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2조 돈더미' 기업, '1000조 빚더미' 가계…어쩌다?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기업의 사내 유보금 해부 (1)

세금 문제가 한창 논란이다. 박근혜 정부는 담뱃값 2000원 인상과 함께 주민세와 자동차세도 100퍼센트 인상, 즉 2배로 세금을 올리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담뱃값 인상이 왜 세금 문제냐고? 그거야 담뱃값의 대부분이 세금이며, 인상되는 2000원 역시 고스란히 세금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기업소득 환류 세제'라는 어려운 단어로 세금 문제가 다뤄지기도 했다. 간단히 말해 가계소득에 비해 기업소득이 훨씬 빠르게 성장하는데, 이게 가계소득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으니 기업이 돈을 풀도록 세금 제도를 손질하자는 것이다. 대표적인 방법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이 기업의 사내 유보금에 세금을 물리는 것이다.

경제 문제가 평범한 사람들 입에 회자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평상시에는 정부와 자본가들이 경제 문제를 워낙 어려운 말로 포장해 놓아서, 눈을 크게 뜨고 있어도 서민들 호주머니에서 돈을 강탈해가는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하지만 대중의 관심이 경제 문제로 집중되기 시작하면, 함부로 돈을 빼가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게 된다. 어떻게 보면 '인사이드 경제'가 목적하는 바가 바로 이거다. 평범한 사람들이 어렵지 않게 경제 문제를 토론하고 관심을 갖도록 만드는 것.

사실 이런 얘기를 하면서 '인사이드 경제'도 많은 공부를 하고 있다. 오늘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세금 문제 중 사내 유보금을 중심으로 다뤄보면서 현재 한국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살펴볼 생각이다.

사내 유보금이란?

경제 용어 사전을 찾아보면, 사내 유보금이란 기업의 당기순이익에서 배당금·상여금 등으로 사외로 유출되는 것을 제외하고 남은 금액이라 정의되어 있다. 기업 회계 용어이다 보니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들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일전에 '인사이드 경제'가 한국GM 재무제표를 파고들었을 때를 떠올려 보자. 자세하고 어려운 대목은 잘 몰라도 된다. 핵심 개념이 무엇인지 대충만 이해하고 있으면 된다.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더라도 뭔가에 비유해서 이해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기업은 기본적으로 영업 활동을 한다. 상품을 팔아 나온 총매출액에서 상품 생산에 소요된 매출원가를 빼면 매출이익이 나온다. 여기에 상품 판매 등에 소요된 잡다한 금액인 '판매비 및 관리비'를 더 빼주면 그게 바로 '영업이익(적자)'이 된다.

그런데 기업은 영업 활동만 하는 것은 아니다. 파생상품과 부동산에 투자(투기)하기도 하고, 자회사를 거느리기 위해 주식 지분을 소유하기도 한다. 이런 행위에도 이익과 손해가 나기 마련인데, 이 부문에서 발생하는 이익 또는 손해를 '영업외이익(손실)'이라 부른다.

영업이익(적자)에 영업외이익(손실)을 합산한 금액(경상이익)에서 법인세 등 세금을 제하고 남은 돈이 바로 당기순이익(손실)이 된다. 여기서 다시 주주에게 배당하거나 상여금 등으로 나가는 돈을 제하고 남은 돈이 바로 사내 유보금이다.

자, 가만히 들여다보면 뭐하고 닮지 않았는가? 노동자들이 월급에서 세금과 4대 보험료, 각종 공과금 등을 제하고 실제 수령한 돈에서 한 달 생활비로 지출할 것 다 지출하고 마지막 남은 돈. 그렇다.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축'과 많이 닮은 개념이다.

사내 유보금은 현금이 아니다?

노동자와 가족은 1개월을 단위로 결산을 하는 반면, 기업은 1년을 단위로 결산을 한다. 1년을 기준으로 보면 사내 유보금은 이것저것 비용과 세금을 떼고 남은 현금이라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금액은 매년 쌓이게 된다.

