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시대'가 요구하는 민족주의의 역할

[김기협의 자본주의 이후]<7> 경쟁의 민족주의와 협력의 민족주의

약 20년 전 '세계화'란 말이 부각되면서 '국가'와 '민족'을 낡은 개념으로 보는 풍조가 일어났다. 세계화는 거스를 수 없는 변화의 추세이며, 이에 저해되는 국가와 민족의 틀을 얼른 벗어나는 것이 이 변화 속에서 성공을 거두는 길이라는 인식을 많은 사람들이 갖게 되었다. 그래서 자기가 속한 사회를 아끼는 마음을 가진 양심적 지식인들 중에도 '탈 민족'을 바람직한 진보를 위한 과제로 여기는 이들이 나타났다.

"상상의 공동체", "발명된 전통" 같은 말이 유행했다. 1983년 출간된 두 권의 책에서 나온 말이다.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 Imagined Communities>와 에릭 홉스봄, 테렌스 레인저가 엮은 <전통의 발명 The Invention of Tradition>이다.

이들의 민족주의 비판은 중요한 담론이다. 우리가 민족주의를 생각할 때도 꼭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비판의 대상과 논점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받아들일 경우 폐단이 클 수 있다. 이들 서양 학자들의 비판이 서양 민족주의를 대상으로 한 것이라는 사실을 무엇보다 먼저 생각해야겠다.

근대 이전의 유럽에서는 '민족'에 큰 의미가 없었다. '국가'라 할 만한 대형 정치조직은 봉건적 계약관계로 맺어진 것이어서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민족'과 별 관계가 없었다. 한 왕실이 여러 언어 쓰는 여러 민족을 지배하는 것도, 같은 언어 쓰는 같은 민족이 서로 다른 왕실의 지배를 받는 것도 중세유럽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민족보다는 '기독교인'이란 정체성이 더 중시되었다.

그런데 17세기 이후 국민국가의 급속한 발달에 따라 각 민족의 문화와 전통을 서둘러 정비할 필요가 일어났다. 국가권력이 이 정비작업을 서둘러 이끌어가는 과정에서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발명'에 비슷한 무리한 작업이 진행되었다. 무리하게 빚어진 민족주의가 제국주의시대에 들어와 많은 갈등의 촉매가 되고 심지어 유태인 대학살 같은 비인도적 현상까지 일으키자 그에 대한 반성으로 민족주의 비판이 일어나게 되었다.

우리 민족의 역사와 전통은 이와 크게 다르다. 정복자 윌리엄이 잉글랜드를 정복할 무렵 한반도에는 민족국가 고려가 자리 잡고 있었고, 이 민족국가가 천년 가까이 한반도 전역에 안정된 질서를 유지했다. 한민족은 세계에서 가장 길고 튼튼한 민족국가의 역사를 가진 민족이다.

이 민족국가의 존재가 민족문화의 발전을 뒷받침해 주었다. 무엇보다도 15세기 초의 한글 창제에 깊은 뜻이 담겨 있었다. 나는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일찍 만들어진 '근대적 민족문자'라고 생각한다. 인구의 대다수가 문자를 향유하게 한다는 점에서 근대적인 것이고 민족문화를 담는 민족 고유의 문자라는 점에서 민족문자라고 하는 것이다.

한민족의 문화는 민족문화로서 뚜렷함과 단단함이 매우 뛰어난 문화다. 근대에 들어와 갑자기 "발명된 전통"이 아니고, 이 문화를 공유하는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가 아니다. 오래된 전통이고 실존의 공동체다.

경쟁의 민족주의와 협력의 민족주의

하지만 그렇다 해서 한민족의 민족주의에 대한 반성이 전혀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전통의 발명>에 다뤄진 메이지시대 일본의 사례를 살펴보면, 오랜 전통인 신도(神道)가 국가신도로 변형되는 과정에 분명히 '발명'의 의미가 있었다. 신도는 오래된 전통이지만 서양에게 배운 일본 '내셔널리즘'의 주축이 된 국가신도는 전통 신도와 크게 다른 것이다. 메이지시대 이후 국가주의 형태로 표현되어 온 일본인의 민족의식에는 유럽인의 내셔널리즘과 마찬가지로 조작되거나 과장된 점이 있었다.

