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에서 IS까지, 그들은 왜 총을 들었나

[프레시안 books] 정의길 <이슬람 전사의 탄생>

전쟁 연구자들은 전쟁의 양적 개념으로 '1년 동안 1000명 넘는 사망자를 낳은 유혈 분쟁'을 '전쟁'이라 규정한다. 스웨덴 웁살라대학교의 '웁살라 분쟁 자료 프로그램'(Uppsala Conflict Data Program, 약칭 UCDP)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해인 1989년부터 2013년까지 25년 동안에만 47개의 전쟁이 벌어졌다.

최근 몇 년 동안에도 1000명 넘는 희생자를 낳은 전쟁은 해마다 5∼7개에 이른다(2010년 5개, 2011년 6개, 2012년 6개, 2013년 7개). UCDP 전쟁 통계자료로 미뤄보면, 앞으로 10년 동안에도 전쟁 사망자 1000명 이상의 희생을 낳는 전쟁들이 해마다 적어도 5개쯤 벌어질 것으로 내다볼 수 있다.

21세기 '세계의 화약고'는 중동

특히 중동 지역이 문제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해마다 1000명 이상의 전쟁 희생자를 낳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등은 지구촌의 고질적인 분쟁 지역으로 꼽힌다. 특히 시리아는 4년 전쟁으로 말미암아 20만 명이 죽임을 당했고 난민만도 950만 명(국내 650만 명, 국외 300만 명)이 생겨났다. 시리아를 비롯한 중동의 분쟁 지역에서는 앞으로도 많은 희생과 고통을 낳을 전망이다.

20세기에 '세계의 화약고'가 발칸반도였다면 21세기 세계의 화약고는 중동 지역이다. 세 가지 잣대로 재면, 중동 지역은 지구상에서 가장 군사화된 지역이다. 세 가지란 ▲ 국민총생산(GNP)에서 국방비 지출 비중, ▲ 정부총예산(CGE)에서 국방비 지출 비중, ▲ 수출입 통계에서 총 수입액 가운데 무기 수입 비중이다. 중동 지역 국가들의 국방비는 GNP의 6퍼센트를 넘는다. 한국의 국방 예산이 GNP의 3퍼센트쯤임을 떠올리면, 중동 지역의 군사비 지출 비중이 얼마만큼 높은지를 짐작할 수 있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2014년 연감에 따르면, 중동 지역의 2013년도 군사비 지출은 1500억 달러에 이르고 전년 대비 4퍼센트의 증가를 기록했다. 2013년도 전 세계 국방비 지출은 1조7470억 달러(인구 1인당 248달러)로 전년 대비 1.9퍼센트 줄어들었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각국이 국방비 지출을 줄이는 추세임에도 중동은 군비 증강을 서두르는 지역으로 꼽힌다.

중동 분쟁의 복합적 요인들

ⓒ한겨레출판
중동 지역 군사적 긴장의 한 축엔 팔레스타인을 식민지로 다스리는 이스라엘이 있지만, 또 다른 긴장의 축은 반미-반이스라엘 이슬람 세력이 있다. 중동에서 이스라엘과 국교를 맺고 있는 두 개의 국가(이집트, 요르단)를 뺀 나머지 국가들은 모두 이스라엘을 적성국으로 여긴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종주국으로 하는 수니파와 이란을 종주국으로 하는 시아파의 해묵은 갈등도 중동의 상황을 어렵게 한다.

문제는 중동 국가들의 집권층과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 반미-반이스라엘 감정의 편차가 나라마다 크다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나 쿠웨이트처럼 친미 성향의 집권층은 입으로는 이스라엘을 적성국으로 대하지만, 실제로는 은밀한 흥정을 한다는 사실들이 드러나고 있다. 바로 여기서 반미-반이스라엘 이슬람 무장 세력의 투쟁 명분이 생겨난다.

