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더스 현상'은 미 대선 돌풍이 될 것인가?

[인터뷰] 박영철 전 원광대 교수가 본 '샌더스 현상'

2016년 미 대통령 선거가 이제 1년 4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최근까지만 해도 이번 대선도 큰 쟁점 없이 종전처럼 무책임한 미디어의 광고 전쟁과 천문학적 정치 자금이 난무하는 선거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특히 이번 대선에는 연예 정보지 수준의 흥미거리가 많아 국민의 관심을 그쪽으로 끌고 갈 위험이 많을 것으로 보았다.


첫째, 이번 대선에서는 미국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힐러리 클린턴)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또 첫 대통령 부부(빌 클린턴과 힐러리 클린턴)가 생길 수 있다. 또 한 가정에서 3명의 대통령(아버지 부시, 아들 조지, 아들 잽)이 탄생할 가능성도 있다.

둘째, 민주주의 모범 국가 미국에서 왕조시대에나 있을 법한 두 명문가의 대통령 후보(힐러리 클린턴과 잽 부시)가 '0K 목장의 결투'를 벌일 확률도 높다.


셋째, 미국의 프라이머리 경선에 나온 공화당 후보가 7월 16일 현재 15명으로 난립 상태인데 반해, 민주당의 경우는 독주가 예상되는 힐러리 클린턴과 약체 네 명의 후보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선을 준비하고 있다.그런데 최근 예측하지 못한 큰 변수가 나타났다.

지난 4월 자칭 '사회주의자'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프라이머리 경선에 출마한다며 유세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예상 밖으로 수많은 청중이 유세 현장에 모여들고 있다. 힐러리의 뉴욕 유세장에 5500 청중이 모인데 반해 샌더스의 위스콘신 유세장에 무려 1만 명의 청중이 모인 것이다. 따라서 첫 번째 민주당 프라이머리가 시작하는 뉴햄프셔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지난 5월 31%포인트였던 힐러리와 샌더스의 지지율 격차가 7월 초 8%포인트까지 내려갔다.

샌더스 상원의원은 누구인가?


샌더스는 미국 동북부의 조그만 주 버몬트 출신의 무소속 상원의원이다. 미국 여론 조사에 의하면 미 대통령에 무신론자가 당선될 가능성보다 더 낮은 게 '사회주의자'가 당선될 가능성이라고 한다. 그런데 샌더스는 떳떳하게 자신이 '사회주의자'라고 말한다. 거기다 버몬트 주에는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하는 흑인이 거의 살지 않는 백인 만의 조그만 주이다. 또 샌더스는 무소속인데 이번 대선에는 민주당 후보로 나서겠다고 한다.


이처럼 '약점의 백화점'이라 할 샌더스 상원의원이 유세를 시작하면서부터 '샌더스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최근 위스콘신, 버몬트, 뉴햄프셔 유세장에 예상을 초월하는 수많은 군중이 모인 것이다. 그리고 지난 7월 12일에는 미국의 가장 권위 있는 정치 쇼 <패이스 더 네이션 'Face the Nation'>에 출현하여 자신의 선거 전략을 공개하는 위력을 발휘했다.

무엇이 이 같은 '샌더스 현상'을 일으키고 있는가? '샌더스 현상'은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 샌더스의 '미국 경제 개혁 아젠다: 12단계 전략'의 현실성은 검증이 된 것인가? 샌더스는 선진국 중 최악의 상태인 미국의 '소득 불평등' 문제와 월스트리트의 횡포를 해결할 수 있을까? 등을 박영철 전 원광대학교 경제학부 교수에게 물었다. 인터뷰는 이메일을 통해 7월 11일부터 7월 15일까지 이뤄졌다.

