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묵인과 방조…비정규직 '흑역사' 아시나요?

[박점규의 동행]<47>금속노조 '불법파견 면죄부' 논란

사상 처음으로 조합원 직선제를 통해 위원장을 선출한 민주노총이 지난달 29일 중앙집행위원회에서 '4월 총파업'을 만장일치로 결정했습니다. '더 쉬운 해고, 더 낮은 임금, 더 많은 비정규직'을 만들 박근혜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악과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막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총파업의 주축이 돼야 할 금속노조가 내홍에 휩싸여 있습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민주노총 산하 최대 산별노조이자 실제 파업 동력을 갖고 있는 금속노조에서 '점거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건물 1층에서 농성을 하고 있던 조합원들은 위원장실까지 점거했고, 20일 넘게 농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 금속노조 점거 농성…이유는?

문제의 핵심은 '현대차 비정규직 8.18 합의'의 절차와 내용에 대한 정당성 여부입니다. 지난해 8월18일 현대자동차 정규직노조와 아산/전주비정규직지회, 현대차 회사는 전체 비정규직 15000명 중 4000명을 근속 일부를 인정하는 신규 채용에 합의했습니다. 금속노조와 현대차 울산비정규직지회는 이 합의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행정기관인 중앙노동위원회조차 직접 생산 공정은 명백한 불법파견이라고 판정했기 때문에, 모든 공정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직접 생산 공정에서 일하는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했습니다. 판결에서 일부 조합원이 패소할 것을 우려해 합의를 했다고 하더라도, 노동계에서도 잘못된 합의를 했다는 것에 대해 이견이 없었습니다.

한 달 후인 9월18일, 법원은 현대차의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가 '불법 파견'이라고 판결해 8.18 합의가 잘못됐다는 점을 확인해줬습니다. 이어 11월19일 열린 금속노조 대의원대회에서는 위원장이 합의서를 체결하지 않았고, 불법 파견을 인정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8·18 합의는 효력이 없어 폐기한다고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금속노조는 중앙집행위원회 회의와 위원장 담화문을 통해 합의의 형식과 내용을 모두 존중한다고 밝혔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사과와 담화문 폐기 등을 요구하며 1월13일부터 금속노조 사무실에서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금속노조 노-노 갈등에 미소 짓는 정몽구 일가?

금속노조와 현대차 정규직, 비정규직노조가 불법파견 면죄부 논란을 벌이고 있는 동안, 불법파견의 원인 제공자인 현대자동차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현대자동차는 영업이익이 4년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올해 주식 배당금을 지난해보다 54% 늘어난 주당 3000원씩 지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기아차도 지난해보다 43% 늘어난 주당 1000원의 배당금을 결정했습니다.

배당금 대폭 인상으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423억 원의 배당금을 챙기게 됐고, 현대차의 최대 주주인 현대모비스는 1698억 원의 배당금을 가져가게 됐습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 → 현대차 → 기아차 → 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배당금은 정몽구 회장 일가의 금고로 들어가게 됩니다.

또 현대차는 국내 최고층 사옥을 강남 한전부지에 짓겠다고 밝혔습니다. 지난해 9월 한전부지를 감정가의 3배 가량인 10조5500억 원에 사들여 주위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115층 사옥을 지어 정의선 시대를 열겠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현대자동차는 호봉제를 없애고 성과급을 중심으로 한 연봉제를 도입해 숙련도, 불량률, 시간당 생산대수 등 각종 생산성 지표가 떨어지는 노동자들에게는 임금을 차등지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금속노조가 현대자동차 정규직노조를 설득해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법원 판결에 따라 모든 사내하청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사내하청 제도를 없애라는 투쟁에 나서기는커녕, 분란을 자초하는 결정과 담화문을 내보내면서, 정몽구 일가만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16.9% 사용 합의, 비정규직 흑역사의 시작

민주노총과 산업별노조, 정규직노조와 비정규직노조의 배반과 연대의 역사는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00년 8월 현대자동차노조 정갑득 집행부와 회사는 생산 공정에 비정규직 노동자를 16.9% 사용할 수 있도록 합의했습니다.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고용의 바람막이로 사용한 뼈 아픈 잘못을 저지른 것입니다.

정갑득 위원장은 "비정규직이 갑자기 확대되는 긴급한 상황에서 16.9%에 비정규직을 묶어두는 응급처방 차원의 선택이었다"고 말했고, 실제 현장에서는 정규직이 꺼리는 힘든 공정을 대체하고, 다가올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비정규직을 대거 투입하고 있었습니다. 조선업종에서 훨씬 더 많은 비정규직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현대자동차 노사는 한국 노사관계의 대리전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987년 여름 노동자대투쟁의 불꽃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이었습니다. 노태우 군사독재시절 현대자동차가 정부가 정한 가이드라인을 넘어 임금을 올리면 이는 중소사업장까지 임금 인상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1996년 12월26일 김영삼 정권의 정리해고제 날치기 통과에 맞선 민주노총 총파업의 횃불이 전국으로 퍼져나간 것도 현대자동차의 파업이었습니다.

