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에 대한 어떤 예찬론
의심을 품는 것은 찬양받을 일이다! 당신들에게 충고하노니
당신들의 말을 나쁜 동전처럼 깨물어보는 사람을
즐겁게 존경하는 마음으로 환영하라!
당신들이 현명하여 너무 믿을 만한 약속은
하지 않기를 나는 바랐었다.
역사를 읽고 무적의 군대가
혼비백산 도주하는 것을 보아라.
곳곳에서 난공불락의 요새가 함락되고
출범할 때 그 숫자를 헤아릴 수 없었던
무적함대가 돌아올 때는 몇 척 안 되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느 날인가
사람이 올라갈 수 없었던 산봉우리 위에 한 사나이가 올라섰고
끝이 없다고 믿었던 바다의 끝에 한 척의 배가 도달했다.
확고불변의 진리를 부정하면서
오, 멋져라, 머리를 옆으로 흔드는 것은!
구할 길 없어 포기한 환자에 대하여
오, 과감해라, 의사의 치료는!
독일의 시인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쓴 "의심을 찬양함(Lob des Zweifels)"이라는 시의 도입부이다. '인사이드 경제'가 하고자 하는 일이 바로 이런 '의심'이다.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당연히 진실이라고 믿는 얘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파헤쳐 보는 일.
지난 두 차례의 글을 통해 '인사이드 경제'는 기업들의 '사내 유보금' 문제를 파헤쳐 보았다. 당연히 그 출발점은 의심이었다. "사내 유보금은 은행에 쌓여 있는 돈이 아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이미 투자에 반영되어 있다." 과연 이 말이 진실일까? 혹시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은 탓에, 어느새 진실인 것처럼 포장된 거짓말이 아닐까?
연구 개발에 투자된 돈은 어디에서 나올까?
평범한 사람들이 '투자'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공장을 새로 짓거나 신제품 개발하는 데에 자본을 투입하는 행위일 것이다. 여기서 신제품을 만드는 데 쓰이는 연구 개발비는 사내 유보금에서 나오는 돈일까? 이런 질문에 대해서도 고개를 가로저어 보자는 거다.
지금부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2개의 대기업 제조업체인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를 예로 들어서 한번 파고들어 보자. 의심을 풀기 위한 자료는, 전자공시시스템에 공개되어 있는 현대차와 삼성전자의 '감사보고서'뿐이다. ‘인사이드 경제’가 항상 사용해 왔듯이,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자료를 바탕으로 풀어가 보자는 거다.
"연구 활동에서 발생한 지출은 발생한 기간에 비용으로 인식하며, 개발 활동과 관련된 지출은 해당 개발 계획의 결과가 새로운 제품의 개발이나 실질적 기능 향상을 위한 것이며 회사가 그 개발 계획의 기술적, 상업적 달성 가능성이 높고 소요되는 자원을 신뢰성 있게 측정 가능한 경우에만 무형자산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현대차 감사보고서에 등장하는 문장이다. 말이 좀 어렵게 느껴지긴 하는데, 하나씩 풀어서 접근해보자. 우선 현대차는 '연구비' 항목과 '개발비' 항목을 구분하고 있다. 그중에서 '연구비'(연구 활동에서 발생한 지출)는 발생한 기간에 비용으로 인식한다는 말이다.
엥? 이게 무슨 얘기일까? 현대차 손익계산서에서 '연구비'는 '판매비 및 관리비'에 포함되어 있다. 자, 이건 예전에도 한번 얘기한 적이 있는데, 다시 기억을 떠올려보자. 기업의 영업이익은 손익계산서의 항목들을 이용해 아래와 같이 계산한다.
