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셔라 대한민국! 아이유와 함께 '음주천국'

[정희준의 어퍼컷] '아이유 법' 좌초 유감

이영애, 김태희, 고소영, 장동건, 채시라, 손예진….

10여 년 전 즈음에 유명 아파트 광고에는 이정도의 어마어마한 연예인들이 모델로 출연했다. 그런데 2007년 경제정의실천연합(경실련)은 이들에게 공개서한을 보낸다. 첫 삽도 뜨지 않은, 짓지도 않은 아파트를 연예인의 이미지와 맞바꿔 팔아치우려는 건설사의 의도를 고발하면서 이들에게 출연 자제를 촉구한 것이다. "아파트 광고는 마약보다 나쁘다"면서.

비슷한 시기 최민식, 김하늘, 최수종 등의 유명 연예인들이 출연하는 대부업 광고가 줄을 이었다. 개그우먼 김미려는 광고에서 "무이자, 무이자, 무이자~"를 샹송 부르듯이 불렀다. 효과는 대박이었다. 사실상 '마약' 수준이었다. 이 노래를 코흘리개 꼬마들까지 거리에서 부르고 다녔다.

당시 아파트 광고와 대부업 광고로 인한 사회적 논쟁은 적절한 것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문제 제기에 동의했다. 물론 찬반이 없진 않았지만 생산적 논쟁이었다. 그래서인가 지금 메이저 건설사의 아파트 광고에서 연예인을 찾기 쉽지 않다. 대부업 광고에서도 연예인은 보이지 않는다.

아이유 건드리면 다친다!

아이유 소주 광고를 놓고서 한바탕 시끄러웠다.

만 24세 이하의 사람이 방송, 신문, 인터넷 등에서 주류 광고에 출연하는 것을 금지하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이 지난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하면서부터다. 이 법이 발효되면 현재 22세인 아이유가 현재 하고 있는 소주 광고를 못 하게 된다. 그래서 '아이유 법'이라 불렸다. 새누리당 이에리사 의원이 발의한 이 법안은 결국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그런데 한 여론 조사 결과가 다시 한 번 관심을 끌었다. 한국갤럽이 "국민 10명 가운데 6명은 만 22세 가수 아이유의 소주 광고 출연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여론 조사 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아이유가 소주 광고에 출연하는 것을 놓고 성인 60%가 '문제 될 것 없다'고 답했고 '문제가 된다'는 33%에 그쳤다.

재미있는 점은 유명인의 술 광고 출연 역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사안임에도 법안을 발의한 이에리사 의원만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는 점이다. 공청회 등 여론 수렴 과정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긴 하지만 어쨌든 법안을 발의하면서 이렇게 온갖 조롱과 비아냥거림이 난무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그런 법은 심하다'면서도 아무도 아무런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절충안도 없고 사회적 논의 제안도 없다. 그냥 안 된다는 것이다. 평소엔 그토록 외국의 제도를 맹신하더니, 이 법만은 예외다. 그건 그 나라 일이라는 듯, 우리와는 상관이 없다는 듯했다.

청소년 음주 문제는 이렇게 내팽개쳐졌다. 왜 그랬을까. 다들 술에 절어서 그런 것일까.

이 개정안은 원래 김연아 때문에 시동이 걸렸다. 2012년 당시 대학생 신분으로 교생 실습 중이었던 김연아가 하이트 맥주 광고에 출연한 게 그 발단이었다. 이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있자 이에리사 의원은 젊은 유명인의 주류 광고가 청소년의 음주를 조장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연예인, 운동선수 등 청소년에게 심대한 영향력을 가진 만 24세 이하의 인물이 주류 광고에 출연하는 것을 금지하기 위해 법안을 만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막상 김연아는 25세가 되어 나이 제한을 벗어났고 지금은 아이유가 그 대상이 되면서 이 문제는 엉뚱하게 '아이유 광고 출연 금지'라는 다소 선정적이면서도 이분법적 논란으로 흘러가 버렸다. 그러면서 이 문제는 '꼰대' 이에리사와 막강 삼촌 팬 군단을 거느린 아이유 간의 힘겨루기가 됐다. 이에리사가 이길 수가 없는 게임이었다.

