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춘곤증에 시달리고 계신가요?"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춘곤증을 다스리는 법

"요즘 들어 아침에 일어나기도 힘들고, 점심을 먹고 나면 졸음이 쏟아져서 힘들어요."
"겨울에도 괜찮았는데, 감기에 걸린 후로 기침이 안 떨어지네요."

경칩이 지나고 날씨가 풀리면서 피로감이나 식욕저하 그리고 감기 등의 증상 등의 증상을 호소하시는 분들이 많아집니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환절기에 몸이 적응하는 과정에서 몸과 마음이 일종의 몸살을 앓은 것이지요. 그래서 이런 분들을 치료할 때는 밤에는 잠을 조금 더 자고 낮에 잠시라도 햇볕을 쬘 것 그리고 봄에 새로 나는 나물들을 즐겨 먹을 것을 당부합니다. 우리 몸이 변화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지요.

한의학의 고전인 <내경>에서는 겨우내 잠들었던 생명의 기운이 움트고 펼쳐지는 모습을 보고 봄을 발진發陳 이라 표현합니다. 그런데 사람 또한 자연의 일부인지라 봄이 되면 우리 몸과 마음에도 봄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몸은 왠지 찌뿌듯하고 근질근질 ․ 마음은 나도 모르게 싱숭생숭. 가만 있질 못하고 새로운 충동들이 요동치지요(만약 이런 것이 없다면 자신의 건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합니다). 이런 변화의 영향은 음에 속하는 여성, 노약자, 그리고 우울증이나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더 크게 나타납니다. 겨울(음)에서 봄(양)으로 변화할 때 몸과 마음의 상태가 침체되어 있으면 새로운 리듬에 적응하기가 더 힘든 것이지요. 진달래 필 때 동네 아가씨가 괴나리봇짐을 싸 서울로 가거나, 연로하신 분들이 이 시기에 갑자기 돌아가시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봄에 불어오는 변화의 바람을 잘 타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봄날 대청소를 하듯 묵은 것을 몰아내고 새로운 옷을 입는 것이지요. 먼저 집안에만 있지 말고 자주 자연을 벗하는 것이 좋습니다. 싹이 트고 잎이 나는 모습을 보면서 따뜻한 햇볕과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맞고 있으면 콘크리트 건물과 스마트폰에 둘러싸여 잃었던 생명의 리듬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몸을 다스려야 합니다. 한의학에서는 봄은 간장이 주관하는 계절이고 계절이 변화하는데는 비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평소 소화기가 약한 사람이 춘곤증이 더 심한 이유입니다)고 봅니다. 따라서 이 두 장부의 기운을 북돋고 소통이 잘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선 봄에 새로 나는 제철 음식을 풍부하게 먹는 것이 좋습니다. 과거에 비해 겨울 식단에서 염장식품의 비율은 많이 줄었지만, 겨울에 먹는 음식의 종류나 질은 상대적으로 떨어집니다. 이 때 봄에 새로 나는 나물이나 새싹을 먹으면 몸에 필요한 영양의 공급과 균형의 회복에 도움이 됩니다. 예로부터 입춘에는 향이 좋은 나물 다섯 가지를 골라 먹어온 풍습이 있었고, 조선시대에는 임금이 신하들과 함께 '입춘오신반(立春五辛飯)'이라는 이름으로 나물을 먹어 건강을 챙긴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이런 풍습에는 겨울에 짠 음식을 많이 먹어서 발생할 수 있는 나트륨 과잉을 봄나물에 풍부한 칼륨으로 다스리는 생활의 지혜가 녹아져 있습니다.

▲아직 봄은 채 오지 않았지만, 봄나물이 먼저 성큼 찾아왔습니다. ⓒ연합뉴스


냉이, 달래, 쑥, 취, 부추, 산마늘, 갯기름나물, 두릅, 민들레, 화살나물, 개망초, 씀바귀, 담배나물, 미나리, 원추리, 달맞이꽃, 시금치 등등. 봄날의 산과 들은 알고 보면 먹을 것 천지입니다. 춘곤증에 시달리고 있다면 이러한 식재료들을 최소한의 조리과정을 거쳐 즐겨 먹으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평소 소화기가 약하고 몸이 지쳐 있는 사람들은 향이 좋은 풀과 순을 골라먹고, 스트레스가 많고 가슴에 화가 차 있는 사람이라면 쌉싸래한 맛이 나는 풀이나 순을 즐겨 먹으면 더욱 좋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진보논객이자 작가이며 미식가였을 허균의 작품 중에 <도문대작>이란 책이 있습니다. 전라도로 유배되어 있을 때 과거에 자신이 먹었던 음식에 대해 쓴 책으로 요즘으로 치면 미슐랭 가이드북 정도 될 것입니다. 책 제목이 푸줏간 문으로 고기 잡는 모습을 보며 씹는 척만 한다는 의미인 것을 보면 당시 유배지에서의 생활이 어떠했는지 또 그것을 허균이 어떤 마음으로 견뎠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여하튼, 여기서 강릉 외가에서 먹었던 방풍죽을 회상하면서 작가는 "그 좋은 향이 입안에서 사흘이 지나도 가시지 않는다"며 극찬합니다.

봄이 되면서 몸도 지치고 입맛도 떨어진 분이라면 이번 주말 시장이나 마트에 가서 갯기름나물(방풍)과 달래를 사다가, 방풍나물로 죽을 쑤고 달래와 간장 그리고 들기름으로 빡빡한 장을 만들어 한 끼 뚝딱하고, 살살 봄바람 맞으며 걸어보면 어떨까요? 그렇다 한들 날 피곤하게 만드는 세상이 변하지는 않을 테지만, 그 피로와 긴장을 타고 넘을 여유는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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