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난민 위기, 미국의 전쟁이 불렀다

[주간 프레시안 뷰] "파도에 밀려온 세 살배기 시신"

서유럽이 난민들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지난 7~8월 두 달 동안 22만 명의 난민이 몰려들었습니다. 특히 독일의 난민 망명 신청자는 지난 해 20만 명에서 올해 80만 명으로 4배 가량 늘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이에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 8월 24일 시리아 출신 난민은 모두 받아들이겠다는 특단의 조치를 발표했습니다. 또한 오스트리아를 비롯해 독일, 아이슬란드, 스페인의 일반 시민들도 난민 돕기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난민 위기가 해소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내전 5년째인 시리아에서 해외로 탈출한 난민만도 430만 명에 이르며 이중 안전하게 정착한 숫자는 30만 명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일단은 난민 위기에 대한 국제적인 대처가 시급합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난민 위기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따져보는 겁니다. 난민 위기의 근원은 전쟁입니다. 냉전 이후 구유고연방, 이라크 등 중동 지역, 그리고 리비아 등 북아프리카에서 미국이 벌여온 전쟁이 초래한 것입니다. 이번 주에는 난민 위기의 실태와 원인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파도에 밀려온 세 살배기의 시신, 세계를 울리다

2일 오전(현지시각) 터키의 휴양지 보드룸 해변에서 남자 어린이가 해변 모래에 얼굴을 묻은 채 숨진 상태로 발견됐습니다. 감청색 반바지에 빨간 티셔츠를 입은 이 아이의 이름은 에이란 쿠르디, 나이는 세 살입니다. 쿠르드계 시리아 난민으로 가족과 함께 터키 해안을 떠나 유럽으로 가려다 배가 뒤집히는 바람에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다섯 살짜리 형 리틀 갈리프도 변을 당했습니다. 터키 경찰은 쿠르디의 가족을 비롯해 모두 23명의 시리아 난민들이 작은 보트 2척에 나눠 타고 그리스로 향하던 중 보드룸 앞바다에서 배가 뒤집히면서 여성과 어린이 등 모두 12명이 숨졌다고 밝혔습니다.

(☞관련 기사: 파도에 밀려온 3살 시리아 난민 아이의 시신…전세계가 '공분')

▲ 터키 보드룸 해변에서 시리아 난민 에이란 쿠르디가 죽은 채 발견됐다. ⓒAP=연합뉴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더욱 슬픈 것은 이런 비극이 에이란 등 몇몇 가족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2011년 이후 내전 중인 시리아에서는 현재까지 33만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430만 명이 국외로 탈출했고, 760만 명이 국내 난민이 됐습니다. 시리아 인구는 약 1800만 명입니다. 인구의 2%가까이가 목숨을 잃었고, 3분의 2가 삶의 터전을 잃은 것입니다. 그야말로 생지옥입니다.

하지만 시리아 난민은 최근의 사례일 뿐입니다. 2001년 부시가 시작한 중동 전쟁으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도 수백만의 난민이 발생했습니다. 1995년 이후 클린턴 행정부가 개입한 유고 내전의 여파로 조국을 떠나는 난민들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독일 <슈피겔> 보도에 따르면 코소보의 15~29세 청소년 중 절반 이상이 해외로 나가길 원한다고 합니다. 인구 7만의 부치트른이란 도시에서는 10%가 해외로 떠났습니다. 코소보의 인구는 180만 명, 그런데 지난 1년 간 10만 명이 조국을 떠났습니다. 인구의 5%이상이 외국행을 택한 것입니다. 전쟁의 여파입니다.