그래서 2005년 7월 17일 현대차 전․현직 위원장들이 모여 "그동안 불법 파견 문제를 근본적으로 저지하지 못하고, 때로는 방치하고 때로는 부분적인 합의를 해준 사실을 국민 앞에 고백하고 깊이 반성한다"며 "불법 파견에 대한 더 이상의 묵인이나 방조는 공동 범죄 행위라는 책임을 통감하는 자세로 합법적인 정규직화를 통해 불법적 관행을 올바로 시정해 나갈 것"이라고 약속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후에도 현대자동차 정규직노조는 회사의 탄압을 견디다 못해 노동조합 사무실 앞에서 목을 매 자결한 류기혁 조합원을 유서가 없다는 이유로 열사가 아니라고 했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하나의 노조로 단결하는 1사 1조직 규정 개정을 세 차례나 부결시켰습니다.

한국지엠 6년 만에 '비정규직 1000명 우선 해고 ' 눈앞

그나마 현대자동차는 반성이라도 합니다. 한국지엠 노사는 지난 2009년 경제위기 때 자동차가 팔리지 않자, 노사 합의로 정규직을 비정규직 자리로 옮기게 하고, 비정규직 1000명을 공장 밖으로 내보냈습니다.

6년이 지난 2015년 한국지엠 군산공장에서는 정규직 전환 배치로 비정규직 350명이 이미 공장에서 쫓겨났고, 주간 연속 2교대제가 1교대제로 바뀌게 되면 사내하청 노동자 650여 명이 일자리를 잃게 됩니다. 정규직의 묵인과 방조라는 공동 범죄 행위로 6년 만에 또다시 비정규직 1000명이 공장을 떠나게 됩니다.

ⓒ연합뉴스

원칙과 명분이 무엇보다 중요한 산업별노조에서 민주노조의 정신을 훼손하는 합의가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2004년 10월22일 충북 청주의 하이닉스와 매그나칩 사내하청 노동자 250명이 노조를 결성하고 12월15일 전면파업을 시작으로 2년6개월의 투쟁을 전개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대규모 집회, 가두투쟁, 충북도청 옥상과 죽전동 송전탑 고공농성, 청주노동사무소와 서울 본사 점거농성 등 2년6개월 동안 위력적인 투쟁을 벌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11명이 구속됐고, 40명이 집행유예를 받았으며 손해배상 소송으로 14억 원, 손해배상가압류가 34억 원에 달했습니다.

당시 대기업이 들어오지 않아 조합원이 4만 명이었던 금속노조도 총파업을 벌였고, 늦깎이로 출발한 민주노총 충북본부는 지역 총파업을 6차례나 했습니다.

그러나 현대자동차가 합류해 새로 출범한 금속노조는 2007년 4월26일 위로금으로 합의했습니다. 현대차 비정규직 전주, 아산공장이 8.18 합의에 참여했던 것처럼 하이닉스매그나칩 투쟁 당사자들은 5월3일 조합원 총회를 실시해 찬성 44 대 반대 28로 통과시켰습니다.

하지만 금속노조를 넘어 노동계에서 잘못된 합의에 대해 비판 여론이 높아졌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금속노조 점거농성에 돌입했고, 해당 임원이었던 수석부위원장 사퇴를 촉구했습니다. 금속노조는 중앙집행위원회에서 '합의안'에 대해 불승인하기로 결정하고, 금속노조 정갑득 위원장이 조합원들에게 담화문으로 사과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옆에 있는' 장그래 손부터 잡아야

물론 노동조합의 역사에서 연대와 단결의 역사도 많습니다.

미국발 경제위기로 인한 자동차 판매 급감과 아반떼 혼류 생산으로 현대차가 비정규직 우선해고를 하려고 하던 2009년 4월30일, 현대차 울산 2공장 정규직 대의원들은 사내하청 노동자 68명에 대해 고용과 임금까지 보장하기로 합의했습니다.

2010년 3월에는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정규직 노동자 3500여 명이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사내하청 노동자 18명에 대한 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세 차례에 걸쳐 잔업 거부 투쟁을 벌여 '아름다운 연대'라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2008년 겨울 비정규직 350명이 먼저 쫓겨나고 곧바로 정규직 2646명 해고에 맞닥뜨렸던 쌍용자동차는 이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하나의 노조로 단결해 함께 싸우면서 전국의 노동자, 시민들의 응원과 연대로 6년 만에 교섭의 문을 열었습니다.

대기업 정규직노조가 회사와 맞서 싸우지 않고, 실리주의와 대중영합주의에 갇혀 비정규직을 외면할 때, 그 화살은 결국 정규직에게 되돌아온다는 것을 역사는 분명하게 확인해주고 있습니다.

민주노총이 '장그래 살리기' 총파업을 하겠다고 합니다. 금속노조도 4월 총파업에 함께 하겠다고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곁에서 손을 내미는 장그래는 뿌리치고 멀리 있는 장그래의 손을 잡는다면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요?

현대자동차 정규직노조가 하루 이틀 파업한다고 박근혜 정부가 '노동시장 구조개악'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결국 이 싸움은 민심을 얻는 끈질기고 집요한 투쟁입니다. 고개 숙인 장그래들이 거리로 나오게 하는 거대한 싸움입니다.

금속노조가 할 일은 간단합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사과하고, 잘못된 결정을 폐기하고, 함께 싸우겠다고 약속하고, 현대차 정몽구 회장과 싸우는 것입니다. 옆에 있는 장그래의 손을 잡는 일이 '장그래 살리기 총파업'의 시작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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