않고 살려준 '잊혀진 사람', 공화군 병사(미라예스)를 찾아 그 이유를 묻는 내용이다.

파시스트 정당인 '팔랑헤당'의 거물인 마사스는 내전 막바지인 1939년 1월 30일, 공화군에게 잡혀 처형될 위기에 처했다가 도주한다. 하지만 곧 한 젊은 공화군 병사에게 발각되어 죽음의 목전에 놓인다. 그런데 자신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젊은 공화군 병사가 "거기 누구 있어?"라는 다른 동료의 물음에, "여긴 아무도 없어"라고 말하며 총구를 내리고 돌아선다. 미소를 지은 '즐거운 표정'으로. 결국 마사스는 탈출에 성공하고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 그 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서는 자문한다. "왜 살려주었을까? 그 즐거운 표정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라고. 마사스는 "그가 누군지 아느냐?"고 묻는 이에게 이렇게 답한다. "이름은 모른다. 하지만 그를 '기억'한다. 공화군 병영의 임시감옥에 갇혀 있던 어느 날, 그 젊은 공화군 병사가 빗속의 병영 한가운데로 나와 홀로 빠소 도블레 '스페인의 한숨'을 부르며 춤을 추는 것을 보며 아주 오랜만에 웃음 지을 수 있었다"고.

▲ 영화 <살라미나의 병사들> 중 백미로 꼽히는 장면. 비를 맞으며 춤추던 미라예스가 웃고 있다. ⓒgoogle.com

미라예스가 빗속의 병영 한 가운데에서 '빠소 도블레(Paso Doble)'를 부르며 춤추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이다. 이 장면은 마지막 장면(엔딩 신, ending scene)이기도 하다.

적을 죽이지 않고 살려 준 데다가 즐거운 표정까지 지었다고? 롤라가 미라예스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었던 물음이다. 롤라는 86세의 노인이 된 미라예스를 만나 마사스를 살려준 병사가 있었고, 그를 찾기 위해 왔다고 말한다. 이를 들은 미라예스가 말한다. 찾아야 할 사람은 살아 있는 자기가 아니라 인생의 꽃을 피우지도 못하고 파시스트에 맞서 싸우다 스러져갔는데도, 어느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는 이들이라고. 바로 그런 그들을 끌어안아 줘야 하는 거라고.


"자네가 찾고 있는 건 영웅이고 그 영웅이 바로 나란 말이지? 영웅이란 살아남지 못하는 법이오. 내가 전선으로 떠났을 때 많은 청년들이 함께했소. 가르시아 수게스 형제, 미겔 까르도스, 가비 발드리카, 삐뽀 카날, 뚱뚱이 오데나, 산띠 브루가다, 조르디 구다욜… 다 죽었소. 다들 정말 젊었고… 그 중 누구도 인생에서 좋은 일들이 뭔지 몰랐소. 아내가 있었던 사람도 없었고, 일요일 아침에 침대로 파고드는 아들을 가진 사람도 없었소. 가끔 이 사람들을 꿈에서 보는데 그 시절 그대로 젊은 모습이지. 이 사람들한테 시간은 흐르지 않는 거요. (그런데도 세월을 이유로) 그 누구도 이들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소. 이 세상 어느 나라의 무지렁이 시골 마을의 손바닥만 한 길 하나도 이 사람들의 이름을 딴 곳이 없소."

미라예스는 이어 롤라에게 묻는다. "(도대체) 마사스를 살려준 병사를 왜 찾으려는 거요?"
롤라가 말한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물어보려고요. 왜 죽이지 않았는지요."
그러자 미라예스가 반문한다. "왜 죽였어야 하는데?"

그리고선 침묵한다. 헤어져 돌아가며 롤라가 다시 묻는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그 병사는?"
미라예스가 이번에는 답한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그리고선 "그 병사가 바로 당신 아니냐?"는 물음에도 짧게 답한다. "아니오."

