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만이 아니다. 캐나다에서도, 유럽에서도, 저 멀리 아프리카에서도 어렵지 않게 화교들을 만날 수 있다. 이렇게 화교는 전 세계 곳곳에 진출해 있다. 해외 화교의 규모는 2012년 말 기준으로 4136만 명에 달한다. 지역별로 보면, 아시아에 제일 많이 분포하고(74.3%), 다음으로 미주, 유럽, 호주를 포함한 대양주, 아프리카의 순이다.
전통적으로 화교를 많이 배출한 지역은 광둥(廣東), 광시(廣西), 푸젠(福建), 하이난(海南)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광둥과 푸젠이 그 중심에 있다. 광둥 출신 화교는 약 2000만 명으로 전체 화교의 절반을 차지하고, 푸젠 출신 화교는 약 1000만 명으로 전체 화교의 35% 정도를 차지한다. 이렇게 보면 광둥과 푸젠 출신 화교가 전체의 85%를 차지하는 셈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광둥과 푸젠을 ‘화교의 고향’이라고 불러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왜 하필 광둥과 푸젠인가?
그렇다면 왜 하필 광둥과 푸젠이 화교의 주요 배출지가 되었을까? 그 원인은 다음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 중국 남부의 인구증가와 경작지의 한계, 기근 등의 원인을 들 수 있다. 생존이 어려워지니까 자연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당송(唐宋)시대 중국의 남부는 인구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몽골족의 원(元)나라와 만주족의 청(淸)나라에 의해서 한족의 송(宋)나라와 명(明)나라가 멸망하자, 한족 유민들이 대거 남하하게 되었다. 그러한 추세는 1800년대까지 지속된다. 특히 1800년대 초반 약 150 년간에는 광둥과 푸젠지역의 인구가 20배에 가깝게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정작 경작지는 겨우 30% 정도 증가하는데 그쳤다. 경작지 대비 인구가 지나치게 많게 된 셈이다. 게다가 지독한 기근까지 겹쳤다. 광둥과 푸젠 사람들은 해외이주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다음의 원인은 무역항의 존재이다. 해외로 연결하는 창구가 없다면 아무리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 마침 광둥과 푸젠에는 해외와 연결할 수 있는 무역항이 있었다. 따라서 다른 지역보다 훨씬 쉽게 해외이주를 실행할 수 있었다.
무역항의 개방은 아편전쟁과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아편전쟁에서 패한 중국은 난징조약을 통해서 홍콩을 할양하게 되었고, 상하이, 광저우, 샤먼, 닝보, 푸저우 등 5대 항구를 개항했다. 이 중 3개가 광둥성과 푸젠성에 속한 항구다. 푸젠과 광둥의 수많은 노동자들은 이 무역항을 통해서 서구열강의 식민지인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지로 이주하게 되었다.
이들의 해외이주를 받아들일 국가도 많아졌다. 정작 받아줄 곳이 없다면 이민은 성사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때마침 미국과 캐나다, 호주 등지에서는 광산과 철도부설로 많은 노동자가 필요했고,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중국인 이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배출[排出]에서 배출[輩出]로
배출이란 인재를 길러 사회로 내 보낸다는 의미로, 이를 한자로 표현하면 ‘배출[輩出]’이 된다. 하지만 또 다른 ‘배출[排出]’도 있다. 인재를 배출한다는 뜻과는 아주 상반되게, 안에서 밖으로 불필요한 것을 밀어낸다는 뜻이다. 한글의 음은 같지만 한자의 뜻은 아주 상반된다.
공교롭게도 화교에게는 이 두 가지 단어가 함께 적용될 수 있다. 인구는 많고 먹을 것은 부족하고, 생존하기 위해서는 해외로 나가야만 하던 때가 있었다. 위에서 언급한 화교의 탄생 역사다. 말 그대로 지나치게 많은 인구를 해외로 배출[排出]한 것이다. 슬픈 역사가 아닐 수 없다. 부두의 하역노동자 쿨리로, 광산노동자로, 철도부설 현장으로, 사탕수수밭으로, 광둥과 푸젠의 수많은 농민들은 해외로 밀려나야만 했다. 생존을 위해서...
그러나 이렇게 밀려났던 화교들이 세계 곳곳에서 화려한 성공 역사를 써냈다. 그리고는 금의환향했다. 헐벗었던 중국이 죽[竹]의 장막을 걷어치우고 세계의 경제대국으로 급성장하는데 화교들은 큰 힘을 보탰다. 화교들은 세계 곳곳에서 엄청난 재력을 모았고, 방대한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서 상상을 초월하는 세력을 형성했다. 이 견고하게 뭉쳐진 화교 네트워크가 가난했던 중국을 도와 성공적인 경제발전을 이끌어 냈고, 그 흔적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1978년 중국의 개방과 함께 화교의 모국 투자가 줄을 이었다. 개방 초기 중국내 외국인 직접 투자액 가운데 70% 가량이 홍콩, 대만을 포함한 화교의 자본이었다. 개방 초기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화교자본의 모국투자 기세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아직도 중국에 직접 투자한 외국자본의 절반은 화교자본이 차지할 정도다.
화교들이 모국에 지대한 공헌을 하는 것은 해외에서 성공한 화교들이 많다는 반증이다.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거부를 포함해 정치인, 지식인 등 성공한 화교는 그 수를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베트남의 호치민(胡志明), 싱가포르의 리콴유(李光耀) 수상 등 동남아의 굵직한 정치인도 적지 않게 배출해냈다. 경제학계의 추산에 따르면 동남아시아 산업의 50%~80%와 대외무역의 40%정도를 화교들이 장악하고 있다. 하이테크 분야에서도 화교들의 활약이 대단하다. 세계적 소프트웨어 회사인 CA와 인터넷 서비스 회사 Yahoo도 화교가 일궈낸 세계적 기업이다.
포브스 잡지는 아시아 10대 증권시장의 1천 개 기업 중 51.7%가 화교가 주인이라는 충격적인 보고서를 낸 적도 있다. 이쯤 되면 그 옛날 ‘배출[排出]’이란 단어로 상징되었던 화교에게 이제는‘배출[輩出]’이란 단어가 훨씬 어울리는 시대가 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화교와 해외한인
이렇게 보면 광둥과 푸젠은 중국을 일으켜 세운 최대 공로자이다. 광둥과 푸젠 출신 화교가 없었다면 중국의 개혁개방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 또한 화교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인지하고 화교를 모국으로 끌어들이는데 갖은 노력을 다했다. 투자유치는 물론이거니와 천인계획[千人計劃]을 통해 해외의 화교석학, 과학자들을 국내로 초빙했다. 화교를 모국과 연결시키고 그 역할을 중시한 좋은 예이다.
중국정부의 화교에 대한 대우와 화교들의 활약은 우리에게도 시사 하는바가 크다. 사실 화교의 규모가 4천만을 넘어서니 대단하다 하겠지만 13억 중국 인구를 감안한다면 겨우 3%에 그친다.
그러나 720만 우리 해외동포는 7300만 남북한 총 인구의 10%에 육박한다. 결코 작은 비중이 아니다. 우리 정부의 해외동포에 대한 관심과 지지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해외동포의 가교역할이 절실하고,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더더욱 해외동포의 역할을 중시해야 한다. 최근 북한이 중국과 해외의 한인 동포 기업인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투자 유치전에 나선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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