한민족의 민족의식도 마찬가지다. 물고기가 물을 의식하지 않고 사는 것처럼 민족의 의미를 크게 의식하지 않고 살던 한민족의 민족의식이 일본 내셔널리즘의 침략에 자극받아 갑자기 강렬한 표현의 필요를 느끼면서 근대 내셔널리즘의 형태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근대 내셔널리즘은 정상적 민족의식에 비해 현실을 왜곡하고 과장하는 특성을 가지는데, 조선에서는 침략당하는 입장의 피해의식 때문에 그 특성이 더욱 강했다.

근대 내셔널리즘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경쟁' 지향성이었다. 근대 이전 사람들은 인근의 다른 민족을 '우리와 다른 사람들'로 인식하면 됐지, 꼭 '우리보다 열등한 존재'로 볼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근대 내셔널리스트는 다른 민족을 우리보다 우월한 존재나 열등한 존재로 규정해야만 직성이 풀린다. '우승열패'의 근대적 인간관이 민족의식에도 적용된 것이다.

▲ 독립운동가 안재홍.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될 때 식민지시대의 민족주의와는 다른 형태의 민족주의가 필요하게 되었다는 인식으로 '신민족주의' 이야기가 나왔다. 안재홍이 1945년 9월에 발표한 "신민족주의와 신민주주의"가 대표적인 논설이었다. '경쟁'과 '정복'의 민족주의에서 '협력'과 '공존'의 민족주의로 나아간다는 지향성이 이 글에 나타났다.

그러나 반도 남북에 독재정권이 자리 잡음에 따라 민족주의의 자연스러운 발전이 다시 막혔다. 독재정권이 이용하기에는 편협하고 배타적인 민족주의가 편리했고, 그 때문에 한국 민족주의는 시대상황의 변화에 맞춰 발전하지 못했다. 그 결과 한국사회의 민족주의에는 '상상의 공동체'나 '발명된 전통'으로 반성할 요소들이 아직도 남아있다. 남북 어느 쪽이나 마찬가지다.

오늘날 세계정세의 변화 추세에 비추어볼 때 근대 내셔널리즘의 경쟁적-독선적 세계관을 벗어날 필요는 분명하다. 이 측면이 1970년대 이후 많이 이야기되어 왔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근대적 개인주의를 넘어설 필요가 있으며, 민족주의와 같은 '네트워크 속의 소속감' 확충이 그를 위해 좋은 방도라는 점을 나는 생각하게 되었다. 요컨대 근대 내셔널리즘의 거품을 빼면서 자연스러운 수준의 민족주의를 살려내는 것을 진행 중인 세계적 변화 앞에서 우리 사회의 중요한 과제로 보는 것이다.

'본딩(bonding)' 조직력과 '브리징(bridging)' 조직력

앞으로 변화의 방향과 방법을 모색함에 있어서 '자연스러움'이라는 기준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 인간사회는 긴 역사를 통해 온갖 변화를 겪어오는 동안 변화의 고통을 최소화하면서 변화의 혜택을 최대화하는 방법을 체득해 왔다. 그 방법에 적합한 태도를 일반인은 '자연스럽게' 느낀다. 물론 사회가 겪는 변화에는 언제나 새로운 것이 있기 마련이고, 그런 요소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자연스러운 태도에서 벗어날 필요도 일어난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태도를 기본으로 하고 꼭 필요한 범위 내에서 태도를 바꾸는 것이 안전하고도 효과적인 적응방법일 것이다. 문명 초기부터 인간이 역사를 공부해 온 중요한 목적 하나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의 근대문명은 자연스러움을 원천적으로 거부했다. 극단적인 경우 이전의 문명상태를 모두 야만으로 규정하고 새로 나타난 산업문명만이 제대로 된 문명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철 지난 이 주장을 지금 우리사회에서는 뉴라이트가 내놓고 있다.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규정하려는 뉴라이트의 주장이 그 연장선 위에 있다. 이기심은 인간의 속성 중 하나다.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크게 나타나기도 하고 작게 나타나기도 하지만 이기심 하나에 의해서만 행동이 결정되는 사람은 병원에 보내야 한다. 자본주의체제가 원래 이기심의 역할을 키우려는 경향을 가진 것이기는 하지만 이기심 외의 다른 인간성을 완전히 무시하려 드는 것은 지나친 극단이고, 신자유주의가 자본주의체제의 '막장'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본주의체제는 일체의 전통을 '야만'과 '봉건'이란 이름으로 타기했다. 그 체제에 더 이상 의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전통의 가치를 다시 음미할 필요가 있다. 전통 중에는 물론 더 이상 복원이 불가능하거나 바람직하지 않은 요소들도 있다. 그러나 농업문명 단계에서 자연조건이 주는 제약과 그 제약에서 비롯되는 인간 사이의 억압을 가능한 한 가볍고 편안하게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전통 속에 담겨 있다. 이제 산업사회의 정상 상태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농업사회의 정상 상태를 참고로 할 필요가 있다. '정상 상태'라는 공통점 위에서 '전환기'와의 차이점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정부 체제는 지금까지의 근대국가처럼 하나의 정부가 모든 국민을 개인으로 상대하는 체제가 아닐 것이다. 지지와 보호를 교환하는 계약관계가 중층적으로 맺어지는 봉건체제처럼 유기적 관계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 유기적 관계 속에서는 파편화된 개인으로 존재하는 구성원보다 안정된 공동체를 가진 구성원들이 유리한 조건을 누릴 것이다.