미라예스는 마사스를 파시스트가 아닌 그저 사람으로 본 것이다. 그것도 궁지에 빠진 가엾은 사람으로. 그를 살려준 것은 어떤 이념 혹은 정치적 견해에 바탕을 둔 생각의 결과가 아니다. 본성! 죽임보다 살림을 열망하는 인간의 본능에 따른 것이다. 그래서 즐거운 표정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이다. 즐거운 표정은 생각이 아니라, 또 죽임이 아니라 살림의 본능에 순응했을 때 나온다. 어쩌면 빗속의 병영 한가운데에서 '스페인의 한숨'을 부르며 춤출 수 있는 미라예스가 원한 것은 즐거운 표정 그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이런 사람(미라예스)'을 잊은 채 방치하고 있었다니. 자신을 부정하면서까지 죽은 자들에 대한 기억을 중시하고, 적과 동지의 구분에 앞서 사람의 살림을 우선하는, 그래서 즐거운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을 말이다.

롤라는 떠나는 택시 안에서 서 있는 미라예스를 뒤돌아보며 말한다. "다시 와서 뵐게요. 친구들과 같이 올 거 에요. 다 같이 하루를 가족처럼 보내는 거에요. 와서 책도 읽어드릴게요. 기다려주세요. 절대 잊지 않겠어요. 잊지 않겠어요. 잊어버리게 놔두지 않겠어요." 롤라는 알아챈 것이다. 미라예스와의 포옹을 통해. 기억, 그것이 죽은 사람이든 (아직은) 살아 있는 사람이든 감당키 어려운 역사 속 삶을 산 이들을 껴안는 실천임을. 그것이 역사라는 말에 담겨 있는 진짜 의미임을.

▲ 영화 <살라미나의 병사들> 중 한 장면. ⓒgoogle.com

▲ 영화 <살라미나의 병사들> 중 한 장면. ⓒgoogle.com


스페인은 프랑코가 죽고 민주화 이행기에 들어선 1977년, 정치지도자들 간에 협약을 맺어 프랑코 정권의 범죄행위에 면죄부를 주는 사면법을 시행했다. 이는 미라예스와 같은 사람 혹은 미라예스가 진짜 영웅이라 일컬은 사람들, 즉 '내전의 희생자들'을 잊기로 한 결정이었다. 이 때문에 1977년의 협정은 '망각 협정'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칠레·아르헨티나·남아프리카 공화국 등에서 '과거 청산'을 움직임이 일고, 스페인도 이에 영향받아 결국 2007년 사회노동당의 주도로 '역사 기억법'을 제정한다. 이 법은 국민적 화해와 화합을 존중한다며, 주로 스페인 내전과 프랑코 시대의 희생자를 인정하고 보상하는 방안으로 채워져 있다. 프랑코 정권의 범죄행위에 대한 처벌보다는 희생자들에 대한 '기억'에 초점을 두었던 것이다. 이때 기억은 희생자들을 존중하는 한 가지 방식이다. 그리고 그들을 끌어안는 방식이다. 나는 이 역사기억법을 최선의 것으로 보지 않는다. 하지만 희생자들에 대한 기억과 존중의 정신을 담고 있다는 것은 무척이나 소중한 것이라 생각한다. 역사를 희생자들에 대한 기억과 존중의 장으로 세워내지 않고, 경쟁자를 비난하는 무기로 소모하는 이 나라의 정치를 볼 때 더욱 그러하다.


<살라미나의 병사들>은 역사 기억법을 제정하기 몇 해 전에 쓰였고,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역사 기억법 제정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받고 있기도 하다. 이 영화 속 포옹, 즉 잊혀진 역사 속 사람들에 대한 기억과 존중에 다름 아닌 포옹. 과연 이 땅의 정치가 이뤄낼 수 있을까? 아무래도 지금으로선 무리인 듯하다. 그들이 말하는 역사는 아직도 '사람'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대적관(對敵觀)과 이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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