ⓒhitejinro.co.kr

광고 영향 없다는 바보들

이 법안이 주저앉은 이유, 욕을 먹은 이유가 있다. 19세면 술을 마실 수 있는데 광고만 못 찍게 하는 것은 문제라는 점. 둘째, 24세로 정한 근거가 무엇이냐는 점.

우선 연령 문제다. 열아홉 살이면 술 마실 자유가 있다. 그런데 자신이 특정한 권리를 갖는 것과 자기가 남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위치에 서는 것은 때로 분리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19세부터 투표를 할 권리가 주어진다. 국회의원도 뽑을 수 있고 대통령도 뽑을 수 있다. 그러나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서는 25세를 넘겨야 하고 대통령이 되려면 40세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24세' 가지고 시비 거는 사람들이 참 많다. 25세였으면 괜찮나? 10단위로 끊어 30세면? 흔히 '청소년'이라 하면 청소년보호법에서는 중·고등학교에 해당하는 만 13세 이상 19세 미만을 뜻한다. 하지만 또 청소년기본법에 따르면 만 9세에서 24세의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 이에리사 의원도 청소년기본법의 24세를 선택한 게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나이는 법안을 가지고 논의와 협상을 거치면 될 것이지 그 숫자가 마음에 안 든다고 "집어치우라"는 식으로 나올 일은 아닌 것 같다.

개정안 반대 주장 중엔 유명인의 출연이 청소년의 음주를 조장한다는 인과관계가 입증이 되지 않았다는 것도 있다. 간단히 말해 유명인이 광고 출연 때문에 술 마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만약 그렇다면 이제까지 수억 원 들여 특급 스타만을 고집해온 주류 회사와 광고 회사는 바보 천치라는 이야기가 된다.

유명 연예인, 특히 아이돌과 스포츠 스타의 주류 광고가 청소년 음주에 영향을 미치는가, 미치지 않는가. 나의 결론은 이렇다. '영향을 많이 미친다'는 주장에는 찬반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주장은 틀려도 한참 틀렸다. '영향력의 정도'는 따져볼 문제이지만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엔 논란의 여지가 없다. 빅뱅 같은 아이돌 연예인이 술 광고에 출연했다. 과연 누구를 노리겠는가. 지식인을 노리겠는가?

법 이전에 상식과 양식의 문제

주류 광고 연예인 출연과 음주 조장의 인과관계를 증명하라는 것은 어린이 자전거 헬멧 착용과 안전과의 인과관계를 증명하라는 요구와 마찬가지로 상식 밖의 주문이다.

2012년 김연아가 맥주 광고에 출연했을 당시 한국중독정신의학회는 김연아의 맥주 광고 출연이 청소년의 음주를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하면서 "청소년이 특히 동일시하기 쉬운 또래의 스포츠, 아이돌 스타가 출연하는 광고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은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고 이미 설명했다.

이번 '아이유 법' 개정안이 보류됐을 때에도 중독예방시민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개정안의 통과를 촉구하면서 "미성년 시기를 막 넘긴 인기 스타의 주류 광고 출연은 또래 문화와 모방성을 특징으로 하는 청소년에게 음주 행위를 부추길 수 있으므로 금지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정리해보자. 인과관계가 있나, 없나? 아무리 양보를 하더라도 '인과관계가 없지는 않다'라고 하는 게 타당할 것이다.

우리는 아파트 광고, 대부업 광고와는 달리 왜 이렇게 술 광고에는 관대할까. 청소년에 미칠 영향까지 못 본 체 하면서 말이다. 아이유가 광고하는 소주에 모두들 취해서인가. 아니면 미소 짓는 아이유에게 이미 세뇌된 것인가.

서구 사회에서 연예인을 포함한 유명인들이 주류 광고에 절대 출연하지 않는 것은 상식이다. 술은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해 발암 물질로 지정되어 있고 서구에서는 스포츠 스타 등 인기인의 주류 광고를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미국은 메이저리그 선수 등 스포츠 선수의 주류 광고 출연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주류 회사들도 청소년이 좋아하는 인기인들은 모델로 쓰지 않는다. 영국도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 있는 유명인의 술 광고 출연을 금지시키고 있으며, 독일과 프랑스는 주류 광고 자체를 금지시키고 있다.