나이지리아, 에리트리아 등 아프리카에서도 유럽행을 택하는 난민이 늘고 있습니다. 나이지리아에서는 보코 하람의 테러를 피해, 에리트리아에서는 소말리아 내전 때문입니다. 물론 모두가 전쟁과 테러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보다 나은 경제적 기회를 잡기 위해 난민이 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가장 큰 원인은 전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쟁의 배후에는 항상 미국이 있습니다. 이 문제를 따져보기 전에 우선 난민의 실태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시리아 난민보다 더 많은 발칸 난민

유엔난민기구(UNHCR)는 올해 지중해를 건너 서유럽으로 간 난민이 35만 명, 이 중 터키에서 그리스를 거쳐 서유럽으로 유입된 숫자가 20만 명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이 가운데 시리아 난민이 69%를 차지한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 숫자는 그리 믿을 만한 게 못 됩니다. 유엔이 관리하는 난민촌의 현황만을 반영할 뿐, 수많은 밀입국자를 파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난민의 추세와 실태를 파악하기에는 독일 이민망명청의 통계가 더 유용합니다. 대부분의 난민들이 일자리 기회가 많은 독일로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통계에 따르면 올해 7월 말까지 독일에 망명 신청을 한 난민은 19만6000명입니다. 이 가운데 시리아 난민은 4만2000명(21.5%)입니다. 코소보(3만 명) 알바니아(2만9000명) 세르비아(1만1000명) 마케도니아(5000명) 등 발칸 출신이 약 7만5000명으로 39%를 차지합니다. 그 다음이 이라크와 아프간 출신으로 각 1만 명쯤 됩니다(10.5%: 전쟁이 시작된 지 10년 이상이 지나 그런대로 안정이 된 결과입니다). 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 출신은 8000명 정도입니다. 발칸 출신 난민이 시리아 난민의 2배 가까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메르켈 총리의 무제한 수용 방침으로 앞으로 시리아 난민은 크게 늘어날 전망입니다. 하지만 발칸 출신 난민이 이렇게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슈피겔>은 경제적 희망이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내놓습니다. 일례로 코소보 국민의 4분의 1이 하루 1.2유로(1500원) 이하의 생활비로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30세 이하 인구가 전체의 3분의 2인데, 이중 70%가 실업자입니다. 해외로 나간 가족들이 보내주는 송금(연간 6억 유로, 약 8000억 원)이 주요한 수입원으로 이는 코소보 1년 GDP의 절반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발칸 출신의 독일 망명 신청은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2014년의 경우 세르비아인의 망명 신청 중 0.2%만이 허용됐습니다. 코소보인 1.1%, 알바니아인은 2.2%입니다.

발칸 국가의 경제가 피폐해진 근본 이유는 전쟁입니다. 1995년 보스니아내전과 1999년 코소보 전쟁을 통해 유고연방이 해체된 데다 경제가 완전히 파괴됐기 때문입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측은 유고 사태에 대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군사개입이 세르비아에 의한 인종청소를 막기 위한 인도주의적 조치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는 진실과는 한참 거리가 먼 얘깁니다. 코소보 전쟁이 이를 잘 말해줍니다.

현재 코소보 집권세력은 코소보 전쟁 당시 미국과 함께 싸웠던 코소보해방군(KLA) 출신들입니다. 이들은 1998년까지 미국 국무부가 테러단체로 지정했던 폭력조직으로 마약 밀매를 일삼았으며 알카에다와도 연계돼 있는 조직입니다. 당시 미국은 슬로보단 밀로세비치가 이끄는 유고연방을 해체하기 위해, 코소보의 독립을 도와준다는 명분으로 전쟁을 주도했습니다. 미국은 1999년 3월 24일부터 6월 9일까지 무려 78일 간 세르비아와 코소보에 3만8000회의 공습을 가했습니다. 2만 톤의 폭탄을 퍼부어 어린이, 부녀자 포함 3000명을 학살했습니다. 알바니아계 코소보 주민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말입니다. 5월 중순에는 세르비아 전력 공급의 85%가 끊길 정도였습니다. 말이 전쟁이지, 압도적 화력을 지닌 미국의 일방적 학살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밀로세비치는 몰락했고 코소보는 세르비아로부터 독립했습니다.

