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게임의 최종 승자는 북한?

[2015, 이제는 평화] 한반도 사드 배치, 무엇이 문제인가 ② - 사드, 거꾸로 선 합리성

2015년은 해방과 한반도 분단 70년이 되는 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한반도의 평화는 여전히 요원해 보입니다. 70년 전, 일본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의 비극은 핵무기가 인류에 미치는 재앙적인 영향을 생생하게 보여주었지만 갈등과 대결, 군비경쟁의 악순환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 위협, 그에 따른 미국 핵 자산의 한반도 진입과 일본의 재무장, 그리고 여기에 대응하기 위한 중국의 군사력 확충까지 한반도를 둘러싼 국가들의 군비 경쟁은 70년이 지난 지금 당시보다 더 심각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 불안하고 위험한 악순환의 고리를 언제까지 그냥 두어야 할까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과 참여연대는 이 악순환의 출발 지점인 정전체제의 한계를 진단하고, 한반도에 살고 있는 시민들의 안녕과 평화를 보장하는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2015, 이제는 평화' 연재를 시작합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진을 통해 현안에 대한 분석과 대안, 국방·외교 분야를 바라보는 평화적인 관점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우선 최근 논란이 됐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반도 내 배치 문제를 다루는 4편의 연재를 시작합니다. 사드 문제를 기존의 '국익'과 '안보' 관점에서 벗어나 '평화'의 관점을 바탕으로 다각적인 문제의식을 독자 여러분들과 공유하려 합니다. 이를 통해 '미국이냐, 중국이냐'의 강박증과 공포감에서 벗어날 것을 제안드립니다.


▲ 2013년 2월 12일 북한 조선중앙TV에서 '제3차 지하핵시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조선중앙TV=연합뉴스


심리학자 제닝스(Irving Janis)는 1961년 쿠바 피그스만 작전의 참혹한 실패 원인을 당시 미 정책 결정자들의 '집단사고'(group thinking)로부터 찾는다. 작전 수립 과정에서 케네디 행정부의 정책 결정자들이 상호 간의 의견합일을 중요하게 생각한 나머지 충분히 발생 가능한 상황들을 무시하는 비합리적 행태를 보였다는 것이다.

한반도 역사에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일어나기 직전에도 이같은 정책 결정자들의 집단사고가 나타난다. 조직의 논리에 함몰된 당시 정책 결정자들은 일본과 후금의 침공이라는 명확히 예측 가능한 사실을 무시해 버렸던 것이다. 그 결과 수백만 한반도 주민이 끌려가고 죽임을 당했다.

불행히도 최근 사드 배치론자들의 주장에서 이러한 집단사고의 징후가 엿보인다. 사드 배치가 초래할 결과들에 대한 합리적 판단은 없고 사드만 배치하면 한국의 안보가 완벽히 지켜질 것이라는 사드 만능론이 난무한다. 사드 비판론을 '종북'으로까지 몰아붙이는 걸 보면 그들에게 사드는 이미 이데올로기가 되어 버렸다.

