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류 기업' 삼성의 문제, 직원들에게 물어보니…

[삼바대회를 준비하며 ①] 삼성과 매각사 직원 대상 설문 조사

'삼성노동인권지킴이'는 다가오는 11월 13일 삼성 서초사옥 앞 반올림 농성장에서 '삼바대회'를 개최합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삼성의 문제를 지적해온 활동가들이 성과를 확인하고, 나아갈 길을 함께 모색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대회를 앞두고 삼성의 문제에 대해 짚어보는 기획을 연재합니다. (필자)

경영권 승계 작업으로 삼성그룹이 격변기를 보내고 있다. 계열사 간 출자 구조를 정리해 나가는 한편, '선택과 집중' 기조로 사업부 정리와 임직원 구조 조정까지 거침없이 진행하고 있다. 이런 변화들이 당장 한국 사회와 국민들에게 눈에 보이는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재벌 3세의 안정적인 권력 창출을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더 활발해져야 한다.

삼성노동인권지킴이와 삼성바로잡기운동본부는 국민들뿐만 아니라 삼성의 내부 구성원을 대상으로 2015년 4월 30일부터 6월 2일까지 약 5주 동안 온․오프라인에서 '삼성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을 묻는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삼성 내부 구성원인 삼성 노동자들이 삼성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조사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394명의 삼성 노동자가 참여하였으며, 삼성에서 매각된 기업의 노동자들(한화토탈(前삼성토탈), 한화종합화학(前삼성종합화학), 한화테크윈(前삼성테크윈)) 558명과 일반 시민 1217명을 포함해 총 2194명이 이 설문에 참여했다.

"삼성의 성공 요인은 직원들의 노력"

삼성 노동자들이 꼽은 삼성 성공 비결, 1위 '삼성 직원들의 노력', '회장 경영 능력'은 2.3%
삼성 노동자 95.9%, 비정규직․협력업체 노동자 '정당한 대우 받지 못하고 있다'
시민 응답자 90.3%,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노동자 고용·노동 조건 삼성이 책임져야'

서점에 즐비한 경영, 경제, 자기 계발서 등 삼성의 성공 비결을 다룬 책들이 강조하는 바와 달리, 삼성 노동자의 2.3%, 일반 시민들의 2.4%만이 삼성 성공 요인으로 '이병철-이건희 회장의 경영 능력'을 선택했다. 삼성 노동자들이 꼽은 삼성 성공 요인 1위는 다름 아닌 '삼성 직원들의 노력'(39.5%)이었다. 일반 시민들은 '국가의 지원'(36.5%)을 1위로 꼽았다. 삼성 노동자와 일반 시민들 모두 그룹 회장들의 개인 능력보다는 노동자의 희생, 국가의 지원을 압도적으로 중요하게 봤다.

그렇다면 삼성의 성공에 기여한 '삼성 노동자들은 정당한 대우를 받고 있을까?'. 대체로 정규직 노동자는 정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편이지만, 비정규직‧협력업체 노동자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인식이 많았다. '정규직 노동자, 정당한 대우 받고 있나?'라는 질문에 삼성 노동자의 47.2%가 '그렇다', 36.9%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러나 '비정규직․협력업체 노동자, 정당한 대우 받고 있나?'라는 질문에는 삼성 노동자의 1.5%가 '그렇다', 95.9%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특히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고용, 노동조건을 삼성이 책임져야 하나?'라는 질문에 일반 시민 응답자의 무려 90.3%가 '삼성이 책임져야 한다'고 답해, 최근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임금․근로조건 개선 투쟁이 대중적으로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에서 매각된 계열사의 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 노동자들도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79.0%)'는 인식이 컸는데, 이에 대해 삼성노동인권지킴이에서 진행한 심층 조사에 따르면 삼성에서 일하던 시절 대체로 높은 임금을 받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충성만을 요구하는 비민주적 회사 운영, 지나친 경쟁을 강요하는 고과 평가, 높은 업무 강도, 잦은 권고 사직과 구조 조정 등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고 느끼게 한 이유들이었다.

삼성이 잘되면 국민이 잘 산다?

삼성 노동자 86.2%, 시민 응답자 73.9% '아니다'
삼성 노동자 5.8%, 시민 응답자 11.2% '그렇다'

'재벌이 우선 성장해야 국민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간다'는 소위 '낙수효과론'에 대한 인식은 어떨까? '삼성이 잘 되면 국민이 잘 산다'라는 명제에 대해 삼성 노동자의 86.2%, 시민 응답자의 73.9%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와 연관되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 경제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인가?', 그리고 '재벌 개혁은 경제 민주화의 필수 조건인가?'라는 질문에도 일관된 의견 분포가 나타났다. 삼성 노동자의 73.7%가 삼성재벌의 경제력 집중에 비판적이었고, 72.5%가 재벌 개혁을 경제 민주화의 필수 조건으로 보았다. 일반 시민들의 86.4%가 삼성재벌의 경제력 집중에 비판적이었고, 80.0%가 재벌 개혁을 경제 민주화의 필수 조건으로 보았다.