연령도 규정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 모두 24세도 아닌 25세까지 금지시키고 있고 심지어 '25세 이상으로 보이는 자'만이 출연할 수 있다. 나이가 되더라도 어리게 보이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규정에 따르면 아이유처럼 너무 어려 보여서 영락없이 미성년자로 보이는 사람은 25세가 넘더라도 광고 모델이 될 수 없다. 이렇게 법으로 금지시키기 않더라도 어쨌든 유명인은 출연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용납하지 않기도 하지만 이는 상식이고 사회적 책임이다.

진격의 '음주 대한민국'

이번에 개정안이 보류됐다고 해서 유명인의 주류 광고 출연 문제를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 이는 우리의 음주 문화가 이미 대단히 잘못 됐기 때문이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술 소비량은 감소 추세지만 우리나라의 1인당 술 소비량은 늘고 있을 뿐 아니라 특히 독주인 증류주 소비는 단연 세계 1위다.

한국의 증류주 소비량은 이웃나라 일본의 3배, 중국의 8배이다. 또 미국의 4배, 프랑스의 5배, 영국의 6배다. 세계 최고의 주당으로 꼽히는 러시아인의 2배라니 말 다했다.

대학을 가보라. 바로 몇 년 전까지 축제가 열리는 5월이면 한국의 모든 대학은 거대한 술판이었다. 학생회, 동아리 가릴 것 없이 술집을 열어 술집을 피해서는 단 한 걸음도 옮길 수 없을 정도였다. 그렇다. 대학 들어가 가장 먼저 배우는 장사가 술장사다. 그리고 그 수익금으로 무엇을 해? 술집 가서 술 먹었다.

정부가 교내 주류 판매를 금지했지만 대학생은 계속 퍼마신다. 오리엔테이션, 엠티, 일일호프를 하며 술판을 벌인다. 외국의 대학생들도 술을 마시고 게임 등을 하며 술을 강권할 때도 있지만 그래봐야 맥주 한 캔, 위스키 한 잔이다. 우리처럼 소주 세 병을 냉면 그릇이나 트로피에 부어 단번에 들이켜야 하고, 입 안 떼고 생맥주 1700시시(㏄)를 마시면 박수 치는 그런 무식한 경우는 없다. 그래서 거의 매년 신입생이 죽어나가지 않는가.

어른들은 다른가. 남성들은 저녁 때 술이 없으면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늦게 오기만 해도 '후래자 3배'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밤이면 싸돌아다니며 1차, 2차, 3차 술집 릴레이를 한다. 새벽이면 해장을 위해 한잔 더 해야 한단다. 그 힘으로 집에 가서 가족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청소년기의 음주가 성인기 폭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는 무수히 많다.

'음주 대한민국'은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 청소년의 34%가 정기적으로 술을 마시는데 이는 아시안 청소년 음주율 16%의 두 배가 넘는 수치다. 이들에게 왜 마시냐고 물어보니 34%가 "한인이라면 술을 마실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단다. 정말 자랑스럽지 않은가.

'아이유 법' 논란 유감

한국갤럽이 설문 문항을 "아이유의 소주 광고…"라고 하지 않고 "유명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의 술 광고…"로 했다면 결과가 어땠을까. 아이유로 특정해서 묻지 않았다면 결과는 분명 달랐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랬다면 지금과 같은 '24세 논란'도 없었을 것이다.

사실 한국갤럽의 여론 조사는 이 법안의 취지를 '청소년 음주 예방을 위한 유명인의 주류 광고 출연 금지'에서 '아이유 광고 금지'로 바꿔버렸다. 아이유는 이미지가 아주 좋은 연예인일 뿐 아니라 엄청난 '삼촌 팬'을 거느리고 있다. 우리나라 남성 대부분은 한 손엔 소주병 들고 또 다른 손으로는 머리 위에서 소주잔을 털며 웃는 아이유의 깜찍한 모습에 이미 친숙해져 있다. 스스로가 애주가이고 오랫동안 보아온 소주 광고인데 이제 와서 안 된다고 할 이유가 뭐 있겠는가.

이번 논란을 지켜보며 한국 사회는 술에 대해서는 놀라우리만치 관대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아이유의 사회적 영향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새삼 다시 한 번 느꼈다. 국회의원을, 그리고 너무나 상식적인 법안마저 고꾸라트렸다.

그렇다. 우리는 한국인이다. 다 함께 취하자. 아이유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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