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월성 원전 위험"…간 나오토 전 총리의 '경고'

"후쿠시마 최악 시나리오, 도쿄 인근 5000만 명 대피"

2011년 후쿠시마 사고 당시 내각을 이끈 간 나오토 전 일본 총리가 방한해 한국 정부의 원전 확대 정책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간 전 총리는 19일 국회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교훈과 동아시아 탈원전의 과제'라는 주제로 강연을 열고 "원전 사고가 일어날지 여부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반드시 언젠가 일어난다는 전제 하에 어떤 피해가 생기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간 전 총리는 "고리 원전 1호기를 포함해서 부산에는 원전에서 가까운 범위 내에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며 "(사고가 날 때) 많은 사람이 대피해야 하는 장소에 원전을 만들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노후 원전인 월성 1호기와 고리 1호기 인근에는 부산, 울산 등 대도시가 있어 특히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는 "후쿠시마 사고 당시 원전 250킬로미터 이내 도쿄 및 수도권을 포함한, 전 일본 국토 3분의 1 지역에 5000만 명이 피난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고려했었다"며 "한국도 원전에서 250킬로미터 떨어진 권역을 그려보면 수도권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간 전 총리는 "일본에서 다시 원전 정책으로 돌아가면 낡은 기술을 고집해서 새로운 흐름에 뒤쳐지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며 "재생 에너지야말로 지방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핵심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간 전 총리는 후쿠시마 사고 대처에 대한 지휘를 총괄했고, 이후 원전 제로,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추진했다. 그는 "원전은 잘만 쓰면 안전하고 경제적이라는 생각이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완전히 뒤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지난 17일부터 부산, 울산, 경주 순회 강연을 한 간 전 총리는 이날 후쿠시마 사고 당시 지휘 총괄자로서 생생한 경험담을 소개한 뒤, 일본을 비롯한 세계의 원전 폐기 현황, 핵폐기물 문제 등을 언급했다. 다음은 그의 강연을 간추린 내용이다. 편집자.

▲ 간 나오토 일본 전 총리(왼쪽)과 홍영표 새정치민주연합 원전대책특별위원회 간사(오른쪽). ⓒ프레시안(김윤나영)

최악의 시나리오, 도쿄 인근 인구 5000만 명 대피
2011년 3월 11일. 지진이 발생한 지 4시간, 쓰나미가 도달한 지 3시간 만에 후쿠시마 제1원전의 냉각수가 증발해서 '멜트 다운(melt-down)'이 시작됐다. 등골이 오싹했다. 이튿날 녹은 핵연료가 압력 용기를 뚫고 바닥을 빠져나가서 격납 용기에 떨어졌다. '멜트 쓰루(melt-through)'가 시작된 것이다. 핵연료가 아래 콘크리트 바닥을 깎아 내리기 시작했다.
사고 직후 최악의 사태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돌린 결과, 원전에서 250킬로미터 떨어진 도쿄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보고를 받았다. 이 범위는 일본 국토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이 지역에만 5000만 명이 살고 있다. 5000만 명이 피난하지 않은 경우가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것이라는 보고를 받았다.
그 보고로 지금까지 내가 갖고 있던 '원전 안전 신화'가 근본적으로 깨졌다. 체르노빌 사고는 기술 수준이 낮은 소련이라서 일어났지, 일본 같이 기술력이 높은 나라에서는 사고가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터키나 베트남 수상을 만났을 때는 일본의 원전을 사면 할인해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후쿠시마 사고 이후 내 생각이 틀렸음을 확실히 절감했다.

