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원더걸스, JYP '신의 한 수'

[화제의 음반] 원더걸스, 포니, 오란주 & 쿨 키스

원더걸스 [Reboot] 7.5/10

원더걸스는 아이돌 부흥의 상징이었다. JYP 성공의 첫 발걸음이었다. 그러나 제작자 박진영의 욕심은 원더걸스의 미래를 혼란에 빠뜨렸다. 미국에서의 방황 기간, 그들을 대체할 여성 아이돌 그룹이 세상을 장악했다. 긴 공백의 시간 동안 아이돌의 판도는 바뀌었다. 시장 포화 이야기가 나왔고, 한류가 끝나간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어느새 멤버들은 나이를 먹었다.

정규 앨범 기준으로는 4년 만의 복귀작인 [Reboot] 발매 이전, 흘러나온 소식은 더 암담했다. 주축 멤버들은 탈퇴했다. 느닷없이 이들은 연주를 하는 아이돌이라는 홍보 티저가 쏟아졌다. 앨범 재킷부터 수상했다. 이상한 수영복 차림은, 여성 아이돌의 확장 초기 일부에서 '유사 포르노'라고 지적하던 걸 연상케 했다. 또 다른 박진영의 무리수 아니겠느냐는 인상이 강했다.

이런 모든 의혹을 앨범이 극복했다. 일부 귀를 잡아채는 곡에 기대는 느슨한 앨범일 것이라는 우려, 이도 저도 아닌 콘셉트의 애매한 아이돌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앨범은 1980년대 레트로 스타일로 이 팀의 정체성을 확고히 했다. 멤버들은 곡 만들기에 참여함으로써 주체성을 높였다.

쇼케이스에서 이들의 홍보 중심은 새 앨범이 추구한 프리스타일(freestyle)이라는 음악 장르였다. 익스포제(Expose), 커버 걸스(The Cover Girls) 등의 옛 걸 밴드가 거론되었다. 이로써 원더걸스는 데뷔 이후 줄곧 자기 색깔을 지키는 데 성공했고, 의심의 여지 없이 '자기 음악'의 정체성을 지닌 아이돌의 자리에 올랐다.

▲원더걸스 [Reboot]. ⓒJYP
수록곡들은 확신범의 가능성을 더 높인다. 펑크(funk)와 일렉트로 팝의 황금 비율이 (일부를 제외한) 전 수록곡에서 빛난다. 첫 곡 'Baby Don't Play'부터 첫 싱글 'I Feel You'까지, 확고한 자신감이 약동하는 리듬감을 타고 흐른다.

앨범의 배치도 잘 되어 있다. 매력적인 코러스를 선보이는 'Rewind'에서 한숨 쉬어가면 'Loved', 'John Doe', 'One Black Night'까지, 앨범의 하이라이트를 이루는 질주의 시간이 이어진다.

앨범 후반부 몇 곡은 보다 강한 프린스(Prince)의 영향력이 드러난다. 자신감이 드러나는 랩핑이 돋보이는 'Back'은 1990년대 초중반 프린스의 재현이고 'OPPA' 역시 1980년대를 오간다. 아이돌 신은 물론, 근래 나온 앨범 중에서도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앨범 단위의 듣기에 초점을 뒀다(그 짜증 나는 싱글 리패키지 등의 시도도 없이, 곧바로 정규 앨범을 낸 것부터가 마음에 든다).

물론 제작자 박진영의 영향력을 걷어내기는 힘들다. 이들의 밴드로서의 변신에 박진영의 입김이 강하게 미쳤으리라는 의심은 합리적이다. TV에 공개된 라이브 무대는, 좋게 말해도 즐기기 힘든 수준이었다. 어디까지나 '밴드'라는 단어가 뿜는 환상에 이들이 기댔다는 증거로 충분하다. 라이브 세션을 대동하고 강인한 안무의 라이브를 소화하는 게 더 나았으리라는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다.

하지만 이들의 성공적 복귀는 아이돌 시장의 진화로서 상징적이다. 일본의 아이돌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점차 세밀한 장르화, 키치화를 통해 새로운 시장을 형성해냈듯, 한국의 아이돌 시장도 그와 비슷한 발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까지 아이돌을 대체할 음악 시장이 없다는 점에서, 원더걸스의 복귀는 꼭 이들의 데뷔 시절 흥분을 되살리는 묘한 기시감을 보여준다.

아이돌의 핵심은 콘셉트화다. 아이돌은 현실(뮤지션이라 불리는 이들의 음악)을 아이돌 신 안에서 복제한다. 곡의 완성도와 더불어 그 체화의 수준 또한 중요한 잣대가 된다. 원더걸스는 [Reboot]를 내놓으며 밴드를 콘셉트화한 아이돌로 단박에 자리매김했다. 제작자 박진영의 또 다른 성공작이라고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다.