{영업이익} = {매출총이익(매출액 - 매출원가)} - {판매비 및 관리비}
간단히 말해 현대차의 연구비는 상품을 만들고 판매하는 데 지출되는 비용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영업이익이 나면 그 돈으로 연구비에 투자하는 게 아니라, 연구비를 다 지출하고도 남은 돈이 영업이익이라는 거다. 따라서 연구비와 사내 유보금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렇다면 개발비는? 감사보고서에 나온 문장은 좀 복잡한데, 이걸 좀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예를 들어 현대차가 신형 파워트레인 개발에 나섰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이게 실제 개발되면 엄청난 판매량 증가의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예상의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면 파워트레인 개발에 투입된 비용을 그 지불한 시점에 '무형자산'으로 반영해 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사내 유보금과는 인연이 없다. 이익을 창출해서 그로부터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투입된 '비용'을 지불 시점에 무형자산으로 전환해주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결국 몇 년의 시간에 걸쳐서 진행되는 것일 뿐, 개발비 역시 상품을 만들고 판매하는 데 지출되는 비용에 다름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비교해보자면, 자기 능력 개발을 위해 외국어 학원에 등록했다고 가정해보자. 당연히 이런 경우엔 학원비를 부담해야 한다. 생활비 쓰고 남은 돈을 저축해서 부담하는 게 아니라, 매달 꼬박꼬박 지출되는 생활비 안에 학원비가 포함된다. 즉, 학원비를 비롯한 자기 개발에 필요한 비용을 모두 지출하고도 남은 돈이 '저축'된다.
삼성전자의 경우에는 연구비와 개발비를 구분하지 않으며, 아예 '판매비 및 관리비' 항목에 연구 개발비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삼성전자 역시 당기순이익이나 사내 유보금에서 연구 개발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 개발에 비용을 충분히 지출하고도 남는 돈이 사내 유보금으로 축적된다.
참고로, 현대차와 삼성전자는 연구 개발에 얼마나 많은 돈을 지출하고 있을까? 삼성전자의 경우에 2012년엔 10조6000억, 2013년엔 13조2600억에 달했다. 반면 현대차는 2012년에 1조6000억, 2013년에 1조7000억에 불과했다. 10조5500억이 들어간 한국전력 부지 매입액의 1/6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이러니 '승자의 저주' 얘기가 나오는 게 아닐까?
'현금'이란 말에 속지 말자
"한국 250대 상장사(금융사 제외)의 총자산 대비 현금성 자산 비율은 9.18퍼센트로서 미국(12.49퍼센트), 영국(10.37퍼센트), 프랑스(13.04퍼센트), 독일(13.85퍼센트), 일본(16.27퍼센트), 대만(20.64퍼센트)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수준이다."
지난 7월 29일, 전경련 FKI 타워에서 열린 '사내 유보금 과세, 쟁점과 평가 : 기업소득 환류세제, 무엇이 문제인가'란 주제의 세미나에서 한국경제연구원 김윤경 부연구위원이 주장한 내용이다. 한국 기업들의 총자산 대비 '현금성 자산' 비율이 매우 낮다는 주장이다. 즉, 사내 유보금은 대부분 생산적 부문에 투자되기 때문에 기업에 쌓여 있는 현금이 얼마 없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위의 문장만 보자면 거짓이라 볼 수 없다. 아니, 사실 현대차와 삼성전자 등 굴지의 대기업으로 가면 '현금성 자산'의 비율은 1~3퍼센트 수준으로 훨씬 낮아진다. 하지만 여기에는 평범한 사람들을 속이려는 함정이 있다. 이를테면 '단기 금융 상품'은 현금이나 현금성 자산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반인들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업 회계 용어에서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나 '단기 금융 상품'은 모두 머지않은 미래에 현금으로 얻을 수 있는 금융자산을 의미한다. 설마 기업이 수 조원에 달하는 자산을 '현찰'로 금고에 쌓아두고 있으리라 생각하는 분들은 없을 것이다. 예금, 적금 및 다양한 형태의 금융 상품으로 보유하게 된다.