미국은 인도적인 이유로 코소보 전쟁에 개입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미국의 개입 이유는 첫째, 미국과는 다른 경제체제를 유지하면서 독자 노선을 걷는 유고연방을 해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는 네오콘의 숙원 사업이었습니다. 냉전이 끝난 직후 1991년 폴 워포위츠는 앞으로 미국이 손봐야 할 나라로 러시아, 중국과 함께 이란, 이라크, 시리아, 리비아, 그리고 유고를 꼽았습니다. 둘째, 탈냉전 이후 미국의 품에서 벗어나려는 유럽의 나토 동맹국들을 붙잡아두기 위해서였습니다. 코소보 전쟁은 나토가 유엔 승인 없이(Out of Charter), 회원국 외 지역에서(Out of Area) 벌인 최초의 군사행동이었습니다. 이 전쟁이 끝난 직후 클린턴 행정부는 소련과의 약속을 저버린 채 폴란드, 헝가리, 체코를 나토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면서 나토의 동진을 시작했습니다. 셋째, 중동과 카스피해 지역에서 생산되는 석유자원을 서유럽으로 운반할 송유관 설치 지역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일부 진보적 언론이 이같은 지적을 했으나 대부분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004년 12월 28일 영국 BBC의 보도로 진실임이 확인됐습니다. 코소보 미군기지의 남쪽을 지나는 송유관을 건설하겠다는 것이었죠. 이른바 남발칸개발계획(South Balkan Development Initiative)이 그것입니다, 이 송유관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코소보를 미국 영향권 안에 묶어두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미국은 자신들이 테러단체로 지정했던 KLA와도 손을 잡은 것입니다.

<슈피겔>은 코소보 전쟁의 추악한 진실을 적시하지 않습니다. '발칸 난민의 행렬은 아직 발칸 전쟁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탓'이라고 에둘러 말할 뿐입니다. 다만 코소보가 나라다운 나라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지적합니다.

코소보는 유엔의 승인을 받지 못한 나라입니다. 유럽연합 국가 중에서도 코소보를 승인하지 않은 나라들이 있습니다. 코소보 국민은 비자 없이 유럽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월드컵 축구에도 출전하지 못합니다. 코소보의 권력은 코소보해방군(KLA) 출신들이 잡고 있습니다. 인구의 5%가 넘는 공무원 10만 명 가운데 대부분이 KLA와 연관이 있는 자들입니다. 부정부패가 만연해 있습니다. 코소보에서 행세를 하려면 공무원이 되든가 마피아가 돼야 하는데, 이 둘은 대체로 같은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벌인 미국의 코소보 전쟁은 이런 괴물국가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리암 니슨이 주연한 영화 <테이큰>을 보면 알바니아 마피아들이 가장 악랄한 인신매매범인 것으로 나오는데, 코소보 마피아가 바로 이 부류입니다. 코소보 주민들은 알바니아계입니다.

(☞관련 기사: Mass Migration: What Is Driving the Balkan Exodus?)

카다피 제거 이후 유럽 난민 폭증

시리아 내전에 대해서는 긴 설명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동안 여러 차례 말씀 드린 대로 2003년 부시의 후세인 제거가 모든 혼란의 단초였고, 미국은 지금도 아사드 정권 제거를 노리고 있기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월포위츠가 꼽은 일곱 나라 중 하나가 바로 시리아죠. 미국은 이른바 '온건 이슬람 무장세력'을 지원해 아사드 정권을 무너뜨리려 합니다. 시리아 국민들이 겪는 참상은 외면하고 있습니다.

유럽에 난민 유입이 폭증한 이유 중 하나는 리비아 카다피 정권의 몰락(2011년 11월 20일)입니다. 카다피가 제거되면서 리비아를 거친 난민 유입이 크게 늘어난 것입니다. 서방 언론 대부분이 난민 증가의 근본적 원인인 전쟁을 거론하지 않는 데 반해 스위스 출신의 한 난민 전문가가 이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20년간 유엔 난민기구에서 일했던 학자 겸 언론인 알렉산더 카셀라라는 분이 "미국의 대중동 정책이 초래한 피해를 유럽이 떠안고 있다"라는 기사를 통해 이 문제를 지적한 것입니다.

