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란 원론적으로는 남한과 북한 사이의 1대1 관계다. 이것은 양쪽 체제가 국가로서 주권을 확립한 상태를 전제로 하는 관점이다. 그런데 전시작전권 문제에서 명확히 드러나듯, 남한의 주권에는 제한이 있다. 그래서 미국의 입장이 남북관계에 작용하는 것이다.
관계 정상화를 위해서는 한 가지 전제가 있어야 한다. 미국의 도움 없이는 정상적 대북관계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독일의 경우 브란트의 동방정책의 전제 조건은 미국과의 돈독한 관계유지였다. 당시 미국의 도움이 없었다면 독일 통일은 절대 불가능했다는 점을 명심하자. 최근 우리나라에서 풍비하는 자주외교는, 현실적으로는 미국과의 동맹 체제를 이탈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남한에 국제관계 전문가들이 많으며 미국에서 수학한 사람들이 많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미국과의 동맹 체제를 벗어난다면 한반도의 통일은 불가능하다. 북한과의 정상적인 관계도 미국의 방위체제에서 남한의 안보를 보장받을 때만 가능하다. 이것은 친미주의 등의 멸시적 표현으로 평가하는 것보다 현실을 직시하는 데서 오는 이성적인 판단이다. (박성조 <한반도 붕괴>(랜덤하우스 펴냄) 34-35쪽)
"미국의 도움이 없었다면 독일 통일은 절대 불가능했다는 점"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가정적 명제이므로 입증도 반증도 완벽할 수 없는 주장이지만, "절대"라는 말은 '절대' 붙을 수 없는 이야기다. 통일의 시점과 방법에는 미국의 태도가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겠지만, 독일 통일이 전적으로 미국의 의지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본다는 것은 미국을 숭배하는 유사 종교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 근거로 한 "미국과의 동맹 체제를 벗어난다면 한반도의 통일은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따라서 받아들일 수 없다. 통일에는 미국과의 동맹 체제를 벗어나는 통일도 있을 수 있고 벗어나지 않는 통일도 있을 수 있는데, 벗어나지 않는 통일만을 박상조가 원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주권을 미국과의 관계에 종속된 것으로 보는 관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관점을 가진 사람에게 '민족'이란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이러한(60년간의 경험) 차이를 고려하면, 남한 사람과 북한 사람을 동일한 민족이란 틀로 묶는 것은 상당히 곤란하다. 남북한 사이에는 가치관, 문화, 사상의 휴전선이 존재한다. 이념과 철학이 서로 다른 문화에서 사회화되었으며, 서로 다른 정체성을 지닌 채 같은 민족이라는 명분에 묶였을 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민족 개념이 퇴색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이산가족을 제외하고는 남한 사람과 북한 사람 사이에 동족이라는 개념은 더 이상 큰 의미가 없다. 즉, 오늘날 통일정책에 깔린 민족은 동태적 개념이 아니다. 이것은 정태적이고 이러한 의미에서 하나의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세계에는 서로 다른 민족들이 절대적 가치관을 서로 공유함으로써 통합을 꾀한다. 이것이 바로 유럽 통합 과정이다. 바꿔서 말하자면 미래지향적인 가치관의 공유가 통일과 통합의 기폭제로 작용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통일정책 역시 민족주의적 접근보다 서로 다른 문화 화합의 접근이 더욱 바람직하다. (같은 책 31쪽)
'동태적'이 아니고 '정태적'이므로 '허구'에 불과하다? 뜻을 알아볼 수 없도록 애매한 표현을 늘어놓으면 비판하기 어려울 줄 아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 세상에 난삽한 글이 넘쳐난다. 그런 글로는 수준이 낮은 편이다. 말이 안 되는 소리란 걸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으니까.
박성조는 유럽 통합을 가치관의 공유에 입각한 것으로 보고 이를 근거로 '탈 민족'의 추세를 주장한다. 나는 그의 '민족'관이 너무 편협하고 고루한 것이어서 유럽 통합의 의미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 것으로 본다. 유럽 통합은 '탈 민족'이 아니라 '탈 국민'의 현상이다. 근대에 들어설 때 생겨난 국민국가가 해체 내지 약화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통합의 범위가 왜 유럽에 한정되는가? 기독교문명의 전통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전통의 공유라는 점에서는 유럽인을 넓은 의미의 '민족'으로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새뮤얼 헌팅턴이 말한 "문명의 충돌"은 냉전시대의 '블록'이 해체되면서 전통을 공유하는 문명권의 의미가 부각되는 추세를 가리킨 것이다. 냉전체제 해소로 가치관의 공유를 통한 결속력이 약화된 상태에서 전통의 공유가 뒷받침하는 얼마간의 응집력이 상대적으로 큰 힘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냉전시대의 양극체제가 미국 중심의 1극체제로 가든, 미국의 패권이 무너져 무극체제로 가든, 유럽인에게는 기독교문명권의 결속력을 회복하는 것이 유리한 전략으로 떠오른 것이다.
