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들은 유로화 통합 이후 득을 많이 본 독일의 부유한 경제와 안정적인 복지 제도가 독일 시민들의 넓은 마음을 만들었다고도 한다.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맹자가 사람들의 좋은 마음을 위해 항산(恒産)이 필요하다고 말했듯이 어쩌면 인간은 타인의 고통을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받아들이는지도 모른다. 만일 독일 경제가 어렵고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많은 차별과 양극화가 발생하고 있다면 재정과 노동 시장에 충격을 주는 난민들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시민들의 이 같은 환대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만으로 설명이 부족하다. 인간은 오로지 경제적 이해관계에만 작동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치와 다양한 공동체, 시민 사회는 필요 없고 기업과 관료제만 남아서 모든 것을 합리적인 선택으로 결정하면 되는지 모른다. 그러나 현실의 세계는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우리가 잘 작동하는 기계가 아닌 인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독일과 유럽의 난민 문제를 보며 다시 정치의 중요성을 생각한다. 정치는 그 사회의 중요한 문제를 공론의 장에서 다루게 한다. 그리고 그 공론의 장에서 벌어지는 토론과 논쟁, 그리고 선거를 통한 선택의 과정에서 더 좋은 시민성이 발현된다는 것이 민주주의의 숨겨진 장점일 것이다. 정치란 우리가 더 나은 시민이 되기 위해, 아니 인간으로서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독일의 과감한 결정과 난민들에 대한 독일 시민들의 환대는 한 어린아이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과 동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그 사회가 오랫동안 어렵지만 그 사회가 마주할 수밖에 없는 다양한 문제들을 놓고 정치가 공론의 장을 열고 시민들이 그곳에 다양한 결사체를 통해 참여하며 진지하게 논의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미 지난 선거 이후 독일은 사민당, 녹색당, 기민당 등이 연정의 주요 내용으로 난민 문제를 다루어왔다. 따라서 덮어놓고 독일 시민들의 시민성을 칭송하면서 한편에서 한국 사회를 '헬조선'이라 부르며 '미개한 시민의식'을 힐난하는 것은 오히려 현실에서 변화의 가능성을 삭제시켜 버리는 행태이다. 더 좋은 시민은 오직 노력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그 노력은 경제적인 평등과 안정된 사회를 위한 노력과 더불어 정치의 적극적 역할, 정당의 다양한 의견의 경쟁도 함께여야 한다. 더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결사체도 많아져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정치가 무엇을 다루어야 하는가. 그리고 민주 사회에서 공공재라 할 수 있는 정당과 언론이 무엇을 더 중요하게 다루어야 하는가를 생각한다. 정파적 이해관계에 근거한 허무한 혁신 놀음, 셀러브리티를 쫓는 듯한 정치인이나 재벌가 개인의 사생활보다 더 중요하게 우리 사회가 다루어야할 문제는 없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 내부의 난민은 누구이고 우리는 누구를 추방하고 있는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우리가 독일을 보며 고민해야 하는 것은 시민성이 아니라 정치와 공론의 장의 역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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