물론 마냥 쌓이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저축이 그러하듯이 그때그때 필요한 일이 있으면 꺼내 쓰는 법이다. 누적된 사내 유보금을 어떻게 처분할지에 대해서는 형식적으로는 주주총회를 거쳐야 하는데, 보통은 이사회가 제시한 안대로 통과되기 마련이므로 실질적으로는 이사회가 결정한다.

사내 유보금 일부는 은행에 현금성 자산으로 쌓여 있다. 또 일부는 설비나 기계 등 유형자산의 형태로 투자가 이뤄지기도 한다. 부동산에 투자(투기)하기도 하고, 자회사의 주식 지분 형태로 존재하기도 한다. 즉, 현금 형태만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자산'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전경련·경총 등 자본가들은 "사내 유보금을 현금으로 오해해선 안 된다. 대부분이 이미 다양한 형태로 투자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여기에 세금을 매기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일단 사내 유보금에 세금을 매기는 것이 정당한가 하는 문제는 논외로 하자.

그럼 앞의 주장은 사실에 부합하는 것일까? 국회 예산정책처가 발간하는 <경제동향&이슈> 2014년 7/8월호는 이와 관련해 한국 기업들의 자산이 어떤 형태로 존재하고 변화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차트 하나를 제공하고 있다(아래 그림).

ⓒ<경제동향&이슈> 2014년 7/8월호


1990년과 2012년을 비교하면 차이를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우선 현금성자산과 단기투자자산은 8.0퍼센트에서 10.2퍼센트로 늘었다. '투자자산' 항목은 대부분 장기금융상품을 의미하는데 이것 역시 6.7퍼센트에서 17.0퍼센트로 상승했다. 두 가지 항목을 합한 '금융자산'이 거의 2배로 늘어난 것이다. 반면 기계·설비·토지 등 실질적인 '실물투자'라 할 수 있는 유형자산은 47.7퍼센트에서 33.7퍼센트로 무려 14퍼센트포인트나 하락했다.

요약하자면 그동안 한국 기업들은 현금을 비롯한 금융자산을 늘려온 반면 투자에는 인색했다는 얘기이다. 당연히 매년 누적되는 사내 유보금 중에서도 현금성 자산이 늘어나고 실질적인 투자에 사용된 부분은 줄어들었다는 해석이 된다.

사내 유보금, 얼마나 늘어났을까?

<경제동향&이슈> 책자에 따르면 1990년 26.3조 원 수준이었던 사내 유보금 총액이 2012년에는 762.4조 원, 무려 29배로 늘어나게 되었다고 한다. 같은 기간 물가상승률이나 임금상승률의 몇 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기간을 최근 몇 년으로 단축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특히 '인사이드 경제'가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재벌 계열사들의 사내 유보금이 얼마나 되는지 하는 부분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거래소와 상장사협의회는 매년 4월에 지난해 10대 그룹 상장계열사의 사내 유보금과 유보율을 발표해 왔다.

'인사이드 경제'는 수많은 언론 기사 검색을 통해 2008년 말부터 최근까지 10대 그룹 상장계열사의 사내 유보금과 유보율 데이터를 취합해 이를 그래프로 그려보았다. (여기서 유보율이란, 사내 유보금을 자기자본금으로 나눈 수치를 백분율로 표시한 것을 말한다.)

ⓒ오민규


우선 그래프를 해석하기 전에 미리 밝혀둘 것이 있다. 먼저 위 그래프의 가로축(X축) 간격이 일정하지 않다는 점이다. 매년 말로 정확히 끊어주면 좋은데 '인사이드 경제'가 아무리 언론 기사를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데이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매년 말을 기준으로 사내 유보금 데이터를 한국거래소와 상장사협의회가 다음해 4월쯤에 발표를 해왔는데, 이상하게도 2011년 말 데이터를 기사화한 언론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2011년 말 항목을 건너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2010년 말과 2012년 말 사이에는 2년의 시간 간격이 있음을 감안하고 보아야 한다.