공동체의 가치가 자본주의체제 안에서도 부각되기 시작하는 추세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자본의 네 가지 형태로 토지, 건물, 기계와 함께 '인간 자본'을 꼽았다. 이 인간 자본이 인간 자체가 아니라 생산에 공헌하는 인간의 능력, 즉 그 물질적 측면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오랫동안 해석되어 왔는데, 근년의 '사회적 자본' 탐구는 인간 자본의 의미를 점점 더 넓게 바라보고 있다.

로버트 퍼트넘의 <나 홀로 볼링 Bowling Alone>은 사회적 자본으로서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부각시킨 책이다. 인간관계의 형태를 '본딩(bonding)'과 '브리징(bridging)'으로 구분한 점이 이 책에서 특히 주목을 끈다. 본딩은 동질적 집단 내의 유대감이고, 브리징은 이질적 집단들 사이의 연대감이다. 대표적인 본딩 조직은 조폭이고, 브리징 조직은 자원 봉사나 취미 활동 등 금전적 이익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단체에서 나타난다.

두 가지 조직력의 적절한 배합이 사회적 자본의 확충을 위해 바람직한 것이라고 퍼트넘은 설명한다. 각 집단 내에 적정 수준의 본딩 조직력을 가지면서 다른 집단들 사이에도 집단이기주의를 뛰어넘는 브리징 조직력을 가지는 것이 개인, 집단, 사회의 이해관계를 잘 조화시킬 수 있는 조건이며, 또한 경제 발전을 순조롭게 해주는 조건이라는 것이다.

어느 집단이든 조직력을 가진다는 것은 구성원들이 조직의 목적을 위해 희생과 양보를 할 때 가능한 것이다. 그 희생과 양보의 중요한 내용이 개인의 자유와 권리다. 유기론적 세계체제 안에서는 여러 층위에서 맺어지는 이런 관계가 네트워크를 이루게 될 텐데, 그 기본 원리의 한 모퉁이를 퍼트넘이 보여준 것이다. 자본주의체제 자체도 이런 방향의 변화를 내다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임을 여기서 알아볼 수 있다.

근대인에 대한 '개인주의'의 지배력

근대는 개인주의의 시대였다. 사회가 독립적 개인으로 구성된다는 생각은 물질이 독립된 원자로 구성된다는 물리학의 원자론을 빌려온 것이었다. 그런데 정작 물리학에서는 원자론이 자취를 감췄는데도 사회에 대한 개인주의 관점은 강고하게 남아있다.

'개인주의(individualism)'란 말과 대칭되는 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개인주의의 위력을 확인할 수 있다. 전체주의? 사회주의? 어느 말도 개인주의처럼 보편적 원리의 표현으로 쓰이지 못해 왔다. 영어에서는 'corporatism'이 제일 비슷하게 쓰이는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도 분명치 않다. 북한체제의 특징을 'corporate state'라고 한 브루스 커밍스의 글을 옮긴 두 권의 책에서 이 말이 '기업국가'로 번역된 것을 보았다. 우리 사회에는 이 말에 대한 인식이 없다시피 한 것이다. 나는 '유기체론'이라고 옮겨서 쓰겠다.

