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멸종 위기 종, 환경 교사를 구하라

[초록發光] 2015년 개정 교육 과정 생각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하는 2015년 개정 교육 과정에 말들이 많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자신의 입맛에 맞게 교육 과정을 개편하면서 혼란을 주고 있다는 비판이 있어 왔다. 2000년 이후 무려 14번의 개정이 있었다. 일선 교사들은 바뀐 내용을 채 따라잡지도 못한 상태에서 새롭게 개편된 교육 과정에 맞춰 수업을 준비해야 하는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이번에 추진하는 교육 과정 개정도 졸속으로 이루어지는 잦은 개편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초등학교 교사들 1500명을 대상으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진행한 여론 조사에서 94.4%가 반대 의견을 제시한 이유가 있다.

교육 과정을 자주 개편한다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개정 교육 과정에 담겨지는 내용도 우려스럽다. 난데없이 초-중-고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도록 한다거나 초-중-고 학생들에게 소프트웨어 교육을 시키겠다고 한다. 또 세월호 사고를 의식했는지 초등학교 1~2년 과정에서 안전 교과를 신설하고 역사 교과에서 현대사 비중을 축소시키려는 시도도 있다. 특히 안전 교과의 신설은 세월호 사고를 사회 구조적인 문제보다는 학생들이 준수해야 할 안전 규범 미습득의 문제로 치환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더욱 문제는 불통이다. 수많은 논란과 반대 의견이 제시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는 충분한 토론없이 강행하고 있다. 전교조와 교육 단체들이 개정 교육 과정 논의를 전면 중단하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교육 과정이 '통합'을 화두로 추진하고 있는 모양인데, 국민들의 의견들을 통합하기보다는 분란과 갈등만을 양산하고 있는 셈이다.

기후 에너지 문제에 골몰하느라 별달리 관심을 두지 못하고 있던 내게도 2015년 개정 교육 과정과 관련된 파장이 다다르고 있다. '태양의 학교'라고 있다. 후쿠시마 핵 사고를 목격한 이후 탈핵 에너지 전환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학생에게 교육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모임을 결성하고, 매달 학생과 함께 '태양의 발걸음'과 같은 행사를 주최해오고 있는 단체다. 그 곳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계시는 신경준 선생님이 환경 교사의 "멸종 위기"를 알리는 한 서명 운동 요청서를 보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에 따르면, 2008년, 2883명의 학교 환경 교사가 2014년에는 293명으로 급감했다. 그리고 그 수는 전국 중-고교 교사 25만 명 중에서 단지 0.06%에 불과하다. 환경 교육을 교과로 채택하는 학교가 점점 줄어들면서, 그나마 있었던 환경 교사도 다른 과목을 가르치게 된 탓이다. 게다가 2000년부터 시작된 환경 교사 임용 시험은 지난 5년간 새로운 환경 교사를 뽑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없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 되었다. 녹색 성장을 외치던 이명박 정부 아래에서도 학교 내 환경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줄곧 무시되어 온 것이다.

2015년 교육 과정 개정을 앞두고, 환경 교사들이 학교 환경 교육을 강화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금은 '환경의 시대'다. 돌이켜 보면, 1992년 리우 환경 회의를 계기로 생존의 문제로서 '환경'이 전 세계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당장 기후 변화 위기를 다루기 위한 국제회의가 매년 열리면서 지구적 생존과 국가별 경제 부담을 저울질하고 협상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 내에서만 보더라도 4대강 사업, 핵발전소 건설, 동계 올림픽 개최지의 환경 파괴 등 국가적 쟁점이 차고 넘친다. 이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민주 사회의 시민으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지 학생에게 교육해야 시급성은 너무도 분명하다.

그러나 293명의 환경 교사들은 스스로를 "멸종 위기 종"으로 이름 붙일 정도로 극소수로 줄어들었으며, 그만큼 학교 환경 교육은 위축되다 못해 고사 직전에 있다. '통합'을 앞세우는 2015년 개정 교육 과정에서도 가장 통합적인 사고를 요구하는 환경 교육을 계속 홀대하는 것은, 이 개편 논의가 얼마나 무원칙적인 것인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상징이다. 교육 과정 개편이 폭넓은 참여 속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일부 전문가와 관료들에 의해서 주도되고 있다고 비판받고 있다. 아마도 그 소수들은 '생물 다양성'이라는 핵심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환경맹'들일 것 같다. 그러니 "멸종 위기 종"을 살려달라는 이야기가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나 할지 의문이다.

그 와중에 또 다른 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개편되는 교육 과정의 일환으로 준비되고 있는 '통합 과학' 과목 시안이 나왔는데 한번 검토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핵 발전에 대한 편향적인 내용이 담긴 듯이 보인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측은 교과서에 친원자력 내용을 실기 위해 집요한 로비를 해왔다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확인된 바 있다. 이번에는 개별 교과서가 아니라 교육 과정 자체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보내준 통합 과학의 과목 시안이라는 것을 살펴보니, 과연 그랬다. 통합 과학의 '내용 체계'라는 것에 포함되어 있는 '환경과 에너지' 부문에서 두 가지 핵심 개념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 중에 하나로 '핵 발전과 차세대 에너지'가 명시되어 있었다(다른 하나는 '생태계와 환경'이다). 게다가 핵 발전을 '기후 변화 등이 지구 환경에 초래하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대체 에너지'로 태양광 발전과 함께 비교 평가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핵발전소가 친환경적이라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주장을 그대로 답습한 것으로 교육 과정 개편에서 대단히 신중하게 다뤄야 할 사안이다. 매년 개최되는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는 핵 발전을 기후 변화를 대응하기 위한 기술로 포함시키자는 핵산업계의 로비를 번번이 거부한 바 있다.

전 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기후 변화, 석유 생산 정점 위기, 핵 발전의 위험 등에 직면하면서 '에너지 전환'이 추진되고 있다. 그 방향은 에너지를 과다 사용하고 낭비하는 시스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에너지 사용을 효율화하고 절약하는 한편 자연 에너지라고 일컫는 태양광(열), 풍력, 바이오매스 등의 재생 가능 에너지의 사용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이는 전 세계적인 동감을 얻고 있는 인식이기도 하다. 여기에 비춰 봤을 때, 이번에 제시된 통합 과학 과목 시안은 그 방향도 모호한 상황에서 핵 발전의 가능성만을 편향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학생들에게 핵 발전 개념을 자주 노출시켜 익숙하게 만들려는 반교육적인 '꼼수'로만 여겨졌다.

이래저래 2015년 개정 교육 과정은 문제다. 이런 교육과 정이라면 논의하는 것조차 적절하지 않다는 전교조의 주장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제발 제대로 하자.

(한재각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은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입니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바로 가기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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