다음으로 2013년 말 데이터 역시 구할 수 없었다. 거래소와 상장사협의회가 더 이상 이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기로 한 것인지, 아니면 언론사들이 별 관심을 두지 않은 것인지 알 수는 없다. 그 대신 'CEO 스코어'라는 기업 경영 분석 전문 사이트가 주요 시점마다 10대 그룹 상장계열사 사내 유보금 규모 및 유보율을 발표하고 있다. 그래서 2013년 2분기(2Q)와 2014년 1분기(1Q) 기점 사내 유보금과 유보율 수치는 CEO 스코어가 발표한 것을 사용하였다.

이런 점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10대 그룹 상장 계열사의 사내 유보금 총액이 어마어마할 뿐 아니라 엄청난 속도로 증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008년 말과 2014년 1분기, 5년 남짓한 기간 동안 10대 그룹 상장 계열사의 사내 유보금 총액은 221조6000억에서 515조9000억으로 무려 2.33배로 늘어났다.

유보금을 자기자본금으로 나눈 유보율은 2008년 말 894퍼센트에서 2014년 1분기에 1734퍼센트로 거의 2배 가까이로 상승하게 된다. 10대 그룹 상장 계열사들은 자기자본금보다 무려 17배나 더 많은 사내 유보금을 다양한 자산 형태로 보유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격차 심해지는 기업소득과 가계소득

앞에 인용한 <경제동향&이슈> 2014년 7/8월호에는 사내 유보금과 함께 기업소득·가계소득의 비중 변화도 다루고 있다. 책자에 따르면 한국의 국민총소득(GNI) 대비 가계소득 비중은 1995년 70.6퍼센트에서 2012년 62.3퍼센트로 8.3퍼센트포인트 감소한 반면, 법인소득 즉 기업소득의 비중은 1995년 16.6퍼센트에서 2012년 23.3퍼센트로 6.7퍼센트포인트 늘어났다.

같은 기간 OECD 국가의 법인소득(기업소득) 비중 평균은 16.6퍼센트에서 18.2퍼센트로 1.6퍼센트포인트 증가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한국은 무려 6.7퍼센트포인트 수준으로, 법인소득 비중 증가폭이 OECD 평균의 4배 이상을 기록했다. 반면, 한국의 2012년 가계소득 비중은 캐나다를 제외한 주요 7개국(G7)의 66.6∼77.5퍼센트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한국은행 자료


<경제동향&이슈>는 1995년부터 2012년 사이의 데이터를 비교했지만, 사실 이 기간 중 기업소득과 가계소득 격차가 가장 크게 벌어진 것은 최근 5년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3년 기업의 처분가능소득은 2008년보다 80.4퍼센트 급증했지만, 같은 기간 가계 부문의 증가율은 26.5퍼센트에 그쳤다. 2008년 이후 기업소득이 가계소득보다 3배 이상 빠른 속도로 상승했다는 얘기이다.

<경제동향&이슈>는 이렇게 격차가 벌어진 이유를 2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한 가지는 자영업자들의 벌이가 신통치 않았다는 것,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가계 부문과 기업 부문의 이자수입 및 이자비용의 변화이다. 1995~2012년 사이 양 부문의 이자수입·비용은 아래 표와 같은 변화를 겪게 된다.

ⓒ<경제동향&이슈> 2014년 7/8월호


이 대목이 눈에 확 들어오지 않는가? 우린 어려서부터 학교에서 이렇게 배워왔다. 가계 부문이 저축을 열심히 하면 그걸로 은행이 기업에 대출을 해주고, 다시 기업이 이윤을 내서 투자 확대를 하게 되면 임금 인상과 고용 증대로 선순환이 이어진다고 말이다.

그러나 이제 교과서는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한국 경제의 새로운 저축왕은, 이자 비용보다 이자 수입 상승률이 높아진 기업들이라고 말이다. 가계 부문은 저축은커녕 빚을 내느라 이자 비용 때문에 허덕이게 되었고 말이다.

30년 사이에 역전된 상황

자, 그럼 간단히 정리해보자. 기업의 사내 유보금은, 비록 완벽하게 일치하는 개념은 아니지만, 소득에서 생활비와 공과금을 모두 제하고 남은 저축 개념과 비슷하다. 자본가들은 이게 다 현금인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는데, 가계 부문의 저축 역시 오늘날에는 더 이상 현금으로만 존재하진 않는다.

