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단기 부양책, 재정건전성 해칠 뿐" 쓴소리

최경환 경제 정책 우회 비판…"경제학 기본원리에 충실하라"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이 29일 '장기적인 국가 전략의 부재'를 비판하며 현재와 같은 저부담-저복지 체계가 아닌 '중부담-중복지' 체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를 위한 사회적 증세 논의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도 강조했다.

유 의원은 이날 오전 '내일을 생각하는 국회의원 모임'이 주최한 '오늘, 대한민국의 내일을 생각한다' 토론회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이 토론회는 진영논리에 갇힌 여야 대결 구도를 넘어서자는 취지에서 준비된 것으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 등 여야 의원 70명가량이 참석해 이목을 끌었다.

여당 측 발제자로 나선 유 의원은 "무슨 세금을 얼마나 더 거둘지 여야는 지금부터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면서 "가진 자가 더 많은 세금을 낸다는 원칙 하에 단계적 증세 방안을 고민해 합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그는 "사회보험, 공공부조, 사회복지서비스 사이에 재정을 어떻게 배분하느냐, 4대 연금을 어떻게 개혁할 것이냐도 당연히 수렴과 합의가 필요한 문제"라면서 정부·여당의 공무원연금 개편 '속도전'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유 의원은 다만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지는 복지"에는 선을 그었다. 그는 "고부담-고복지는 실현 가능하지도 않고 그렇게 할 재정도 없다"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종교 단체의 복지 기능, 시민의 자발적인 자선과 기부 등의 '제3의 대안'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이 또한 정치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단기 부양책, 성장엔 도움 안 되고 건전성만 해칠 뿐"

'지속 가능한 경제'를 위한 '분배'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유 의원은 곧이어 '성장' 부문으로 논의를 옮겨 가 최경환 경제부총리 주도로 펼쳐지는 단기 부양책에 대한 쓴소리를 내놨다.

그는 "역대 정부는 정권 초단기 경제 성적표를 잘 받으려는 유혹에 빠져 인위적 단기 부양책을 쓰는 경우가 많다"면서 "그러나 단기 부양책은 추락하는 잠재 성장률을 높이는 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되고 재정 건전성만 해칠 뿐"이라고 말했다.

유 의원은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보고서를 인용하기도 했다. 이날 소개된 보고서에서 KDI는 "부양 정책이 반복되면서 재정 건전성과 물가 안정을 훼손할 위험이 존재한다. (중략) 성장 잠재력 확충을 위해선 지속적인 구조개혁을 통해 제도의 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인식을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는 확장 정책과 구조 개혁을 '투 트랙'으로 동시 진행하겠다는 최경환 경제팀의 경제 전략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정부가 최근 내놓은 '2015년도 경제정책방향'에서 정부는 가계부채와 재정 건전성 악화에 대한 거듭되는 우려에도 확장 정책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 관련 기사 : 박근혜 정부, 전방위 구조조정 선포?)

▲ 유승민 의원. ⓒ프레시안 자료사진

"비정규직 문제, 차별 시정뿐 아니라 안정적 공급 차원에서 합의해야"

유 의원은 내림세를 면치 못할 것으로 예상하는 잠재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선 "노동을 늘리고 자본을 늘리고 총 요소 생산성을 늘리는 경제학의 기본 원리에 충실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이런 관점에서 자본에 대해선 "축적과 투자를 방해하는 모든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고 했고 노동에 대해선 "질 높은 노동의 안정적 공급"을 주장했다. "비정규직 등 노동 시장의 이중 구조 문제는 차별의 시정뿐 아니라 안정적 공급이란 차원에서 수렴과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공교롭게도 정부는 이날 '비정규직 대책'을 발표하며 기간제 사용 기한을 늘리고 파견 허용 대상을 확대하는 방향의 노동 시장 '유연화 전략'을 발표했다. 유 의원이 주장한 성장률 제고 전략과는 거리가 있는 정책 방향이다.

이처럼 유 의원은 이날 '시장주의'에 충실한 경제 전략을 보이면서 국가 주도의 친기업 발전 전략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당수 새누리당 의원들과의 차별성을 보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나 국가 복지의 필요성과 그를 위한 증세의 필요성을 강조한 점은 특별한 재원 대책 없이 선거용 복지 정책을 내세워 온 야당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야당은 그간 '증세' 논의에는 선을 그은 채로 이명박 정부 시절 이루어진 부자 감세를 철회해야 한다는 수준의 주장만 반복해 왔다.

김한길 "세월호, 안전 문제로 축소 안 돼…산업화 가치 넘어서란 국민적 요구"

한편, 이날 야당 측 발제자로 나선 김한길 의원은 "산업화·민주화 시대를 넘어서는 인간화 시대를 '시대 정신'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인간화 시대'란 표현은 기존에 정립된 이론적 개념이 아닌 김 의원이 편의상 붙인 표현이다.

김 의원은 "지난 몇 개월간 우리에게 세월호는 무엇이었는가"를 고민했다"면서 "세월호 교훈이 안전 문제로 축소돼 버리는 것이 몹시 안타깝다. 세월호가 던지는 물음은 보다 근본적이고 절박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산업화·민주화 시대를 넘어서 국민 개개인의 행복한 삶을 우선으로 추구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국가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게 시대적 요청"이라면서 "박근혜 대선 후보 또한 이를 외면할 수 없어 경제 민주화와 복지를 대표적인 대선 공약으로 앞세웠으나, 취임 이후 산업화 시대의 가치와 행태를 고집했다"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그러던 중 세월호 참사가 엄습했다"면서 "이 참사는 국민에게 자신이 국가로부터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단 걸 확인하고 자각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유승민 의원과 대화하는 가운데 소득불평등을 해소하는 성장, 성장 과실을 고르게 누리는 성장이 중요하단 것에 공감하고 있단 것을 확인해 기뻤다"면서 "지금의 양당 중심의 정치가 '적대적 공생 관계'에 안주하고 있다는 날 선 지적에 대해서도 이를 극복하기 위한 진지한 모색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두 의원 외에도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과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가 토론자로 나섰으며 발제와 지정 토론이 끝난 후에도 몇 의원들이 방청석에서 질문과 토론을 하며 열띤 분위기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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