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항소심서 법정 구속…"대선 개입 인정"

1심 판결 뒤집혀…서울고법 징역 3년 선고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으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9일 열린 항소심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 받고 법정 구속됐다.

서울고등법원 형사6부(김상환 부장판사)는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원 전 원장에게 징역 3년의 실형과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다. 그가 대선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1심과 달리, 원 전 원장의 정치 개입 혐의는 물론 대선 개입 혐의도 유죄로 인정한 것이다.

앞서 지난해 9월 1심 재판부는 18대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 직원들의 조직적인 '정치 개입'이 있었다고 인정했지만, 이를 공직선거법상 '대선 개입'으로 볼 수 없다며 원 전 원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1심 재판부는 원 전 원장의 국정원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를 인정해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관련 기사 : 원세훈 집행유예…정치 댓글 있지만 대선 개입 아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원 전 원장이 국정원 직원들에게 정치 개입을 지시해 국정원법을 위반한 혐의는 물론, 선거에 개입한 혐의에 대해서도 모두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선거법 등을 두루 검토해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확정된 2012년 8월 20일 이후를 '선거 국면'으로 특정하고, 이 시점 이후 국정원 심리전단의 사이버 활동을 집중적으로 따진 결과 '선거 개입'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시점을 기준으로 국정원의 댓글 활동이 양적·질적으로 증가했고, 그 내용 역시 대선 관련 정치 일정이나 주요 쟁점과 맥락을 같이했다는 것이다.

또 이를 근거로 "선거 국면 당시 국정원 심리전단의 사이버 활동은 치밀한 준비 아래 이뤄졌다"면서 "선거 결과에 영향을 주기 위한 능동적인 활동으로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아울러 원 전 원장이 국정원의 사이버 활동을 일관되게 강조하는 등, 이런 댓글 활동을 인지 및 지시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국정원의 소중한 기능과 조직을 특정 정당 반대 활동에 활용했다"면서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한 행동으로 엄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재판부는 원 전 원장과 함께 기소된 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에겐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민병주 전 심리전단장에겐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연합뉴스

재판 시작 20분 전 비교적 여유있는 표정으로 법원에 들어선 원 전 원장은 재판부의 한 시간 넘는 판결문 낭독 뒤 징역 3년을 선고받고 그 자리에서 바로 법정 구속됐다.

선고 내내 고개를 꼿꼿이 세운 채 판결을 들은 그는 구속에 앞서 "저로서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한 것"이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원 전 원장은 이날 재판 출석 전 신변보호를 요청해 법원에 경비 병력이 배치되기도 했다.

1심 판결을 뒤집은 이날 판결이 미칠 파장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 댓글이 있었지만 대선 개입은 아니'라는 지난해 1심 판결을 두고, 당시에도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라는 논리와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이 빗발쳤었다.

특히 판결 후 현직 부장판사가 법원 내부 게시판에 "법치주의는 죽었다"는 내용의 비판 글을 올리고, 이를 이유로 징계를 받으면서 논란이 확산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이번 항소심 결과에 이목이 집중됐지만, 원심 이상으로 유죄가 인정되기 어렵다는 관측이 많았다. 특히 최근 이 사건과 관련해 기소됐던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으면서 대법의 무죄 판결이 이번 항소심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도 나왔었다.

1심 판결과 달리 항소심 재판부가 국정원 수뇌부의 조직적인 '대선 개입 활동'을 인정하면서, '국정원 직원 개인의 일탈'로 규정하며 대선 개입 사건과 거리를 둬온 청와대의 입장도 난처하게 됐다.

다만 원 전 원장이 대법원에 상고할 가능성이 높아, 18대 대선을 앞두고 벌어진 국정원 대선 개입 논란에 대한 최종 판단은 대법원에서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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