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대통령, '병원 공개' 전 나흘간 행방불명?

[기자의 눈] '박근혜 무오류성' 증명하려 하나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첫 확진 환자가 나온 지(5월 20일) 19일 만에 정부가 6개 병원과 환자가 거쳐 간 18개 병원 등 확진 환자가 발생한 24개 병원의 명단을 공개했다. 청와대와 정부는 병원명 공개를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개운치 않다.

왜냐하면, 그간 박 대통령의 입장은 '병원명 공개 불가'로 받아들여져 왔기 때문이다. 즉, 대통령의 판단이 중간에 뒤집어진 정황이 있는데, 청와대는 박 대통령 지시의 일관성을 부각시키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청와대의 설명도 속 시원하지가 않다.

청와대의 설명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이미 나흘 전, 즉 지난 3일 병원명 공개를 지시했다고 한다. 나흘간의 공백 후 공개된 자료는 엉망이었다. 일부 엉뚱한 병원명이 기재됐다. 논란을 자초한 셈이다. 누가 봐도 급조된 공개처럼 보이는데, 그것이 무려 나흘 전 예고한 박 대통령의 '병원명 공개 지시'에 따른 것이라니.

靑 "무슨 사건이든 돌이켜 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박근혜 대통령이 메르스 관련 민관합동긴급대책회의를 주재한 것은 첫 확진 환자가 발생한 지 14일 만인 지난 3일 오후다. 2일엔 이미 3차 감염자, 즉 35번 환자가 발생했다. 심지어 이 환자가 1500명이 넘는 장소에서 활보한 뒤에야 청와대는 '긴급 회의'를 열었다. (물론 이 같은 사실은 지난 4일 서울시장이 관련 내용을 공개하면서 처음 알려졌다.)

3일 청와대는 긴급대책회의가 끝난 후 브리핑을 통해 "국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정보의 투명한 공개에 있으므로 가능한 한 공개할 수 있는 정보는 즉시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해야 하며 대통령께서 이 점을 특히 강조하셨다"고 했다.

그리고 5일 박 대통령은 통일준비위 관련 행사를 제치고 '깜짝 이벤트'로 방문한 국립중앙의료원에서 "필요한 정보는 매일 국민들께 투명하게 공개되도록…(하라)"고 지시했다. 두 발언 모두 단서가 있다. "가능한 공개할 수 있는 정보", "필요한 정보"는 공개하라는 것이다. 사실상 조건부 공개 발언이다.

이때 박 대통령의 메시지는 "가능한 공개할 수 있는 정보"에 병원명은 제외되는 것으로 해석됐다. 실제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3일 긴급대책회의가 끝난 후 병원 공개 여부에 대해 "득보다 실이 많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분명히 언급했다. 한 여권 고위 관계자는 "청와대 내에서 홍보 라인이 병원명 공개 등을 초반부터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러나 (이른바) '전문가'들이 안 된다고 했다"고 전했다.

"병원명 공개 시, 의료 산업에 일대 혼란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고 한다. '경제 라인'이 '홍보 라인' 간 갈등이 있었으나, 결국 '홍보 라인'이 밀렸다는 해석이 나올 수 있다.

그런데 8일, 갑자기 청와대 관계자가 "(병원명 공개는) 대통령의 (지난 3일)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박 대통령이 초기에 병원명 공개에 부정적이었다가, 이 기조가 잘못된 것을 깨닫고 전날 공개를 결정했다는 설명이 합리적이다. 박 대통령이 중간에 결정을 뒤집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청와대는 인과관계를 '3일 지시-7일 공개'로 분명히 했다. 중간의 혼선은 "(결정을) 다듬는 과정"이었을 뿐이라고 한다.

다음은 이날 오전, 청와대 관계자와의 질의응답이다.

질문 : 지난 3일에 대통령이 (긴급) 회의에서 정보 공개를 얘기한 다음에 어제 (병원) 명단 공개까지 시간이 (나흘) 걸렸는데, 그 사이에 대통령이 다시 한번 지시한 일이 있었나?