나는 이것이 '원교근공(遠交近攻)'의 시대에서 '근교원공(近交遠攻)'의 시대로 넘어가는 변화라고 본다. (☞관련 기사 : 이젠 '원교근공'의 시대에서 벗어날 때) 산업혁명 이후의 대량생산체제에는 소모적 전쟁을 조장하는 경향이 있어서 원교근공 양상의 제국주의체제와 냉전체제를 불러왔다. 냉전 해소는 이런 경향의 한계를 드러낸 일이었고, 이제 세계는 가까운 사회끼리의 협력을 중시하는 근교원공의 양상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유럽 통합은 이 관점에 부합하는 현상이다.
우리 사회도 이 변화를 톡톡히 겪어왔다. 20여 년간 중국과의 관계를 통해서다. 남한 정부가 대 중국 정책에서 '근교원공'의 원리를 의식한 일은 없었다. 세계정세의 변화 속에서 경쟁을 견뎌내기 위해, 그리고 이득을 취하기 위해 애쓰다 보니 중국과의 관계가 커지고 가까워진 것이다. 더 적극적으로 관계발전을 꾀했다면 더 많은 이점을 얻고 더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기는 하다.
지금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한-미-일 군사 공조체제에는 그런 점에서 국익에 역행하는 측면이 크다. 대한민국의 주권이 미국에 의해 제한받는 상황이 일으키는 손해는 냉전시대에 비해 훨씬 더 커졌다. 일거에 뒤집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주권의 완성을 장기적-거시적 과제로 추구할 필요가 있다. 박성조처럼 미국과의 동맹 체제 안에서만 통일을 생각하는 것은 이 사회의 이익보다 미국의 이익을 앞세우는 태도다.
중국과의 경험에 비추어 북한과의 관계를 생각해볼 수 있다. 중국에 대해 '중공오랑캐'라 부르던 냉전시대의 대결 자세를 거두지 않았다면 이 사회가 얼마나 큰 손해를 봤겠는가? 물류와 인적 교류가 쉬운 이웃 경제권 사이의 경제관계에는 멀리 떨어진 경제권과의 교류보다 유리한 점이 많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물론 북한은 중국보다 훨씬 작은 경제권이다. 그러나 공간 속의 힘의 전파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제곱반비례 법칙'을 생각하면 남북관계의 경제적 의미는 중국과의 관계보다 작은 것이 아니다. 북한이 중국보다 3분의1 거리에 있다고 보면 덩치에 비해 9배의 힘이 작용하는 것이다. 중국과의 관계는 경제면에서 대한민국의 국운이 걸렸다고 할 만큼 중요한 것이 되었는데, 북한과의 관계도 그 못지않은 잠재적 중요성을 가진 것이다. 재미동포 오인동의 글 중에 이 점을 부각시킨 것들이 있다. (☞바로가기➀, 바로가기➁) 이종석의 <통일을 보는 눈>(개마고원 펴냄)에는 남북관계에 걸린 경제적 득실이 차분하게 설명되어 있다. (☞관련 기사 : "이 목숨 바쳐서 통일", 섬뜩한 얘기는 그만!)
제곱반비례 법칙을 경제권 사이의 관계에 적용시킬 때 '거리'의 의미는 킬로미터로 표시되는 물리적 거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똑같은 물리적 거리라도 문화적, 제도적 조건에 따라 멀어질 수 있고 가까워질 수 있는 상당한 신축성이 있다. 미국은 물리적 거리가 멀지만 제도적 조건 때문에 비교적 가깝게 지내왔다. 반면 중국은 제도적 조건의 뒷받침이 덜하지만 물리적 거리가 워낙 작고 문화적으로도 가깝기 때문에 미치는 힘이 큰 것이다.
남북한 사이의 제도적 조건은 개성공단 정도 외에는 단절되어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엄청나게 먼 거리에 있는 셈이다. 그런데 언제든 제도적 단절 상태가 해소된다면 문화적 친연성 때문에 중국에 비해서도 훨씬 더 거리가 단축될 것이다.
박성조 같은 이들은 오랜 대결상태로 인해 민족 간의 친연성이 희석된 점을 강조하지만, 이 점에도 중국과의 경험이 참고가 된다. '중공오랑캐'로 40년간 적대시한 과거가 지금의 한중관계에 무슨 문제를 일으키고 있단 말인가. 남한 사회의 반공교육은 합리적 근거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 마음에 깊이 스며들지 못하고 표면에만 묻어 있다가 여건이 바뀌기만 하면 쉽게 씻겨 사라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 경험이 가르쳐준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후 경제협력의 새 출발점으로 개성공단이 만들어졌다. 경제협력이 어떤 이득을 양측에 가져오는지 보여줄 파일럿프로젝트의 의미를 가진 것이다. 박성조는 이 시도를 폄훼하기 위해서도 꽤 애를 쓴다.