그중에서 유동성이 매우 높아서 당장이라도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 또는 취득 시점으로부터 3개월 이내에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자산을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라고 부른다. 그에 비해 현 시점에서 1년 이내에 만기가 도래하는 정기예금·정기적금이나 기업어음(CP)·양도성예금증서(CD)·환매조건부채권(RP) 등을 '단기 금융 상품'이라 부른다.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나 단기 금융 상품이나 모두 어렵지 않게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자산이며, 흔한 말로 '은행에 쌓아놓고 있는 돈'이나 다름없다.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라는 단어에 '현금'이란 말이 반복되니까, 일반인들은 기업이 빠르게 동원할 수 있는 현금 규모가 이것뿐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자, 그러면 다시 한 번 현대차와 삼성전자를 예로 들어 살펴보자. 감사보고서에 공개된 '재무상태표'에는 다양한 자산들이 종류별로 정리되어 있다. 그중에서 주요한 항목들만 뽑아서 총자산 대비 각 항목들의 비율이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지를 살펴보자.
우선 지난 3년 동안 현대자동차의 자산 변동을 위 그래프로 나타내 봤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래프를 그리기 위해 사용한 수치들은 모두 현대차 감사보고서의 것을 사용했다. 각 막대그래프의 맨 아래 2개 항목(무형자산, 유형자산)은 '실제 투자 자산'이라 부를 수 있어서 푸른색 계통 색상으로 채워보았다. 중간의 3개 항목(현금성 자산, 단기 금융 상품, 기타 금융자산)은 '금융자산'으로 볼 수 있어서 붉은색 계통으로 채워봤으며, 맨 위의 '종속기업/관계기업 투자'는 노란색으로 표현했다. 이들 주요 자산을 모두 합하면 대략 현대차 총자산의 85퍼센트 안팎을 차지한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주장처럼 과연 '현금 및 현금성 자산' 규모는 총자산 대비 1.1~3.0퍼센트로 매우 미미한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단기 금융 상품'은 2011년 17.0퍼센트에서 무섭게 성장해 2013년에는 24.4퍼센트로 치솟게 된다. 3개의 금융자산을 합하면 2011년 총자산 대비 23.1퍼센트에서 2013년 29.5퍼센트로 비중이 큰 폭으로 상승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실물투자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공장, 건물, 토지, 기계장치 등을 뜻하는 '유형자산'의 비중도 줄어든다. 산업재산권이나 영업권, 또는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개발 비용 일부가 전환되어 만들어진 '무형자산' 역시 비중이 줄어든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사내 유보금을 활용하여 실물투자에 반영되는 유형자산·무형자산의 비중은 줄어들고, 단기 금융 상품을 비롯한 금융자산의 비중은 큰 폭으로 늘어난다? 그래서 처음에 언급하지 않았던가. 사장님·회장님들이 하는 모든 얘기는 다 '의심'해봐야 한다고 말이다.
사내 유보금, 실제 투자에 쓰인 게 아니라 은행에 쌓여 있다
이런 현상은 삼성전자에서도 동일하게 확인할 수 있다. 지난 3년 동안 총자산 대비 주요 자산 항목들의 비중이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아래 그래프에서 확인해 보자. 마찬가지로 '현금 및 현금성 자산'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1.3~2.3퍼센트로 매우 낮은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삼성전자 역시 단기 금융 상품 비중이 지난 2년 사이 9.6퍼센트에서 17.7퍼센트로 무려 2배 가까이로 뛰어올랐음을 알 수 있다. 반대로 유형자산 비중은 36.6퍼센트에서 26.8퍼센트로 무려 10퍼센트 가까이 큰 폭으로 하락했다. 역시 실물투자가 아니라 은행에 돈을 쌓아놓고 있다는 얘기다. (참고로, '기타 금융자산'은 매도 가능 금융자산만을 합산했다. 실제 삼성전자의 금융자산 비중은 이보다 높을 것이다.)