전희경: 일부 한국 언론에 '샌더스 돌풍'이라고 야단인데, 교수님은 '샌더스 현상'이라고 말씀하시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박영철: 샌더스 상원의원의 민주당 프라이머리 유세장에 예측을 훨씬 넘는 군중이 모인 건 사실입니다만, 그것이 민주당 대통령 지명 대회까지 이어질 것인가? 판단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릅니다. 민주당의 첫 프라이머리 경선이 올해 10월에 뉴햄프셔에서 시작하여 민주당 대통령 지명 대회가 내년 7월 25~26 이틀간 펜실베니아에서 열릴 때까지 1년 이상이 남아 있습니다. 제가 돌풍이란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제가 돌풍이란 표현을 쓰지 않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인터뷰의 끝에 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전희경: 도대체 이 '샌더스 현상'은 무엇인지요?


박영철: 저는 '샌더스 현상'을 미국 국민의 '경제 정의와 평등(Economic Justice and Equality)'에 대한 목마름의 표현이라고 봅니다.

2년 전 반짝했던 '월가를 점령하라'의 시민운동이 실패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미 국민은 미국의 자본주의경제 체제가 구조적으로 '불공정'하다고 진단합니다. 이 왜곡된 경제 체제에 대한 불안감과 이를 바꾸어야 한다는 막연한 희망이 겹쳐지고 있습니다.

<그림 1> 퓨 리서치 센터, 현 경제체제의 공평성에 대한 보수적 경영인들의 믿음


이들은 이처럼 왜곡된 경제 체제를 구조적으로 혁신해줄 '광야의 메신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샌더스 유세장에 운집하는 군중은 샌더스에서 이 '광야의 메신저'를 확인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전희경: <그림 1>을 보면 재계와 일반 국민의 현 시장자본주의 경제체제의 '공평성(Fairness)'에 대한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의 평가가 거의 극과 극이군요.


박영철: 맞습니다. 우선 일반 국민 모두의 의견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현 경제 체제가 불공평하도록 '힘센 세력'에 유리한가? 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62%가 'Yes', 34%만이 “No''라고답했습니다. 또 현 경제 체제가 소수의 대기업 손에 너무 큰 권한을 줬는가? 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무려 78%가 'Yes', 18%만이 'No'라고 답했습니다.


다음은 진보 진영과 보수 기업인의 의견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 문제에는 진보는 88%가 'Yes', 보수 기업인은31%만이 'Yes'라고 답했습니다. 두 번째 질문에는 진보는95%가 너무 큰 권한이 소수의 대기업 손에 있다고 답했습니다. 반대로 보수 기업가는 겨우 35%가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이 같은 일반 국민과 진영 간에 현 경제 체제의 '공평성'에 대한 의견 차이가 심각합니다. 확실한 것은 공평성에 대한 의구심이 추세로 자리를 잡아간다는 사실입니다. 심각한 사회 현상입니다.


또 하나 주목할 사실은, 최근 2-3년 전까지만 해도 미 국민의 절대다수가 '미국이 선진국 가운데 가장 심각한 소득 불평등 국가'라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의식적으로 부인하고 있었습니다.

<그림 2> OECD에서 발표한 각 국의 지니계수, 지니계수는 빈부격차와 계층간 소득분포의 불균형 정도를 나타내는 수치로 지니계수가 1에 가까울수록 소득불평등이 심화된 국가이다. 한국의 경우 OECD 평균 (2012년 0.32)에 가까운 0.30이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자료: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http://www.oecd.org/social/income-distribution-database.htm, 세계은행 (World Bank)


전희경: 미국 소득 불평등이 심화하기 시작한 지가 오래된 것으로 압니다. 소위 '소득의 대이탈(Great Divergence of Income) 현상이 벌써 1979년에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박영철: 상황이 이런데도 미 경제학계에서조차 이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고 심층 연구를 시작한 것은 아주 최근 일입니다.지금부터 60여 년 전인 1955년에 경제학자 쿠즈네츠가 발표한 이론인 소위 '쿠즈네츠 곡선', 즉 경제가 성장하는 경우 어떤시점을 지나면 소득 분배가 공평해진다는 이론과 '낙수 효과(Trickle-Down)' 이론을 최근까지 신앙처럼 굳게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일반 국민은 2008년의 '대침체(Great Recession)'의 혹독한 시련을 겪고 난 최근 2- 3년 전에야 겨우 '30여 년의 중산층 임금 정체'라는 놀라운 사실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입니다.그리고 이를 통해 간접적으로 소득 양극화 현상의 심각성을 인지한 셈입니다.