노동비용에서 남한보다 비교우위에 있는 북한의 저임금 노동자를 활용한다는 것은 표면적으로, 그리고 국제경제이론에서 타당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공식적인 통일정책 차원에서는 노동자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 인권 차원에서도 한반도에서 이러한 처참한 현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 중국으로, 동남아로 끌려가 노예노동을 했던 민족이다. 통일정책을 민족주의 차원에서 추진하는 사람들이 '같은 민족'을 이렇게 착취해도 괜찮을 것인가?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을 수는 없지만, 당면한 우리의 현실은 개선할 수 있고 또 개선해야 한다. 미래에 열릴 과거 청산위원회에서 '같은 민족을 착취하거나 그런 상태를 알면서도 무언의 동조를 한 사람'이란 죄목을 언도받을지도 모른다. (<한반도 붕괴> 33쪽)
개성공단에 관한 협약에는 임금상승율의 제한 규정이 있다. 입주 기업에 안정성을 제공하기 위해 만든 규정이지만, 제한치고는 꽤 관대한 제한이다. 상당히 빠른 임금상승에 대비한 것이다. 시작 단계의 임금 수준은 '같은 민족'끼리라는 전제 아래 보면 '착취'라 할 수 있을 만큼 낮다. 그러나 봉쇄되어 있는 북한경제의 상황으로는 그나마 반가운 것이고, 경제협력의 활성화에 따라 그 수준은 올라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착취'를 하지 말라는 박성조 같은 사람들은 그러면 당면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건가? <한반도 붕괴>의 말미에서 그의 주장이 나타난다.
한반도에서 통일을 생각해보았을 때에도 우리는 '자유'에서 대안을 찾아내야 한다. 즉, 자유냐 동족이냐는 것을 선별해서 대안을 찾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오로지 '자유'만을 선택해야 한다. 자유는 분리될 수 없으며, 적당히 제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상대화할 수 없는 개념이다. 자유는 절대적이고 총체적인 가치관이며, 부분적이고 제한적인 가치관은 아니다. (…) 자유는 조금이라도 양보하여 스스로를 구속하는 것을 생각할 수 없다. 그러기에 '동족'이라는 명분 때문에 이러한 양보가 가능하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수용될 수 없다. 더욱이 북한의 인권문제에 '함구'하는 남한 정부의 정책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고 할 수 있다. (같은 책 196-197쪽)
나도 '자유'를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이런 원리주의적인 자유 숭상 앞에서는 할 말을 잃는다. 자유가 어떻게 절대적 가치일 수 있는가? 계몽주의시대 이래 자유주의는 지배자에게 침해받지 않는 '평등한 자유'를 추구한 것이었다. 모든 사람의 절대적 자유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17세기 중엽에 홉스가 갈파했다. 지금의 '신'자유주의는 자유의 본질에 대한 아무 고민 없이 이용 대상으로만 여기는 책략일 뿐이다.
박성조의 <한반도 붕괴>는 2006년 10월에 나온 책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한 몇 달 뒤다. 8년째 계속되고 있던 대결 완화정책 앞에서 좌절감에 빠진 대결주의자의 모습을 이 책에서 읽을 수 있다. 미국과의 동맹 체제를 벗어나서는 남북관계의 발전을 바라볼 수 없다느니, 한민족이 동족이라는 데 아무런 의미가 없다느니 하는 반민족적 주장과 남북 경제협력 사업이 "같은 민족에 대한 착취"라는 정반대쪽 주장이 여과 없이 뒤섞여 쏟아져 나오는 것은 그 좌절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사회의 대결주의 주장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한반도의 긴장 완화를 회피하려는 대결주의자들은 이 사회 안에 하나의 엄연한 세력으로 존재해 왔다. 이 사회에 불리한 대결 상태를 유지하려는 이 세력의 의지가 상당 수준 관철되어 온 까닭이 어디에 있을까. 나는 2008년 <뉴라이트 비판>(돌베개 펴냄) 이래 이 세력의 주장을 유심히 살펴왔는데, 그 주장에는 너무나 허점이 많다. 그들의 의지가 관철된 것은 주장이 타당해서가 아니라 "논리고 나발이고" 밀어붙이는 힘이 세기 때문이다.
지난 연말 헌법재판소의 추태를 보며 나는 "친일파 속성 그대로인 사이비 엘리트집단"의 존재를 다시 느꼈다. (☞바로가기)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통치의 편의를 위해 자기 사회의 공익(公益)을 등지고 사익(私益)만을 추구하는 친일파 집단을 육성하고 힘을 쥐어주었다. 해방과 건국을 거치면서도 같은 속성의 집단이 칼자루를 지켰다. 이 사회의 민주화도 이 집단의 힘을 줄이지 못했다. 이 집단을 견제하는 길을 찾는 것이 많은 문제의 해결과 극복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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