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무한신뢰' 새누리 "금주 중 조사 끝"

與, 비공개 조사만 가능 vs. 野, 청문회 열어야

국가정보원의 민간인 사찰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새정치민주연합 측의 청문회·긴급현안질문 개최 등의 요구를 새누리당이 전면 거부하고 있다. 청문회나 긴급현안질문과 같은 공개 석상에서는 국정원의 이탈리아 업체 '해킹팀'으로부터 사들인 해킹 프로그램의 사용처를 논의할 수 없다는 게 새누리당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야당은 100% 공개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고 거듭 밝히며, 민간 영역의 해킹 관련 관계자들도 증인·참고인으로 부를 수 있도록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킹팀'과 국정원을 중개한 '나나테크' 관계자 등을 조사하려면 국회 정보위원회 차원의 논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해킹 프로그램을 담당했다가 19일 자살한 국정원 직원이 관련 자료를 삭제했다고 밝힌 만큼, 당초 구상했던 국정원 현장 조사도 '조사에 응했다'는 명분만 국정원에 주고 '쇼'로 끝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현장 조사에 앞서 철저한 사전 작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與 "비공개 조사만 가능" vs. 野 "청문회 열어 증인 소환해야"

새누리당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이춘석 원내수석부대표, 국회 정보위 소속의 새누리당 박민식 의원과 새정치연합 신경민 의원(야당 측 간사)은 20일 오후 만나 국정원 민간인 사찰 논란을 다루기 위한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 일정을 논의했으나, 이 같은 이유로 대체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들이 원칙적인 합의를 한 것은 경찰로부터 국정원 직원 자살 사건의 경위를 보고받기 위한 국회 안전행정위원회를 개최하는 정도다.

새정치연합의 당초 계획은 이번 주 안에 국회 정보위 청문회와 안행위를 열어 기초 조사에 시동을 걸고, 내주에는 국회 본회의장에서 진행되는 긴급현안질의에 이병호 국정원장을 불러 제기된 의혹들에 대한 해명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중·장기적으로는 국회에 관련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국정조사를 벌이는 등의 방식으로 진상조사 동력을 유지해 '민간인 사찰'에 대한 국민적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는 로드맵도 가지고 있었다.

새누리당은 그러나 비공개가 전제되는 국회 정보위원회를 통한 조사 활동만 가능하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새누리당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는 필요한 "자료를 정보위에서 보고받고 그 이후에 문제가 되는 점이 있으면 그때 가서 어떻게 해소할 거냐를 정보위 양당 간사가 협의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보위 소속의 새누리당 박민식 의원은 "청문회와 정보위의 차이는 공개와 비공개의 차이로 저는 이해한다"면서 "아시다시피 청문회는 증인과 참고인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증인이 나와서 위증을 하면 벌을 받게 된다"고 청문회 반대 이유를 설명 말했다. 그러면서 '국회의원들의 현안 청취만으로는 사태 파악이 어려우니 전문가 집단이 함께 조사에 참여해야 한다'는 야당 요구에 역시 "민간 전문가가 같이 대동하면 비공개 보장을 못 한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은 이 국정원장의 참석을 전제하는 긴급현안질의를 개최하자는 야당 측 요구에는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춘석 새정치연합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번 사안은 (전례와는 달리) 좀 다른 성격이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일반인에 대해서 해킹이 이뤄졌다면 이것은 불법행위로 국가 안보와는 상관없는 것"이니 긴급현안질문에 국정원장이 참석해야 한다고 맞섰다.

신경민 "국정원 현장조사, 야유회로 갈 거 아니다"

새정치연합은 당초 구상했던 국정원 현장조사 또한 숨진 국정원 직원이 '자료를 삭제했다'고 밝힌 만큼, 섣불리 진행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보위 소속 야당 측 간사인 신경민 의원은 "우리가 현장조사를 요구한 것은 맞다"면서도 "그러나 충분한 자료 확보와 전문성 확보가 현장조사를 위한 전제 조건"이라고 말했다.

신 의원은 이어 "(현장조사는) 야유회나 견학이 아니다"라면서 "우리가 벌써 몇 번 당한 경험이 있다. 회의실에 앉아서 차나 마시고 견학이나 하는 현장조사는 불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신 의원은 현장조사를 위한 필요조건으로 삭제된 자료 복구와 자료 오염을 확인할 전문가 대동, 객관적 (해킹 프로그램) 시연 준비, 원장이나 차장이 아닌 실제 프로그램을 운용해본 직원의 증언 등을 제시했다.

여야는 이 같은 양측의 주장을 내부에서 더 논의한 후 21일 오후 다시 만나 논의를 이어가기로도 했다. 21일 회동은 여야 원내대표가 직접 진행한다.

박민식 "디가우징도 흔적 남아…금주 중 조사 끝난다"

새누리당이 이처럼 청문회나 국정조사와 같은 일정에 반대하는 것은 내심 여권에 불리한 현 정국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를 반영하듯, 박 의원은 이날 "청문회한다, 현안질의한다, 특위한다, 국정조사한다고 하는데 다 아시다시피 여기에 시간이 얼마나 걸리냐"면서 "제가 장담하는데 이번 주 안에 (조사는) 끝난다. 100% 끝난다"고 호언장담했다.

박 의원은 또 숨진 국정원 직원이 "삭제판 파일을 완전히 복구할 수 있다고 국정원으로부터 보고를 받았다"면서 "일부 언론에서 디가우징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디가우징도 하면 흔적이 남는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디가우징이란 강력한 자력을 활용해 컴퓨터 하드디스크의 모든 데이터를 삭제하는 기술이다. 전문가들은 해킹 자료 일부를 삭제하는 것이 아니라 디가우징과 같은 물리적 '파기'를 할 경우, 복원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박 의원은 그럼에도 '디가우징도 흔적이 남는다'는 국정원 측의 주장에 '무한 신뢰'를 보내며 진상 조사가 손쉽게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박 의원은 야당이 청문회 등을 "정치적인 무기로 사용하려는 것 아니냐"이라는 의구심도 계속 내비쳤다.

박 의원은 회동을 마친 후 기자들을 만나서도 "국정원도 엄청난 스피드를 가지고 (자료 복구에) 매진하고 있다"면서 "(국정원이)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숨길 수 없다. 다 지운 것도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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