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진짜 '지구 방위대'! 첫 번째 타깃은 한반도?

[유라시아 견문] 미일 동맹 : 반동의 축

일본 : 속국의 비애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시아-아프리카 정상 회의를 마치고 각국의 정상들은 반둥으로 이동했다. 반둥에서 따로 열린 6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모습이 보이지 않는 몇몇 인사들이 있었다.

일본의 아베 신조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정상 회의가 끝나기 무섭게 일본으로 돌아가 버렸다. 정작 마음은 콩밭에 있던 것이다. 미국 방문이 예정되어 있었다. 반둥 시민들은 각국의 깃발을 흔들며 정상들의 행진에 일일이 박수로 환대했다. 일장기를 들고 있던 어린 학생들만은 끝내 시무룩할 수밖에 없었다.

반둥을 외면한 아베가 미국 상하 양원 합동 연설을 한 날은 4월 28일이었다. 의미심장한 날이다.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이 발효된 날이기 때문이다. 전범 국가 일본이 점령 상태에서 벗어나 주권을 회복한 날이다. 그러나 이상한 복권이었다.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한국과 북조선은 자리에 없었다. 일본에 맞서 제2차 세계 대전의 승전국이 되었던 소련과 신중국도 없었다. 오로지 미국만이 일본의 독립을 허용해준 것이다.

즉, 4월 28일은 훗날 '샌프란시스코 체제' 혹은 '동아시아 (대)분단 체제'라고도 불리는 동아시아 분열의 화근이 된 날이다. 그래서 오키나와에서는 '굴욕의 날(屈辱の日)'이라고 부른다. 본토의 독립에도 불구하고 오키나와는 미군 통치 하에 남았기 때문이다.

오키나와, 즉 왕년의 류큐는 일본 안의 아시아였다. 2015년 4월 28일, 오키나와는 다시 굴욕을 맛보았다. 아시아 또한 재차 모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은 반둥 정신을 버리고, 반동 노선을 택했다. 전후 70년, 평화 국가는 죽었다.

2005년, 일본 유학을 떠났다. 전후 60주년이었다. '8.15'를 도쿄에서 보냈다. 우익들이 총집결한 야스쿠니 신사도 가보았다. 일본을 첫 유학지로 삼은 것은 일본의 선택이야말로 동아시아 공동체의 향배를 좌우하는 열쇠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웃애를 발휘하여 일본의 回心(회심)을 성심껏 돕고 싶었다. 그래야 동아시아가 화평하고 남북 통일의 기운도 무르익을 수 있다고 여겼다.

그로부터 꼬박 10년, 배신감이 자욱하다. 그러나 분노보다는 연민이 앞선다. 미일 동맹 강화는 일본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도 독배이다. 비난하고 성토하기보다는 걱정하고 염려하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미운 정이고, 몹쓸 정이다. 그놈의 의리이다.

아베는 꼭두각시다. 기시 노부스케로 거슬러 오르는 그의 혈통까지 거론되지만, 내 보건데 아베는 철없는 '도련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외조부에 견주어 한참이 모자란다. 그의 책을 두 권 읽어 보았지만, '사상'이랄 것이 없다. 철없는 철부지에 가깝다. 그런 아베를 배후에서 부리고 있는 세력은 외무성과 재무성 등 관료 집단이다.

'동아시아 공동체'를 표방했던 민주당 정권이 조기에 좌초하고 자민당 독주가 복원된 것에도 관료 집단의 몽니가 크게 작용했다. 즉 일본의 핵심 권력은 자민당 막후의 고위 관료들이다.

이들의 국가 전략은 단순하다. 일본을 미국과 일체화시키는 것이다. 착착 진행되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창설하고, 특정비밀보호법을 마련했다. 무기 수출 3원칙도 철폐했다. 마침내 미일 방위 협력 지침 개정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미일 군사 동맹을 지구적 동맹으로 격상시킨 것이다. 이제 자위대가 지구 방위대가 된다.

그런데 아직 의회 비준도 거치지 않은 상태이다. 일방적으로, 그것도 일본이 아니라 미국에서 선포한 것이다. 그래서 비밀보호법이 필요했다. 일본을 미국의 속국으로 삼는 방책을 정부 단독으로 극비리에 추진한 것이다.

미국의 패권 상실을 되돌리기는 힘들다. 대신에 그 시간을 늦출 수는 있다. 그래서 일본은 사력을 다한다. 일본의 정책이 미국의 패권 사수에 맞추어져 있다. 미국에서 금융 위기가 재발되는 것을 방지하고 달러의 연명을 지속시키기 위하여 일본의 중앙 은행은 양적 완화 정책을 무리하게 지속한다. 서태평양에서 미군이 철수하는 것을 미루기 위해서는 오키나와의 기지 건설을 마다하지 않는다.