조직 원리로서 개인주의는 유동성이 크고 점성(粘性)이 약한 원리다. 개인주의 사회의 구성원은 주변사람들로부터 구속을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유롭지만, 그 대신 그들의 보호와 도움도 받지 못한다. 그래서 자본권력의 침해에 대한 저항력이 약하다. 한편 '봉건'이란 말로 흔히 표현되는 중세의 유기체론 질서는 점성이 강하다. 구성원들이 서로 구속과 도움을 주고받기 때문에 초월적 권력의 침해에 대해 강한 저항력을 가지는 것이다.

머레이 북친의 말처럼, 인간의 지배와 자연의 지배는 같은 틀에서 나온다. 점성이 약한 사회의 파편화된 개인을 손쉽게 지배하는 초월적 권력은 지배의 수단인 "빵과 서커스"를 제공하기 위해 자연을 무절제하게 착취하려 든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모순, 인간과 자연 사이의 모순이 나란히 드러나는 것이다.

근대인은 '봉건'이란 말에 경멸감부터 품었다. 독립된 개인의 인격에 제약을 가하는 '인신 예속'의 조건 속에 살았던 조상들을 가엾게 여겼다. 그러나 이런 오만은 인간의 존재가 자원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은 환상에서 나온 것이었다. 인간은 아득한 옛날부터 늘 자원 부족을 걱정하며 살아왔다. 그 걱정을 잊어버린 근대인이 비정상이었다. 자연이 "아낌없이 주는" 너그러운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지 않으면 파국이 멀지 않다.

인간과 자연 사이의 긴장관계에 대한 깨달음은 개인주의를 후퇴시키고 유기체론의 비중을 늘리게 될 것이다. 물론 중세의 봉건질서가 그대로 복원될 수는 없다. 극단으로 치달았던 변화의 길을 되돌아오다가 지금의 문명단계에 맞는 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유기체론이 파시즘에 이용된 것은 관성에 의해 일시적으로 반대쪽 극단으로 넘어간 것이라 할 수 있다.) 몽땅 내버렸던 유기체론 원리를 어느 정도 회복시킬 것이다.

전 세계적 질서에도 유기체론의 원리가 적용될 것이다. 19세기 동아시아인에게 '만국공법'이란 이름으로 강요되었던 근대 국제법체계는 개인주의 원리를 세계질서에 적용한 것이었다. 이 원리에 따라 만들어져 있는 '국민국가'들이 물론 일거에 사라질 것은 아니지만, '국가주권'의 대내외적 우선권은 줄어들 것이다. 개인과 가족에서 시작해 세계정부에 이르기까지 양파껍질 같은 공동체의 중층(重層) 속에 국가는 하나의 꺼풀이 될 것이다.

유기체론의 원리에 따른 중층적 질서 속에서 개인의 생활과 활동 조건은 어떤 공동체들 속에 자리 잡느냐에 크게 좌우될 것이다. 튼튼한 '민족국가'의 존재는 그 구성원들에게 많은 혜택을 보장할 것이다. 이런 상황 속의 민족국가는 다른 층위의 공동체들, 그리고 같은 층위의 국가들과 경쟁보다 협력을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될 것이다.

민족국가의 이념으로서 민족주의는 19-20세기에 유행한 근대 민족주의처럼 경쟁과 대결을 위한 선전수단이 아니라 협력의 주체로서 국가의 역할을 뒷받침해주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위(sollen)'로서의 국가보다 '존재(sein)'로서의 민족이 민족주의의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발전에 대한 희망을 나는 <밖에서 본 한국사>를 맺는 말 끝에 이렇게 적었다.

남을 깔보지 않으면서도 우리 뿌리에서 아낄 만한 미덕을 찾고, 이웃을 존중하면서도 우리의 떳떳함을 잃지 않는 '교양'의 정신을 이 책에 담고자 했다. 이웃 간의 경쟁보다 협력이 더 중요한 시대가 오고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투쟁의 무기보다 교양의 샘을 역사에서 찾으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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