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곳간' 열면 임금피크제 따위는 필요 없다!

[강수돌 칼럼] 참된 개혁으로 청년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조건

"노동개혁으로 청년에게 좋은 일자리를" - 이것은 도로변 사거리에서 흔히 보는 현수막 구호다. 글자색은 흰 바탕에 붉은 색이다. 구호만 보면 마치 민주노동당이나 진보 신당이 내세우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수막 왼쪽을 보니 붉은 바탕에 흰색으로 '새누리당'이라 쓰여 있다. 내용도, 색깔도, 도둑 맞은 기분이다. 원래 붉은 색은 우리 몸의 피를 상징하고 어머니의 자궁을 상징한다고 한다. 생명의 상징이자 혈기의 상징이다. 그래서 진보 민주 세력은 붉은 색을 좋아한 것인가? 그러나 이제 진보 민주 세력은 '‘조심스럽게' 붉은 색을 멀리하고, 오히려 새누리당이 붉은 색을 독차지했다. 그리고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종북빨갱이 척결'을 외친다. 기분 참 이상하다.


새누리당이 어떤 당인가? 이명박과 박근혜로 이어지는 정부가 새누리당 정부가 아닌가? 부자 감세, 노동 억압, 사회경제 양극화, 재벌과 정경유착, 혈세 낭비, 종북몰이, 국정원 스캔들, 기득권 지키기 등을 예사로 행하면서도 '국민 행복'을 위해, '국가 안보'를 위해 열심히 하는 것이라 말하는 정당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런 정당이 "노동개혁으로 청년에게 좋은 일자리를" 만들겠다니, 정말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이 생각난다. 사실, 2012년 대선 국면에서도 경제민주화와 복지사회가 분명 민주진보 진영의 대표적 슬로건이었음에도, 새누리 보수 정당이 선취하지 않았던가? 동일한 논리가 이번 노동개혁 논란에서도 나타나고 있어, 정말 '낚시 밥'이란 단어가 딱 들어맞을 듯 싶다. 그렇다면, 노동자나 청년들을 낚시하기 좋은 '물고기' 정도로 취급하는 것 아닌가? 심히 자존감이 상하는 듯하다. 속는 것도 어디 한두 번이지, 계속 이런 식으로 속을 것인가? 결국 문제는 민초들이 더욱 똘똘해지고 더욱 잘 뭉쳐서 더욱 같은 소리를 내는 것 밖에 없다. 이것이 민주주의요, 우리가 지난 70-80년대를 거치면서 그토록 '군사 독재 타도'를 외쳐온 까닭이기도 하다.


하기사 정당의 진보와 보수 여부를 떠나 노동개혁을 하고 청년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공동의 과제요, 시대적 사명이다. 하지만 여기서 두 가지 의문이 있다. 하나는 청년 일자리 창출이라는 구호가 미끼 역할만 하고 실제로는 노동자 삶이 퇴행하는 것이냐, 아니면 명실상부 제대로 된 노동 개혁과 청년 일자리 창출을 일관되게 하는 것이냐, 하는 차원이다. 두 번째는,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제대로 된 노동 개혁이냐 하는 차원이다. 왜냐하면 동일한 노동 개혁이라도 사실상 자본의 돈벌이를 도와주는 개혁이 있고 반대로 자본을 지양하고 민초들의 삶을 고양시키는 개혁이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보수 꼴통 정당만이 아니라 민주적이라 하던 정당조차 일단 정권만 잡으면 이상하게 자본의 논리를 '내면화'하고 만다. 자본의 전 방위적 공격이 무섭기도 하겠지만, 스스로도 자본의 독재가 갖는 본질을 꿰뚫어보지 못하거나 정면 돌파를 주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행하게도 민주화 정권 아래 구속 노동자 수가 더욱 증가하는 아이러니가 속출했다. 물론 이것은 그나마 민주화 정부이니 노동자들이 투쟁을 더 많이 할 수 있었다는 증거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 파쇼 체제 하에서는 저항조차 못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소망과 요구를 적절히 반영하는 개혁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무능을 숨길 수는 없지 않은가? 어쩌면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우리는 경제 강국이 되는 것만이 잘 사는 길이라며 '강자 동일시'를 하고 있는 게 아닌지 모른다. 세계 강국이 그리고 세계 민중이 강자 동일시라는 집단 심리를 넘어가지 못하는 한, 단언하건대 절대 세계 평화도 없고 민주주의도 없다.

ⓒ프레시안(최형락)


한편, 한나라당에서 이어진 새누리당, 즉 보수 정당은 노동 탄압만이 경제 발전이라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솔직한 면이 있다. 그러나 이들도 표리부동하기는 마찬가지다. 한편에서는 노동조합을 때려잡자고 하면서 겉으로 현수막 같은 데서 대중적으로는 '노동개혁'을 말하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낚여서는 안 된다. 우리가 어디 '눈 먼' 물고기인가?


