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민주주의 위해"… 부산대 교수 유서의 의미는?

[분석] '총장 직선제' 지키려 목숨 내던진 이유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서 희생이 필요하다면 감당하겠다"

이 말을 남긴 채 몸을 날렸다. 벌건 대낮, 대학 교정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고(故) 고현철 부산대학교 교수. 그는 시를 쓰고 문학을 평론하던 이였다. 그랬던 그가 생애 마지막으로 남긴 글은 문장마다 결기가 어린 성명이었다.

유서가 되어버린 성명에서, 그는 총장 직선제의 이행을 촉구했다. "대학에서의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서는 오직 총장 직선제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며 "민주주의 수호의 최후 보루 중 하나이며 국·공립대를 대표하는 위상을 지닌 부산대학교가 이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희생이 필요하다면 그걸 감당할 사람이 해야 한다"고 했다.

한 대학 교수의 투신 소식을 접한 이들은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면서도, 한편으론 고개를 갸웃한다. 총장 직선제가 뭐기에 목숨까지 내던져야 했던 걸까. 그의 말대로 누군가의 희생이 꼭 필요했던 걸까.

▲고(故) 고현철 부산대학교 교수의 유서. ⓒ부산대학교 총학생회

신자유주의에 먹혀들어간 대학 교육

총장 직선제는 1987년 민주화 투쟁의 산물이었다.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얻어낸 제도가 대통령 직선제였다면, 대학 민주화를 위해 도입한 건 총장 직선제였다. '피 흘려 확보한 대학자치, 학문 자유의 상징적 제도'이자,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학문과 지식을 산출하기 위한 제도적 전제조건'이었다. 국·공립 대학은 말할 것 없이 일부 사립 대학에서도 직접 투표를 통해 총장을 선출했다. 총장 직선제는 그야말로 대학 자율성의 상징이었다.

대학 자율성이 후퇴하기 시작한 것은 김영삼 정부 때부터였다. 1995년 당시 정부는 '5.31 교육 개혁안'을 발표했다. '교육경쟁력 강화가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시각에 입각해 공교육 시장화와 학교 민영화를 꾀했다. 작은 정부로 가기 위해서 국가 재정 부담을 줄여야 하고, 그렇다면 국가 재정을 잡아먹는 국·공립대를 사립대로 만들자는 식이었다. 한국 사회에 침투된 신자유주의 논리가 교육계에도 고스란히 주입된 것이었다.

이후 노무현 정권 시절이던 2007년 당시 교육인적자원부는 '국립대학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특별법'을 국회에 제출했다. 5.31 교육 개혁안의 국·공립대 법인화 방안을 더욱 구체화한 것이었다. 그러나 국·공립대 교수 등의 거센 반대로 심의조차 이뤄지지 못했고, 해당 법안은 17대 국회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다. 교수들의 반발에 총장들도 암묵적으로 동조했다. 교육부 입장에서는 국립대 민영화 과정에서 직선제 총장이라는 걸림돌을 만난 셈이었다.

결국 2010년 이명박 정부 당시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칼을 빼 들었다. 이 전 장관이 발표한 '국립대학 선진화 방안'의 첫 번째 목표는 총장 직선제 폐지였다. 미끼는 돈이었다. 각 국립대에 직선제 폐지를 평가 요소로 반영하고 지원금을 차등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 들어선 압박 강도가 한층 올라갔다. 직선제 폐지 시한을 제시하며 거부할 경우 '지원금 전액 환수'라는 최악의 카드까지 들먹였다. 각 대학이 너도나도 교육부와 '국립대 선진화 방안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사실상 강요에 따른 총장 직선제 포기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고 교수 투신 이후 대책을 논의하는 부산대 교수들. ⓒ연합뉴스

교육부, 4번 퇴짜 놓더니 결국 '친박' 총장 임명 제청

교육부는 직선제 폐지 압박의 명분으로 선거 부작용을 들었다. 금품 수수, 파벌 형성 등 폐단을 문제 삼았다. 교육부는 직선제 대신 총장후보추천위원회를 통해 2명의 후보자를 선정하면 이를 대통령이 임명하는 간선제 방식으로 유도했다.

교육부는 그러나 간선제를 통해 선출된 총장 후보들마저 퇴짜를 놨다. 현재 공주대, 경북대, 한국방송통신대 모두 10개월 넘게 총장 공백 상태다. 교육부가 청와대에 임용 제청을 거부한 뚜렷한 이유는 없었다. 다만 해당 후보들이 청와대와 정치 성향이 맞지 않는다는 등의 풍문이 떠돌았을 뿐이다. 그런가 하면, 한국체육대는 지난 2012년 12월부터 총장 후보를 연거푸 4차례 거부당하다 약 2년 만인 지난 2월 '친박'계 정치인 김성조 전 새누리당 의원이 총장에 임명됐다.

결국 교육부가 직선제 폐지를 고집한 이유는 청와대 코드와 맞는 총장을 뽑기 위해서라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는 19일 <프레시안>과 한 통화에서 "교육부 압박에 간선제로 바꿨는데도 총장을 임명하지 않았다는 건 직선제 부작용이 허울 좋은 명분에 불과하다는 걸 증명한 셈"이라며 "결국 청와대 입맛에 맞는 총장을 뽑으려는 의도를 여실히 보여줬다"고 했다.