'합리적 선택'이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수단과 행동을 취하는 것이다. 사드가 신앙이 아닌 정책 결정에 관한 문제라면 그 배치는 당연히 합리적 판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따라서 사드 배치의 최우선 고려대상은 사드가 북한의 핵위협을 과연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무엇보다 미국 국방부 내에서조차 제기되는 사드의 기술적 한계가 모두 극복된다고 하더라도 '사드 배치=북한 핵 위협 무력화'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사드 배치가 오히려 북·중 동맹을 강화해 장기적으로 북한의 핵무기 능력을 키우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 세계는 모든 사물이 균형을 찾아가려는 속성을 가진다. 국제정치에서 국가 간 세력균형 역시 일종의 물리현상이다. 사드 배치를 통해 한미동맹이 공고화될수록 중국은 북·중 동맹을 강화해 한미동맹에 대항할 것이란 예측은 너무나 상식적이다. 이미 중국 내에서 한국의 사드 배치 시 최신 전투기를 북한에 판매할 수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더욱이 사드가 배치될 경우 중국이 북핵 문제에 대한 기존의 입장을 조정할 가능성도 다분하다. 중국이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해 실질적인 제지를 하지 못했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안전핀 역할을 해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중국은 6자회담을 적극적으로 주재하고 대북지원 혹은 은밀한 대북압력 등을 통해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이 최소한 한반도 분쟁으로 발화되는 것을 방지해 왔다. 북한 역시 자신의 지정학적 가치를 활용해 동맹 강대국인 중국을 당황스럽게 해왔던 것이 사실이나, 종국에는 중국의 요구대로 벼랑 끝 전술을 종결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지난 1, 2차 북핵 위기와 이후 북한의 핵실험을 둘러싼 일련의 과정은 이를 방증한다.

한국의 사드 배치는 북핵 문제에 대한 이러한 중국의 관리 의지를 감퇴시킬 수밖에 없다. 중국은 이제껏 견지해왔던 '한반도 비핵화' 입장을 조정할 가능성도 있다. 심지어는 북한의 핵 개발을 암묵적으로 지원할 가능성마저 있다. 핵보유국 인도를 견제하기 위해 파키스탄의 핵 개발을 도왔던 선례를 비추어 보면 얼마든지 현실 가능한 시나리오다. 미국이 핵우산 아래 한국을 편입시키는 안보전략을 구사한다면, 중국은 북한의 핵 개발을 지원해 대미 균형 전략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이이제이' 전략이다. 한국으로서는 북핵 문제 관리에 있어 중국이라는 매우 중요한 전략적 자산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사드 게임'의 최종 승자는 아이러니하게도 북한이 될 가능성이 크다. 최대 후견국인 중국의 지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아무리 북·중 관계가 소원해졌다고 해도 군사‧안보적, 경제적 측면에서 중국은 북한 정권의 생존을 담보해주는 최후의 안전판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이 사드 배치에 대해 명시적으로 비난하는 것이 과연 북한의 속내인지는 알 수 없다. 합리적으로 판단하면 북한은 오히려 사드 배치를 누구보다 환영할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하다.

사드 배치론자들은 이렇게 명확히 예측 가능한 상황들을 고려하고 있는가? 그들이 주장하는 '국가 이익'은 사드 배치로 오히려 훼손된다. 주권국가인 한국이 왜 중국의 눈치를 봐야 하느냐는 불만은 날아오는 총알도 피할 수 있다는 청말 의화단의 순진한 사고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 순진함은 일시적으로 자존감을 충족시킬진 몰라도 먹고 사는 문제에는 하등의 도움이 안 된다. 강대국 놀음판인 국제정치의 불편한 진실일 뿐이다.

강대국 사이에 위치한 약소국은 자신의 외교술이 얼마나 기민하냐에 따라 강대국 간 관계를 이용할 수도, 그 속에서 피해를 볼 수도 있다. 일반 상대성 이론이 설명하듯, 중력은 가속도로 상쇄될 수 있다. 약소국은 강대국과의 비대칭적 세력관계를 민첩한 외교로 돌파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민첩한 외교의 첫 단추는 바로 자신을 둘러싼 강대국 간의 그리고 강대국과의 관계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다. 그 전제 하에서 신중한 전략과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강대국을 설득시키는 것이 합리적이다.

중국에게는 사드 배치를 카드로 북핵 문제에 대한 보다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하고 미국에게는 사드 배치가 미·중 관계를 훼손시키며 아울러 중국의 대북 영향력을 확대시킬 것이란 사실을 설득시킬 수도 있다. 사드는 실전 무기가 아니라 전략적 카드로 쓰일 때야 비로소 그 효용이 생기는 것이다. 사드 배치론자들은 과연 이 모든 상황들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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