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화 최고 걸작은?

[귀농통문] 세상을 바꿀 농부들의 교과서 <퍼머컬처>

생명주의의 혁명론

그동안 친환경유기농 철학에는 생명주의는 있지만 사회개혁 철학, 곧 혁명론이 없는 게 마뜩하지 않았다. 지금 사회는 분명 극단적인 반생명주의 사회이고 당연히 반생명 사회를 혁명적으로 바꿔내야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런데 혁명론이 없는 이런 생명주의는 종종 종교적 신비주의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 신비주의는 결코 혁명론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를 외면하는 은둔주의로 왜곡되든가 극단적으로는 사회의 문제를 가리고 혹세무민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오늘날 가장 건강한 생명주의는 생활협동조합 공동체로 발전한 경우일 것 같다. 우리 사회의 소중한 실천이자 실험이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이 협동조합에도 사회개혁보다는 대안운동에 중점이 있고 현실에서는 소비자 공동체 운동으로 드러나 사회를 개혁하는 힘 있는 대안으로 나서는 데에는 한계가 느껴진다는 점이다.

분량이나 크기 면에서 꽤나 무게감을 주는 <퍼머컬처>(데이비드 홈그렌 지음, 이현숙·신보연 옮김, 보림출판사 펴냄)라는 책은 그만큼 서평을 쓰기에도 꽤나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농사 책인 줄 알고 가볍게 마음먹었다가 그게 아닌 것을 깨달으면서 부담은 더욱 커졌고, 원문의 느낌을 최대한 살린 진지한 번역 탓에 낯선 영어식 표현들로 두 번씩 읽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한 줄 한 줄 읽어가면서 나도 모르게 독서삼매경에 빠져 들어갔다. "이야, 이러다가 어느 세월에 서평을 쓰지?" 할 정도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사실 지금도 마감에 쫓겨 완독하지도 않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이다. 글을 써내려가며 못 읽은 부분을 마저 읽을 생각에…. 사실 나는 글을 쓸 때 참고 자료를 다 읽고 쓰는 게 아니라 글을 써가며 참고 자료를 찾아 읽는 이상한 버릇이 있다. 아무튼.)

이 책이 나를 빨아들인 것은 농사 얘기에 사회개혁 철학, 곧 혁명론이 들어 있다는 점이다.

"사용가능에너지가 풍부한 사회는 수많은 위계체제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지만 그 후에는 사용가능에너지가 줄어든 사회로 복귀할 수밖에 없음을 인식해야 한다. … 점점 더 자연에 의존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는 심층 문화혁명이 필요하다. … 에너지를 적게 사용하는 지속가능사회를 지탱하는 데 필요한 식량과 자원을 마련하기 위해 자연과 함께 일하는 생활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퍼머컬처는 사용가능에너지가 줄어든 시기에 걸맞는 설계규칙과 가치척도를 인식하고 이를 윤리적이고 능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경로를 제공해주는 생태적 합리주의이다."(<퍼머컬처> 127쪽)

그러니까 요즘 말로 오일피크 이후, 곧 사용가능에너지가 줄어들게 되면 자연으로 돌아가는 혁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젊어서 마르크시즘에 심취했을 때 특히 질적 변화를 가져오는 사회주의 혁명론이 내 마음을 사로잡은 적이 있었다. 독재와 독점, 부조리와 불공정이 판치는 사회에서 마르크시즘 혁명론은 나 같은 젊은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들이기에 충분했다. 마르크시즘에 의하면 자본주의가 발달해 극에 달할 때 절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난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자본주의가 극에 달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다가오지 않는다. 실제로 러시아를 비롯해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난 나라들을 보면 자본주의가 극에 달해서 일어난 사례는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봉건적 잔재가 강하게 남아 있던 자본주의 후진국에서 일어나거나 그보다 더 후진적인 식민지 국가들에서 일어났다. 자본주의가 극에 달하고 있던 서유럽에서는 혁명의 시도들이 있었지만 성공한 사례는 하나도 없었다. 후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성공한 혁명조차 대부분 반혁명에 의해 원래대로 돌아가거나 중국과 베트남, 쿠바같이 반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나라조차 사회주의는 색 바랜 옛날이야기가 된 채 스스로 자본주의로 돌아갔다. 아주 이상한 북한의 경우만 빼고….