▲고 교수의 명복을 빌며 헌화하는 동료 부산대 교수들. ⓒ연합뉴스

"'교육 선진화' 아니라 교육 후퇴, 학문 파괴"

교육부는 직선제 폐지를 '대학 선진화 방안'이라고 명명했다. 그러나 대학 선진화란 곧 대학 자율성 후퇴, 학문 파괴의 다른 말이었다고 교수들은 입을 모은다.

김 교수는 "청와대가 허수아비 총장을 임명한 뒤 하고자 한 일은 대학 구조조정"이라며 "각 대학이 알아서 해야 할 개혁 과제를 교육부가 대학 평가 지표를 통해 제시하고, 그를 통해 서열화시킨 뒤 대학 시장에서 퇴출하고 있다"고 했다.

대표적인 평가 지표가 교수들의 논문 실적이다. 교육부는 대학 평가 항목 가운데 교수들의 논문 편수를 포함시키는 한편, 논문 실적과 보수를 연계한 '성과 연봉제'를 도입했다. 김 교수는 "미국에서처럼 우리나라도 'Publish or Perish', 즉 논문 출판 아니면 쫓겨나는 식의 관행이 자리 잡았는데, 이런 압박 속에서는 쓰레기 논문이 많을 수밖에 없다"며 "교육부가 대학에서의 진지하고 장기적인 연구를 못 하게 만드는, 학문을 죽이는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재홍 방통대 교수는 "총장이 청와대에 휘둘리니, 교수와 학생도 휘둘리고, 대학 사회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며 "교육부가 학과 통폐합을 하라고 하면 교수들은 잘려나가고 학생들은 공부하다가 학과가 없어지는 등의 일이 무수하게 일어난다"고 했다.

임 교수는 "우리와 비슷한 류의 고등 교육 정책을 편 영국에서는 높은 등록금, 심각한 대학 양극화에 못 이겨 결국 우수한 인재들이 프랑스, 독일 등으로 '망명 유학'을 갔는데, 우리 역시 영국의 전철을 밟을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며 "학문의 주체인 학생과 교수의 의견 없이 교육부가 관료 자본주의에 입각해 획일화된 학문 정책을 펴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교수들은 총장 직선제는 바로 이같은 파국을 막는 중요한 제도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구성원 의사가 반영되는 가장 중요한 제도는 선거"라며 "총장 또한 직선제로 뽑히면 학생, 교수 등 대학 구성원들이 원하는 바에 따를 수밖에 없으므로 교육부 뜻에 따라 좌지우지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임 교수는 "고 교수가 목숨을 건 것은 직선제 유지 단순히 그 자체만이 아니"라며 "교육부의 고등 교육 전반에 뿌리내리고 있는 민영화 정책, 공교육 포기 정책에 대한 저항의 의미에서 살신성인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연합뉴스

"재벌 자본의 주구 교육부, 해체해야"

고인의 바람대로 부산대는 총장 직선제를 지켜냈다.

직선제 유지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으나 학칙 개정을 통해 직선제를 폐지한 총장은 고 교수가 숨진 당일 자진 사퇴했다. 이어 부산대 대학본부와 교수회는 19일 회의를 열고 "고 교수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부산대 구성원 모두 힘을 합쳐 대학발전과 민주화를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또, "총장 직선제를 위한 적법한 절차를 밟기로" 했다. 고 교수가 투신한 지 사흘 만이다.

부산대는 늦어도 다음 달 안으로 학칙 개정 작업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학칙 개정을 마무리하면 부산대는 국내 40여 국‧공립대 가운데 유일하게 직선으로 총장을 뽑는 대학이 된다. 그러나 직선으로 총장 후보를 선출하더라도 교육부가 임용 제청을 할지는 미지수다.

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 상임고문인 이병운 부산대 교수는 "박근혜 정부의 모토가 법과 원칙을 지키는 것 아니냐"며 "대선 후보 때도 총장 선출에 관한 한 대학 자율에 맡기겠다고 했으니 이제라도 그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 그는 "교육공무원법에 명시된 직선제를 교육부가 재정을 빌미로 못 하도록 사실상 강요하는 게 과연 법치국가에서 일어날 일이냐"며 "애초에 교육부가 없었다면 평범한 교수가 대의를 위해 희생하는 안타까운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교육부 해체 주장이 교수 사회에서 힘을 얻고 있는 실정이다.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전국교수노동조합, 학술단체협의회,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등 교수학술 4단체도 19일 "교육부는 재벌 자본의 주구(走狗) 이외 그 어떤 것도 아니"라며 교육부 해체를 위한 노력을 다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지난 2012년 총‧대선 당시 국교련을 중심으로 한 교육 학술 단체들은 '국가교육위원회' 설립을 주장했다. 현재 교육부가 가진 정책결정권을 학생, 학부모, 교육 전문가들이 모인 국가교육위원회가 맡고, 교육부는 집행만 담당하도록 하자는 제안이었다.

임 교수는 "핀란드, 노르웨이와 같은 북유럽 국가에서는 이미 사회적 합의를 통해 행복한 교육을 하고 있다"며 "목숨까지 던져야만 하는 불행한 교육이 아닌 행복한 교육을 위한 전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때"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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