아이돌에 대한 편견, 아이돌에 대한 찬양을 떠나 앨범 자체로 좋다. 밴드로서의 완성도에서 절반의 리부트에만 성공했지만, 그 절반을 넘는 만족감을 주는 복귀다.

포니 [I Don't Want to Open the Window to the Outside World] 8/10

▲포니 [I Don't Want to Open the Window to the Outside World] ⓒ미러볼뮤직
한국의 대중음악은, 아직은 서구의 수용자다. 개척의 움직임이 몇 있으나 일정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낼 정도는 아니다. 수용자의 시장은 당연히 늦게 흐른다. 록의 시대가 여전히 한국에서 첨단의 위치에 있음이 이를 입증한다.

그 시계를 앞당기는 건 뮤지션의 몫이다. 서구에서는 몇몇 중요한 흐름이 있었다. 2000년대 가장 중요한 흐름은 전자 음악과의 결합이었다. 록이 사라졌다는 말은 사실 록이 전자 음악과 한몸이 되었다는 뜻이다.

포니의 신보 [I Don't Want To Open The Window To The Outside World]는 그 완성작이다. 이전에도 수용이 없었던 건 아니다. 당장 윤도현 밴드가 밴드의 색채를 전환한 게 그 사례다.

포니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 록의 시계는 더 과거로 돌리고, 전자의 물결은 동시대로 당겨놓았다. 테임 임팔라(Tame Impala), 킹 기저드 앤드 더 리저드 위저드(King Gizzard & The Lizard Wizard), 더티 비치스(Dirty Beaches) 등을 위시한 사이키델릭 조류를 받아들이고, 익스페리먼틀 팝에 신시사이저를 얹어 리듬을 해체했다.

그 와중에 'Waiting for the Day', 'When Your Love Comes to Grave' 등에서는 마치 유머처럼 느껴질 정도로 농익은 그루브를 선보인다. 흉내에 그치지 않았음을 훌륭히 입증하는, 뛰어난 골방 댄스로 불러도 될 정도다.

밴드의 점진적 변화가 폭발한 앨범이다. 메시지를 절단하고 음악적 탐험에 집중하겠다는 선언은 자기 소비에 집중하는 시대 흐름에 잘 올라탄 영리한 선택이기도 하다.

L'Orange & Kool Keith [Time? Astonishing!] (수입) 8/10

▲L'Orange & Kool Keith [Time? Astonishing!] ⓒMello Music Group
내슈빌의 힙합 프로듀서 오란주(L'Orange)와 뉴욕 브롱크스 출신의 베테랑 래퍼 쿨 키스(Kool Keith)의 합작 앨범이다.

오란주는 힙합 팬 사이에서는 최근 가장 큰 관심을 받는 레이블인 멜로 뮤직 그룹(Mello Music Group) 소속이다. 지금도 최고의 프로듀서로 꼽히는 매드립(Madlib)의 영향을 받은 뮤지션으로 언급된다. 쿨 키스는 1990년대 힙합 팬 사이에서는 전설적 존재로 통한다. 닥터 옥타곤(Dr. Octagon), 닥터 둠(Dr. Dooom) 등의 이름으로 낸 앨범은 1990년대 언더그라운드 힙합 신에서 손꼽히는 걸작이다.

오란주가 전곡을 프로듀싱한 앨범은 특유의 기괴함을 느끼게 하는 샘플 컷으로 가득하다. 희뿌연 기운이 앨범 전반에 가득하고, 간간이 느껴지는 재즈의 기운은 영화에서 따온 듯한 수다에 순식간에 사라진다.

<피치포크>는 앨범을 두고 "구조적으로, 이 앨범은 우주여행에 대해 횡설수설하는 비급 영화와 흐릿한 형이상학이 무겁게 내려앉은 모험"이라고 평했다. 제이-라이브(J-Live), 오픈 마이크 이글(Open Mike Eagle), 마인즈원(MindsOne) 등의 인기 래퍼들이 참여했다.

인상적인 짧은 리듬이 반복되는 최신 경향의 언더그라운드 전자음악이나 힙합 프로듀싱 앨범을 좋아하는 이라면, 짧은 러닝 타임이 땅을 치도록 아까울 법한 앨범이다.





프레시안이 약 2년 만에 '화제의 음반' 꼭지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이전과 같이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선별한 음반을 독자 여러분께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이전과 달리 평점을 매기기로 했습니다. 평점을 매긴다는 행위는 물론 독선이 될 수 있습니다만, 역으로 말하자면 평자로서 책임을 다하는 자세이기도 하다는 이유입니다. 되도록 매 주말마다 여러분께 인사드리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만, 담당자의 게으름으로 인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이 점은 미리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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