반면 <퍼머컬처>의 사회개혁론은 언제 혁명이 오는지 그 지표가 분명하다. 위의 인용문에서처럼 사용가능한 에너지가 줄어들게 될 때, 그러니까 대표적으로 오일 생산이 정점을 찍었을 때 자연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심층 문화혁명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특히 심층 문화혁명이 갖는 함의가 심오하다. 이전 사회주의 혁명들은 대부분 권력혁명이었다. 그리고 권력혁명들은 대부분 반혁명에 의해 무너졌고 사회는 옛날로 돌아가버렸다. 권력혁명이 아닌 문화혁명은 반혁명을 불러들이지 않는다. 인위적인 권력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퍼머컬처는 … 정부를 압박하기보다 … 개인, 가정 그리고 지역공동체의 자급과 자기규제 역량을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 이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다."(<퍼머컬처> 127~128쪽)

그리고 이런 사회개혁철학은 방법론적으로도 더욱 심화된다.

"상향식 협동 행위는 텃밭에서든 공동체에서든 퍼머컬처 행동의 토대이며, … 하향식(본질적) 사고, 상향식(풀뿌리) 행동은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로 발전한다. 그리고 근본적인 상향식 전략은 자기 자신에서 시작해서 대규모 변화를 추동해가는 것이라고 정리한다. 말하자면 근본의 혁명은 자기 자신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어떻게 거대한 사회개혁이 초라한 개인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단 말인가? 의식화된 개인들이 모여 조직을 만들고 조직이 모여 권력을 만들고 권력이 결국 혁명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기존 구태의 혁명 방법론일 뿐이다. 이야말로 하향식으로 사고하고 하향식으로 행동하는 것일 뿐이다.

개인의 발견

▲ <퍼머컬처>(데이비드 홈그렌 지음, 이현숙·신보연 옮김, 보림출판사 펴냄) ⓒ보림출판사
근대화의 최고 걸작은 아마도 개인(ego)의 발견일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열지 말았어야 할 판도라의 상자였다. 그런데 판도라가 놀라서 얼른 닫은 상자에 희망이 남아 있었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보면서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런데 왜 판도라의 상자에서 튀어나온 것이 에고(ego)일까? 이 에고(ego)야말로 동양식으로 얘기하면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을 만들어내는 근본이다. 요즘 사람들은 기쁘고(喜), 즐겁고(樂), 사랑하고(愛), 하고 싶은(慾) 것에 너무 집착한다. 요즘처럼 사랑한다는 말이 난무하는 때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이혼율은 늘어만 가고, 즐거움을 갈구하면서 우울증, 자살률이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행복하기를 집착하면서 행복지수는 세계 최저 수준이고 하고 싶은 것은 많으나 돈이 없는 청년실업자들은 늘어만 간다. 결국 근대화로 태어난 개인은 기뻐할수록 노여움이 생기고, 즐거울수록 슬픔이 생기고, 사랑할수록 미워하는 마음과 욕심이 생기는 원리를 알지 못한다. 세상을 지배하는 상업주의는 더욱 상품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사랑과 기쁨과 즐거움만 강조하지만 그 이면의 그림자로 사람들은 더욱 괴롭기만 하다. 그래서 근대화로 태어난 개인의 발견은 인간에게 걷잡을 수 없는 불행의 늪, 희노애락애오욕의 노예로 끌어들였다.