체르노빌 사고와 비교해봤다. 체르노빌 사고는 큰 사고였지만, 사고 자체는 4기 하나에서만 생겼다. 그래도 장기간 많은 사람이 피난했다. 후쿠시마에는 제1원전에는 원자로 6기가 있었는데, 그중 3기가 멜트 다운됐고, 나머지 3기에서는 수소 폭발이 일어났다. 후쿠시마 제2원전의 4기까지 포함해 원자로 10기 모두를 통제할 수 없었다면, 최악의 시나리오가 일어났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방사능이 체르노빌 사고 때의 몇 십 배, 백 배 넘게 유출됐을지 모른다. 그랬다면 한국을 포함해 이웃 국가에도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
후쿠시마 사고는 지금도 계속되는 사고다. 사고 4년이 지난 지금도 1, 2, 3기에는 매일 300톤의 물을 냉각을 위해 주입하고 있다. 원래는 필터를 통해 정화시키고 되돌릴 계획이었지만, 격납 용기에 구멍이 뚫려 있어서 오염수가 외부로 새어나오고 있다. 탱크에 넣어서 오염수를 외부에 유출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오염수가 탱크 일부에서도 새어나오고 빗물과 섞여 일부 바다로 흘러나와 완전 차단하기는 어렵다.

대피 과정에서도 사망자가 생겼다. 대피 계획이 충분히 세워지지 않았기에 노인과 몸이 편찮은 사람들을 버스에 태웠지만, 어디로 모실지 결정하지 못해서 우왕좌왕했다. 30명이 피난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만약 최악의 시나리오대로, 반경 250킬로미터 지역 내 5000만 명이 대피하는 상황이었다면, 수만 명 이상이 대피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다.

일본, 모든 원전 폐기해도 전력 대란 없어

인구 5000만 명이 국토 3분의 1 넓이의 지역에서 대피하는 상황은 '전쟁' 이외에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위험을 감당하고서라도 원전을 사용할 이점이 있는지, 아니면 다른 길을 선택할 것인지, 이 선택의 기로에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가 놓여 있다.

일본은 후자를 선택했다. 동일본 대지진 이전에 일본에 원전이 54기가 있었는데, 일본에서는 1년 반 전부터 지금까지 모든 원전이 멈춰있다.

후쿠시마 사고 이전에는 일본 경제산업성 산하에 원자력안전보안원이라는 기구가 원전의 안전성을 검토해왔다. 원자력안전보안원 한 명이 원전 재가동 여부를 결정했다. 원전 확대 정책을 추진해온 경제 부처의 산하기구가 원전 규제를 담당하면 안 된다는 것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지적 사항이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 재가동 심사를 할 때 지방자치단체와 지역주민의 의견수렴 절차를 거치도록 규제를 바꿨다. 그 결과 대부분 원전이 멈췄다. 지난 1년 반 동안, 일본에서 원전에 의한 전기 생산량은 0와트였다.

많은 사람들이 "일본에는 원전이 없는데 전기가 부족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원전이 멈춰도 국민생활과 경제생활에 큰 지장은 발생하지 않고 있다. 기술이 진화해서, 풍력과 태양광 발전을 도입했다고 정전이 발생하는 문제는 거의 없다. 우선 절전도 하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전력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 17일 부산에서 열린 '후쿠시마는 말한다. 고리 1호기를 멈추라고' 초청 강연회에서 원전 반대 발언을 하는 간 나오토 전 총리. ⓒ연합뉴스

원전은 이미 낡은 기술, 재생에너지가 뜬다

일본에서는 재생에너지 비중이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다. 재생에너지를 기본으로 하되, 예비 전력은 화력발전소로 마련하고 있다. 예컨대 기업이 가지고 있던 자가 발전소를 이용하는 식이다.

일본에서는 이 제도를 도입한 지 2년 반이 지났는데, 그 사이에 태양광 7000만 킬로와트의 설비를 만들고 싶다는 신청이 들어왔다. 실제 가동률은 10% 정도이지만, 이 계획이 실행되면 원전 15기 생산량 상당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일본에서도 지방 경제 활성화가 중요한 과제다. 재생에너지야말로 지방경제를 활성화할 핵심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21세기가 끝날 때는 모든 에너지가 재생에너지로 충당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다시 원전 정책으로 돌아간다면 낡은 기술을 고집해서 새로운 흐름에 뒤쳐지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이미 스페인에서는 풍력과 태양광이 전체 전력의 40%를 차지한다, 독일도 대체에너지 비중이 30%가 넘었다. 특히 독일에서는 2050년까지 전기뿐 아니라, 난방, 수송 에너지를 포함해 모든 에너지의 8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안정적으로 경제가 성장하는 나라다. 독일도 2022년까지 모든 원전을 폐기하기로 결정했다.