반미-반이스라엘 이슬람 전사들(아랍어로 '무자헤딘')은 한편으로는 이스라엘 안보를 챙겨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석유 자원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독재 왕정을 지지하는 미국의 중동 정책에 매우 비판적이다. 9.11 테러의 주역인 오사마 빈 라덴이 사우디아라비아 친미 독재 왕정을 뒤엎으려는 최종 목표를 지녔고 많은 이슬람 민중의 지지를 받았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빈 라덴이 2011년 죽은 뒤 그의 알 카에다 세력이 주춤한 틈을 타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를 우두머리로 한 '이슬람국가'(IS)가 급성장을 한 이면에는 중동의 이슬람 민중들 사이에 뿌리 깊이 자리한 반미-반이스라엘 정서와 더불어, 미국이 지원하는 중동의 친미 독재자들을 제거하고 이슬람의 자존심을 세우려는 욕구, 그리고 시아-수니 사이의 해묵은 갈등이 복합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민주화를 둘러싸고 일어난 시리아 내전이 주변 강대국의 대리전 양상으로 변질된 것도 난마처럼 얽힌 중동 분쟁의 성격을 잘 드러낸다.

정치적 이슬람 세력은 어떻게 성장했나

중동 분쟁에 여러 복합적인 요인이 맞물려 있기에 그 상황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여러 번역서들은 부분적인 이야기를 다루거나, 너무 전문적이어서 읽기가 어렵다. <한겨레> 정의길 기자의 <이슬람 전사의 탄생>(한겨레출판, 2015년 1월 펴냄)은 무슬림형제단의 출현 배경부터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이슬람국가에 이르기까지 중동의 이슬람 전사들을 중심으로 중동 분쟁의 복잡한 흐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슬람 전사의 탄생>은 모두 6부로 이뤄져 있다. 이 책의 1부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와하비즘, 이집트 출신의 두 인물('이슬람주의의 레닌'이라 불리는 사이드 쿠틉, 그의 후계자이자 오사마 빈 라덴의 죽음 뒤 알 카에다를 이끌고 있는 아이만 알 자와히리), 이란의 시아파가 주도한 이슬람 혁명, 파키스탄의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 등을 살펴보면서 정치적 이슬람 세력이 성장한 과정을 짚는다.

아프간을 '소련의 베트남'으로

2부와 3부에서는 1979년부터 10년 동안 이어졌던 아프간전쟁에 초점을 맞추었다. 냉전 시절 미국이 CIA의 주도 아래 오사마 빈 라덴을 비롯한 이슬람 전사들을 대리전쟁의 도구로 활용함으로써 결국에는 소련군의 철수를 이끌어내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쳐 소련이 북베트남에 엄청난 전쟁 물자를 지원함으로써 미국은 '베트남 수렁'에 빠졌고 끝내는 불명예스럽게 철수했다. 소련이 베트남에서 벌인 대리전쟁에서 미국이 패배한 기억이 생생하던 1980년대 당시 미국은 아프간을 '소련의 베트남'으로 만들어 베트남에서 당한 대리전쟁을 앙갚음하려 했다는 사실이 이 책에서 잘 드러난다.

1980년 1월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이 승인하고, 곧이어 취임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재승인한 최고 기밀 대통령령에 의해 CIA의 임무는 무자헤딘에게 은밀히 무기를 전달하는 것이었다. 이 대통령령을 담은 기밀문서에서 소련군에 대항하는 CIA의 목적은 '교란'이었다. 아프간에서 소련군의 개입 비용을 높이자는 것이었다. (132쪽)

1980년대 중반 레이건 행정부는 미국의 아프간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작업에 들어간다. 전임 지미 카터 행정부 때 설정했던 소련군에 대한 작전을 '교란'에서 '승리'로 격상하는 것이었다. 그런 전략은 국가안보정책결정지침(NSDD)-166으로 나타났다.