근대화 이전의 인간들은 공동체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었다. 한 개인은 관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었고 관계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가 없었다. 특히 공동체가 발달한 사회일수록 더욱 그러했다. 개인은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고 관계로 불렸다. 그런 사회에서 개인의 발견을 나는 역사적으로 큰 불행한 사건이라 생각했다. 개인이 발견되면서 공동체가 깨지기 시작했고 소통과 연대라는 소중한 문화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판도라의 상자로 비유한 것인데…. 아직 판도라의 상자에서 나오지 못한 희망이 있었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기억해낼 수 있었다.

세상을 바꾸려면 나부터 바꿔라

개인의 발견이 불행의 씨앗이 아니라 세상을 바꿀 근본의 발견일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의 저자 데이비드 홈그렌은 역설하고 있다. 근대화가 개인의 발견이라는 불행을 가져다주었지만 그 이면에는 희망이 도사리고 있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현대에 개인주의가 출현하면서 개인은 나름의 생활방식을 선택함으로써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상향식 변화를 일으킬 절호의 기회가 도래했다 할 수 있다."(<퍼머컬처> 132쪽)

그럼 상향식 변화를 일으킬 그 개인은 어떤 사람일까?

"중앙 호주 원주민들은 백인이 당나귀와 토끼를 들여와 호주의 생태를 망친 것을 알지만 그 동물들을 없애는 것에 반대한다. 당나귀와 토끼도 호주의 구성원임을 인정한 것이다."(<퍼머컬처> 40쪽)
백인이 자기들 먹으려고 가져온 토끼 두 마리가 호주의 생태계를 엄청나게 망가뜨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호주에는 토끼를 잡아먹을 천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토끼의 번식력은 거의 핵폭탄 분열 수준으로 퍼져갔다. 호주에 들어간 토끼는 호주의 풀이란 풀은 다 갉아먹어 치웠다. 호주에선 이 일을 래빗페스트(rabbit pest)라고 말한다. 또 호주의 토양은 늙은 지질이어서 풀이 뜯긴 대지는 다시 살아나기 힘들었다. 토양이 젊어 비옥해지려면 화산이 터져 유기물이 풍부한 새로운 흙이 생기거나(일본, 인도네시아 등), 빙하가 온난화로 물러나 빙하의 유기물이 쌓이거나(유럽), 지반이 융기하여 새로운 땅이 생기거나(유럽 알프스, 히말라야 등) 해야 하는데 호주의 땅은 그런 곳이 매우 드물었다.2)

그렇게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망가뜨린 토끼조차 자기들 영역의 새로운 식구로 받아들이는 원주민의 태도야말로 이 책의 저자가 주목하는 세상을 바꿀 개인이 아닐까?

자신(개인)을 바꿔 세상을 바꾸라는 구호는 퍼머컬처의 남다른 혁명론이다.

"그 개인은 지속불가능한 상품과 용역에 의존하는 소비자에서 정당한 부와 가치를 생산하는 책임 있는 인간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과 지구 공동체는 물론이고 환경에 영향을 주고받는 구조를 충분히 자각해야 한다."(<퍼머컬처> 131쪽)

이어서 인용해보자.

"대개 제도는 보수성을 띠지만 지금의 변화를 제도가 적응하기에는 너무 강력하고 빠르다. 이럴 때는 개인과 소집단이 전면에 나서서 새로운 시대에 걸맞게 문화를 바꿔나간다."(<퍼머컬처> 132쪽)