<그림 3> 경제정책연구소, 1978년 이래 최고경영인들의 소득은 997% 증가한데 반해 노동자들의 소득은 평균 10.9% 증가에 그쳤다.



전희경: 교수님은 '샌더스 현상'을 심각한 소득 불평등과 금융권의 횡포에 대한 일부 국민의 의식화와 이 같은 경제 체제에 대한 대수술을 바라는 의사 표시라고 보시는군요.


아래의 표에 7월 12일 샌더스가 자신의 웹에 발표한 '미국 경제 개혁의 12단계 전략'을 담았습니다. 이 아젠다가 미 국민의 염원을 제대로 담아내고 있는지요? 제 의견에는1) 노동조합 강화, 2) 월스트리트 접수, 3) 실효 세제 개혁 등 매우 파격적인 제안이 들어 있는데요.

미국 경제 개혁의 12단계 전략

1. 낙후한 사회간접자본의 재건

2. 기후 변화 반전대책

3. 노동자 협동조합 창설

4. 노동조합 강화

5. 최저임금 상승

6. 여성 노동자 임금의 평등화

7. 미 노동자를 위한 무역정책

8. 누구나 갈 수 있는 대학 정책

9. 월스트리트 접수

10. 권리로서의 보편 건강보험

11. 경제 취약 계층의 보호

12. 실효 세제 개편

박영철: 각 개혁의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알려진 바 없습니다. 그래서 주요한 개혁 전략이 지향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간단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 월스트리트 접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흉인 월스트리트의 대형 금융기관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대마불사'의 전통을 깨야 한다. 일반은행의 고위험 투자를 금지하여 안정성을 높이고 투기적 이윤 창출의 증권 거래 모델도 규제해야 한다. 월스트리트의 6대 금융기관의 자산이 미국GDP의 61%에 해당하는 10조 달러인데 이들의 경제 생산성은 제조업보다도 낮다. (바로가기)


· 실효 세제 개편: 미국 정가에서는 세제 개편은 '자기 정치생명의 무덤을 판다'고 할 정도로 정치인들의 기피 대상이다. 그러나 샌더스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악화하고,'워런 버핏 자신보다 그의 비서가 더 많은 세금을 내는' 모순된 현 세제의 포괄적인 개편을 주장한다. 또 미 다국적 기업의 해외 투자 수익금에 대한 과세를 시행하여 사회간접자본 투자기금으로 쓸 것을 주장한다. (바로가기)


· 최저 임금 상승과 취약 계층의 보호: 연금, Medicare 등 사회 안전망(Safety Net)을 강화하고 현재 7달러 50센트인 최저임금을 10달러 선으로 인상하여 '거의 기아 상태'에서 허덕이는 극빈층을 구제해야 한다.

· 노조의 강화:극도로 약화한 노조가 지속적으로 악화되는 소득 불평등의 한 원인이다. 노조 회원 증가와 경영권 참여를 통해 노동자의 임금과 복지를 향상해야 한다. 독일의 노사 모델, 특히 노조의 이사회 참여를 격려해야 한다.

· 노동자를 위한 무역정책: NAFTA 등 자유무역협정 때문에 미국의 6만 개 공장이 문을 닫고 490만 명의 제조업 실업자가 발생했다. 이 같은 자유무역협정의 실패를 거울삼아 고용의 해외 이전을 촉진하고 다국적 기업의 폭리와 이윤만을 창출하는 '환태평동반자(TPP)' 협정을 반대한다.

· 낙후한 사회간접자본의 재건: 부시-체니의 이라크 전쟁비용이 약 3조 달러인데 낙후한 사회간접자본의 재건에 필요한 금액은 1조 달러 정도이며, 이 프로젝트는 1300만의 고용을 창출할 수 있다.