리비아는 북아프리카 난민들의 유럽 밀입국 통로입니다. 리비아 해안에서 이탈리아 람페두사 섬까지가 매우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카다피가 생존했을 때는 이탈리아와의 협정을 통해 유럽으로의 밀항을 억제했습니다. 2009년에는 밀항하다가 체포된 난민들을 리비아로 환송하는 협정을 맺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카다피가 제거되고 리비아가 무정부상태가 되면서 리비아 정부의 난민 억제를 기대할 수 없게 됐습니다. 2010년 이탈리아가 지중해에서 구조한 난민이 4만 명이었던 비해 카다피 제거 이후인 2013년에는 12만 명으로 3배가 됐습니다. 아마 지금은 훨씬 더 늘어났을 것입니다.

카다피 제거에 앞장선 것은 프랑스와 영국입니다. 2011년 3월 '아랍의 봄' 여파로 리비아에서도 민중봉기가 일어나자 두 나라가 자유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카다피 제거에 나선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프랑스 경제권에 속해 있던 리비아가 카다피 주도 아래 독자적인 북아프리카 경제권을 형성하려 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는 카다피 정부군의 제공권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오바마 대통령에게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오바마는 한 술 더 떠 1백여 발의 토마호크 미사일로 리비아 방공망을 초토화시켰습니다. 그리고 8개월 후 카다피는 살해됐고, 이후 리비아는 1700개의 무장단체가 난립하는 무정부상태가 됐습니다. 따지고 보면 미국만이 아니라 영국, 프랑스 등도 난민 증가에 일조한 셈입니다. 서유럽이 미국 탓을 할 처지가 아니라는 겁니다.


(☞관련 기사: Europe’s bearing the cost of Washington’s Middle Eastern policy)


전쟁이 지속되는 한 난민은 계속 늘어난다

시리아 난민이 늘어나자 독일을 비롯해 오스트리아, 아이슬란드, 스페인 등 서유럽의 일반 시민들이 난민들을 돕겠다고 발 벗고 나섰습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하지만 수백만, 아니 수천만에 이를지도 모를 난민들을 일반 시민들이 구제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야말로 '언 발에 오줌 누기'입니다. 난민 발생의 근본 원인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전쟁입니다. 세계 지배를 위해 미국이 벌이는 무모한 전쟁을 막아야 합니다. 그런데 서방 언론은 문제의 근원을 외면합니다. 그저 인도주의적 한탄을 할 뿐입니다.

(☞관련 기사: 뮌헨역 도착한 난민 수백명 "고마워요, 독일!")
(☞관련 기사: 헝가리도 오스트리아도 통과 묵인 열차타고 독일로 밀려드는 난민들)

미국 국무부에서 일하다가 미국의 제국주의적 행태에 분노해 1967년 국무부를 나온 이후 비판적 언론 활동을 하고 있는 윌리엄 블럼이란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이 쓴 책 중에 <미국의 가장 치명적인 수출품, 민주주의>라는 책이 있습니다. 미국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전쟁을 벌이고 외국 정권을 무너뜨리지만 그 속내는 제국주의적 착취란 것이 책의 요지입니다. 이라크와 시리아, 리비아와 우크라이나 등에서 벌어진,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전쟁과 정권 전복 공작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민주주의란 미국의 세계 지배를 위한 매우 치명적인 수출품이란 얘기죠.

북한과 대적하고 있는 우리는 그저 북한의 군사력이 가장 위협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김정은 정권은 가련한 존재입니다. 밀로세비치나 후세인, 카다피 등 독재자이긴 했지만 자주적 노선을 걷다가 미국에게 살해당한 전철을 밟게 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이죠. 북한이 핵무기에 집착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핵무기가 애당초 없었던 후세인, 핵무기 개발을 포기했던 카다피 모두 미국에 의해 몰락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기 때문입니다. 난민 증가를 비롯해 오늘날 세계를 위협하는 위기의 상당 부분이 바로 미국의 일방적 군사주의가 초래한 것입니다. 이러한 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한다면 우리 시대의 위기는 해소되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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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규

서울대학교를 나와 경향신문에서 워싱턴 특파원, 국제부 차장을 지내다 2001년 프레시안을 창간했다. 편집국장을 거쳐 2003년부터 대표이사로 재직했고, 2013년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이사장을 맡았다. 남북관계 및 국제정세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프레시안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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