새누리당이 주장하는 논리는 이렇다. 현재의 노동시장은 노동조합이 지나치게 강해서 기존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뺏기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청년들이 새로 들어갈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온갖 미사여구를 다 갖다 대지만, 핵심 내용은 그러하다. 그래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노조가 쇠파이프를 안 휘둘렀으면 소득 3만불 되었을 것"이라든지 "잘 나가던 기업이 노조 파업 때문에 망했다." 결론은 강성 노조 내지 저항자만 없으면 기업도 잘 나가고 소득도 올라가며 일자리도 자꾸 생긴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런 논리는 마치 무슨 잘못을 한 끝에 엄마한테 심하게 혼난 아이가 "우리 엄마만 죽어 없어지면 정말 행복할 터인데…"라고 혼자서 주억거리는 바와 비슷하다. 또, 교사나 교수들이 "학생들만 없으면 선생 할 만한데…"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생각해보라. 기업이 돈벌이를 하려면 경영자 혼자서 가능한가? 수많은 노동자 없이 불가능하다. 그러면 노동자가 일을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연하게도 노동자를 존중해야 한다. 그러면 노동자를 존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일단 근로계약이건 단체협약이건 약속을 잘 지켜 임금도 제대로 주고 건강도 잘 챙기고 기분도 좋게 잘 대우해야 한다. 그러면 노동자들도 대체로 열심히 하게 되어 있다. 갈수록 성과가 좋아지면 노동시간도 줄여주고 월급도 높여주고 휴가도 늘려주고 복지도 향상하면 된다. 대체로는 노조와 경영진이 협상을 통해 그런 방향으로 하나씩 나아간다. 이것이 이른바 노사관계라는 것이다. 그러나 새누리당이 상상하는 노사관계는 노예관계에 불과하다. 말없이 일만 하고 사용자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관계, 말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노동개혁으로 청년에게 좋은 일자리를"! 정말 가증스럽다.


그러나 실제 우리 현실은 어떠한가? 여당과 야당을 가리지 않고 일단 집권을 하면 노동자를 적대시한다. 노조를 박살내야지만 경제가 돌아가고 일자리가 는다고 한다. 경쟁력을 높여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해놓고선, 경쟁력을 위해 해고와 비정규직을 일상화한다. 길거리에 나앉은 이들에겐 무능하다는 딱지를 씌우거나 투쟁적이라는 딱지를 붙인다. 그러면서 실업자나 노숙자가 될래, 아니면 비정규직 알바라도 할래? 하는 식이다.


최근에는 임금피크제가 이런 걸 강제하는 수단으로 등장한다. 노동자의 충성심 확보와 기업 특수적 숙련 형성을 위해 일본에서 수입했던 '종신고용제'와 '연공급(호봉제)' 임금체계가 그 시대적 사명을 다하고 기업에 인건비 부담을 가중화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1987년 민주 노동자 대투쟁 이후 온정주의적 충성관계는 경제주의적 계약관계로 변했다. 자동화와 전산화로 말미암아 기업 특수의 숙련 형성이라는 것도 별로 의미가 없어졌다. 자본의 입장에서는 고령 노동자들이 '고비용, 저효율'의 온상일 뿐이다. 이들 대신에 '싱싱한' 청년들을 2-3년씩 갈아치우면서 써먹으면 '저비용, 고효율'이 나올 것임에 틀림없다. 자본의 계산법이요 새누리당의 계산법이 가진 본질이다.


얼핏 청년이 들으면 매혹적이다. 아버지뻘, 어머니뻘 되는 노동자들을 물리치고 그 자리에 우리가 들어가자! 그러나 2-3년 뒤를 상상해보라. 바로 그 청년들은 후배들을 위해 또 '팽-' 당해야 한다. 이것은 마치 한국 항공사의 승무원들이 아주 젊고 예쁜 사람들로만 채워진 경우랑 동일하다. 고객들이 비행기를 탈 때마다 모두 젊고 예쁜 사람들이 부자연스런 미소를 머금고 서비스를 한다. 그 말은, 이 젊고 예쁜 이들이 몇 년만 지나면 금세 후배들에게 밀려 어디론가 사라진다는 뜻이다. 반면 영국이나 독일 등 유럽 비행기를 타면 한국 항공사에 비해 '노인'들이 제법 보인다. 이건 무얼 말하는가? 일자리가 안정되어 있다는 뜻이다. 노조가 탄압을 받지 않고 경영진과 수평적으로 협상을 한다는 뜻이다. 그러기에 승무원들도 굳이 미소를 팔지 않으면서도 손님에게 기분 좋게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반면, 한국 승무원들은 굴욕감을 억지로 참으면서도 손님을 왕처럼 모시고 상사와 경영진 앞에 노예처럼 알아서 기어야 한다. 그러고는 몇 년 뒤에 사라져야 한다. 이게 노동개혁인가?