1985년 3월 15일,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의 정책, 프로그램 및 전략"이라는 이름의 비밀, NSDD-166에 서명했다. 아프간 전쟁에 대한 미국의 비밀공작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정책 지침이었다. 이 문서는 "우리 정책의 궁극적 목적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군의 철수이고, 중기적(1985∼1990)으로는 아프간의 독립적 지위 복원"이라고 밝혔다. (157∼1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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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와 네오콘의 이라크 집착

냉전 시절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인 대리전쟁은 소련군의 아프간 철수 뒤 워싱턴의 처음 의도와는 달리 빈 라덴의 알 카에다, 탈레반 세력의 등장 길을 열어놓은 셈이다. 4부와 5부는 9.11 테러와 그 뒤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에 초점을 맞추었다. 한때는 빈 라덴과 손잡았던 미국 CIA가 여러 차례 빈 라덴 제거 공작을 펼치지만 번번이 실패한 뒤 9.11을 맞는 과정, 그 뒤 아프간과 이라크를 침공함으로써 전쟁의 수렁에 빠져드는 모습을 그려냈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21세기 초 조지 부시 행정부를 장악한 네오콘(신보수주의자)과 강경파들의 이라크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다. 사담 후세인이 9.11 테러와 아무 관련이 없음에도 알 카에다와 빈 라덴 제거보다는 이라크 침공에 더욱 관심을 기울인 어처구니없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전하고 있다.

네오콘(Neocons)의 핵심 멤버 중 하나이자, 국방부 내 서열 3위인 정책 담당 차관 더글러스 페이스(Douglas Feith)는 9월 11일 당일에 국방부 고위 관리들과 함께 유럽에서 미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 있었다. 그는 소식을 듣자마자 사담 후세인을 타도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309쪽)

부시 대통령 역시 9·11 테러 다음 날인 12일, 리처드 클라크 백악관 안보조정관에게 사담이 관여된 증거를 찾아보라고 지시했다. 클라크가 "알 카에다가 했다"고 말하자, 부시는 "알아, 알아. 하지만 사담이 이 일을 했는지 알아보라"고 재차 지시했다. (310쪽)

(9월 13일에 열린 국가안보위원회 회의에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다시 이라크 응징을 주장했다. 그는 이라크는 그 자체로 위협이며, 또한 테러리스트들을 지원하고 있고 그들에게 대량 살상 무기를 줬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라크에 아프간의 미약하고 초보적인 사회 기반 시설보다도 더 많은 군사적 목표물이 있다고 지적했다. (311쪽)

후세인, 미국 침공 막으려 파격 조건 제시

결국 9.11 테러 1년 반 뒤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한다. 막무가내식 미국 침공이 점점 눈앞으로 다가오자, 사담 후세인은 타리크 아지즈(Tariq Aziz) 부총리를 내세워 침공을 막아보려 했다는 비화가 눈길을 끈다. 아지즈가 내건 조건은 ▲ 미국 회사들에 석유 등 자원 이권 제공, ▲ 유엔 감시하의 선거, 미국의 직접 사찰, ▲ 이라크가 수감 중이던 알 카에다 요원 인도, ▲ 아랍-이스라엘 평화 과정에 관한 미국 정책에 전적인 협조 등 파격적이라 할 만했다.

하지만 미국 내 이라크 전쟁의 기획자 중 한 명인 리처드 펄 국방정책위원장은 "우리는 바그다드에서 보게 될 것이라고 전하라"(368쪽)고 차갑게 대꾸했을 뿐이다. 미국의 반응이 왜 그렇게 썰렁했을까. 진실을 가리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넬슨 만델라(남아프리카공화국 전 대통령, 1993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는 부시를 겨냥해 날선 비판을 날렸다. "조지 부시가 이라크 전쟁을 밀어붙이는 까닭은 미국의 군수 산업체와 석유 회사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것이다."

만델라는 미국 군수산업체와 석유 회사들의 이익을 위해 미국이 학살을 저지르는 오만함을 보이고 있음을 분명히 지적했다. 군수산업체는 미사일과 전쟁 물자를 팔아 떼돈을 벌 수 있고, 석유 회사들은 바그다드에 들어설 친미 정권을 움직여 사실상 이라크 유전을 지배하게 되는 셈이다. 여기에 하나 더 덧붙이자면, 사람 후세인의 이라크로부터 이스라엘이 느끼는 안보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다.

