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맥 이어온 유엔사령부···한국 주권 제약하는 마력

[군사주권을 빼앗긴 나라의 비극] <7> 한미연합사령부(1)

우리에게 불가사의한 것은 한미연합사령부의 상위 개념으로서 유엔군사령부의 존재다. 한미연합사 작전계획을 보면 항상 첫 페이지에 “유엔사령부의 위임에 의해 이 작전계획을 작성한다”는 문구가 반드시 기재되어 있다. 즉 한미연합사의 법적, 존재적 기반은 대한민국의 주권이 아니라 유엔의 깃발이다.

그러나 실상을 보면 1978년 한미연합사령부를 창설하기로 한 이후 지난 36년간 유엔사령부는 유명무실한 상징적 기구에 지나지 않았다. 한미연합사에 실질적 권한을 위임해주는 일종의 깃발이라고 할 수 있는 유엔사령부는 조직도 없고, 정상적인 사령부도 아니며, 유엔 한국전쟁 참전국들이 대부분 철수한 뒤론 서류상의 존재다.

유엔사가 이제껏 유지돼온 유일한 명분은 한반도에서 한국전쟁을 청산하는 평화협정이 아직 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휴전협정을 관리하는 법적 주체로서의 기능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1975년 제30차 유엔총회에서 서방 쪽과 공산 쪽이 유엔사를 해체하자는 결의안이 통과되었음에도 궁색하게 명맥만 이어왔으나, 그사이에 한국전쟁 당시 유엔사의 적국인 중국과 북한이 유엔에 가입하여 존립의 명분도 사라졌다. 그럼에도 유엔사라는 가상의 존재는 그간 남북 화해협력의 장애를 수시로 조장하는 이상한 마력을 발휘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 남북 철도와 도로가 연결되자 국방부는 “육로 연결은 유엔사 관할”이라며 갑자기 제동을 걸었고, 이로 인해 금강산 육로관광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야 이루어졌다. 그런가 하면 올해 3월 말에 우리 국방부가 중국에 한국전쟁 당시의 중공군 유해를 송환하려고 할 때도 주한미군으로부터 “유해 송환은 정전협정 사항이므로 유엔사 승인을 받아야 한다”며 견제를 받았다. 한미연합사는 유엔사의 권위까지 합쳐져 한국의 주권을 수시로 제약하는 마력을 발휘하였던 것이다.

냉전의 형성기인 60년 전과 지금은 이미 국제정세가 근원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유엔사령부를 핵심으로 한 한국전쟁 체제는 청산의 대상이지 답습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그런 유엔사가 한미연합사령부에 한반도 방위의 임무를 위임한 것이니 대한민국 주권 이전에 한반도는 국제적 공동관리라는 강대국 정치의 유산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만일 한반도에 통일 국면이 전개될 때 유엔사-한미연합사령부는 어떤 역할을 할까? 우선 미국은 “북한은 대한민국과 별개의 주권국가”이기 때문에 “한반도 북단에 한국의 관할권은 없다”고 나설 가능성이 크다. 북한에 대해서는 미국이 중국과 협력하여 그 향후 진로를 흥정할 가능성이 높다.

현 한미연합방위체제에서는 “한국이 주도하여 한반도를 통일한다”는 합의를 한 적이 한 번도 없고, 어떤 문서에서도 이를 명기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주권의 기반이 취약하고 매사를 강대국 정치에 의존하는 한국이 통일의 주도권을 행사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가 각기 자신들의 입장을 내세워 개입하려 할 것이고 한국은 그 눈치를 보게 될 공산이 크다.

이것이 우리가 시급히 군사주권을 회복해야 할 이유이다. 정전협정 체제에서는 우리가 통일을 주도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미리 안보의 당사자 위치를 확보하고 정전체제 이후를 대비하자는 것이다.

현재 전작권 전환을 무기한 연기하고 유엔사-연합사 체제를 고수하는 자들은 오직 안보전략만 강조하고 평화전략, 통일전략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한다. 안보는 성공해봤자 현상유지다. 그러나 평화전략, 통일전략은 현상타파의 논리다. 한반도가 근세 이래 외세의 강점으로 점철되었던 수난의 역사를 넘어 다음세대가 한반도의 주인으로, 통일의 주체로 그 역사적 사명을 다하도록 지금 한그루의 나무를 심는 일이다. 주권을 확립하지 않고 어찌 이것이 가능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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