'종속기업/관계기업 투자' 항목은 주로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의 지분, 또는 합작회사의 지분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것 역시 전체를 실제 투자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를테면 위 그래프에서 삼성전자의 종속기업/관계기업 투자 비중은 2011년에 비해 2012년에 큰 폭으로 뛰는데, 그건 2012년 4월에 삼성전자 LCD 사업부를 '삼성 디스플레이'라는 자회사로 분할하면서 벌어진 변화일 뿐이다.
즉, 새로운 공장이나 건물을 짓거나, 신규 기계 설비를 도입한 건 하나도 없다. 기존 LCD 사업부를 따로 떼어내 자회사로 독립시켰을 뿐이다. 그 과정에서 자본금 7500억으로 설립한 자회사 삼성 디스플레이가 발행한 10조가 넘는 주식을 100퍼센트 삼성전자가 인수한다. 그래서 '종속기업/관계기업 투자' 항목이 10조 이상 늘어난 것일 뿐, 실제 투자가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말씀.
자, 그럼 이 기간 동안 늘어난 사내 유보금(이익잉여금) 규모와 각 자산들이 늘어나는 규모가 어떤 관계를 보이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실제 투자라 할 수 있는 유형자산과 무형자산을 합산해 '실제 투자 자산'으로, 현금성 자산과 단기 금융 상품 등을 묶어 '금융자산'으로 합산해서 만든 표를 보자. 왜 '인사이드 경제'가 사내 유보금이 실제 투자에 쓰인 게 아니라 은행에 쌓여 있다고 주장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 모두 지난 2년간 엄청난 규모의 사내 유보금(이익잉여금) 증가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의 절반 이상이 금융자산 증가로 나타나고 있으며 실제 투자 자산 증가폭은 매우 미미한 수준임을 보여준다. 심지어 삼성전자의 실제 투자 자산은 오히려 1조5456억 감소했다. 실제 투자 자산에는 감가상각이 적용된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건 좀 심한 수준 아닌가?
2008년 글로벌 위기와 닮은꼴의 재무 상태
사실 위 표는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 직전에 GM을 비롯한 미국 대기업들의 상태를 닮았다. 제조업 대기업들이 사내 유보금으로 엄청난 돈이 쌓이게 되자 이걸 모조리 금융 투자에 꼴아 박았던 거다. 사내 유보금을 종잣돈 삼아 금융 기관들은 부동산 투기와 서브프라임모기지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다 리먼브라더스를 비롯한 금융 기관이 파산하자 세계적인 거대한 금융 위기가 몰려왔다.
이게 단순한 금융 위기가 아니라 GM과 크라이슬러를 비롯한 미국 굴지의 대기업들 파산 위기로까지 이어졌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엄청난 사내 유보금이 금융자산에 투자되면서 금융 위기와 함께 먼지처럼 사라져 버린 거다. 주식과 채권 값이 뚝 떨어지자 단기 금융 상품과 파생 금융 상품들이 휴지 조각이 되고 말았다.
차라리 금융 기관에 묶어두지 말고 노동자들 임금 인상에 썼다면, 소비자들의 구매력 하락에 따른 금융 위기 파장을 줄일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수많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자본가들은 절대로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 '노동자들 줄 돈이 어디에 있어? 이윤이 지상 최대의 목표야! 쥐어짜고 쥐어짜서 금융투자에 모조리 꼴아 박어!'
따라서 사내 유보금을 실제 투자에 사용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단순히 국민을 상대로 사기 치는 문제 수준을 넘는다. 2008년 글로벌 위기에 버금가는 경제 위기를 자본가들 스스로 자초하는 범죄 행위나 다름없다. 기껏해야 사내 유보금 과세 문제로 난리법석을 떠는데, 실제로는 헌법 119조 2항 즉 경제 민주화 조항을 활용해 사내 유보금 전액을 몰수하고 징발해 법정 최저임금을 2배로 올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 안정과 임금 인상에 사용하는 게 경제 위기를 막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
사장님·회장님들이 직접 입증해 보시라~
절대로 의심할 줄 모르는 생각 없는 사람들을
절대로 행동할 줄 모르는 생각 깊은 사람들이 만난다.
