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누구를 위해 스스로의 권위를 추락시키는 결정을 내렸는가?" (김종철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법리를 차분하게 적용한 '사법적 판단'이라기보다는 인용 의견을 낸 8인 재판관들의 정치적 성향을 강하게 드러낸 '정치적 판단'으로 평가한다." (임지봉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 19일 나온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대해 헌법학 전문가들은 "법리적 논증의 완결성도 구체적 증거도 없다"고 입을 모았다. "한 마디로 무모하고 비겁하고 무책임한 결정"(김종철 교수)이라는 것이다.
22일 참여연대가 주최한 긴급 토론회 '민주화의 산물 헌법재판소, 민주주의를 삼키다'에 참여한 법률 전문가들은 무려 348페이지에 이르는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을 검토한 뒤, 이같은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헌재는 누구를 위해 스스로의 권위 추락시키는 결정을 내렸나?"
이들은 결정문 전반부에서 헌법재판소가 정당해산의 요건에 대해 스스로 밝힌 내용까지 들은 뒤에는 "당연히 헌재가 기각 결정을 내릴 것으로 예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론은 정반대였다.
김종철 교수는 "정당해산의 법리 자체는 결론이 무색할 정도로 비교적 엄정했고, 관련 국제 규범을 상당 부분 수용해 '헌법재판소가 역시 일을 내겠구나' 생각했는데 앞의 장황한 얘기를 스스로 무력화시켰다"고 평가했다.
임지봉 교수도 "8인 재판관의 인용 의견은 헌법재판소 스스로 밝힌 정당해산의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해 적용하지 않았고 오히려 중요한 쟁점들에서 구체적 증거 제시 없이 단정적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임 교수는 "논리적 완결성은 이 결정문에서 발견하기가 힘들다"고 덧붙였다.
구체적으로 결정문을 살펴보면, 더 그렇다.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의 목적과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주장했지만, 그 이유로 든 것은 이른바 "숨은 목적"이었다. 임 교수는 "그러나 정당의 '목적'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기 위해서는 강령에서 민주주의를 거부하고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이를 위해 폭력에 의한 정부 전복도 불사할 수 있음이 명시되는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의 활동과 이석기 의원 등의 활동을 거의 동일시하며 해산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데, "'주도세력'이나 '장악'은 법률용어가 아니"라는 것이 임 교수의 지적이다. 임 교수는 "적어도 정당해산을 명령하는 결정문에서 사용되기에는 명확하지 않은 불확정 개념"이라며 "더욱이 왜 그들이 '주도세력'인지 등에 대한 구체적 증거 제시도 빈약하다"고 비판했다.
김종철 교수는 "전세계적으로 가장 강력한 사상 및 표현의 자유 통제법인 국가보안법을 비롯해 국민의 일상적 정치활동과 정당활동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선거법, 정당법, 집시법 등을 두고 있는 한국의 법제에서는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정당의 활동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이석기 내란선동 사건이야말로 이를 증명하고 있지 않냐"고 되물었다.
"'관심법 판결문'이라는 비아냥 왜 나오나 봤더니…"
피청구인인 통합진보당의 법률 대리인단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이재정 변호사는 "문제의 5월 12일 모임에 참석도 안 한 사람이 참석자로 판결문에 적혀 있는가 하면, 민혁당 관련 판결문에서 조직원으로 한 번도 언급된 적 없는 사람이 민혁당 조직원으로 인정됐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 변호사는 "심지어 통합진보당에 관련된 사람의 과거 저술, 강연 등을 헌법재판소가 문제 삼았는데 과거의 그 사람과 지금의 그 사람을 같은 사람으로 판단하는 것이 법률적으로 가능하냐"고 되물었다. 이 변호사는 "증거에 의한 재판으로 보기에는 논리적 비약이 너무 심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안창호, 조용호 재판관이 보충 의견에서 '번드르르한 말 속에서 본질을 간파한다'는 사자성어 '피음사둔'을 거론한 점을 언급하며 이 변호사는 "아주 작은 싹을 보고도 결과를 예측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 스스로도 증거에 의한 재판을 하지 않았다는 자기 고백"이라고 비판했다. 이 변호사는 "'관심법 판결문'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이유다"라고 덧붙였다.