응당 대미 종속 강화는 일본 국민에게 해가 될 것이다. 양적 완화 정책은 일본의 통화와 금융을 더욱 불안정하게 할 것이다. 오키나와의 눈물도 마르지 않을 것이다. 방위비 부담은 갈수록 늘어날 것이고, 재정은 악화될 것이며, 복지 예산은 줄어들 것이고, 잠재적 테러 위협은 늘어날 것이다. 대미 종속이야말로 일본의 약체화, 재정의 파탄, 빈곤화의 원인이다. 그럼에도 썩은 동아줄을 부여잡고 거듭 제 발등을 찍고 있다. 속국의 맹목이고, 비애이다.

ⓒAP=연합뉴스

미국 : 기생적 패권

속국을 저 지경으로 몰고 있는 것은 그만큼 패권국의 신세가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모순을 노정하며 스스로 권위를 실추시키고 있다. 아베가 양원 합동 연설을 한 미국 하원은 1941년 진주만 공습 다음날,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대일 개전 연설을 한 곳이다. 그래서 망언을 일삼는 일본 수상들의 연설을 단 한 차례도 허가해주지 않았다.

부시가 그토록 어여뻐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도 끝내 연설이 무산되었다. 그런데 그보다 한술 더 뜨는 아베는 허용이 된 것이다. 아니 환영하고 환대해 주었다.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공화당은 물론, 백악관까지도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만큼 미국은 조급하고 다급하다. 그래서 결국 패착을 범했다. 비굴한 선택이었다. 일본의 돈과 힘에 기대서라도 패권을 이어가야한다는 조바심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따라서 일본을 부러워할 것이 전혀 없다. 외교에 공짜는 없다. 극진하고 융숭한 대접이야말로 일본이 미국에 지불해야 할 대가가 그만큼 크다는 반증이다.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TPP)이 그러하다. 임기 말년의 오바마는 마지막 업적으로 TPP 타결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조합과 소비자 단체의 지원을 받는 민주당부터 반대 의견이 적지 않다. 본인이 속한 정당이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베를 내세운 측면이 크다. TPP 협상에서 일본이 미국의 뜻에 충실히 따라만 준다면 민주당 의원들의 반대도 누그러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아베를 미 의회에서 연설시킨 것은 TPP 협상을 마무리 짓기 위한 고도의 연출에 가깝다. 아베는 미국서도 꼭두각시였다.

TPP는 미국의 대기업과 금융계의 이해를 노골적으로 반영한다. 대자본이 정부의 정책을 무력화시키는 신자유주의 기획의 최종판이다. 미국의 대자본이 일본 등 여타 가맹국의 정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독소 조항이 대거 포함될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 전체에 득이 되는 것도 아니다.

미국의 대자본은 이미 글로벌 자본이다. 여차하면 여타 국가의 동종 기업들과 연합하여 자국을 제소하여 미국의 정책마저 변경하려 들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주권 기관인 미국 의회조차 교섭의 핵심 내용을 알지 못한다. 백악관이 독단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달리 말해 대자본이 직접 백악관을 움직이고 있다. 이 미국 판 '정경유착'에 국민의 복지와 사회의 정의는 안중에 없다. 오로지 '악마의 맷돌'만이 기승을 부린다.

이처럼 미국은 속국에 덕을 베풀고 배려를 하기는커녕, 속국을 착취하지 않으면 패권을 유지할 수 없는 기생적 존재가 되었다. 모자란 국방비를 동맹국들이 대신 충당해주어야 하고, 미국 국채를 계속 구매해서 기축 통화로서 달러를 유지해주어야만 겨우 연명할 수 있는 늙은 패권국이 된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병마개로 막아두고 관리했던 일본의 재무장마저 허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기생적 패권에 더 이상 도덕적 권위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권위가 수반되지 않는 권력의 추락은 시간의 문제이다. 조짐은 이미 자카르타에서부터 보였다.