일본에서는 수소 연료 전지차가 나왔다. 이미 시판 중이다. 2년 전 덴마크 마을에 갔는데, 풍력발전으로 물을 전기 분해해 각 가정에서 수소를 이용해 전기를 만들더라. 실험적인 지역이긴 했지만, 적어도 그런 일이 현실에서 이뤄지고 있다. 일본뿐 아니라 한국도 기술이 발전한 나라다.

재생에너지가 늘어나면 전기요금이 비싸질 것이라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 재생에너지는 초기에 도입 비용이 들지만, 대량으로 만들면 점점 투입 비용이 낮아진다. 15년 뒤에 화력과 태양광은 비슷한 수준까지 비용이 떨어질 것이다. 한국도 독일이나 일본의 재생에너지 인센티브 정책을 검토했으면 한다.

부산에 있는 고리 1호기…대도시에 원전 만들면 안 돼

전 세계는 원전을 줄이는 추세인데,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이와 대조적인 움직임이 일어났다. 중국은 가장 큰 원전 계획을 갖고 있다. 중국이 계획대로 간다면, 전 세계 제2의 원전 대국이 되는 일도 멀지 않은 것 같아 우려된다. 원설 증설 계획 2등이 한국이다.

부산에는 고리 원전 1호기를 포함해서 원전에서 가까운 범위에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 이 범위 내에 매우 중요한 산업기반 시설들이 있다. 일본에서 원전 반경 250킬로미터 이내에 원전이 없는 곳은 오키나와밖에 없다. 한국도 원전 반경 250킬로 권내 지도를 그려보면 수도권이 들어가지 않을까?

중국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한국에 지지 않을 정도로' 해안가에 인구가 밀집돼 있다. 원전 건설 예정지는 해안가 인구 밀집지역이다. 사고가 났을 때 파장은 몇 백만, 몇 천만 명 피해로 돌아갈 것이다.

그레고리 야스코 전 미국원자력규제위원회(NRC) 위원은 "원전 사고가 일어날지 아닐지를 생각할 게 아니라, 반드시 언젠가 일어난다는 전제 하에 어떤 피해가 생기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대피해야 할 장소에 원전을 만들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10만 년 관리해야 하는 핵폐기물

일본도 원전이 안전하고 값싸다고 했지만, 사고 발생, 핵폐기물 발생까지 감안하면 원전은 결코 싸지 않다. 원전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은 후쿠시마 사고로 증명됐다.
마지막으로 핵폐기물 문제가 있다. 전 세계에서 핵폐기물 최종 처분을 잘 규정한 나라는 핀란드밖에 없다. 400미터 지하에 사용 후 핵연료를 큰 금속용기에 넣어 매몰시키더라. 핀란드는 15억 년 정도 지반이 움직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일본과는 달리 이처럼 지반이 안정됐기에 핵연료를 관리한다.

핀란드에 가서 언제까지 핵폐기물을 관리할 것이냐고 물었더니, 앞으로 10만 년 동안 관리하겠다고 한다. 이유를 물으니 사용 후 핵연료의 방사능 방출 수준이 자연계와 같은 수준으로 내려가는 데 10만 년이 걸린단다. 거꾸로 10만 년 전이면, 네안데르탈인이 살았을 시절이다. 나는 10만 년 후에 호모사피엔스가 (지구상에) 남아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위험한 핵폐기물을 남기는 건 우리 자손에게 부담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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