"이번 판결로 상당 기간 권력 분립 체계 작동하지 않을 수도"
서강대학교 현대정치연구소의 서복경 박사도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으로 최소한 박근혜 정부 3년, 길게는 상당 기간 동안 권력 분립 체제가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서 박사는 "이석기 의원 등에 대한 위법성 판단이 사법부에서 완료되지도 않은, 증거가 완전히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것을 근거로 통진당의 해산을 결정했기 때문에 독립적인 사법부의 심의 절차 자체를 헌법재판소가 스스로 훼손한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서복경 박사는 "3권 분립과 국민의 기본권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몰이해가 제도의 훼손을 가져오는 사태에 이르렀다"면서 "통치 권력이 이런 권력 행사를 자제하지 않으면 국민적 저항이 발현될 수밖에 없고 사회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치러야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윤철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전반적으로 한국 정당 정치와 정당 체제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협소하게 만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교수는 "2004년 민주노동당이 창당되기 전, 진보정당이 있는 정당 체제 이전으로 돌아간 일종의 회기"라며 이같이 말했다.
김윤철 교수는 "박근혜 정부가 이런 방식으로 한국 사회나 정치를 이끌어가는 이유를 살펴 보면, 무능하거나 그것이 아니라면 사회 독재, 장기 집권 프로젝트의 성격도 있겠다"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전반적으로 우경화 프로젝트로 보인다"면서 "공화적 원리, 즉 견제와 균형을 통해 존속가능한 공화제적 질서에 대한 이해는 없고 정권 안보의 차원에서만 접근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평가했다.
진보진영 내부에 미칠 파장도 엄청날 것이라는 진단이다. 김종철 교수는 "이념적 차원의 '은폐된' 목적에 주목한 이번 결정으로 진보진영은 종북의 딱지를 떼기 위해 불필요한 사상검증을 견뎌내야 하게 되었으며, 내부적으로 끝없는 이념투쟁과 외부적으로 보수진영의 무차별적 색깔론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법적 근거 없는 의원직 상실…헌재가 '준입법권' 행사까지 나간 셈"
통합진보당에 대한 해산을 결정한 첫 번째 주문도 문제지만, 소속 국회의원 5명의 의원직을 상실시킨 두 번째 주문의 경우는 "아예 법적 근거 자체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었다. 헌법, 헌법재판소법, 정당법의 어디에도 "해산 결정시에 소속 국회의원의 자격이 상실된다는 규정은 없다"는 것이다.
임지봉 교수는 "헌법재판소가 법적 근거 없이 월권적 권한행사를 한 것인데 사법부는 법률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곳이지 입법을 하는 곳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임 교수는 "결국 헌법재판소가 사실상 '준입법권' 행사까지 나간 셈인데 이는 3권 분립에도 반하며 법치주의에도 위배된다"고 비판했다.
헌법재판소는 5명의 국회의원의 의원직 상실을 결정하면서 소속 광역·기초의원의 '앞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임지봉 교수는 "정부 측이 국회의원직 상실 여부에 대한 판단만 구했다 하더라도 헌법재판소는 직권주의를 근간으로 하기 때문에 광역·기초의원의 의원직 상실에 대해서도 판단할 수 있었다"면서 "이는 헌법 제11조의 평등원칙에도 위배될 뿐 아니라 또 다른 법적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2일 전체회의를 통해 비례대표 의원은 의원직을 상실시키고 선출직 의원은 무소속으로 남게 된다고 유권해석을 했지만 반발이 나오고 있다. 선관위의 결정 역시 헌법재판소의 의원직 상실 결정과 마찬가지로 법적 근거가 없는만큼 "월권행위"로 볼 수 있는 데다, 그 법적 효력에 대한 다툼의 소지도 더 크다.
이재정 변호사도 "선관위의 유권해석에 따르면 헌법재판소 역시 지역 의원은 살려놨어야, 최소한 비슷하게 결을 맞추기라도 하는 것 아닌가"라며 "같은 편끼리도 오합지졸 정리가 안 되는 셈"이라고 비꼬았다.
임지봉 교수는 "중앙선관위의 결정은 법적 근거가 전혀 없고 헌법재판소의 주문에도 안 나온 것인만큼 충분히 취소 결정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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