블록(Bloc)과 네트워크(Network)

아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가 열렸던 자카르타에서는 동아시아 세계경제포럼도 동시에 열리고 있었다. 여기서는 캄보디아 총리 훈센의 개막 연설이 화제가 되었다. 미국이 TPP를 통하여 아세안을 반 토막으로 쪼개려 든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반둥 회의 60주년인 2015년은 아세안에도 획기적인 해이다. 올 12월이면 아세안 경제 공동체(AEC)가 출범한다. 냉전기의 진영 논리와 분리 통치를 넘어선 평화와 번영의 동남아 시대가 목전에 달한 것이다. 출범 과정도 모범적이었다. 특정 국가의 독주 없이 대/소국 간의 '합의제 민주'를 구현하며 바림직한 지역 통합 모델을 제시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환태평양'으로 줄을 서라며 아세안 국가들의 분열을 촉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미일 양국이 비밀리에 협상을 주도하고 나머지는 따르라는 식의 구태를 보이고 있다. 서구가 규칙을 만들고 비서구는 체스 판의 졸로 삼았던 20세기형 지정학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누습이고 적폐이다.

따라서 작금의 형세에 어설픈 중립은 성립하지 않는다. 미일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취해야 한다는 입 발린 소리는 지적 허위이고, 사기이다. 가슴이 아프지만 두 눈을 질끈 감고 '동아시아 공동체'는 당분간 접어두는 편이 낫다. 당장 일본에 대안 세력이 부재하다. 있다 해도 한 줌이다. 야당은 허약하고, 재야와 학계에는 정치적 실천력을 수반하지 못한 입진보가 허다하다. 한국의 사상계도 일본의 담론을 수입 가공하던 백년의 구습을 떨치고,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自强(자강)해야 한다.

작금의 길항은 미중 간의 패권 경쟁이 전혀 아니다. 覇道(패도)를 부리는 세력과 王道(왕도)를 소망하는 세력 간의 일합이 있을 뿐이다. 반동파와 반전파의 길항이다. 구체제와 '신상태(New Normal)'의 대결이다. 20세기와 21세기의 충돌이다. 미일 동맹은 반동의 축이다.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강화하여, 동아시아 분단 체제의 심화를 솔선하는 '惡友(악우)'이다.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은 미 군사력의 60%를 아시아에 투입하여 패권을 고수하려는 추한 노욕이다. 이로써 중국에 숨죽이고 있던 군사 강경파들을 격발하여 '화평굴기'를 좌초시키고 '조화 세계'를 파괴하는 신냉전을 획책한다. 애당초 20세기의 '냉전'부터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세계를 지배하려던 미국발 패권책이 아니었던가.

무릇 제 버릇 남 주지 못하는 법이다. 미국은 지난 세기 뉴욕 발 세계 공황의 위기를 제2차 세계 대전으로 극복했다. 베트남 전쟁도 이라크 전쟁도 거짓 선동으로 일으켰다. 북조선을 핑계로 수작을 부릴지 모른다. 일본은 두 손 들고 환영할 것이다. 마침내 한반도 재진출이라는 숙원을 풀 기회가 열린다. 그들의 20세기를 보노라면 전혀 허황한 시나리오가 아니다.

1905년 가쓰라-테프트 밀약으로 필리핀과 한반도의 지배교환을 승인했던 나라가 일본과 미국이었다. 조선의 식민지 전락과 남북 분단과 한국 전쟁이라는 100년 비극의 뿌리에 미일 동맹이 있었다. 20세기 동아시아 天下大亂(천하대란)의 원흉이 미일 동맹이었던 것이다. 미군은 이미 철수했던 필리핀에 다시 진입했다. 이제는 일본이 한반도를 호시탐탐할 차례이다. 하여 뜬구름 잡는 균형 감각일랑 거두어들일 일이다. 직시하고, 직면해야 한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를 쪼개고 나누는데 여념이 없다. 일본은 그 반동적 책략을 거드는 아시아의 주구이다. 천만다행인 것은 지금의 중국이 100년 전 대청제국이 아니라는 점이다. 병든 대국이 아니라, 건국 60년을 갓 지난 싱싱한 새 나라이다. 냉전형 사고는 진즉에 버렸다. 반동의 지정학(Bloc)에 반전의 지경학(Network)으로 반격을 가하고 있다. 한쪽은 담을 쌓고 진을 치는 반면에, 다른 쪽은 길을 닦고 망을 엮고 있는 것이다. 2015년,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 있는 쪽은 70년 전(제2차 세계 대전)과 마찬가지로 일본이 아니라 중국이다.

중국이 구축하고 있는 유라시아 연결망의 한 축으로 파키스탄이 있다. 시진핑은 자카르타/반둥으로 오기 전, 파키스탄을 들렸다. 굵직한 합의들이 여럿 이루어졌다. 살펴보지 않을 수 없겠다. 다시 남아시아로 눈길을 돌린다. 모름지기 바쁠수록 돌아가야 하는 법이다. 서두르면 자빠진다. 안달하면 오판한다. '전략적 인내'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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