종종 법과 제도는 부패하기까지 한다. 사용가능에너지가 정점을 찍어 기존의 법과 제도가 위기를 관리할 수 없어질 때 법과 제도의 부패와 붕괴는 본격화할 것이다. 이때 자각한 개인과 소집단의 위력이 드러날 것이다. 바로 하향식(근본적)으로 각성하고 상향식(풀뿌리)으로 행동하는 개인과 소집단들의 힘 말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세상을 바꿀 개인은 추상적이다. 저자는 그 개인을 책의 후반부에 가서야 조금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퍼머컬처 설계과정에서 사람들이 자기 집과 텃밭에 대해 체계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사는 방식을 자각해가는 모습을 발견했다.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면 외부 환경보다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는 쪽이 더 쉽고 빠르며 좋은 방법임을 알 수 있다. '세계를 바꾸려면 자신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격언이 진실임이 드러나는 것이다. 퍼머컬처는 먼저 텃밭을 설계하고 관리하면서 자신에게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 특히 식량을 공급하는 외부 체계에 관심을 갖는다. 이런 방식은 우리가 창조적 변화를 일으키려 할 때 유용하다."(<퍼머컬처> 321쪽)

관념적으로 의식화된 개인이 아니라 텃밭을 통해 몸과 마음이 혁신된 개인이 외부 세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정도의 개인들이 무슨 힘이 있다고 세상을 바꿀까? 저자에게 이런 의문은 우문에 불과하다. 힘이 아닌, 그러니까 권력이 아닌, 문화로 바꾸어가는 것, 그래서 하향식으로 각성하고 상향식으로 행동하는 개인들이 사용가능한 에너지가 줄어들어 자연에 의존하는 삶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상황 인식이 풀뿌리 개인들을 대안으로 만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전히 막연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아마도 하향식 중앙집중 권력사회에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몸과 마음에 밴 타성이 그런 막연함을 강제하는지도 모른다. 저자가 제시하는 다음의 대안을 들어보면 그래도 조금은 막연함이 해소될지 모른다.

*가정출산, 동종요법, 약초 및 전통의학, 자기치유 및 인격성장
*홈스쿨링, 발도르프(슈타이너) 등 대안학교, 그리고 노인 역할의 재활성화
*공동체 텃밭, 도시농장 그리고 주말농장
*지역화폐와 윤리적 투자
*토지 등 자산의 공동체 소유와 경영을 위한 법인, 조합 등의 법적 구조
*생물영역주의, 신령한 장소와 토착문화의 부활
(<퍼머컬처> 238쪽)

권력과 적대적 투쟁 방식이 아닌 문화적인 방법, 곧 상향식 방법으로 행동을 한다면 위의 내용은 대안으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이런 대안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도 필요하고 세상을 바꾼 뒤에도 필요하니 머릿속의 꿈이 아닌 현실 속의 대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남은 과제는 각성된 대안적 개인들의 소통과 연대가 될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귀결이 될 것이다.

농사철학이 구체적인 농법기술에서부터 사회를 개혁하는 혁명철학까지 갖추고 있는 퍼머컬처는 그야말로 전일적 이론체계를 갖추었다고 평가할 만하다.

마지막으로 기대하는 것은 퍼머컬처 이론이 늘 범하기 쉬운 교조주의로 왜곡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전일적 체계를 갖춘 이론은 언제나 교조주의로 빠지기 쉽다. 옳은 이론은 적용만이 남아 있다는 오만을 불러일으키기 쉽고 옳은 이론은 그것을 따르는 폐쇄적 조직을 만들기 십상이다. 결국 적용해야 할 현실의 특수성을 무시하는 오류를 범하기 쉬운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퍼머컬처 이론에 충실하다면 결코 이런 실수와 오만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이 책을 정독하면 절로 깨닫게 될 것이다. 인내를 갖고 정독하면 한 소식 하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라는 확신에 일독을 권하고 글을 마친다.

* 귀농통문은 1996년부터 발행되어 2014년 9월 현재 71호까지 발행된 전국귀농운동본부의 계간지입니다. 귀농과 생태적 삶을 위한 시대적 고민이 담긴 글, 귀농을 준비하고 이루어나가는 과정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귀농일기, 농사∙적정기술∙집짓기 등 농촌생활을 위해 익혀야 할 기술 등 귀농본부의 가치와 지향점이 고스란히 담긴 따뜻한 글모음입니다. (☞ 바로가기 : 전국귀농운동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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