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목항의 김제동 "대통령님 열렬히 응원, 그 이유는…"

[현장] 시민 1000여 명 태운 '기다림의 버스'…"우리가 눈뜨지 않으면 죽은 자들이 눈감지 못한다"

3일 진도 팽목항에는 유독 바람이 많이 불었다. 실종자들의 이름이 적힌 등이 나부꼈고, 그 옆에 달린 종이 떠난 이의 넋을 기리는 듯 울렸다. 실종자 가족들은 그날도 야속하게 출렁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가족의 이름을 불렀다.

수학여행 전에 찍은 가족사진은 4월 16일에 왔는데 정작 자신은 돌아오지 못한 허다윤 양의 이름을, 아이들에게 과자 사 먹으라고 돈을 쥐어주는 모습이 CCTV에 찍힌 마지막 모습이 된 양승진 선생님의 이름을, 여동생에게 구명조끼를 벗어주고 돌아오지 못한 여섯 살 권혁규 군의 이름을 불렀다.

혼자는 아니었다. 세월호 참사 171일째를 맞아 전국 29개 시군에서 '기다림의 버스'를 탄 시민 1000여 명이 실종자 10명이 가족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원했다.

문인들도 힘을 보탰다. 시인 김행숙·송경동·허은실 씨, 소설가 김훈·김애란 씨, 극작가 최창근 씨, 평론가 양경언 씨 등이 '문인 버스'를 타고 왔다. 이들은 문인 300여 명이 만든 세월호 참사 팸플릿과 소설가 김연수·박민규·김애란 씨 등이 함께 펴낸 세월호 헌정 산문집 <눈먼 자들의 국가>를 실종자 가족에게 전달했다.

▲ 세월호 헌정 산문집 <눈먼 자들의 국가>를 실종자 가족들에게 전달하는 소설가 김훈 씨. ⓒ프레시안(김윤나영)

김훈 씨는 "어두운 바다를 보면서 그 밑에 계신 분들이 눈을 아직도 감지 못하는 생각을 하며 이 자리에 서 있다"며 <눈먼 자들의 국가>에 소설가 박민규 씨가 적은 마지막 문장을 대독했다. "우리들이 눈을 뜨지 않으면 죽은 자들이 눈을 감지 못한다."

방송인 김제동 씨도 특유의 입담으로 실종자들을 위로했다. 김제동 씨는 "대통령을 욕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동의할 수 없다"며 "'유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만들겠다. 특별법에는 무엇보다 유가족의 뜻이 반영돼야 한다.' 대통령이 하신 말씀이다"라고 말했다.

김 씨는 "대통령님, 여야 의원을 열렬히 응원한다. 그들이 했던 말을 기억시키기 위해서"라며 "아이들이 이제는 (진실이) 밝혀졌느냐고 묻고 있다. 아이들의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월호에서 살아 돌아온 아이가 학교 갈 때 학교 반대 방향으로 뜁니다. 늘 해왔던 것처럼 학교에 같이 갈 친구 집 앞으로 간 것이었습니다. 친구 집에서 친구의 이름을 불렀는데, 친구가 나올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느끼는 그 아이의 심정이 어떨까요?

지금은 없는 친구 집으로 아이가 뛰어갈 때 '정신 차려'라고 하는 게 아니라, 그 아이와 함께 친구 집에 같이 가줘야 합니다. 사람이니까 해야 하는 일입니다. 대통령을 더 깊이 사랑해서 그분이 하신 말씀을 기억하게 해주십시오. 여야 국회의원 그들이 말했던 언어의 집을 찾아갈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깊이 사랑하게 도와주십시오."
▲ 방송인 김제동 씨가 3일 진도 팽목항을 찾아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김 씨는 "여러분 힘 빠지는 소리일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이 소리가 (국회나 청와대에) 들리긴 할까 싶다"면서도 "실종자 가족과 유가족을 기억해 달라"고 당부했다.

"얼마 전에 영화 평점 사이트에서 어떤 사람이 영화에 평점 10점을 주고 그 이유를 적어놨습니다. '너랑 함께 봐서.' 이따위 얘기를 해놨어요. (좌중 웃음) 모니터에 돌을 던지려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는 영화가 평점 10점이라면 이분(실종자 가족과 유가족)들은 평점 10점짜리 영화를 볼 기회를 영원히 잃어버린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상이 깨진 사람은 견딜 수 없습니다. 이분들을 기억해 주십시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분들이 계십니다. 물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일상으로 돌아가서 일상을 떼어내서 유가족과 함께하는 게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정치인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정치인들 사람 해요.' (좌중 웃음) '사랑해요'까지는 바라지 않고, '마땅히 사람이 할 일을 해 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유가족들도 함께했다. 단원고 2학년 4반 최성호 군의 아버지 최경덕 씨는 "세월호 유가족으로 사는 건 아주 더러운 일이다. 길거리 노숙을 밥 먹듯 해야 하고, 자식 떠난 이유를 알려달라고 150일간 서명 받으러 다녀야 하고, 국회 돌바닥에서 자야 하고, 청운동 주민센터에서 노숙해야 한다"며 "그런데 실종자 가족들은 자기도 유가족이 되고 싶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들을 때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단원고 2학년 4반 김동혁 군 어머니 김성실 씨는 "세월호 특별법 3차 합의안에 '추후 논의한다'는 말이 나오는데, 요즘 가장 싫어진 말"이라며 "유가족이 원하는, 국민이 원하는 특별법을 만들 수 있도록 함께해 달라. 여러분 도움 없이는 견디기 힘든 실종자 가족들을 찾아 달라"고 당부했다.
박래군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공동운영위원장은 "지옥에서 겨우 탈출한 생존자가 유가족에게 미안해하고, 유가족은 실종자에게 미안해하고, 실종자는 유가족이 되는 게 소원이라는 이 땅에 우린 서 있다"며 "유가족, 실종자 가족과 함께 진실을 밝혀 안전한 사회로 들어갈 출입구를 만들자"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4일 새벽 1시께 실종자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어서 돌아오라"고 외치는 것으로 끝났다.

ⓒ프레시안(김윤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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