삼성노동인권지킴이는 한국 사회에서 삼성 등 재벌의 경제적 지배력을 상징하는 키워드로 '벤드아웃'에 주목했다. '벤드아웃'은 삼성이 협력사(하청사)들을 관리하는 제도로서, 경쟁에서 뒤떨어지는 업체를 납품 관계에서 퇴출시키는 징벌적 조치를 뜻한다. 납품 기한을 맞추지 못하거나, 불량률이 높다거나 하는 기준과 더불어 노조 설립도 하나의 사유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삼성 노동자의 91.8%가 '좋은 제도가 아니다', 4.1%가 '좋은 제도다'라고 답했다. 공론화된 적은 없지만, 생산 현장에서는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는 벤드아웃. 삼성의 '슈퍼갑' 지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삼성과 관련된 사회 문제, 무엇이 가장 심각한가?

1위 '도청․미행 등 인권 침해와 노동조합 탄압'
2위 '경영권 3대 세습', 3위 '권력형 비리'

삼성과 관련된 사회 문제는 광범위하고 다양하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을 선정해 보기를 제시하고,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순서대로 1~3순위를 선정하게 했다. (보기 : 권력형 비리, 경영권 3대 세습, 총수 일가의 황제 경영, 성과주의․1등주의 등 삼성식 이데올로기, 도청․미행 등 인권 침해와 노동조합 탄압, 백혈병 등 직업병과 산업재해, 태안반도 기름 유출․불산가스 누출 등 환경 훼손)

전체 응답을 종합하면, '도청․미행 등 인권 침해와 노동조합 탄압'이 1위, '경영권 3대 세습'이 2위, '권력형 비리'가 3위, '총수 일가의 황제 경영'이 4위를 차지했다. 삼성 노동자들은 '경영권 3대 세습'(1위), '권력형 비리'(2위)를 자신들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도청·미행 등 인권 침해․노조 탄압'(3위) 문제보다 더 심각한 문제로 꼽았다. 삼성그룹의 지배 구조, 경영 방식에 대한 노동자들의 근심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일반 시민들은 '도청․미행 등 인권 침해․노조 탄압'(1위)을 가장 심각한 문제로 선정했다. 당사자들보다도 일반 시민들이 노조 탄압 문제를 더 우려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결과다.

삼성의 내일은?

삼성 노동자 18.2% '삼성 성장 전망 밝다', 54.4% '어둡다'
시민 응답자 23.3% '삼성 성장 전망 밝다', 46.6% '어둡다'

삼성그룹의 급변은 지난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의 와병으로 시작되었다. 현재까지 1년 넘게 병상에 누워있는 이건희 회장의 현재 상태를 삼성 노동자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이건희 회장이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는 삼성의 보도에도 불구하고 언론과 증권가에선 수시로 사망설이 불거지고 있다. 삼성 노동자의 71.5%가 사망설이 사실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으며 모르겠다는 유보적 응답이 19.6%, 살아있다고 확신하는 응답은 8.9%에 그쳤다. 삼성 노동자들이 그룹 총수의 생사여부를 왈가왈부하는 것은 그룹 내에서는 금기 사항일지도 모르지만 설문 조사 결과는 그룹의 입장에 대한 노동자들의 의심이 드러난다. 어떤 이유로든 이건희 회장의 현재 상태를 외부에 정확히 알리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삼성 스마트폰의 고전으로 삼성전자의 실적이 하락하고 있는 가운데, 삼성의 미래 성장 전망에 대한 노동자들의 의견을 물었다. 18.2%는 여전히 성장 전망이 밝다고 답했고, 27.4%는 지금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 봤다. 어둡다고 답변한 노동자는 54.4%였다. 이와 비교해 일반 시민들은 조금 더 밝게 전망했다. 성장 전망이 밝다는 답변이 23.3%, 지금 수준을 유지한다는 답변이 30.1%, 어둡다는 답변은 46.6%였다.



이재용 부회장이 그룹을 이끌어갈 능력․자질이 있냐는 질문에 삼성노동자의 2.6%만이 그렇다고 답했고, 76.8%가 아니라고 답했다. 일반시민의 70.5%가 아니라고 답하고, 3.5%가 그렇다고 답해 비슷한 비율을 나타냈다.

삼성의 변화, 누가 어떻게?

삼성 노동자 74.9%, 전체 응답자 54.8% '비정규직‧하청근로자 임금 인상과 정규직화'가 가장 필요해
전체 응답자 42.1%, '삼성의 변화는 삼성 구성원(노동자, 노동조합 등)이 주도해야'

삼성 등 재벌로 집중된 부를 나누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삼성 노동자는 '비정규직‧하청 근로자 임금 인상과 정규직화'(74.9%)를 꼽았다. 일반 시민 또한 같은 의견이 많았다(61.3%). 종합적으로 전체 응답자 가운데 가장 많은 비율(54.8%)이 '비정규직‧하청 근로자 임금 인상과 정규직화'를 가장 우선적 해법으로 보았다. 다음으로는 '정규직 노동 조건 개선과 고용 증대'(19.5%), '세금을 많이 걷어서 국가를 통해 분배'(15.5%)가 꼽혔다. 전반적으로 삼성의 부를 나누는 가장 좋은 방안으로 노동자에 대한 분배를 늘리고 고용을 증대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인식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삼성의 변화를 누가 주도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삼성노동자, 매각사 노동자, 일반시민 모두 공통적으로 '삼성 구성원(노동자, 노동조합 등)'(42.1%)이 주도해야 한다고 답했다. 삼성의 변화는 내부에서부터 시작되는 게 가장 좋다는 인식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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