IS 세력 확장은 미국 중동 정책 실패의 산물

이즈음 한창 뜨거운 화제를 몰고 다니는 이슬람국가(IS)를 다룬 부분이 이 책의 마지막인 6부이다. 저자는 2011년 '아랍의 봄'이 시작되었지만 중동의 지리멸렬한 세속주의 정치 세력과 친서방 세력에 대한 반감으로 오히려 이슬람주의 세력이 힘을 얻어갔다고 지적한다. 시리아 내전에서 알 카에다 연계 세력인 '누스라전선'이 반군 진영에서 세력을 넓혀갔고, 그 과정에서 바그다디를 지도자로 한 '이슬람국가'가 나타났다(2014년 6월 29일).

9.11 테러 뒤 미국은 10년 동안 빈 라덴을 잡는 데 실패했고(2011년 5월 1일 빈 라덴 사살), 명분도 없는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다. 이라크는 반미 저항 세력의 게릴라전, 수니-시아 및 아랍-쿠르드 사이의 갈등으로 혼란을 거듭했다. 미국이 이라크전에서 허우적대는 동안 아프간에서는 탈레반 세력이 '네오 탈레반'으로 거듭났고, 시리아 내전의 혼란 속에 이슬람국가가 등장한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미국이 벌여온 '테러와의 전쟁'이 실패했다고 못 박는다. (관련 기사 : 누가 이슬람국가(IS)를 키웠나?)

480쪽 분량의 이 책은 1979년 아프가니스탄 전쟁부터 2014년 IS의 탄생까지 지난 35년 동안 중동 이슬람권에서 벌어진 정치·군사적 갈등 배경, 초강대국인 미국의 개입과 탐욕, 그로 인한 혼란과 희생을 다루었다. 아울러 잘 알려지지 않은 여러 비화를 소개하고 있다. 중동 분쟁에 관심을 지녀온 지식인들은 물론이고 '중동은 그저 먼 곳' 또는 '이슬람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여겨온 일반인들에게도 유용한 책이다.

▲ 2014년 6월 16일(현지 시각) 이라크 북부 모술에서 IS를 추종하는 세력들이 IS를 상징하는 깃발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영미 문헌 자료, 시각이 문제다

하지만 아쉬운 대목 하나. 이 책에서 주요 내용을 전하는 근거로 쓰인 문헌 자료들의 저자는 대부분 미국과 영국 저널리스트 또는 중동 출신의 영미 저술가들이다. 중동의 많은 사람이 침략자라 여기는 강대국의 시각, 이슬람에 대한 편견을 지닌 서방세계의 시각이 알게 모르게 그들의 글 행간에 스며들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이 책 1부에서 자주 인용됐고 국내에도 번역 소개된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의 저자 타밈 안사리는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미국인 저술가이다. 그는 9.11 테러 뒤 미국이 아프간을 침공해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내용의 메일을 여기저기 보내고 전쟁의 북소리를 울려댔던 인물이다. 당시 전 세계 평화주의자들은 "전쟁은 최후의 수단이다. 빈 라덴을 추방하도록 탈레반 정권을 상대로 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외쳤지만 헛일이었다.

영미의 이른바 '중동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중동을 보는 시각이 왜곡됐고 그래서 문제를 낳는다는 지적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대표적 보기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지지했던 버나드 루이스이다. 영국계 미국인 역사학자인 루이스는 국내에도 <이슬람 1400년>을 비롯한 여러 번역서로 이름이 낯설지 않다. 서구에서는 중동에 정통한 지식인으로 알려져 왔고, 미국 행정부의 중동 정책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외부 전문가'로 꼽히기도 한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출신의 영문학자이자 문명 비평가인 고 에드워드 사이드(전 컬럼비아대 교수)가 루이스를 보는 눈길은 차갑기만 하다. "루이스는 중동 지역, 또는 아랍 세계를 40년 이상 방문하지 않았다. 그는 터키에 대해서는 조금 알고 있지만 아랍 세계에 대해서는 아는 게 전혀 없다고 들었다"고 잘라 말한 바 있다.