이 생각 깊은 사람들은 결단을 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결단을 피하기 위해서 의심한다.
그들은 자기의 머리를 오직 옆으로 흔드는 데만 사용한다.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그들은 침몰하는 배의 승객들에게 물을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살인자가 치켜든 도끼 아래서 그들은 살인자 역시 인간이 아닐까 자문한다.
이 일은 아직도 충분히 연구 검토되지 않았다고 중얼거리면서 그들은 잠자리에 들어간다.
그들의 활동은 우유부단을 본질로 한다.
그들이 애용하는 말은, 아직 결단을 내릴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당신들이 의심을 찬양하더라도,
절망적인 것을 의심하는 것은 찬양하지 말아라!
스스로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의심할 수 있는 능력이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
너무 빈약한 근거에 만족하는 사람은
잘못 행동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너무 많은 근거를 요구하는 사람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고 위협 속에서 머물게 마련이다.
브레히트가 의심을 무조건 찬양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모든 근거가 완벽하게 갖춰져야만 자신의 주장을 내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우유부단한 지식인들의 의심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사실 '인사이드 경제'가 추구하는 바도 동일하다.
우리가 품은 의심이 옳다는 것을, 완전무결한 증거를 찾아서 입증할 수는 없다. 그런 증거는 사장님·회장님이 은밀한 금고 안에 숨겨둔 기밀 서류에서만 찾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설사 우리가 운 좋게 그런 증거를 찾아낸다 하더라도, 그들은 그 서류가 위조된 가짜라고 주장하면 그만이다.
따라서 '인사이드 경제'는 반대로 요구한다. 사내 유보금이 도대체 어느 부문에 얼마만큼 실물투자에 사용되었는지를 한번 밝혀보시라! 단기 금융 상품이 몇 조원씩 늘어나고 있는 사정을 이미 알고 있으니, 현금성 자산이 몇 퍼센트 안 된다는 말로 치사한 트릭 쓰지 마시고 말이다.
유형자산에 얼마, 무형자산에 얼마 사용했다, 뭐 이렇게 퉁! 치지도 마시라. 그건 위급 상황에서 호흡법을 묻는 질문에 대해 "코로도 숨을 쉴 수 있고 입으로도 쉴 수 있다"고 답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정확히 공장, 건물, 기계 설비에 각각 얼마씩 투자했고, 어떤 신제품 개발이 히트 칠 것 같아 개발비 얼마를 무형자산으로 전환했다….' 최소한 이 정도 답변은 나와 줘야 토론이 가능하다.
아울러 사내 유보금 중 은행에 쌓아둔 금융자산이 얼마인지도 함께 밝혀보시라. '인사이드 경제'의 주장이 틀렸다면 구체적인 근거를 갖고 반박해 보시라는 말이다. 반박을 못 하신다면 우리의 의심이 매우 합리적이라고 확신할 수밖에!
모든 의심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은 그러나
겁 많고 허약한 사람들이 머리를 쳐들고 일어나
그들을 억압하는 자들의 강력한 힘을
이제는 더 믿으려 하지 않는 것이다!
75년 전(1939년)에 쓰인 브레히트의 시가 지금까지도 커다란 울림을 주는 건 바로 이 구절 때문일 것이다. 지도자에 대한 의심이 '도를 넘었다'며 모든 의심을 검열하고 불허하는 이곳, 밤을 새우며 '인사이드 경제' 원고를 작성하는 내 휴대폰에는 새벽까지도 지인들이 텔레그램(Telegram) 앱을 깔았다는 메시지가 쉴 새 없이 쌓이고 있다. 그래, 우리 저들의 힘을 믿지 말고 끊임없이 의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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