답변 : 공개적으로 말한 것은 그때(3일)죠. 내부적으로 보고나 지시가 있었다는 것은 제가 밝힐 사안이 아니다.

질문 : 지난 3일 긴급대책회의를 하고 나서, 청와대 고위 관계자나 전문가가 '병원 공개와 관련해 득보다 실이 많다'고 한 것은, 대통령 말씀을 잘못 해석한 것인가?

답변 : 해석은 여러분들이 하시고, 제가 해석할 것은 없고, 그게 상황에 대한 인식들을, 대통령 지시가 있은 직후에 인식들을 뭐 (서로 다를 수 있지만 그것을) 서로 다듬고, 뭐 그러는 과정이었다고 이해해주면 좋겠다.

질문 : (병원 공개가) 그렇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좀 늦었다는 평가가 있는데, 그 부분은에 대해서는?

답변 : (30초간 침묵) 무슨 사건이든지 돌이켜보면 아쉬운 점이 많다. 우리의 주안점은 이 사태를 어떻게 빨리 해결하느냐, 거기에 역량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北엔 수령 무오류성, 그리고 박근혜 무오류성?

메르스 확산 방지를 위해 병원명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한 전문가는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방역 당국은 물론 언론들은 이에 미온적이었다. <프레시안> 등이 소송 가능성을 무릅쓰고 최초로 병원명 공개를 결정한 배경에는, 병원명 공개가 사태 확산을 막는 첫 단계라는 판단과 함께, 박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가 병원명 공개를 지나치게 꺼리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와서 박 대통령이 나흘 전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했던 발언을 병원명 공개 지시로 해석하라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백번 양보해, 대통령이 '포괄적 지시'를 내린 것이라고 하더라도 의문점은 여전히 남는다. 먼저 포괄적 지시를 내린 후 병원명 공개와 같은 '세부 사항'은 실무진이나 전문가(극히 한정된 전문가)에 맡겼다는 것인데, 병원명 공개가 과연 '세부 사항'으로 취급돼야 했던 것인지 의문이다. 그리고 두 번째, 현정택 정책조정 수석은 관련해 단계별로 병원명이 공개된 "일관된 흐름"이 있었다고 했다. 그렇다고 해도 대통령의 3일 지시로 인해 7일 공개됐다는 인과관계는 납득하기 어렵다.

정리해보자. 메르스 사태는 박 대통령의 총체적 '무능', 혹은 '무관심'에 의해 악화됐다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이날 국회 긴급 현안질의에서 밝혀진 데 따르면,
사건 발생 6일 동안 대통령은 제대로 된 보고를 받지 못했다. 사건 발생 13일째,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메르스 확진 환자 숫자를 틀리게 보고받았다. 사건 발생 14일째, 박 대통령은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사건 발생 19일째 되는 날까지 병원명은 공개가 안 됐었다. 병원명 공개 지시(3일)부터 공개 시점(7일)까지 나흘간 뭘 했는지, 불분명하다. 대통령이 사라졌다 나타났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북한에는 '수령 무오류성'이라는 게 있다. 수령의 말은 오류가 없다는 의미인데, 다시 말하면, 수령의 말의 오류는 '없어야 한다'는 것과 같다. 무오류성을 사후 입증하기 위해 북한 관료들은 오늘도 분주하다. 정정은 없고, 맞춤형 해석만 내놓는다.

지금 청와대는 '대통령 무오류성'에 스스로 빠져 있는 형국이다. 대통령의 실수나 잘못은, 감추고 포장한다고 해서 사라질 일이 아니다. 병원명 이름도 틀린 자료를 부랴부랴 공개하며 이를 대통령의 일관된 지시라는 취지로 설명하는 것은 모양새도 나쁘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증명됐다. 박 대통령은 외생 변수에 약하다. 정치적 반대파 제압에는 빈틈없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정작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는 관료들, '일부' 전문가들 뒤에 숨는 비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왜 솔직하지 못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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