루이스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 구실을 찾던 부시에게 그의 입맛에 맞는 잘못된 자문을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미국의 대외적 이미지를 구기고 중동 이슬람 세계의 반미 정서를 높이는 데 한몫했다. 그뿐 아니라 미국이 이라크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도록 만드는 데 알게 모르게 기여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영미권 저술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결국 시각이다. 중동 이슬람권의 저술가들이 쓴다면 전혀 다른 결론이 나올 내용이지만, 영미권에서는 비판이 없거나 약하다.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현지 취재 때 만난 므카이마르 아부사다 교수(가자 알라자르 대학)는 "나도 미국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영미권에서 나온 중동 관련 저술들을 보면 편견과 무지로 말미암아 때로는 헛웃음이 나온다"고 답답해 했다.

언론인을 이용하는 권력자들

영미 저술가의 책들을 많이 인용한 이 책의 또 다른 아쉬움은 이른바 비화에 관한 것이다. 저널리스트는 취재 과정에서 최고위층과 그 측근들의 입에서 나오는 비화들에 솔깃하기 마련이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생전 처음 듣는 실감 나는 비화는 재미가 있을 뿐더러 기사의 가치도 높다고 여겨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이 모두 진실은 아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내용으로 가공해 자신을 합리화하고 그의 경쟁자나 정적을 바보로 만들기 일쑤다.

대표적인 보기가 이 책에서도 몇 군데 인용된 <워싱턴포스트> 편집국장 출신의 밥 우드워드가 쓴 책들이다. 우드워드는 부시 행정부의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침공을 둘러싼 워싱턴의 긴박했던 순간들을 듣기 위해 CIA 국장 조지 테닛을 비롯한 여러 고위 공직자를 밀착 취재해 여러 권의 책을 냈다. 하지만 그 내용들은 사실 여부가 의심스러운 대목들이 많다.

이를테면, 테닛은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우드워드에게 '비화'를 흘렸고, 우드워드는 검증이나 더블 체크 없이 글로 옮겨 놓았다. 결과적으로 테닛과 미묘한 경쟁 관계에 있던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나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을 바보로 만들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파월이나 럼스펠드 쪽에서 그리는 그림은 테닛과는 사뭇 달랐다.

우드워드와는 대조적으로, 이 책에서 여러 번 인용된 <유령 전쟁들(Ghost Wars)>의 저자 스티브 콜은 일단 누군가를 인터뷰했다면, 끈기 있게 검증과 더블 체크를 해나감으로써 언론인을 이용하려는 권력자들의 노림수를 피해 갔다는 평가를 받는다. 바로 그렇기에 콜은 그의 책으로 2005년도 논픽션 부문 퓰리쳐상을 받았다고 이해된다.

언젠가 개정판을 낸다면…

영미권 저술에 상당 부분 의존했다는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강대국의 잘못된 중동 정책에 비판적인 시각에 바탕을 둔 저자의 이 책은 독자들이 중동과 이슬람을 올바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저자는 부지런히 여러 권의 외국 문헌을 섭렵하며 요점을 잘 정리했다. 자신에게 성실하지 않다면 엄두를 못 낼 작업이다.

끝으로 저자에게 주문을 하나 하고 싶다. 혹시 언젠가 이슬람 전사에 관한 이 책의 개정판을 낼 때가 오면 다음 내용을 중심으로 영미 저술가들뿐 아니라 중동 이슬람권 지식인들의 비판적 목소리를 좀 더 담아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는 이 책의 저자뿐만 아니라 국내의 여러 중동 전공자들에게 주어진 과제이기도 하다.

미국의 중동 정책(친이스라엘 일방주의와 석유 자원 챙기기)은 이슬람 민중들에게 어떤 희생을 강요해 왔는가. 서구 강대국들에게 침탈당한 이슬람권의 분노와 좌절감이 어느 정도이기에 반응이 폭력적으로 나타나는가. 이슬람 전사들은 왜 아직도 9.11 테러범 오사마 빈 라덴을 영웅시하는가. 서구인들이 비정상적으로 보는 이슬람국가 같은 세력을 중동 현지 사람들은 어떤 눈길로 바라보는가. 더 큰 그림으로, 중동 분쟁이 그쳐 이슬람 전사들이 총을 내려놓는 것은 도대체 어떤 조건 아래서 가능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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