전희경: 미국의 일부 언론이 샌더스의 '미국 경제 개혁 아젠다'를 포퓰리즘이라고 깎아 내리는데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박영철: 샌더스는 현재 미국의 경제 체제가 천민자본주의의 전형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그는 이 체제를 거의 근원적으로 바꾸는 '경제적 및 정치적 혁명'을 외칩니다. 그런 의미에서 샌더스의 '미국 경제 개혁 아젠다'는 일종의 포퓰리즘 성격을 띱니다. 그는 유세장에 모인 청중이 듣고 싶어 하는, '속이시원해지는' 경제 전략을 선언합니다. '월스트리트 접수', '부자 증세를 통한 복지 정책', '다국적 기업의 해외 수익에 대한 과세', '북유럽국가와 같은 국민 건강보험 제도' 등 대중 영합 정책을 주장합니다.

전희경: 그렇다고 월스트리트 신문과 같은 보수 언론이 샌더스의 경제 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깎아 내려도 되는가요?


박영철: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샌더스의 경제 아젠다는 단순한 인기 영합의 구호가 아닙니다. 왜곡된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 일시적 땜질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장기적 과제로 진지한 경제 체제의 패러다임 변화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로렌스 서머스 교수는 '경제 체제 변화는 점진주의로는 불가능하다. 어떤 경제 체제나 그 안에 거의 자연법칙과도 같은 견고한 경제 법칙이 있기 마련인데, 외부의 강한 충격 없이는 스스로 변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샌더스는 현 미국의 왜곡된 시장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공격하는 외부 충격 역할을 자임한다고 봅니다.

전희경: 이런 경우 문제는 실현 가능성 여부라고 봅니다. 샌더스가 자신의 경제 아젠다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두 개의 산을 넘어야 한다고 봅니다. 하나는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지명을 받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2016년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교수님의 전망은 어떤가요?

박영철: 일부 보수 언론은 만약 샌더스 현상이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경제 공약을 현재의 '중도 중'에서 '중도 좌'로 옮기게만 해도 성공이다'라고 비아냥대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7일 13일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유세 시작 후 처음으로 자신의 경제 공약을 발표하여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월스트리트 신문의 필립럭커 기자는 '힐러리클린턴의 '성장과 공평의 경제 ' 아젠다는 중산층을 대변하고 월스트리트의 규제를 강화한다고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 좀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힐러리 클린턴의 공약 색깔은 조금 중도 좌로 옮겨졌지만 지난번 오바마 대통령의 경제 공약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힐러리 클린턴이 샌더스의 파격적인 경제 아젠다를 수용할 확률은 미미하다고 봅니다. 다음 기회 있으면 힐러리 클린턴과 샌더스의 경제 공약을 비교하고 싶습니다.

전희경: 샌더스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될 확률은 있나요?


박영철: 매우 약하다고 봅니다. 우선 현재까지는 샌더스 선거 캠프의 '풀뿌리 조직'이 매우 미미하다고 봅니다. 지난번 오바마의 소위 풀뿌리 자원봉사자(Grass Root Volunteers) 조직은 일찌감치 힐러리클린턴 캠프에서 인수했다고 합니다. 둘, 샌더스는 선거 자금이 많지 않습니다. 현재 천5백만 달러를 모았다는 소식인데 샌더스로서는 거금이지만 초거대자금(Super PAC) 등이 판치는 대선에서는 초라한 액수입니다. 셋, 7년을 준비해온 힐러리 클린턴의 독주가 아직은 건재합니다. 넷, 한국과는 달리 미국에는 소위 '마지막 바람'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인터뷰 초기에 '샌더스 돌풍' 대신에 '샌더스 현상'이라고 부른 이유입니다.

(박영철 전 교수는 벨기에 루뱅 가톨릭 대학에서 국제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원광대학교에서 은퇴한 후 개인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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