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쿠바 53년만에 국교정상화…다음은 북한?

'적과의 대화' 약속했던 오바마, 북한에 손 내밀까?

미국과 쿠바가 53년 만에 역사적인 국교정상화에 나선다. 이로써 피델 카스트로가 혁명을 통해 공산 정부를 세운 지 2년 만인 지난 1961년에 끊겼던 양국 관계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됐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7일(이하 현지시각) 특별 성명을 통해 "미국은 대(對) 쿠바 관계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위한 역사적 조치들을 취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수십 년간 미국의 국익을 증진해나가는 데 실패해온 낡은 접근방식을 끝내고 양국 관계를 정상화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오바마 정부는 이날 각종 성명에서 그동안 취해왔던 대쿠바 봉쇄정책이 사실상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은 그동안 쿠바의 고립을 목표로 한 정책을 추진해왔으나 쿠바 정부가 자국민들을 억압하는 명분을 제공하는 것 외에는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밝혔다.

▲ 17일(현지시각) 특별 성명을 발표하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CNN 방송 갈무리

그는 봉쇄정책을 통해 쿠바를 붕괴로 몰아가는 것은 미국의 국익과 쿠바의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어떤 나라를 실패한 국가로 몰아붙이는 정책보다 개혁을 지지하고 독려하는 것이 더 낫다는 교훈을 어렵게 얻었다"고 덧붙였다.

앞서 발표된 백악관 성명에서는 봉쇄정책에 대해 "민주적이고 번영하며 안정적인 쿠바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달성하는데 실패했음이 분명해졌다"며 "오히려 미국의 봉쇄 정책은 중남미 지역과 전 세계의 파트너 국가들로부터 미국이 고립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오바마 정부는 이날 성명에 대한 후속 조치로 그간 쿠바에 적용됐던 각종 제재를 완화하는 한편 수개월 안에 쿠바 수도인 아바나에 미국 대사관을 재개설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오바마 대통령은 △쿠바의 테러지원국 해제 검토 △쿠바 여행과 관련한 규제 개정 △대쿠바 송금 한도 500달러에서 2000달러로 인상 △금융거래 허용 △미국 통신사업자들의 쿠바 내 통신시설 구축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쿠바 측도 미국과 국교정상화를 논의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은 이날 특별 성명을 통해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로 양국 관계 정상화를 논의했다"며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는 체제의 자주성과 국가 주권에 대한 편견이 없는 기반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전격적인 미-쿠바 국교정상화 추진 소식에 야당인 공화당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성명을 통해 이번 국교정상화 추진이 "잔인한 독재자에게 어리석은 양보를 해준 또 하나의 사례"라고 주장했다. 쿠바 출신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은 "백악관이 얻은 것은 하나도 없이 모든 것을 쿠바에 양보했다"고 비난했다.

오바마-카스트로 만남 성사되나?…남은 북한은 어떻게?

미-쿠바의 국교정상화 추진 소식이 알려지면서 양국 정상이 이르면 내년 4월 공개적인 만남을 가질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내년 4월 10~11일 파나마에서 열리는 미주기구(OAS) 정상회의에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쿠바 역시 OAS 회원국 자격을 회복한 이후 처음으로 내년 정상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지난해 12월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추모식 때 만났던 오바마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다시 한 번 역사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게다가 이번 만남이 성사될 경우 양국 정상이 국교정상화 이후 처음으로 직접 만남을 통해 정치·외교적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게 될 것으로 보여 상징적 의미가 클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쿠바를 방문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국교정상화가 발표된 이후 기자들과 만나 "아직 구체적인 (방문) 계획은 없지만 만약 기회가 생긴다면 대통령이 이를 거절하지는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한편 오바마 대통령이 2009년 대통령 취임 이전에 '적과의 대화'를 약속하면서 거론한 이란, 쿠바, 북한 중 현재까지 정상 간 아무런 접촉이 없었던 국가는 북한이 유일하다. 이 때문에 오바마 대통령이 임기가 끝나는 2016년 이전에 북한과 접촉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번 국교정상화 선언은 임기 말 업적 관리 차원에서 진행된 측면이 있다는 것이 공통적인 평가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오바마의 다음 선택은 북한이 될 가능성이 높다.

▲ 버락 오바마(왼쪽)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AP=연합뉴스

특히 미국이 북한의 체제나 특성과 상당 부분 닮아있는 쿠바와 국교정상화를 추진한 것이 북한에 주는 하나의 메시지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쿠바와 북한을 주로 압박하는 정책을 써왔던 미국이 봉쇄 정책의 실패를 자인하면서 국교정상화를 추진한 측면을 보면, 북한 정권에게 관계 개선을 위한 테이블로 나오라는 무언의 신호를 준 것이라는 해석이다.

최근 조성되고 있는 북·미 간 분위기도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북한은 지난달 자국에 억류시킨 미국인 3명을 아무런 조건 없이 석방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의 친서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게 전달되기도 했다.

이후 북·미 직접 대화론까지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인 성 김 대북정책 특별대표 겸 동아태 부차관보는 지난 12일 "미국은 실질적 논의가 가능하다면 북한과 직접 대화하는 것도 환영한다"고 밝혀 이목을 끌었다. 또 미국의 한반도 정책을 총괄하는 대니얼 러셀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지난 16일 한 세미나에서 "북·미 대화를 하는 데서 주저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실제로 선뜻 북한과 국교정상화에 나설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쿠바와 달리 북한은 '핵'이라는 전략적인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이다. 또 지정학적 차원에서 보더라도 북한과 관계 개선은 중국, 러시아 관계와도 맞물려있기 때문에 여러 변수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점도 양국 관계 개선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올해 북한 인권문제가 국제적인 이슈로 떠오른 점도 북·미관계 개선에 장애물이 된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이 던지는 메시지에 북한이 어떻게 반응하고 호응해 나올지가 주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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