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내부감찰 중이었는데 왜?

[시사통] 이슈독털 - 7월 21일

어제 '이슈독털'에서 진단한 바 있습니다. 국정원 임모 과장의 자살과 국정원의 '입장문' 한 구절과의 상관성에 유의해야 한다고 진단한 바 있습니다. 오늘 다시 확인합니다. 이렇게 추정할 수밖에 없는 정황이 더 드러나고 있습니다.

어제 '이슈독털'에서 국정원 내부감찰 가능성을 제기한 후 여러 언론에서 관련 보도를 내놨는데요. 사실관계가 명확치 않은 것들을 빼고 교차확인을 통해 사실로 확정할만한 것들만 추려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면 이렇습니다.

국정원은 14일부터 내부감찰에 들어갔습니다. 이병호 원장이 국회 정보위에 출석해 내국인 사찰은 없었다고 주장한 바로 그날인데요. 이날부터 해킹 프로그램 구입 및 운용 등에 대한 감찰을 벌입니다. 물론 임 과장은 감찰대상으로서 상당한 압박감을 받았을 것입니다. 국정원 출신의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이 임 과장의 자살 동기를 설명하면서 "4일간 잠도 안 자는 가운데 공황상태에 있었다"고 말한 바 있는데요. 내부감찰 때문에 '4일간의 공황상태'에 빠졌다고 보면 될 듯합니다.

의문은 이런 기초사실 위에서 싹틉니다.

관련 사실을 보도한 '한겨레'는 내부감찰이 종료된 게 아니었다고 전했습니다. 임 과장이 자살한 18일에도 오전 10시부터 조사받기로 돼 있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보도에 기초하면 17일의 국정원 입장문 발표는 이해되지 않습니다. 특히 문제의 그 구절, 즉 "담당하는 국정원 직원은 그 분야의 최고 기술자일 뿐"이라며 "사악한 감시자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던 그 구절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습니다.

국정원은 내부감찰이 완료되지도 않았는데 왜 서둘러 입장문을 발표했을까요? 당사자에 대한 조사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왜 해킹 사건의 당사자로 '기술자'를 지목했을까요? 조사가 진행 중인 만큼 사실판단은 말할 것도 없고 가치판단은 더더욱 내려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는데 왜 섣불리 '사악한 감시자'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을까요? 더 결정적인 의문점이 있습니다. 임 과장이 '사악한 감시자'가 아니라고 확신했다면 왜 입장문에서 '기술자'를 특정해 간접적으로 신원을 노출하고, 직접적으로 임 과장에게 압박감을 주었을까요? 임 과장이 맡은 바 일에만 충실했던 점을 확인했다면 입장문에 '기술자'를 특정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던 것 아닌가요? 결과적으로 국정원의 입장문이 임 과장으로 하여금 자신의 신원이 노출될 수도 있다는, 나아가 자신이 '사악한 감시자'로 내몰릴 수 있다는, 조직이 나를 보호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압박감을 갖도록 만든 것 아닌가요?

이 문제는 여기서 잠시 쉼표를 찍고, 다른 문제 하나를 짚겠습니다. 그 문제를 짚다보면 쉼표를 찍은 이 문제가 좀 더 선명하게 다가올 겁니다.

'한겨레'와 함께 국정원의 내부감찰 사실을 보도한 '중앙일보'는 "(임 과장이)자료를 삭제한 사실이 감찰과정에서 드러날까봐 조마조마해했다고 한다"고 전했습니다. 내부감찰이 4일간 진행됐는데도 국정원은 파일 삭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명색이 최고정보기관이라고 하는 국정원이 어떻게 내부단속을 허술하게 할 수 있느냐는 애기가 절로 터져나올 지경이지만 그보다 더 중한 문제가 있습니다.

'중앙일보'의 보도대로라면 국정원은 이병호 원장이 국회 보고한 14일은 물론 입장문을 발표한 17일, 나아가 임 과장이 자살한 18일까지도 파일 삭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달리 말해 해당 파일 한 번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얘기가 됩니다. 헌데 이걸 사실로 전제하면 또 다시 상식적 의문이 줄을 잇습니다.

국정원이 해킹 프로그램을 어떻게 운용했는지, 다시 말해 내국인 사찰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알기 위해선 해킹 프로그램을 깨알같이 들여다봐야 합니다. 하지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이병호 원장은 국회에 나와 내국인 사찰은 없었다고 주장했고, 국정원은 17일 발표한 입장문을 통해 국회 정보위원들에게 해킹 프로그램 사용기록을 보여줄 것이라며 "이 내용을 보면 국정원이 민간사찰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명백해진다"고 주장했습니다. 도대체 국정원과 그 원장은 뭘 근거로 이같이 주장한 겁니까?

임 과장의 진술이 근거입니까? 임 과장이 감찰 이전과 감찰 과정에서 했던 말 – 아마도 유서에 써놨던 것과 같은 – 이 근거입니까? 임 과장의 말을 그렇게 철썩같이 믿었다면 국정원이 보기에 임 과장은 아무 잘못이 없는 사람인데 왜 입장문에서 '기술자'를 특정해 '음지'에 있는 그를 '양지'의 끄트머리로 밀어냈습니까?

국정원은 답을 내놔야 합니다.


이 기사는 7월 21일 <시사통> '이슈독털' 내용입니다. (☞바로 가기 : <시사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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