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家 이전투구, 신격호가 자초했다"

[비즈니스 프리즘] '캐스팅보트' 집착이 부른 갈등

'원 롯데, 원 리더(One Lotte, One Leader. 하나의 롯데, 하나의 지도자)'.


지난 3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롯데그룹 식품 사업 글로벌 전략회의. 당시 연단에 서 있던 쓰쿠다 다카유키(佃孝之) 일본 롯데홀딩스 사장이 이런 문구를 화면에 띄웠다. 그리고 연단에서 내려왔다. 맨 앞줄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있었다. 쓰쿠다 다카유키 사장이 거기서 멈췄다. 고개를 깍듯이 숙였다.

쓰쿠다 다카유키 사장은 신 회장의 아버지인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최측근으로 꼽혔던 사람이다. 이런 그가 신동빈 회장에게 충성 맹세를 했다.

4개월 뒤, 두 사람은 신격호 총괄회장에게서 '해임' 통보를 받았다. 그 다음 날엔 신 총괄회장이 해임당했다. 이런 사태를 예상한 사람은 없었을 게다. 그러나 갈등의 씨앗은 진작에 뿌려져 있었다. 신격호 총괄회장이 스스로 불러들인 갈등이다.

'원 롯데, 원 리더'창업 이후 최초로 한일 롯데 연결재무제표 작성

롯데그룹은 신격호 총괄회장이 1948년 일본에서 창업했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를 계기로, 한국에 진출했다. 1967년 설립된 롯데제과가 한국 롯데의 출발점이다.

이후 한국 롯데와 일본 롯데는 같은 뿌리를 둔 다른 가지처럼 운영됐다. 양쪽 사이의 교류는 거의 없었다. 기업 문화도 달랐다. 신격호 총괄회장이 후계자 자리를 놓고 두 아들을 경쟁시켰던 것도 한몫 했다. 장남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은 일본 롯데를 맡았다. 차남 신동빈 회장은 한국 롯데를 맡았다. 두 아들의 경쟁은 대단했다고 한다.

당시엔 그래서 '투 롯데, 원 리더(Two Lotte, One Leader. 두 개의 롯데, 하나의 지도자)' 체제였다. 한국과 일본, 두 개의 롯데를 아우르는 지도자는 신격호 총괄회장뿐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말과 올해 초에 걸쳐,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이 그룹 내 주요 보직에서 잇따라 밀려났다.

그리고 나온 '원 롯데, 원 리더' 선언. 그건 단지 구호가 아니었다. 지난 15일, 일본 롯데홀딩스는 신동빈 회장을 3인 공동 대표이사 가운데 한 명으로 선임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맡았던 자리다. 그리고 이날, 한국 롯데와 일본 롯데를 아우르는 연결재무제표를 발표했다. 롯데그룹 역사 상 최초였다. 한국 롯데와 일본 롯데는 그동안 별도 회계로 운영돼 왔다.

"아버지의 지시, 동생이 무시" vs. "형이 늙은 아버지를 이용했다"

지난 15일 결정은 '신동빈 체제' 출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당시엔 누구도 '원 롯데, 원 리더'를 의심하지 않았다. '투 롯데, 원 리더' 시대의 지도자는 신격호 총괄회장이었다. '원 롯데, 원 리더' 시대의 지도자는 신동빈 회장이라고들 봤다.

하지만 반전이 생겼다. 12일 뒤인 지난 27일 신 총괄회장이 기습적으로 일본을 방문했다. 그리고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들에게 해임 통보를 했다. 앞서 '원 롯데, 원 리더' 구호와 함께 신동빈 회장에게 고개를 숙였던 쓰쿠다 다카유키 사장도 해임 통보를 받았다.

신 총괄회장과 함께 일본을 방문했던 신동주 전 부회장은 30일자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 인터뷰에서 쓰쿠다 다카유키 사장에 대한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아버지의 옛 측근이 이제 동생 편에 섰다. 그리고 그가 동생과 함께 아버지에게 자신을 모함했다는 게다. 쓰쿠다 사장이 오랫 동안 근무한 임원들을 내보낸 데 대해 신 총괄회장이 화를 냈다는 말도 했다. 그래서 신 총괄회장이 지난 3일 쓰쿠다 사장의 해임을 지시했지만, 쓰쿠다 사장이 이를 무시하고 계속 출근했다는 내용도 담겼다.

또 이 인터뷰에 따르면, 신격호 총괄회장이 지난 15일 결정을 안 건 언론 보도 이후였다. 사흘 뒤인 지난 18일, 신 총괄회장은 신동빈 회장에게 일본 롯데 그룹 관련 직책 해임을 통보했다. 하지만 신동빈 회장은, 쓰쿠다 사장과 마찬가지로 신 총괄회장을 무시했다. 만나려 하지도 않았고, 지시대로 사퇴하지도 않았다. 결국 신 총괄회장은 직접 일본을 찾아가 신 회장을 만나기로 마음 먹었다. 하지만 신동빈 회장은 방에 틀어박힌 채, 지팡이 짚고 찾아온 아버지를 만나주지 않았다. 그게 지난 27일 사태다. 신동주 전 부회장에 따르면, 그렇다.

이에 대해 롯데그룹 측은 "신동주 전 부회장과 일부 친족들이 고령으로 거동과 판단이 어려운 총괄회장님을 임의로 모시고 가 구두로 해임 발표를 유도한 것"이라는 종전 입장을 반복했다.

▲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1998년 울산 둔기리에서 가족과 찍은 사진. 왼쪽부터 시게미츠 하츠코(신 총괄회장의 두 번째 부인), 신 총괄회장, 신정훈(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의 아들), 신영자 롯데장학 복지재단 이사장(신 총괄회장이 첫 번째 부인에게서 낳은 딸), 신동주 전 부회장(신 총괄회장이 두 번째 부인에게서 낳은 큰 아들), 조은주(신 전 회장의 부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신 총괄회장이 두 번째 부인에게서 낳은 둘째 아들), 신규미(신동빈 회장의 큰 딸), 시게미츠 마나미(신동빈 회장의 부인), 신유열(신동빈 회장의 아들), 신승은(신동빈 회장의 딸). 신동주 전 부회장 가족과 신동빈 회장 가족이 살짝 떨어져 앉았다. ⓒ롯데그룹

신격호가 자초한 갈등

이제 남은 것은 표 대결 가능성이다. 신 전 부회장은 이날 인터뷰에서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서 이사 해임을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신 전 부회장은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 3분의 2가 우호 세력이라고 말했다. 반면, 롯데그룹 측은 신동빈 회장이 과반수 지분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표 대결을 하면 누가 이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건, '투 롯데'에서 '원 롯데'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두 아들 가운데 한 명은 반드시 탈락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갈등 역시 필연이다. 신격호 총괄회장이 자초했다. 그는 마지막까지 '원 리더' 자리를 내놓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두 아들에게 늘 엇비슷한 지분을 나눠줬다. '캐스팅보트'는 자신이 쥐고 있어야 했다. 이런 구조에서 두 아들 가운데 한 명이 탈락한다면, 곱게 물러날 리가 없다. 어차피 지분 비율은 비슷하다. '아버지의 마음'을 잡기만 하면, 판을 뒤집을 수 있다. 그걸 뻔히 아는데, 왜 싸움을 포기하겠는가.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를 해임하는 이번 사태는, 지난 3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원 롯데, 원 리더'로 향하는 길은, 온통 자갈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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