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경기도', 허베이성에 정치 엘리트 많은 이유?

[차이나 프리즘] '중국 허베이성 21 Vs 광둥성 0'

정치는 이길 수 있는 세력을 만드는 것이다. 세력은 일종의 네트워크이다. 그것의 기반이 지역이든 아니면 정치적 이념이나 노선이든 공통점을 찾아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고 그렇게 형성된 관계의 집합이 곧 세력인 것이다. 최근 새정치민주연합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볼썽사나운 분란을 보면서 지역이 먼저냐 노선이 먼저냐 하는 논쟁을 보면서 정치에서의 서로 다른 네트워크 간 경쟁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럼 중국은 어떨까? 중국 허베이성(河北省)의 정치 네트워크는 중국 중앙정치에서 나름 유의미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허베이성은 우리나라로 치면 경기도와 비슷한 지역이다. 수도인 베이징시(北京市)과 직할시인 텐진시(天津市)를 둘러싸고 있는 대도시의 배후지역이다. GDP 총량 기준으로 경제규모에서 중국의 31개 지역 중 6번째를 차지하긴 하지만 경제규모가 가장 큰 광동성(廣東省)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주변에 있는 베이징과 텐진시를 허베이성과 합해야 광동성과 비슷할 정도의 경제권역이 형성된다.


경제규모만 놓고 보면 허베이성은 주목할만 곳은 아니다. 광동성이나, 장쑤성(江蘇省), 산동성(山東省), 그리고 저장성(浙江省) 등과 같이 허베이성보다 경제규모가 훨씬 큰 지역들이 많다. 그러나 정치적인 측면에서 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현 시진핑(習近平) 체제 하에서의 주요 정치엘리트(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 205명 중 21명이나 허베이성 출신이기 때문이다. 산동성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중국에서 경제규모가 가장 큰 광동성 출신 중국공산당 중앙위원은 도대체 몇 명이나 될까? 정답은 0명이다. 단 한 명도 없다. 경제로 잘 나가는 광동성이라 할지라도 쓰촨성(四川省), 윈난성(雲南省), 칭하이성(靑海省), 하이난성(海南省)처럼 현역 중앙위원을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광동성이 중국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한다면 매우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적어도 중국에서는 지역의 경제력이 정치적 영향력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허베이 출신 정치엘리트를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한다면 현재 중국공산당 정치국 위원이면서 중앙판공청 주임을 맡고 있는 리잔수(栗战书)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허베이성 핑산(平山) 출신이다. 중국공산당의 중앙판공청은 당 중앙위원회 총서기의 비서업무를 맡는 기관이지만 단순한 비서업무뿐만 아니라 당 지도자들의 경호를 비롯해 기밀문서와 당의 원로 관리 등과 같은 중요한 업무를 맡고 있다.

그곳의 주임이라고 하면 시진핑의 비서실장이라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로 따지면 청와대 비서실장이다. 전임 총리였던 원자바오(溫家寶), 전 국가부주석이었던 쩡칭홍(曾慶紅) 등이 이 중앙판공청 주임을 역임한 바 있다. 리잔수 역시 시진핑과 같이 태자당(太子黨)이다. 그의 할아버지인 리짜이원(栗再温)은 산동성 부성장을 지낸 혁명원로이고 아버지와 숙부 역시 혁명운동에 참여한 혁명가 집안이다.

현재 중국공산당 최고위 정치엘리트를 25명의 중앙정치국위원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중 여성은 단 두 명밖에 없다. 그 중 한 명은 현재 국무원 부총리인 류옌동(刘延东)이고 또 다른 한 명은 중국공산당 중앙통전부장인 쑨춘란(孙春兰)인데 그가 바로 허베이성 라오양(饶阳) 출신이다.

류옌동이 든든한 집안을 배경으로 하여 성공한 여성 정치가라고 한다면 쑨춘란은 정반대이다. 그녀는 시계공장 여공으로 시작해 오랫동안 랴오닝성(辽宁省)의 섬유산업 분야에서 활동하다가 중국 최대의 노동자조직인 중화전국총공회(中华全国总工会) 부주석으로 중앙정계에 진출했다. 랴오닝성 다롄시(大連市) 서기로 재직하며 시진핑에 반대했던 다롄시의 보시라이(薄熙來) 세력을 일망타진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푸젠성(福建省)과 텐진시 당 서기 등을 거쳐 현재 중국공산당 중앙통전부 부장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라 할 수 있다.

허베이성 출신 중국공산당 중앙위원들을 분석해 보면 눈에 띄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먼저 하나는 중앙당교(中央黨校) 출신들이 많다는 점이다. 중국에서 중앙당교는 정치적으로 출세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원한다고 아무나 들어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중국공산당 조직부가 엄밀한 심사를 거쳐 최고위 지도자로 성장할 가능성 있는 인물들을 선정하고 그들 중 리더십, 전문성, 업적 그리고 공산당에 대한 충성심 등을 다면적으로 평가한다. 그렇게 고르고 고른 엘리트만이 들어갈 수 있다. 최고 권력을 향한 엘리트 간 경쟁은 생사를 건 투쟁만큼이나 치열하다. 그런 경쟁 속에서 중앙당교의 입학은 정상으로 가는 든든한 디딤돌이 된다.

