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아의 '뻘짓', 예고된 것이었다

[기자의 눈]나치 추종자 창업자와 '두 얼굴의 기업 역사'

외국 시장에서 이미 "디자인 좋고, 값도 싸다"고 정평이 나있는 제품이 국내에 직접 판매될 것으로 예고됐다면, 한국 소비자들의 구매욕이나 관심이 갈수록 고조될 것으로 예상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다국적 가구 공룡' 이케아는 국내 1호점 개장 한달을 앞두고 "이러다가는 퇴출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반감을 사고 있다. 한국 사람들이 가장 민감한 반응을 일으키는 '역사적 상처'와 '차별 대우'라는 지뢰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한 세계지도가 '역사성' 논란을 일으키는데 "안전한 제품이니 리콜은 안한다"고 대응하고, 해외보다 너무 비싸게 가격이 책정됐다는 지적에 대해 "한국 소비자의 선호도를 반영했다"는 고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왜 저러는지 궁금했다. 혹시 '노이즈 마케팅'으로 일단 관심부터 끌어보자는 것일까? 의문을 풀기 위해 자료를 모아보니 의문이 풀리는 느낌이다.

우선 '역사적 상처'에 대해 무신경한 이케아의 대응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아보니 창업주 잉바르 캄프라드(88)로 연결됐다. 캄프라드는 젊은 시절 스웨덴에서 나치 운동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젼 인물이다. 나중에 이 사실이 드러나자 캄프라드는 즉각 직원들에게 편지를 보내 사과해서 '과거의 일'로 수습하는 데 성공하는 듯 했다.

1994년 직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캄프라드는 "젊은 시절 어리석었으며, 내 생애 가장 큰 실수"라고 고백했다. 철없는 시절 잠깐 나치에 빠졌으나 오래 전 일이고, 뒤늦게 논란이 되자 창업주가 곧바로 사과했다면 더 이상 문제 삼기 힘들 것이다.

'나치 추종자' 창업주 캄프라드의 '거짓 고백'

하지만 진실은 달랐다. 2011년 8월 25일 영국의 BBC 방송은 스웨덴의 저명 작가 엘리자베스 오스브링크가 캄프라드의 어두운 과거를 폭로한 책을 인용해 "캄프라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훨씬 뒤에도 스웨덴 나치 단체에 새로운 단원들을 적극적으로 모집하는 활동을 했으며, 나치 동조자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전했다.
오스브링크는 이 책에서 "캄프라드는 스웨덴 사회주의자동맹(SUU)라는 극우 파시스트 단체의 단원 모집에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고 폭로했다. BBC는 "이 책이 폭로한 내용은 캄프라드가 시인한 수준보다 훨씬 깊숙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책에 따르면 캄프라드는 17세인 1943년에 이케아 사업을 시작했다. 그때 이미 그는 스웨덴 비밀경찰이 별도의 파일로 분류할 만큼 극우 활동에도 가담했다. 이 파일에는 "캄프라드는 나치 청년 조직에서 일정한 역할을 맡고 있는 인물"이라고 적혀 있었다.

캄프라드는 1988년 자신의 자서전을 통해 과거에 대해 언급하기는 했다. 스웨덴의 파시스트 페르 엥달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1942년부터 1945년 사이 신스웨덴운동(NSM)이라는 단체의 일원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오스브링크의 책에도 캄프라드가 1950년 자신의 결혼식 초청장을 엥달에게 보내면서 "같은 조직에 속해있다는 것이 매우 자랑스럽다"고 적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2010년 캄프라드는 오스브링크와의 인터뷰에서도 "페르 엥달은 위대한 사람이며, 내가 살아있는 한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스브링크가 폭로한 내용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는 반론은 아직 없다.

극우 이념과 역사에 대한 전문가로 저명한 스웨덴의 안나레나 로데니우스는 <라디오 스웨덴>과의 인터뷰에서 "캄프라드의 나치 활동은 더 이상 페르 엥달과의 우정에서 비롯된 부산물로 치부할 수 없게 됐다"고 평가했다.

나치와 관련된 그의 과거를 돌이켜보니, 전체주의적 제국주의에 동조하는 극우주의자가 창업한 이케아가 세계지도에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한 것이 우연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개장을 앞둔 이케아 광명점.ⓒ연합뉴스

"일제 추종자가 창업하고, 본사도 조세회피처에 옮긴 국내 대기업이라면?"

가격정책에 대해서는 "한국의 대기업들의 행태를 따라한 것일 뿐이어서 이케아만 욕 먹기에는 억울한 면이 있다"는 지적이 그럴듯하게 다가왔다.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를 비롯해 국내의 대표적인 대기업들이 외국에서 판매하는 가격과 국내 가격이 큰 차이를 보여도 꾸준히 사주는 한국의 소비자들이 '호갱(호구+고객)'으로 보일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케아가 한국에 진출하면서 보인 행태는 이례적인 게 아니다. 오늘날 이케아가 전세계에서 공급되는 목재의 1%를 사용해 막대한 양의 가구를 파는 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에도 '두 얼굴의 모습'이 있다.
언스트앤영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케아는 지난 1960~1980년대 동독 정치범들에게 강제노동을 시키고, 제3세계 아동을 착취하며 부를 축적한 '악덕기업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국내 진출을 위한 직원 채용 과정에서도 '갑의 횡포'를 부렸다.

1차 면접을 통과한 정규직 지원자에게 2차 면접에서 파트타임 계약직 전환을 요구해 불응한 사람들은 대부분 탈락시키는가 하면, 합격·불합격 여부를 두 달 이후에나 알려주겠다고 통보하는 등 국내 구직자들로부터 '가지고 놀았다'는 원성을 받고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다국적 기업들이 다 그렇지만 절세을 위한 것인지, 탈세를 위한 것인지 이케아의 본사는 스웨덴이 아닌 네덜란드 델프트에 있다. 스웨덴에서 높은 세율의 세금을 내기 싫다며 세금혜택이 있는 네덜란드 델프트로 본사를 옮긴 것이다.

'이케아 불매운동'이 한국 소비자들에게 확산돼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고 소리를 높이는 한 소비자는 "우리나라의 어떤 대기업이 세금 많이 내기 싫다며 본사를 세금을 훨씬 덜 낼 수 있는 나라로 옮기고, 창업주는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한 사람인 것이 드러났어도 그 제품에 열광할 것이냐"고 반문했다.

사실 이케아란 기업명도 다국적 기업으로는 예사롭지 않다. 이케아는 '잉바르 캄프라드 엘름타리드 아군나리드(Ingvar Kamprad Elmtaryd Agunnaryd)'의 약자다. 창업주 이름에 어릴 때 자란 고향 농장과 마을의 이름을 합친 것이다. 현재 이케아의 지배구조는 네덜란드와 룩셈부르크, 리헤텐슈타인에 분산된 여러 재단이 지주회사 역할을 맡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이 재단이 소재한 곳들은 '조세회피처'로 악명 높은 곳들다. BBC는 "복잡한 지배구조 뒤에 사실상 여전히 캄프라드가 1인 지배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전했다.

"이케아가 상륙하면 우린 다 죽는다"던 국내 가구업계는 '이케아 불매운동'이 거론되는 여론에 몰래 미소짓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케아가 해외에서 안전문제로 리콜한 제품을 버젓이 한국에 팔겠다고 매장의 판매 카탈로그에 수록한 무신경을 국내 가구업계가 닮아가서는 역시 '역풍'을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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