수억 원 이상 자산을 가진 개인이라면 그걸 모두 은행 저축으로만 보유하진 않는다. 당연히 어딘가에는 부동산 투자(투기) 형태로 존재하고, 주식 투자도 할 것임에 틀림없다. 저축 역시 펀드와 파생금융상품 등에 상당수 자산을 분산시켰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니 사내 유보금이 모두 현금이 아니네 어쩌네 하는 말은 별 의미가 없다. 이미 오늘날 저축 자체가 모두 현금인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 사내 유보금이 2000년대 들어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한다. 심지어 글로벌 경제 위기가 시작된 2008년 이후에도 그 증가폭이 둔화되기는커녕 더 빠르게 증가했다. 반대로 경제 위기 여파로 가계소득은 줄어들고 가계부채는 늘어나 기업소득과 가계소득의 격차는 역사상 가장 큰 폭으로 벌어지게 된다.

물론 사내 유보금이 모조리 은행에 쌓여 있는 돈은 아니지만, 2000년대 들어 기업은 유형자산 투자에는 점점 더 인색해지고 금융 자산 소유를 늘리고 있는 추세라, 점점 더 많은 사내 유보금이 금융 자산 형태로 존재할 것임에 틀림없다. 즉, 기업 사내 유보금의 상당 부분이 은행에 몰리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과거에 우리가 배웠던 현상과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게 된다. 즉, 가계 부문이 저축을 늘리고 돈이 은행에 몰리게 되면, 은행은 싼 이자로 기업에 장기 대출을 늘리게 된다. 대출을 통해 투자금을 마련한 기업은 돈 걱정 없이 영업 활동을 지속하게 된다.

그럼 반대로 이제 기업이 은행에 돈을 쌓아놓기 시작한 상황에서, 싼 이자로 가계 대출이 늘어나야 하는 것 아닌가? 물론 가계부채는 이미 1000조를 넘어서는 등 날로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서민들에게 은행 대출은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이자 부담 때문에 망설이거나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파산을 각오하고 빌리는 실정이다.

과거에는 "저 양반이 이번에 저축왕 상 탔대"라며 개인의 재무 상태를 평가했고, "아, 저 기업이면 미래 발전 전망도 있으니 대출해주기 좋지"라며 기업을 평가했다. 그런데 이제 뒤집혔다. "저 양반 신용등급이 뭐야?" 즉, 저축 규모가 아니라 얼마나 돈을 빌릴 수 있는가 하는 신용등급이 개인의 재무 상태 평가 기준이 되어 버렸다. "저 기업은 유보금이 몇 조 원이래" 즉, 미래 발전 전망이 아니라 재무 건전성, '인사이드 경제' 식으로 말하면 저축 규모가 기업의 평가 기준이 되었고 말이다.

기업소득 환류?

상황이 너무 심각하다 보니 박근혜 정부의 2기 최경환 경제팀이 '기업소득 환류'라는 개념을 들고 나왔다. 넘쳐나는 사내 유보금에 과세를 해서라도 기업이 사내 유보금을 투자나 소비로 풀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기업소득이 가계소득으로 '환류'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물론 이 제도는 정기국회를 통과해 법률이 제정되어야만 실현되는 것이긴 하지만, '인사이드 경제'가 보기엔 '글쎄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사내 유보금의 개념이 무엇이고, 왜 이렇게 적치되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을 탐색하지 않고서는 '환류'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글에서 사내 유보금의 개념, 규모, 변화 추이를 살펴보았으니, 이제 다음 글에서 사내 유보금이 쌓이고 있는 이유, 정부 경제팀이 내놓은 '기업소득 환류 세제'의 문제점 등을 다뤄보도록 하겠다. 이제 본격적으로 '먹고사는 문제' 즉 경제 문제를 뜨거운 쟁점으로 올려야 할 때이다. 그래야 강탈당하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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