21명의 허베이 출신 중앙위원 중 중앙당교를 거친 인물은 모두 10명이다. 거의 절반에 가깝다. 앞에서 언급한 리잔수와 쑨춘란을 비롯해 중앙군사위 위원 겸 인민해방군 총정치부 주임인 장양(张阳), 허난성(河南省) 서기 궈겅마오(郭庚茂), 문화부 부장 뤄수강(雒树刚), 닝샤자치구 서기 리젠화(李建华), 장쑤성 성장 리쉐용(李学勇), 국가안정생산감독관리 총국 국장 양동량(杨栋梁), 안후이성 성장 왕쉐쥔(王学军), 헤이롱장성(黑龍江) 서기 왕센쿠이(王宪魁) 등 모두 중앙당교에서 교육을 받은 경력을 가지고 있다. 중국에서 정통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인물들인 것이다.

다른 특징이 있다면 21명의 허베이 출신 중앙위원 중 군인이 8명이나 된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중국군 최고위 결정기구인 중앙군사위원회에 속한 허베이 출신 장군이 11명 중 3명이나 포진돼 있다. 총정치부 주임인 장양을 비롯해 인민해방군 해군사령원 우성리(吴胜利), 인민해방군 총후근부 부장 자오커스(赵克石)가 그들이다. 중앙군사위 내의 지역 그룹이 있다면 이 그룹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그 밖에 중앙군사위 기율서기 겸 총정치부 부주임 두진차이(杜金才), 인민해방군 부총참모장 쑨젠궈(孙建国)과 왕젠핑(王建平), 인민해방군 해군부사령원 텐중(田中), 전 신장군구 사령원 펑용(彭勇) 등이 허베이 출신이다. 장양이 허베이성 정치엘리트 네트워크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허베이 출신 엘리트 네트워크의 최대 그룹인 중앙당교 출신 인맥과 군 인맥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 허베이성의 정치 엘리트 집단 연결도 ⓒ서상민

한편 전임 후진타오(胡錦濤) 시기 중국의 중앙정계에서 주목을 받았던 세력이 있다. 공청단(共靑團)이다. 허베이가 고향인 공청단 출신 인물들로는 리잔수를 비롯해 민정부 부장 리리궈(李立國), 안후이 서기 장바오순(张宝顺) 정도이다. 산동성 출신 중앙위원 중에는 공청단 출신이 많았던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수이다.

한편 허베이 출신 중앙위원 중 정치인이나 군인이 아닌 인물이 한 명 있다. 중국작가협회 주석을 맡고 있는 톄닝(铁凝)이다. 바오딩(保定) 출신으로 산문집인 <여인의 백야>(女人的白夜)와 <영원은 얼마나 멀까>(永远有多远)로 중국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노신문학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여류작가이다. 그는 한국과도 인연이 있는데, 2003년 서울에서 잠깐 머물면서 있었던 일을 담은 <톄닝 일기-서울에서 있었던 일>(鐵凝日記-漢城的事)을 펴내 국내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사실 인물과 인물 간의 관계를 자세히 알 수 있는 정보가 거의 없기 때문에 외부인이 중국정치의 인맥을 파악하기는 매우 힘들다. 그렇지만 각 인물들의 배경과 경력을 기초로 연결될만한 자료들을 엮어 보면 인맥형성의 개연성을 유추해 볼 수 있는데, 허베이 출신 정치인들의 인맥은 대체로 장양, 리잔수, 쑨춘란을 중심으로 하여 구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허베이 출신 정치엘리트의 인맥구조를 보면 크게 군 인맥과 중앙당교 인맥으로 구분되어 있고 공청단 출신이 약하게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군 인맥과 중앙당교 인맥을 연결하는 허브 역할은 장량, 공청단 출신과 중앙당교 인맥을 매개하고 있는 인물은 쑨춘란과 리잔수인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이렇듯 중국정치엘리트의 출신지역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같은 지역 출신 정치인물을 모아 놓고 자세히 살펴보면 지역마다 색을 갖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시진핑 체제 고위 엘리트들의 분포만 놓고 보면, 상하이와 저장성, 장쑤성 출신의 경우는 경제와 관련된 엘리트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분포되어 있고, 산동성 출신은 행정관료가 다른 지역에 비해 많으며 허베이성 출신은 당관료나 군엘리트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다는 알 수 있다. 이는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중국정치에서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어떤 인적 네트워크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될 수도 있다.


(서상민 교수는 국민대학교 중국인문사회연구소에서 HK연구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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