진짜 갑부들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살기 때문에 거지로 살아가는 자들은 갑부들이 자기들의 부를 빼앗아 간 줄도 모르고 오히려 자기들끼리 싸우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한 거지가 말한다. "너 병신 같이 맨날 술만 퍼마시니까 평생 거지로 살지." 이에 다른 거지가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정말 죽을래?"하며 서로 '목숨' 걸고 싸운다. 멀리서 지켜보던 갑부가 미소를 머금으며 동전 몇 닢 던지고 지나간다. 두 거지가 "어르신, 참 고맙다!"고 머리를 조아리고서는 이내 동전을 서로 차지하려고 주먹질을 하며 엉겨 붙는다. 그렇게 못 가진 자들끼리 경쟁하는 사이, 가진 자들은 여유롭게 지배 체제를 공고히 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실제에 있어서는 갑부 자신이 절대 거지들 앞에 나서는 일은 없다. 차라리 1차, 2차, 3차 정보 요원을 통해 철저히 감시하다가 필요할 때마다 동전 몇 닢 던져 주는 식으로 '얼굴 없이' 통치한다. 이런 통치 형태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거지들이 사태의 진실을 깨닫고 서로 주먹질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어깨를 걸고 민주 광장으로 나서는 길이다.


유지훈 '청년하다' 대표는 "정부는 임금피크제가 청년실업 대책이라고 한다. 하지만 임금피크제로 담보되는 일자리는 공공부문 8000개 뿐, 기업에 청년 신규채용을 강제할 방법이 없다"며 "오히려 임금피크제는 기업 구조조정 수단이 되고 있다. 정부 정책은 기업의 비용절감 대책일 뿐, 재벌들은 왜 책임을 지지 않나"며 목소리를 높였다. 권영국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 공동본부장도 "일반해고 요건 완화와 임금체계 개편, 기간제 기간 연장, 파견 업종 확대 등의 노동개혁은 결국 정부가 비정규직 천국을 만들겠다는 것"이라 비판했다.


내가 올바른 노동개혁을 말하는 것은 바로 이런 맥락이다. 진정한 노동개혁은 노동을 통해 사람이 사람다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하고 나날이 발전한다는 기분을 느껴야 한다. 더 길게는 나의 노동을 통해 사회가 발전한다는 보람까지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의 기본은 노동자가 인격체로 존중받는 일이다. 절대 '일회용 컵' 취급을 당해선 안 된다는 말이다.


지난 9월 2일, 민주노총 본부에서는 앞서 인용한 단체를 비롯한 약 30개의 청년 학생, 노동, 시민사회단체 등이 기자회견을 열고, "재벌곳간을 열어 좋은 청년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곡을 찌른 셈이다. 2015년 현재 10대 재벌의 사내유보금이 무려 710조 원에 이른다. 연봉 5000만 원짜리 '좋은' 일자리를 1400만 개나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나누는 것이 더하는 것'이란 결론이다. 기득권을 나누면 풍요로워진다. 장기적으로는 기득권 체제 자체를 타파해야 한다. 온 사회를 기득권층과 비기득권층으로 나눠 놓고 기득권을 향한 무한 경쟁을 조장하는 구도 자체를 혁파해야 비로소 희망이 생기는 것이다. 물론, 하루아침에 될 일은 아니다.


그래서 말한다. 우선, 정규직 노동자에게 나누라고 하기 전에 재벌부터, 정치권부터, 고위 공무원부터 나누기 시작해보라. 이것이 문화가 되고 감동의 물결이 넘치면 뭔가 달라질 것이다. 재벌 곳간도 열고, 과감한 노동시간 단축으로 일자리를 온 사회가 나누어야 한다. 다만, 불가피하거나 자발적인 경우만 제외하고는 정규직 일자리여야 한다. 동시에, 땅의 경제를 소중히 여기고 사람의 손노동을 중시하는 패러다임도 활성화해야 한다. 농민, 청년, 노인, 예술가 등도 기본 생활이 보장되도록 기본소득제도 도입해야 한다. 이런 바람을 몰아, 친일 잔재 청산, 부정부패 척결 등 그동안 누적된 온갖 사회 구조적 모순을 타파하면 온 사회가 더욱 건강해지고 활기가 넘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청년 일자리만이 아니라 우리 미래가 모두 밝아진다. 개혁이란 이렇게 신바람이 나야 한다. 춤출 수 없다면 참된 변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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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돌

대학교수이자 한때 마을 이장이기도 한 그는 <경영과 노동>, <노동의 희망>, <일 중독 벗어나기>, <살림의 경제학>, <자본을 넘어, 노동을 넘어> 등 다수의 저서를 통해 자신이 '살람의 경제학'이라고 이름 붙인 '대안 경제학'에 대해 설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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